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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는 말
날개옷을 찾아가는 여행 1부 누에 하늘을 엿보다 갈네, 운명의 첫 장면 겨울 뽕나무 등불이 켜지다 삼월의 파도 그날 나는 죽었다 노래의 힘, 폭탄의 힘 인당수를 건너다 2부 독립운동의 강철날개 권기옥 꿈눈이 움트다 내 마음이 하늘마음 봄을 향해 걷다 공중여왕 면류관 비행기 찾아서 구만리 별이 된 비행사 서왈보 내몽골의 연인 중국 창공의 붕익 장강삼협을 건너는 법 한 맺힌 기총소사 꽃밭과 저승 부부스파이 상화, 아름다운 선물 용들의 전쟁 안개도시의 선녀들 다가오는 모국의 하늘 3부 비행기는 좌우의 날개로 난다 앞서 가버린 역사의 시계 갈라진 하늘 비행사할머니 글쓴이의 말 역사, 천 개의 눈 천 개의 손 사진 속으로의 시간여행 연보 참고자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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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 가난. 식민지. 기옥이 이번 생에 받은 이 석장의 패 어디에도 비행기가 그려질 여백은 없었다. 그런데도 가슴이 아플 만큼 두방망이질 쳤다. 눈물이 날 것 같아서, 기옥은 눈을 감았다. 문득 등불 하나가 반짝반짝 빛났다. 비행사. 등불 하나가 가슴으로 걸어 들어왔다. 비행사. 반짝반짝 비행사……. 비행기를 보기 전까지 기옥은 한 마리 억척스러운 누에일 뿐이었다. 이제 누에의 가슴에 등불이 켜졌다. 등불이 누에를 이끌어갈 갈 것이다. 그 등불에 이끌려 누에는 하늘에 가 닿을 것이다.
--- p.36 마침내 누에는 고치를 열고 나비가 되었다. 모든 누에는 날개를 품고 있다. 언제부터인가 누에는 제 심장의 실을 뽑아서 자식의 옷을 짓기 시작했다. 가족의 따뜻한 옷을 짓느라 날개를 잊었다. 세상의 옷을 짓는 동안 스스로는 헐벗었고 하나뿐인 몸뚱이마저 번데기로 공양했다. 날개를 포기한 누에의 공양은 눈물겹도록 소중하다. 그 공양으로 생명이 이어지고 세상이 지어져 왔으니……. 그러나 홀로 죽음을 건너서 천일의 밤낮을 기다려 날개를 얻은 삶은 또 다른 용기이자 도전이다. 외롭고 위태로웠던 만큼 빛나는 성취이다. 눈부신 아름다움이다. --- p.125 “지금까지 비행기 사고를 여러 번 당했어요. 공중에서 피스톤이 툭 떨어져나가 비행기가 가랑잎처럼 팔랑거릴 때도 있었고, 엔진이 고장 나서 활공비행으로 비상착륙을 한 적도 있어요. 비행기가 일본군의 총알 세례를 받은 적도 있고, 대공포 파편에 맞아 구사일생으로 빠져나온 적도 있어요. 그런 사고 때마다 내가 살아남은 건, 정말 필요할 때 조국을 위해 목숨을 바치라는 뜻이라고 생각해요.” 비행사는 꽃밭과 저승이 맞닿은 항로를 줄타기하는 모험가였다. 하물며 식민지 조국해방이라는 비원을 품은 기옥은 꽃다발 속에 폭탄을 숨긴 전사나 다름없었다. --- p.212 “난 행운아였어요. 내 꿈과 겨레의 꿈을 하나로 엮어낼 수 있었으니, 인생에 감사합니다.” 기옥은 자신의 꿈과 겨레의 꿈을 날실과 씨실로 삼아 멋진 날개옷을 지어낸 신여성이었다. --- p.282 “나는 누에에서 겨우 날개를 얻은 것뿐이다. 빼앗긴 하늘을 되찾고자 강철날개로 날아올랐지만 온전한 하늘을 열지 못했다. 갈라진 하늘 아래 한쪽 날개를 접어야 했다. 그러나 한반도여! 그대는 봉황이다. 봉황이 두 날개를 펴고 날아오르는 날 그대는 지구를 감싸 안고 새로운 세기로 나아가리라.” --- p.28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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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최초 여성비행사 권기옥.
