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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치 대학살
서양 현대사의 블랙박스
최호근
푸른역사 2006.04.20.
베스트
서양사/서양문화 top100 3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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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목차

머리말: 왜 문명화된 야만인가?
서설: 600만의 신화? - 유대인 대학살 부정론에 대한 비판

1장 학살의 원인- 유대인 절멸 정책의 형성 과정
반유대주의
근대화 정책
소련 침공

2장 누가 유대인을 죽였는가? - 학살의 가해자들
학살의 기획가들
'책상 앞의 살인자들'
법률가와 의사
기업가
외국의 협력자들
가해자들의 심리

3장 쉰들러 리스트는 있었는가? - 유대인들의 생명을 구했던 사람들

4장 죽음에 이르는 길 - 유대인 절멸의 세 단계
죽음의 그림자: 박해와 배제
격리를 통한 살인: 게토
철조망 밖의 살인: 살인특무부대
철조망 안의 살인: 강제수용소와 절멸수용소

5장 도살장의 양들처럼? - 복종과 저항의 갈림길에 선 유대인들
유대인들의 선택 가능성
복종의 길
저항의 길

6장 홀로코스트는 끝났는가? - 유대인 대학살이 우리에게 주는 의미

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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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저자 : 최호근
고려대학교 사학과와 같은 대학교 대학원을 마친 후, 독일 빌레펠트 대학교에서 막스 베버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훔볼트에서 마이네케에 이르는 독일의 인문주의 전통을 연구하던 그에게 유대인 대학살은 피해갈 수 없는 험준한 고개와도 같은 문제였다. 이 비극이 독일의 역사적 전통에서 비롯된 독일만이 문제인지, 아니면 효율성을 강조하는 현대 문명의 필연적 결과인지를 확인해야겠다는 결심에서 이 책은 시작되었다. 그 때가 2001년. 이 책은 3년 작업의 결실이다. 지금은 집단기억이 역사로 만들어지는 과정에 관심을 갖고, 기념물과 기념관 연구에 집중하고 있다. 육군사관학교 전임강사, 서울대학교 박사후 과정, 부산교육대학교 연구교수를 거쳐 현재는 고려대학교 역사연구소 연구교수로 있다.

저서로는 『600만 대학살에 관한 일곱 가지 질문』,『막스 베버와 역사주의Max Weber und der Historismus』『제노사이드: 학살과 은폐의 역사』등을 썼고,『독일 역사주의』,『제2차 세계대전과 독일―폴란드의 과거청산』등을 옮겼다.

품목정보

발행일
2006년 04월 20일
쪽수, 무게, 크기
467쪽 | 688g | 크기확인중
ISBN13
9788991510241

책 속으로

유대인들이 취했던 마지막 태도는 자발적인 복종이었다. 여기서 특히 우리의 눈길을 끄는 점은 유대인들 스스로가 학살의 각 과정마다 협력했다는 점이다. 나치스는 유대인을 절멸시키는 과정에서 직접 해야 할 영역과 유대인들에게 위임할 영역을 구분했다. 나치스가 직접 챙겼던 것은 법령의 공포, 강제 이송 열차의 운행, 총살과 가스사 같은 일이었다. 유대인들에게 맡겨진 일은 재산 등록, 증명서 수령, 강제노역, 강제 이송과 총살 대상자 선별, 각종 명부 제출, 벌금 납부, 동산 헌납, 나치스의 명령 공고, 사체 매장 등이었다. 그러므로 유대인회를 중심으로 한 유대인들 스스로의 협력이 없었다면 나치스의 절멸 계획은 상당한 차질을 빚을 수도 있었다.

(...) 유대인 학살의 책임은 당연히 절멸 계획을 입안하고, 그 계획을 용의주도하게 현실로 옮긴 가해자인 나치스에게 있었다. 그러나 절멸 과정이 그토록 비극적인 결과로 끝난 데에는 피해자 유대인들에게도 어느 정도 책임이 있었다. 대학살이 유대인들에게는 극복하거나 회피하기 어려운 운명이었지만, 운명(運命)이란 것도 처음부터 그냥 주어진 숙명(宿命)이 아니라 가해자와 피해자 사이의 상호 관계와 상호 작용에서 만들어진 것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 유대인들이 복종하는 태도를 보이지 않았더라면, 그들의 희생은 실제보다 더 작았을 것이다.

