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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과 그 사람
역사가 된 그들의 문장
김범 저
테오리아 2026.1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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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목차

책을 내면서 5

바닥까지 내려간 슬픔과 분노
―사마천, 「임안에게 보내는 답신報任安書」 11

한 무제의 시대 36
사마천에 관련된 자료들 37
출생과 20대의 긴 여행 39
아버지의 별세 42
이릉 사건과 궁형 46
『사기』를 완성하다 56
「답신」을 생각해 본다 60

본문을 뛰어넘은 주석
―배송지, 「삼국지 주를 올리는 표문上三國志注表」 65

주석자 배송지의 삶 71
주석의 특징과 평가 73
주석의 사례들 75
남을 아는 것이 먼저다 82

모든 사물은 평정을 얻지 못하면 운다
―한유, 「맹동야를 보내며送孟東野序」 87

세계 제국의 위용 99
절도사의 시대 101
환관의 전횡 105
두 살 때 고아가 되다 108
큰형과 형수 아래서 자라다 109
학문과 문학을 공부하다 112
네 번 만에 급제하다 114
처음 관직에 나아가다 118
첫 번째 좌천 119
10년의 낙양 생활 124
회서 정벌에 참여하다 131
두 번째 좌천 133
영예를 누리고 별세하다 139
시의 감옥에 갇힌 죄수 맹교 142

1597년 4월 1일 이순신의 일기
―『난중일기』 정유년에서 153

이순신을 변호한 정탁의 상소 160

길고 슬픈 이별
―이미륵, 『압록강은 흐른다』 171

내 마음의 이별 177
이미륵의 삶 179

광개토왕비 연구에 바친 일생
―다케다 유키오, 『고구려사와 동아시아―‘광개토왕비’ 연구 서설』 185

나라의 위기에 직접 출전한 국왕―광개토왕비문의 주요 내용을 검토한다 196
비를 세운 목적과 비의 성격 198
‘비문’의 구성과 특징 200
‘신묘년 조’의 성격과 구조 204
‘신묘년 조’의 해석―‘왜 주도형’과 ‘고구려 주도형’ 207
쟁점과 논거들 212
‘신묘년 조’의 사실성―과장인가, 허구인가 216
기억을 처리하는 방법 222

책을 마치며 231

참고문헌 235

저자 소개 1

1970년 서울 출생. 현재 국사편찬위원회 편사연구관이다. 조선 전기 정치사를 연구해 고려대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저서에 『사화와 반정의 시대』 『연산군―그 인간과 시대의 내면』 『사람과 그의 글』 『민음 한국사―15세기』(공저), 번역서에 『유교적 경세론과 조선의 제도들―유형원과 조선 후기』(제임스 B. 팔레), 『조선왕조의 기원』(존 B. 던컨), 『무신과 문신』(에드워드 슐츠), 『조선의 변방과 반란, 1812년 홍경래 난』(김선주)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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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발행일
2026년 10월 25일
쪽수, 무게, 크기
240쪽 | 140*210*20mm
ISBN13
9791187789529

책 속으로

제가 비록 겁이 많고 나약해 구차하게 살고자 했지만, 의리에 따라 나아가고 물러나는 분별은 잘 알고 있으니 어찌 형벌을 받는 치욕에 스스로 빠졌겠습니까? 노비나 천첩도 자결할 수 있으니 제가 어찌 못 하겠습니까? 가만히 참고 구차하게 살면서 분뇨가 뒹구는 곳에 갇혀서도 마다하지 않은 것은 제 마음에 다하지 못한 것이 있는데 비루하게 세상에서 사라지면 후세에 제 글과 뜻이 전해지지 않을 것을 한스럽게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 p.25

