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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근원이 풍성한 샘
장기려 - 함석헌 선생님과 나 김대중 - 위대한 스승 함석헌 선생 김영삼 - 우리 근현대사의 양심 함석헌 옹 최태사 - 선생님은 4학년, 나는 1학년 이태영 - 우리 가슴속에 영원히 살아 계실 선생님 법정 - 나도 중이나 되었으면 서영훈 - 유영모 선생님과 함석헌 선생님 김상근 - 민족을 부둥켜안고 눈물 흘리던 예언자 원경선 - "글쎄"의 철학자 다나카 요시코 - 아직 채 덜 깼어 한승헌 - 비폭력 · 평화주의 선생님 강기철 - 역사의 새 지평을 열면서 김숭경 - 고난의 발자취를 따라 배영기 - 훔쳐보는 것만으로도 기쁨이던 스승 문대골 - 이제 내가 의지할 곳이 없습니다 2. 생명을 가꾸는 들사람 안병욱 - 사람은 외곬으로 가야 돼 이문영 - 미래의 함석헌 선생 신일철 - 단식은 왜 하는가 김서민 - 아예 죽어버려라 김찬국 - 내가 아는 함석헌 송건호 - 추모 조형균 - 언론의 자유를 만끽한 이 최진삼 - 선생님 곁에서 지낸 50년 안이현 - 약자에 대한 사랑과 관심 윤창흠 - 스승의 간곡한 당부를 새기며 이기백 - 깊은 외로움 전제현 - 함석헌 선생님을 보내드리고 3. 씨알을 사랑한 바보새 김용준 - 다석과 씨알을 그리며 김삼웅 - 젊은 날 영혼의 스승 김경재 - 역설을 가르쳐주신 이 석진오 - 나와 함석헌 장기홍 - 종교를 하느라고 정치를 한다 권술용 - 젊은 날에 만나야 할 스승과 책 곽분이 - 씨알을 사랑한 바보새 송현 - 선생님은 정신의 수소폭탄 유석성 - 시대의 예언자 서정웅 - 선생님과 나눈 대화 박종채 - 내 손을 잡아주셨을 때 박재순 - 크고 아름다운 분 노명환 - 사람답게 죽어보자 김조년 - 함석헌은 나에게 어떤 의미를 주는가 김영호 - 마지막 인터뷰 김세인 - 40년 이민 생활의 밑그림 김제태 - 노자강좌는 어떻게 시작되었나 박선균 - 나를 깨워 일으켜준 얼 이해학 - 함석헌과 나, 그리고 생명공동체 김경옥 - 오산을 떠나시던 날의 풍경 박상희 - 선생님, 참 뵙고 싶습니다 안병원 - 들사람의 꿈 김언호 - 시대에 우뚝 선 큰 사상가의 책을 만들며 |
咸錫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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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가는 지조가 있어야 한다고 로맹 롤랭은 말했지만 저널리즘이야말로 지조가 있어야 한다. <사상계>는 이 지조를 자부한다. <사상계>는 10년 동안 네 개의 정권을 경험했다. 이승만 정권, 허정 과도정권, 장면 정권, 그리고 군정.
내가 주간을 하던 때는 이승만 정권의 전성기였다. 독재의 권력으로 국민의 입을 봉쇄하려던 때다. 언론의 자유는 민주주의의 최후의 보루다. 우리는 독재자에게 모든 자유를 빼앗기더라도 언론자유의 토치카만 확보하면 이것을 거점으로 독재정치의 악과 부당성을 지적하고 공격하고 육박하여 그 아성을 무너뜨릴 수 있다. 자유당 말기 <사상계>의 역할은 컸다. 독자의 수가 제일 많았던 때요, 또 <사상계>의 생명과 의의가 최고조에 달했을 때다. 이때에 제일 예리하고 용감한 필봉을 휘두른 이가 함석헌 선생이다. 함 선생은 총을 잡는 마음으로 펜을 잡았다. 언젠가 내게 한 말이 생각난다. "불의의 시대에 의인(義人)의 갈 곳은 감옥이다. 내가 아직 감옥에 안 가고 있다는 것은 수치스러운 일이다." 목에 칼이 들어와도 하고 싶은 이야기는 하고 또 해야 할 이야기는 하고야 마는 분이다. ---pp.117~11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