--- pp.349~351 중 일부

출판사 리뷰

* 문명과 야만의 불가해한 공존에 의문을 품다

역사를 공부하기 시작한 뒤 내가 품은 가장 큰 의문은 “괴테와 칸트 그리고 바흐를 배출한 문명의 나라 독일에서 어떻게 600만 명의 유대인 학살 같은 야만적 사건이 일어날 수 있을까?” 하는 것이었다.
- 머리말 중

책의 시작은 이렇듯 저자가 역사 공부를 시작했을 당시 가졌던 소박한 질문에서 출발한다. 이 질문은 홀로코스트를 비롯한 대규모 집단 학살에 관한 꾸준한 연구로 이어지며 많은 관련 연구 성과물을 내놓기에 이른다. 그리고 이번엔 나치 독일에 의한 유대인·집시·장애인·동성애자 학살을 다룬 나치 독일의 ‘유대인 대학살’에 주제를 집중시켜《서양 현대사의 블랙박스, 나치 대학살》이라는 결과물을 내놓았다.
저자는 유대인 대학살 연구가 그리 쉬운 작업이 아니었다고 말한다. 앞선 연구자들이 남긴 저작들의 분량이 방대하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같은 주제에 대해서도 독일인들 스스로, 혹은 독일인들과 유대인들, 영미권 학자들, 심지어는 유대인들 사이에 나타나는 해석의 차이가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컸다고 한다. 이런 어려움에서 벗어나기 위해 무엇보다 필요했던 것은 유대인 학살에 관한 엄청난 분량의 정보와 학설들 가운데 “지금 여기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라는 문제의식에 집중하는 것이었다. 이 책은 이를 화두 삼아 ‘나치 대학살’에 일곱 가지 질문을 던진 후, 하나하나 답을 찾아가는 방식으로 나치 대학살의 블랙박스를 해독한다.


* 왜? 누가?

유대인 대학살의 규모를 둘러싼 그간의 논쟁 스펙트럼에서 양대 축을 이룬 주장이 ‘최대 30만 설’과 ‘최소 600만 설’이었다고 한다면, 최근의 연구 결과들은 ‘최소 600만 설’을 지지하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얼마 전에 이루어진 전문 학자들의 공동 연구에서 ‘최대치’가 아닌 ‘적정치’가 이미 620만 명을 넘어섰다는 결론이 이 사실을 잘 보여준다(p.42).

이 책은 먼저 “왜?”라 묻는다. 유대인 대학살이 광신적 반유대주의의 산물이라면, 반유대주의는 어떻게 형성되었으며, 독일인이 왜 이 수렁에서 벗어날 수 없었는지 이해해야 한다. 그러나 우리의 관심이 반유대주의의 계보를 추적하는 데 머문다면, “왜?”라는 문제에 대한 궁극적 해답을 찾기는 어려워진다. 반유대주의가 독일에서 극성을 부렸던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독일에 국한된 현상은 결코 아니었기 때문이다.

바로 이 점에서 저자는 나치즘의 등장과 유대인 대학살의 참화를, 근대화 과정에서 나타난 병리적 현상과 연관지어 좀더 넓은 구도에서 파악하려 했던 관점에도 귀를 기울여야 한다고 충고한다. 이와 함께 이 책에서는 경제적 관점이나 군사적 관점에서 대학살의 원인을 찾아보려는 일부 학자들의 연구 결과도 참조해 연구의 스펙트럼을 넓혔다.

이제는 중세 유럽에서 허용했던 “개종을 통한 평화적 공생”이나 근대 유럽에서 볼 수 있었던 “추방을 통한 공존” 가능성이 현저하게 줄어들었다. 여기서 한 발자국만 더 나가면 반유대주의는 기나긴 발전의 마지막 단계에 도달한다. 최후의 단계는 유대인들에게 “살 권리마저 박탈”하는 경지를 의미한다. 이런 식의 몽상은 20세기 초 유럽 각지에서 등장했지만, 이 꿈을 현실로 전환한 나라는 오로지 나치스 치하의 독일뿐이었다(p.57).

다음은 “누가?”이다. 사실 2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 독일 학자들의 관심은 유대인 대학살에 관한 독일인들의 집단책임을 부정하는 데 집중되었다. 그러나 다니엘 골드하겐은《히틀러의 자발적 집행인들》에서 평범한 독일인들도 거리낌 없이 학살에 참여했다는 주장을 제기해 독일 사회 전체에 큰 충격을 던졌다. ‘골드하겐 효과’라는 신조어까지 낳은 이 책은 몇몇 오류에도 불구하고, 대학살 연구에서 가장 중요한 문제는 역시 가해자들의 이력과 행위 동기를 밝히는 데 있음을 확인해 주었다.《서양 현대사의 블랙박스, 나치 대학살》은 한국 서양사학자의 관점으로 학살에 가담했던 가해자들을 ‘학살의 기획가들, 책상 앞의 살인자들, 법률가와 의사, 기업가, 외국의 협력자들’ 등의 유형으로 나누어 살펴봄으로써, 유대인 학살은 히틀러와 그 패거리들이 저지른 범죄였을 뿐 평범한 독일인들과 상관없는 일이었다는 일부 독일 학자들의 주장도 결국은 변명에 불과했음을 밝힌다.

이제 와서 그 시대를 살았던 사람들 모두에게 유대인 학살의 책임을 묻는다는 것은 불가능할 뿐만 아니라 덧없는 일이기도 하다. 그러나 어떤 범행에도 주범이 있고 종법이 있는 것처럼 행위 동기 와 역할, 그리고 그 행위가 유발한 사회적 파장에 따라 유대인 학살에 가담했던 사람들 가운데 직접 책임을 져야 할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을 가려낼 수 있으며, 이것이야말로 충분히 의미 있는 일이다(p.114).