저는 능력이 부족하지만 보잘것 없는 문장에 스스로를 의지해 세상에 흩어진 지난 이야기들을 두루 모아 그 일들을 대략 고찰하고, 그 처음과 끝을 정리해 그 성패와 흥망의 줄기를 살펴 위로는 헌원軒轅부터 아래로는 지금에 이르기까지 10표表, 12본기本紀, 8서書, 30세가世家, 70열전列傳 등 모두 130편을 저술해 세상과 사람의 관계를 탐구하고 과거와 현재의 변화를 꿰뚫어 독자적인 학설을 이루려고 했습니다.
저는 초고를 작성하기도 전에 화를 당했지만 그것을 완성하지 못한 것이 안타까웠기 때문에 극형을 받고서도 분노하는 모습을 나타내지 않은 것입니다. 제가 이 책을 완성해 명산에 감춰뒀다가 적합한 사람에게 전해 큰 도회지에서 알려진다면 앞서의 치욕을 보상받게 될 것이니 만 번 죽은들 어찌 후회하겠습니까?
--- p.28~29

사마천의 가장 중요한 저작은 말할 것도 없이 『사기』다. 『사기』를 빼고 남아있는 글은 「답신」뿐이다. 『사기』의 방대함과 아득한 과거라는 사실을 생각하면 사마천은 정말 많은 저술을 남겼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두 저술의 성격은 사뭇 다르다. 앞쪽은 공식적 성격이 강한 역사서고 뒤쪽은 개인적 감정이 많이 담긴 편지다. 그러니까 사마천과 관련해 그의 감정을 드러낸 글은 한 편밖에 남아있지 않은 것이다.
--- p.38

「답신」에서 읽은 대로 사마천은 이릉과 함께 관직 생활을 했지만 본래 잘 아는 사이가 아니었다. 취향이 달라 함께 술을 마신 적도 없고 예의를 갖추며 만나는 정도였다. 자신과 가까운 사람도 아니고 자신과 관계된 일도 아닌데 사마천은, 그것도 대노한 황제 앞에서 그와 그 사건을 적극 변호한 것이다. 엄청난 처벌을 각오했는지는 모르겠다. 아마 그렇지는 않았을 것 같다. 무제의 판단력과 자신의 논리를 믿지 않았을까 추측해 본다.
--- p.53

저는 진수가 서술하지 않은 일이라도 기록해야 하는 것이면 빠뜨리지 않고 채록해 그 빠진 부분을 보충했습니다. 같은 일을 서술한 것인데도 서로 어긋나고 뒤섞였거나 사건이 본래 달라 판단할 수 없는 것은 다 실어 서로 다른 견해를 남겨뒀습니다. 오류가 분명하거나 이치에 맞지 않는 말은 모두 바로잡고 그 잘못을 비판했습니다. 당시의 사실에 대한 서술의 타당성과 진수의 작은 오류는 제 어리석은 생각으로 논의하고 변별하기도 했습니다.
--- p.67

연구서의 수준은 주석에 있다고 생각한다. 주석이 필요한 글을 써 본 사람은 누구나 알 것이다. 견고한 본문 한 줄을 쓰려면 얼마나 많은 주석을 달아야 하며, 그런 주석을 정리하고 모으려면 얼마나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한지.
--- p.70

거의 모든 말과 글이 사실과 의견으로 이뤄져 있듯 대부분의 주석은 전거와 비평으로 구성돼 있다. 둘 다 있기도 하고 하나만 있는 것도 있다. ‘물댈 주注’와 ‘풀 석釋’이라는 단어로 구성된 그 용어 자체가 앞쪽은 전거를, 뒤쪽은 비평을 뜻하는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배송지 주’도 마찬가지다. 진수의 원문 아래 그것을 보충하는 자료를 제시하고, 필요한 경우 자신의 비평이나 해석을 덧붙였다. 비평은 본문을 대상으로 하기도 하고 전거를 목표로 삼기도 했다. 그런 배송지 자신의 견해는 240건이라고 한다.
--- p.75~76

주희의 핵심 업적인 집주에서 그 자신의 독창적 견해는 드물고 대부분 남의 학설이라는 사실은 내게 큰 충격을 줬다. 사실 전근대 동아시아 학문의 거대한 준령은 주석학이다. 거칠게 말해 한의 훈고학訓詁學, 당의 주소학註疏學, 송의 성리학, 그리고 청의 고증학이 다 그 범주에 들어간다. 그러니까 전근대 동아시아의 수많은 학자는 새로운 책을 쓰거나 생각을 창안하는 것이 아니라 중요한 책에 주석을 다는 데 자신의 재능과 삶을 지불했다고 할 수 있다. 배송지도, 특히 뛰어난 업적을 남긴, 그 한 사람이다.
--- p.83