2005년 식민지시대 여성비행사 박경원의 삶을 소재로 한 영화 [청연]이 개봉되면서 ‘누가 최초의 여성비행사인가?’ 논란이 일었다. 권기옥은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독립군비행대 양성계획 아래 임시정부의 추천을 받고 1924년 1월 윈난항공학교에 입교하여 1925년 2월 28일 윈난항공학교를 졸업하고 WING 뺏지를 달았다. 1926년 4월에 중국 국민군 항공대 부비항원으로 임명되었고, 1927년 3월에는 중국 국민혁명군 동로군 항공사령부 비항원으로 임명되어 중일전쟁에서 활약했다. 박경원이 일본 타치가와 비행학교에 입학한 시기는 1926년 2월 1일, 일본제국비행협회에서 발급하는 3등 비행사 면허증을 받은 것은 1927년 1월 28일이다. 박경원은 1933년 일제의 만주국 건국 1주년 기념 ‘일만친선 황군위문 일만연락비행’을 하던 중 비행기가 추락하여 사망했다. 사실 관계로 볼 때 권기옥의 비행이 박경원 보다 2년 가까이 앞선다. 일부에서는 민간인 비행사와 공군 조종사를 구분하여 박경원을 ‘최초 민간인 여성비행사’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그러나 일제시대에는 이런 구분 없이 모두 ‘비행사’로 통칭했다. 1926년에 동아일보, 조선일보 등 국내신문들은 권기옥을 중국에 유일한, 조선 최초 여류비행사로 지칭하고 있다. 권기옥은 1924년 윈난항공학교에 입학한 즈음부터 줄곧 일본 외무성의 요시찰인물이었다. 일제는 독립투사인 권기옥을 의식하면서 의도적으로 권기옥의 존재를 지우고 박경원을 ‘조선 최초 여류비행사’로 부각시키려고 했다. 박경원이 만주국 건국 1주년 기념 ‘일만친선 황군위문 일만연락비행’의 선전비행가로 선정된 것도 선전효과를 노린 일제의 의도였다. 소위 ’최초‘ 문제와 관련하여 권기옥 지사는 이미 1960년대에 한 잡지와의 인터뷰에서 심정을 토로한 바 있다. “근래에 와서 내가 한국 최초의 여자비행사라고 화제에 자주 오르는 것 같소. 허나 내가 비행기를 탄 것은 무슨 최초가 되기 위한 사치스러운 욕심에서가 아니었소. 오로지 일편단심 조국광복이라는 큰 사명을 완수하기 위해 내 청춘과 열정을 바친 것이오.” 권기옥평전의 발간을 계기로 ‘최초’ 논란이 마침표를 찍기를 바란다. ‘날개옷을 찾아서’ -누에에서 날개를 얻는 여성의 성장서사. 오랜 신화시대에 여성은 하늘이고 해님이고 날개옷을 입은 선녀였다. 선녀가 날개옷을 잃고 땅에 붙박이자 하늘은 금기가 되었다. 여성은 낮고 어두운 땅. 선녀의 딸들은 하늘을 바라보는 것조차 금기였다. 20세기 초 인류가 비행기를 만들고 처음 하늘문을 두드릴 때, 감히 하늘을 넘보고 하늘로 날아올랐던 여성이 있다. 그가 보았던 하늘은 어떤 것이었을까? 그가 본 하늘은 닫힌 하늘이었다. 석잠을 자는 누에처럼 그는 어두운 동굴, 죽음의 강을 건너서 스스로 날개옷을 지었다. 그가 본 하늘은 식민지의 하늘이었다. 빼앗긴 하늘을 되찾기 위해 그는 강철날개로 날아올랐다. 한국 최초 여성비행사 권기옥, 그는 누에에서 날개를 얻고 별이 된 여성이다. 그 별은 양 날개에 두 개의 별자리를 품고 있다. 날개옷을 찾아 떠난 여성들의 별자리와 독립운동이라는 별자리, 그 한가운데서 두 별자리를 아우르며 빛나고 있다. 권기옥이라는 이름의 별, 그 빛을 따라서 날개옷을 찾아가는 여행을 떠나보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