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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의 글 · 004
들어가는 말: 여러 경제적 미신과 결별하기의 중요성 · 009 chapter 1 자칭 ‘착한 경제학’의 습격 풍요를 부른 ‘절대법칙’ 부정 · 022 물리학에는 상대성이론, 경제학엔? / 중상주의와의 대논쟁에서 승리 / 서방, 비교우위론으로 중국 추월하다 / (잠깐) 초등 산수만큼 쉬운 비교우위론 / 폴 크루그먼의 ‘경제학자 감별법’ / ‘절대법칙’ 무시한 음모론 활개 / “나라 망한다, 나라 팔아먹는다” / 교역확대를 종속 심화로 매도 / “인터넷도 맘대로 못 쓴다” 괴담 / 10년 지나보니 모두 엉터리 저주 / 오히려 개선된 양극화 / (잠깐) 불평등도 보여주는 ‘지니계수’란 / ‘봇물 터질 것’이라던 ISD도 잠잠 / ‘착한 경제’ 선동이 먹혔다면 반지성주의적·자학적 세계관 · 046 굴욕이 되고 만 한·미 FTA 망국론 / (잠깐) 반대 경제학자들은 누구? / 반대 학자들의 공통분모는 ‘학현’ / ‘신자유주의 스토커’들의 가세 / ‘따뜻한 경제학’의 민망한 논변 / 음모론 확산시킨 재야 경제고수들 / 똘똘 뭉친 이질적 지식인들 / 팩트 왜곡과 넘치는 정파성 / 격렬한 반대 뒤의 오랜 침묵 / (잠깐) 반대 성명파들은 지금 어디에? / 반지성주의로 다른 견해 배척 / 사회과학 전반을 ‘붉게 더 붉게’ / (잠깐) 차베스 상찬한 진보학자들 / 자학적 역사관 확산을 부르다 / (잠깐) ‘한·미 FTA 비준반대 각계 선언’ 참여 학자들(2011.10.20.) chapter 2 주류 꿰찬 민폐경제학 K진보경제학 역사와 계보 · 072 매판경제론·종속국가론의 아류 / ‘불평등 특효약’ 간판 달고 신장개업 / 60년 전통의 ‘3대 민폐경제학’ / (잠깐) 진보경제학의 첫 성과 ‘민족경제론’ / ‘민족 성애자’이자 그들만의 선구자 / ‘불통의 마르크시즘’ 한국에 이식하다 / 맹목적 분배주의로 ‘대부’ 등극 / 학연·인연 얽힌 진보경제학 대부 / K진보경제학 뿌리, 일제시대 마르크시즘 / 해방공간의 ‘경성제대 4인방’ / 해방 직후를 지배한 좌파경제학 / 후진국경제론·민족경제론의 탄생 / 해외이론 모방한 관념적 ‘사구체 논쟁’ / 소련 붕괴 후 ‘분배주의’로 기사회생 / 종속이론과 마오이즘 추종 ‘B급 경제학’의 종횡무진 · 104 ‘진보정부’ 정책라인 장악한 학현 / 문재인 정부선 외곽 자리까지 싹쓸이 / 분배·고용·성장의 동반 추락 / 참담한 실패에도 책임감 ‘제로’ / ‘통계 마사지’로 하늘 가리기 / ‘뇌피셜’ 앞세우는 지적 태만 / 주류경제학을 적으로 보는 배타성 / 마셜의 ‘따뜻한 마음’에 대한 오독 / ‘정치학의 아류’ 자처하는 B급 경제학 / ‘인간’ 앞세우며 복지·윤리학과 혼동 / ‘시대착오’ 넘어 ‘시대 파괴’로 / 진보정치와 연계해 사회갈등 증폭 / (잠깐) 진보경제학과 결별한 진보정치인들 그들은 어떻게 주류가 되었나 · 132 ‘민폐경제학’ 진앙지는 서울대 / ‘변형윤 혁명’이 키운 진보경제학 숙주 / 동료 연구자들의 방관과 부화뇌동 / 잇따른 내부의 자성과 비판 / (잠깐) ‘자본주의 맹아론’의 허구 / 완성형으로 진화한 ‘진보 네트워크’ / K진보경제학 최초 진지 한신대 / 지방 습격한 서울대 진보경제학 / 지방 거점 확보 뒤 수도권 역류 / ‘진보 아지트’ 한국사회경제학회·한국경제발전학회 / ‘학현학파 본산’ 서울사회경제연구소 / 배타적이고 폐쇄적인 정치편향 / 실패한 독일 강단사회주의 와 판박이 chapter 3 반대·독선으로 일관한 60년 오판 앞세워 고비마다 발목 · 170 ‘1차 5개년 계획’부터 몽니로 일관 / “경부고속도로는 부자 위한 유람로” / (잠깐) 중동 건설 붐 디딤돌 된 경부고속도로 / “중화학공업화로 나라 망할 것” / (잠깐) 경부고속도로·포항제철 능가한 대역사 / “수출입국은 망상” 비난 쏟아낸 학자들 / “100만 농가 창출” 외친 대중경제론 / 농업 강조하여 국제 분업·해외자본 거부 / ‘1986년 대반전’에 외채망국론 퇴장 / 본원적 자본축적에 대한 오판 / (잠깐) 민초·지식인들의 5·16 지지 / 덩샤오핑도 모방한 ‘박정희 모델’ / (잠깐) 박정희 리더십에 대한 평가 / 학현의 코드는 부정·비관·독설 / (잠깐) 1세대 