모든 사물은 평정을 얻지 못하면 웁니다. 바람은 소리 없는 초목을 흔들어 울게 하고 소리 없는 물을 일렁여 울게 합니다. 물이 뛰어오르는 것은 어떤 것이 치기 때문이고 물이 달려가는 것은 어떤 것이 막기 때문이며 물이 끓는 것은 어떤 것이 뜨겁게 하기 때문입니다. 소리가 없는 쇠와 돌을 어떤 것이 쳐서 울립니다.
--- p.88

사람도 그러하니 사람의 소리 가운데 정밀한 것은 말이 됩니다. 문장은 말 가운데 더욱 정밀한 것이어서 더 잘 우는 것을 골라 울게 합니다.
--- p.89

하늘이 앞으로 그 소리를 조화롭게 해 나라에서 크게 울게 할 것인지, 아니면 그 몸을 곤궁하고 굶주리게 하며 그 마음을 근심스럽게 해 스스로 자신의 불행함을 울게 할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세 사람의 운명은 하늘에 달려 있으니, 윗자리에 있은들 어찌 기쁠 것이 있으며 아랫자리에 있은들 어찌 슬플 것이 있겠습니까?
--- p.94

이 글에서 가장 많이 나오고(40번) 가장 중요한 단어는 ‘운다鳴’는 것이다. ‘운다’는 슬퍼서 눈물을 흘리는 것이 아니라 소리를 낸다는 뜻이다. 앞의 ‘평온하지 않다不平’는 표현과 맞춰보면 소리를 ‘지른다’나 ‘외친다’는 뜻이 더 적절하지 않을까 싶다. 그러니까 답답하고 불편해서 이런저런 소리를 지르고 외치는 것이다.
--- p.97

한유는 현실에 결연히 맞서고 과감하게 발언한 실천적 지식인이었다고 말했다. 형식적이고 화려한 변려문을 개혁해 질박하고 본질적인 고문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생각도 그런 삶의 자세와 맞닿은 것이었다. 말하자면 그의 문학은 표현의 미학이나 형식의 완결성을 지향하기보다는 이념과 현실을 반영하는 도구였다.
--- p.120

두 일기의 가장 큰 특징이자 공통점은 그냥 사실만 적은 것이다. 그리고 장군의 일기에는 초등학생의 일기, 나아가 거의 모든 글에 들어있을 한 자락의 감상이나 감정(이를테면 “참 즐거운 하루였다”)도 없다. 이 일기를 쓴 날의 상황을 생각하면 이런 측면은 놀라움을 넘어 충격이나 전율을 안겨준다.
--- p.159

지난날 급히 올린 장계에서 진술한 말은 허망하고 망령된 점이 있어 매우 괴이하고 놀라웠지만 이 말이 아랫사람들의 과장에서 나온 것이라면 중간에 제대로 살피지 못했을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그렇지 않다면 이순신은 미친 사람이 아닌데 감히 그렇게 했겠습니까? 신은 잘 이해되지 않습니다.
--- p.163

‘이별’은 그 자체로 슬픈 단어다. 하지만 누구나 결국은 죽음으로 모든 것과 이별한다. “하지만 우리가 다시 만나지 못해도 너무 슬퍼하지는 마라! 넌 내게 정말 많은 기쁨을 줬어. 자, 얘야, 이제 혼자 계속 가거라!” 이 세 문장을 읽으면서 깊은 슬픔이 밀려왔다. 살면서 이 첫 문장을 발설하는 부모는 많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두 번째와 세 번째 문장은 많은 부모가 공감하고 비슷하게 말할 것이다.
--- p.177