* 계속되는 질문들

당시 600만 명의 유대인이 겪어야 했던 죽음은 타살과 같은 원시적 유형부터 가스사와 같은 현대적 유형에 이르기까지 다양했다. 저자는 이 책의 중심이라 할 수 있는 이러한 유대인들의 죽음을 게토와 강제수용소, 조직화된 살인 전문가들에 의한 마을 단위 집단 학살로 나누어 정리했다. 그리고 이런 암흑에서도 온갖 위험을 무릅쓰고 유대인들의 생명을 구해냈던 사람들에 대한 질문도 잊지 않는다. 저자는 그들은 누구였으며, 어떤 동기에서 그런 일을 했는지 다양한 각도에서 살핀다.

한편 유대인들의 아킬레스건과도 같은 부분을 “왜 유대인들은 도살장으로 끌려가는 양들처럼 아무런 저항 없이 죽음을 맞이했을까?”라는 질문으로 건드린다. 1945년 이후에 태어난 유대인 세대로서는 총 한번 잡아보지 못하고 허무하게 죽어간 선조들을 이해하는 것이 무척이나 어려운 일이었다. 아울러 나치스의 유대인 학살을 도왔던 ‘유대인회’와 ‘유대인 자치경찰’의 부역 활동은 1945년 이후 상당 기간 유대인 역사가들이 건드려서는 안 될 금기 같은 것이었다. 1960년대 초반 유대인 여류 정치학자 한나 아렌트가 동료 유대인 학자들의 십자포화를 맞았던 이유도 바로 이 치부에 비판의 칼을 댔기 때문이다.

이러한 부역 문제는 우리의 역사 경험과도 중첩되기 때문에 저자는 상당히 신중하게 접근하고 있다. 먼저 대부분의 희생자들이 죽음 앞에서 허망할 정도로 순응하는 자세를 보였던 이유를 찾아보고, 최근의 연구를 통해 속속 밝혀지고 있는 투쟁의 면면들을 추적했다.

그리고 결론적으로 유대인 대학살이 가해자 집단과 희생자 집단에 남긴 깊은 상처를 확인한다. 또 이 내면의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 두 집단이 지금까지 얼마나 많은 노력을 기울여왔는지 말한다. 유대인 대학살은 “그때 거기서 그들에게” 일어난 사건이었을 뿐만 아니라, “오늘 여기에서 살고 있는 우리들과도” 무관하지 않은 사건이다. 그것이 아니라면 한국에 살고 있는 우리가 유대인 대학살에 관심을 갖는 이유의 절반은 사라지고 말 것이라고 저자는 경고한다.


* 1935년 뉘른베르크법, 2006년 독일 월드컵, 그리고 우리

1935년 9월 15일 열린 나치 전당대회에서 독일제국 시민법과 혈통보호법, 이른바 뉘른베르크법이 공포되면서 역사의 악몽은 시작되었다. 그러나 그후 약 70년이라는 시간이 지난 현재, 우리에게 독일은 더 이상 나치의 땅, 저주의 땅으로 기억되지 않는다. 다만 ‘월드컵’ 개최국이라는 열광의 수식어로 다가온다.

만일 ‘희생자 올림픽’ 같은 것이 있다면, 고양 금정굴 학살이나 광주 학살은 예선도 통과하지 못하고 떨어질 것임에 틀림없다. 우리나라에서는 아마도 제주 4?3사건 정도가 간신히 본선에 오를지도 모른다. 한 사람이 죽었든 100만 명이 죽었든, 인종적인 이유로 죽었든 이데올로기나……죽음의 본질은 같다. 저항할 수단이 없는 소수집단을 무장한 강력한 집단이 남녀노소 구분 없이 일방적으로 살해했다면, 그것은 모두 전쟁 범죄나 반인도적 살인 범죄에 속한다. 반인도적 살인 범죄는 공소시효를 인정할 수 없다는 것은 보편적 정의라는 이름 아래 전 세계 사람들이 이미 인정한 바다(p.13).

역사는 어디까지나 현재를 살았던 사람들의 기억으로 꾸려진다. 역사는 동일하게 반복되지 않지만, 이미 일어난 사건들을 기억하지 않으면 그와 비슷한 일이 얼마든지 다시 벌어질 수 있다는 것이 역사가 우리에게 주는 교훈이다. 20세기에 빈번하게 일어났던 집단 학살이 악에 취약한 인간의 근본 기질과 관련된 무서운 질병이라면, 가장 극단적 사례인 홀로코스트에 관한 이해는 그 질병에 대한 저항력을 키워주는 면역 주사와 같다. 모든 사람들이 단순히 홀로코스트를 알고 기억한다고 해서 앞으로 그와 같은 집단 학살이 일어나지 않으리라고 믿는 것은 너무도 순진한 발상이다. 홀로코스트에 관한 이해의 궁극적 목적은 문명화된 야만의 재발을 막는 데 있다. 그리고 이 책《서양 현대사의 블랙박스, 나치 대학살》은 2006년 오늘을 살고 있는 우리의 느슨해진 경계심을 일깨우는 계기를 제공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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