이 책의 출간이 오늘까지 미뤄지고 미뤄진 것은 주로 내 사정 때문이었다. 곧 비문 연구의 새로운 진전에 따라 많은 성과가 차례차례 쏟아져 나왔기 때문이다. 그동안 그 성과를 검토하면서 거기서 배운 것은 무척 많았다. 두 번째는 광개토왕비를 직접 찾아 내 눈으로 보고 내 손으로 확인하고 싶었다. 다행히 일본과 중국 관계자의 배려로 1984년과 그 이듬해 두 번에 걸쳐 오래전부터 품어온 소망이 이뤄졌다. 세 번째는 원석 탁본의 실재를 확인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게 된 것이다. 기존의 직관적 확신을 논증까지 높이고, 논증된 원석 탁본을 이 책의 사료적 기초로 삼고 싶었기 때문이다.
--- p.187~188

하나의 사료, 그것도 분량이 많은 책이나 긴 문서가 아니라 2천 자도 안 되는 비석을 대상으로 동아시아 세 나라의 수많은 석학이 오랜 세월에 걸쳐 연구하고 논쟁한 사례는 달리 없지 않을까 싶다. 그런 모습 자체가 보기 드문 학문적 장관壯觀이라고 여겨진다.
--- p.197

역사학을 포함한 인문학은 궁극적으로 증명이 아니라 주장과 판단과 동의의 영역이라고 생각한다. 아무리 확고한 증거가 있어도 받아들이지 않으면 그것은, 적어도 내게는, 사실이 아닌 것이다. 그래서 더 철저한 검토와 깊이 있는 논쟁과 성숙한 합의가 필요하다. ‘비문’과 관련해서도 이제는 일단 기초적 합의를 이루고 새로운 과제의 탐구로 나아가야 할 때가 되지 않았을까 감히 생각해 봤다.
--- p.198

광개토왕이 세상을 떠난 2년 뒤인 414년 그의 아들 장수왕長壽王(재위 412∼491)은 광대한 영토를 개척한 아버지의 위업을 기리고 널리 알리려는 목적에서 수도인 국내성(지금 중국 지린성吉林省 지안시集安市)의 동북쪽 언덕에 거대한 비를 세웠다. 그런 의도는 이미 비문에서 또렷이 밝혔다. “〔광개토왕의〕 공적을 새겨 후세에 알리려고 한다銘記勲績以示後世.”
요컨대 비는 광개토왕의 위업을 기리는 현창비顯彰碑인 것이다.
--- p.199

‘비문’은 크게 세 부분으로 구성돼 있다.
여기서 가장 중요하고 가장 많은 논쟁을 불러온 부분은 말할 것도 없이 제2단이다(뒤에 제시한 번역문과 원문도 이 부분이다). ‘신묘년 조’는 이 부분의 첫머리다. 제2단은 기사마다 광개토왕의 연호인 ‘영락永樂’에 따라 연도와 간지를 맨 앞에 밝힌 뒤 사건(주로 군사 행동)을 서술했기 때문에 ‘기년紀年 기사’라고도 불린다.
--- p.200~201

‘비문’을 이해하는 데 가장 중요하고 기본적인 사실은 그 비가 현창비라는 것이라고 말했다. 되풀이하지만 주인공을 명확히 드러내야 하고, 그의 영웅적 면모가 더 부각되려면 위기나 고난 같은 불리한 상황이 있어야 하는 것이다.
‘비문’은 치밀한 장치를 사용해 그런 목적을 이뤘다. 그것은 정형적 표현과 독특한 구조다. 먼저 모든 ‘기년 기사’에 정형적 표현을 사용해 친정과 파병을 구별했다.
--- p.202

친정 기사는 독특한 구조로 짰다. 그렇게 국왕이 몸소 출전해야 하는 상황을 설명하는 문장을 앞에 둔 것이다. 그것을 ‘전치문’이라고 한다.
--- p.202

판독할 수 없는 세 글자를 포함해 32자로 이뤄진 이 문장이 한 세기가 훌쩍 넘는 긴 시간 동안 그렇게 많은 논란을 불러온 것이다. 그 까닭은 짧은 문장 안에 중국을 제외한 동아시아의 주요 국가인 고구려·백제·신라·왜가 모두 나오고 고구려가 백제와 신라를 ‘속민·조공’ 관계 아래 뒀으며, 무엇보다 왜가 백제와 신라를 침략해 ‘신민’으로 삼았다고 해석할 수 있는 논쟁적 부분이 있기 때문이다.
--- p.204~205

‘신묘년 조’는 제2단에서 매우 독특하고 독립적이며 중요한 문장이다. 그것은 광개토왕의 치세가 시작되기 전의 동아시아 국제정세를 압축해 제시함으로써 그 뒤 위대한 정복군주가 헤쳐가야 했던 상황을 미리 보여줬다. 이런 의미를 평가해 그것을 전치문들의 전치문, 곧 ‘대大전치문’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 p.206

‘신묘년 조’의 쟁점은 해석과 사실성이라고 했다. 두 부분 가운데 앞쪽은 해석에 논란이 없다. “백잔과 신라는 예로부터 속민으로 조공했다.” 여기서 쟁점은 그 사실성이다. 그러나 뒷부분은 해석과 사실성 모두 의견이 엇갈린다. 먼저 해석인데, 그 기사가 담고 있는 상황이 어떤 나라의 주도로 이뤄졌고 누구에게 유리한가 하는 것이다. 그것은 ‘왜 주도형’과 ‘고구려 주도형’으로 나뉜다. 명칭이 보여주듯 둘은 완전히 반대되는 해석이다.
--- p.207

쟁점은 두 가지로 생각된다. 첫째, ‘고구려 주도형’의 문장 요소 삽입과 보충이 타당한가 하는 것이다.
--- p.212

둘째, 좀 더 중요한 측면은 전치문이라는 ‘신묘년 조’의 성격이다.
--- p.213

그[‘신묘년 조’의] 해석은 논리상 ‘왜 주도형’으로 해야 하며, 그 서술에는 과장과 허구와 사실이 뒤섞여 있다고 말할 수 있을 뿐이다.
--- p.221

어쩌면 광개토왕비는 조지 오웰의 『1984』에 나오는 이 경구에 가장 잘 어울리는 역사적 사례의 하나가 아닐까 싶다. 앞서 살펴본 대로 고대의 ‘비문’에 나오는 왜의 활동과 근대 일본제국주의의 침략을 겹치려는 시도와 그것에 저항하려는 노력은 서로 충돌하면서 큰 학문적·현실적 파문을 일으켰고, 그 맥놀이는 지금도 남아있다고 여겨진다.
--- p.222

출판사 리뷰

사마천의 「임안에게 보내는 답신報任安書」
-궁형을 이겨낸 역사가의 소명 의식

동아시아 한자 문화권에서 일정한 나이를 넘은 사람으로 사마천이라는 이름을 들어보지 못한 이는 많지 않을 것이다. 위로는 헌원부터 아래로는 당대 한무제의 시대에 이르기까지 10표, 12본기, 8서, 30세가, 70열전 등 모두 130편을 저술해 세상과 사람의 관계를 탐구하고 과거와 현재의 변화를 꿰뚫어 독자적인 학설을 이루려고 한, 그의 『사기』는 불멸의 업적으로 역사가 되었다. 그런데 이 불멸의 업적이 궁형이라는 참혹한 상처를 이겨낸 결과라는 것은, 그 업적만큼 잘 알려지지는 않았다. 사마천에게 궁형은 하루에도 아홉 번씩 창자를 뒤틀리게 하고, 집에 있을 때는 아득히 무엇을 잃어버린 것 같고 집을 나서면 갈 곳을 모르게 하며, 그것을 생각할 때마다 땀이 등에 흘러 옷을 적시지 않은 적이 없는 치욕이었다.

무엇이 그가 이 치욕을 견디고 『사기』를 집필하게 했는지는 그의 감정을 담은 유일한 글인 「임안에게 보내는 답신」에서 알 수 있다. 그가 노비나 천첩도 할 수 있는 자결을 하지 않고, 가만히 참고 구차하게 살면서 분뇨가 뒹구는 곳에 갇혀서도 마다하지 않은 것은, 그의 마음에 다하지 못한 것이 있는데 비루하게 세상에서 사라지면 후세에 그의 글과 뜻이 전해지지 않을 것을 한스럽게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는 『사기』의 초고를 작성하기도 전에 궁형을 당했는데, 그는 그것을 완성하지 못한 것이 안타까웠기 때문에, 그 책을 완성해 명산에 감춰뒀다가 적합한 사람에게 전해 알려진다면 앞서의 치욕을 보상받게 될 것이었기 때문에, 치욕을 이기고 혹은 치욕을 안고 불멸의 업적을 이룬 것이다. 「임안에게 보내는 답신」에는 역사가 사마천의 소명 의식이 담겨 있고, 그로써 역사의 글이 되었다.

배송지의 「삼국지 주를 올리는 표문上三國志注表」
-본문과 맞먹는 주석을 단 역사가의 연구 태도

연구서의 수준은 주석에 있다고도 할 수 있다. 견고한 본문 한 줄을 쓰려면 수없이 많은 주석을 달아야 하며, 그런 주석을 정리하고 모으려면 아주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 한국사 수업을 받은 사람은 한 번쯤 들어봤을 한국 고대사의 핵심 자료인 ‘『삼국지』 「위지」 동이전’이 실려있는 진수의 『삼국지』는 사학사에서도 무척 중요하다. 배송지가 단 주석 때문이다. 배송지는 그때까지 남아 있던 삼국 역사에 관련된 230여 종의 자료를 채록해 36만 자의 본문과 맞먹는 32만 자의 주석을 완성했고, 그 주석은 완성된 직후부터 높은 평가를 받아 역사가 되었다. 배송지 주를 역사가 되게 한 그의 연구 태도는 주석의 편찬을 지시한 남조의 송 태조 문제에게 올린 글, 「삼국지 주를 올리는 표문」에 잘 드러나 있다. 그는 진수가 서술하지 않은 일이라도 기록해야 하는 것이면 빠뜨리지 않고 채록해 그 빠진 부분을 보충했다. 같은 일을 서술한 것인데도 서로 어긋나고 뒤섞였거나 사건이 본래 달라 판단할 수 없는 것은 다 실어 서로 다른 견해를 남겨뒀다. 오류가 분명하거나 이치에 맞지 않는 말은 모두 바로잡고 그 잘못을 비판했다. 당시의 사실에 대한 서술의 타당성과 진수의 작은 오류는 그의 생각으로 논의하고 변별하기도 했다.

다케다 유키오의 『고구려사와 동아시아―‘광개토왕비’ 연구 서설』
-체계와 밀도를 모두 갖춘 역사 연구서의 모범

하나의 사료, 그것도 2천 자도 안 되는 비석을 대상으로 동아시아 세 나라의 수많은 석학이 오랜 세월에 걸쳐 연구하고 논쟁한 학문적 장관이 있다. 다케다 유키오는 ‘광개토왕비’를 둘러싼 이 학문적 장관에 일생을 바친 역사가다. 그가 일평생을 바친 연구를 담았음에도 『서설』이라 이름 붙인 『고구려사와 동아시아―‘광개토왕비’ 연구 서설』은 모든 연구서의 목표를 성취한 글로 역사에 남았다. 『서설』은 체계와 밀도 모두 높은 완성도를 지니고 있다. 서장·종장과 13장의 본문으로 이뤄진 구성에서 ‘광개토왕비문(이하 ‘비문’)’과 무관한 것은 한 장밖에 없을 정도로 그 책은 ‘비문’이라는 주제를 중심에 놓은 뒤 그것과 연결되고 거기서 파생된 주제들을 유기적으로 배치한다. 그 주제들은 ‘비문’의 주요 사항은 물론 거기서 유추할 수 있는 고구려의 왕계와 국제관계 등까지 널리 걸쳐 있다. 핵심적 문제인 ‘신묘년 조’에 관련된 부분은 ‘7장 신묘년 조 기사의 재검토’인데, 『서설』의 구성에서 7장은 그 한가운데에 해당한다. 이 책의 저자는 다케다 유키오 못지않은 체계와 밀도로, 비문 신묘년 조의 ‘왜 주도형’과 ‘고구려 주도형’ 해석과 사실성을 둘러싼 논쟁을 정리하고, 비문에 대한 기억을 처리하는 방식을 독자들에게 조심스레 제안한다.

한유의 「맹동야를 보내며送孟東野序」
-실천하는 지식인의 삶과 교유

당송 8대가의 한 명으로 형식적이고 화려한 변려문을 개혁해 질박하고 본질적인 고문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고문운동’을 일으킨 한유에게, 문학은 표현의 미학이나 형식의 완결성을 지향하기보다는 이념과 현실을 반영하는 도구였다. 세계 제국으로 불린 당이 절정의 융성기를 지나 긴 쇠락과 혼란으로 접어든 전환기에 사조를 바꾸거나 규정한 움직임을 주도한 인물의 삶은 평안하기 쉽지 않았다. 평안을 추구해서는 그런 움직임을 이끌 수도 없고 그러려고 나서지도 않을 것이다. 한유는 현실에 결연히 맞서고 과감하게 발언한 실천적 지식인으로서 역사가 되었다. 한유는 그와 교유하던 맹동야에게 보낸 편지 「맹동야를 보내며」에서 모든 사물은 평정을 얻지 못하면 우는데, 하늘이 앞으로 그 소리를 조화롭게 해 나라에서 크게 울게 할 것인지, 아니면 그 몸을 곤궁하고 굶주리게 하며 그 마음을 근심스럽게 해 스스로 자신의 불행함을 울게 할 것인지는 모른다고 한다. 운명은 하늘에 달려 있으니, 윗자리에 있은들 어찌 기쁠 것이 있으며 아랫자리에 있은들 어찌 슬플 것이 있겠느냐며 평정을 얻지 못해 우는 자신과 벗의 삶을 문장에 담는다.

이순신의 『난중일기』
-오직 사실에 입각한 삶과 오직 사실에 입각한 글

『난중일기』는 군인이, 그것도 급박한 위기의 거대한 전쟁을 이겨내며 쓴 진중일기이다. 그것에는 날씨·일과·건강·회의·전황 같은 내용이 대부분으로, 건조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1597년 4월 1일, 우리가 잘 아는 압송과 고문을 거쳐 백의종군이 시작된 날의 이순신의 일기 또한 한 자락의 감상이나 감정도 없다는 점은, 그는 오직 사실에 입각해 생각하고 행동했으며, 승리의 원동력과 위대한 인격은 거기 있다는 평가가 정말 정확함을 보여주며, 그의 삶과 그의 글이 역사임을 보여준다.

이미륵의 『압록강은 흐른다』
-디아스포라의 이별

『압록강은 흐른다』의 저자 이미륵은 경성에서 의대를 다니다가 3·1운동에 참가했고 일제의 검거를 피해 독일로 망명했다. 거기서 어머니·아내·자녀 등 아무 가족도 만나지 못한 채 홀로 살다가 세상을 떠났다. “설령 우리가 다시 만나지 못하더라도 너무 서러워 말아라. 너는 나에게 정말 많은 기쁨을 주었다. 자, 얘야! 이젠 네 길을 가거라!” 살면서 이 첫 문장을 발설하는 부모는 많지 않을 것인데, 이미륵의 어머니는 이렇게 말했다. 이미륵의 일대기는 그래서 깊고 슬픈 이야기, 깊고 슬픈 이별의 이야기다. 이 이별의 이야기 끝에서, 가족과 조국을 떠나 그야말로 낯설고 물선 만리타향에서 긴 세월 그리움과 외로움과 어려움을 헤쳐가며 살면서도 그는 끝내 무너지지 않았고, 역사에 이야기를 남겼다.

글은 어떻게 역사가 되는가-고난을 이겨낸 사실의 문장들

중국 한 무제 시대에서 20세기 일본에 걸치고, 옛 문헌에서 연구서와 소설에 이르는 이 문장들에서 이렇듯 우리는 ‘고난을 이겨낸 사실의 문장들’을 발견한다. 저자는 연구자로서 그리고 한 사람의 인간으로서 이 여섯 편의 글을 마주했고, 역사가 된 문장들로 꼽았다. “사람은 본래 한 번 죽지만 태산보다 무거운 죽음도 있고 새털보다 가벼운 죽음도 있다”고 사마천은 썼다. 그를 비롯해 이 책이 다룬 글을 쓴 사람은 모두 “태산보다 무거운” 삶을 살며 “태산보다 무거운” 성취를 이루었다. 이 책이 독자들의 마음에 “태산보다 무겁게” 남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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