경제학자들의 기여 / 자폐적 세계관의 집단오류 / 속출하는 대중경제론 시즌2·시즌3 / 지금도 이어지는 ‘386 경제학’의 선동 서민 저격한 ‘포용 코스프레’ · 208 ‘닥치고 분배’ 결과는 빈곤의 평등 / 30년 우파집권기에 양극화 개선 뚜렷 / ‘분배 낙제점’ 노무현·문재인 정부 / 부동산 헛발질에 자산불평등 폭발 / 집값 안정시킨 시장경제학의 힘 / (잠깐) 왜 ‘민주정부’에선 부동산이 오를까 / 역시나 ‘성장’에 무능한 진보경제학 / 자신이 한 일도 모르는 리더들 / 좌파 망상 못지않은 우파의 지적 태만 chapter 4 시장을 국가로 대체 ‘역주행’ ‘경제의 정치화’로 질주 · 226 ‘다 같이 잘살자’더니 서민은 벼랑 끝 / ‘무늬만 포용’에 사회안전망 골병 / 50년 축적한 복지, 5년 만에 거덜 / (잠깐) 연금개혁 손 안 댄 유일한 정권 / 무주택·유주택자 모두 ‘부동산 지옥’ / 부동산 지옥도 만든 조지스트 / 토지단일세 구상이 종부세 신설로 / ‘소주성 역주행’에 멍든 경제 / ‘비정규직 제로’ 외쳤지만 정반대 결과 / (잠깐) 소주성 원조는 중국·브라질 / 소주성, 전제부터 분석까지 모두 허술 / 소주성 실패 땜질 위해 국고 ‘탈탈’ / ‘재정 만능주의’도 FTA 반대파 작품 / 눈덩이 국가부채 ‘1000조 돌파’ / 3년 내리 ‘연100조대 재정적자’ 오명 / 혈세로 갚아야 할 적자국채 폭증 / ‘묻지마 퍼주기’에 국가신용 위태위태 / (잠깐) 국가채무와 신용등급의 톱니바퀴 모험주의로의 궤도 이탈 · 260 “MMT도 해보자”는 아찔한 배팅 / 내로남불의 끝판 “우리 빚은 착한 빚” / 소주성 실패하자 기본소득제로 환승 / 세계 최초 기본소득 지급 ‘가시권’ / (잠깐) 기본소득제보다 ‘안심소득제’ / 기본소득과 토지공개념의 잘못된 만남 / 국민을 투기꾼 몰며 토지공개념 폭주 / (잠깐) 헨리 조지 / ‘중국식 토지국유제’로의 질주 / 토지공개념 도입 선봉에도 ‘학현’ / (잠깐) BTS아미들의 질문 “저 화려한 건물은 어디?” / 권력의 음모 ‘토지 불로소득론’ chapter 5 ‘경제 천동설’과 손절하기 확산하는 진보경제학 미신 · 288 ‘낙수효과는 없다’는 억지 / ‘감세는 재벌·부자 위한 것’이란 이분법 / 한국은 ‘대기업 천국’이라는 비난 / ‘오너 경영·순환출자는 후진적’이라는 단견 / ‘재벌은 특혜 덩어리’라는 오해 / ‘경제개발사는 정경유착사’라는 편견 / ‘주류경제학은 부자만 위한다’는 매도 / ‘나랏돈 풀면 경제 좋아진다’는 맹목 / (잠깐) 글로벌 인플레의 배후 ‘싸구려 경제학’ / ‘복지를 하면 성장이 따라온다’는 망상 / (잠깐) ‘유럽복지 3인방’의 실패 스토리 / ‘유럽 복지시스템이 최고’라는 오판 / (잠깐) 선별복지냐 보편복지냐 / 국가가 ‘복지 독점공급자’라는 착각 / ‘신자유주의로 한국 경제 망한다’는 선동 / ‘주류 경제학=시장만능주의’라는 프레임 / ‘큰 정부가 더 포용적’이라는 위선 / ‘경제민주화=선(善)’이라는 착각 / (잠깐) 질서경제학회의 경제민주화 비판 / ‘자본주의는 한계점에 왔다’는 세뇌 / (잠깐) 엥겔스의 후회 퇴행적세계관과 최후의 일전 · 347 세 번의 카운터펀치 버틴 생명력 / 왜곡·선동으로 진실과 경쟁 / ‘신념의 감옥’에 갇힌 앙상한 영혼들 / 포용의 실종, 포용 코스프레의 진격 / 계급적 관점이 지배하는 퇴행의 학문 / ‘정신의 국유화’ 부르는 사회적 경제 / 경제는 죽을 판, 진보학자는 살 판 / ‘낮은 단계의 전체주의’의 습격 / (잠깐) ‘경제 석학’ 이재명 / ‘거대한 오류’ 만회할 ‘거대한 전환’ / 궤변 이겨내고 ‘전진하는 진실’ / 한국 경제가 망하는 유일한 방법 / K진보경제학, 다른 길로 가야 한다 / ‘다 함께 잘살기’ 무한동력엔진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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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경제개발 60년사의 이면은 ‘진보경제학 민폐사’이기도 하다. 독선과 무책임으로 두 세대 동안 끊임없이 몽니를 부려왔다. K진보경제학의 조언을 따랐다면 오늘 세계 속의 한국은 불가능했을 것이다. 진보경제학의 숙주는 진보정치권이다. 진보학자들은 문재인 정부의 요직을 독점했고, 정권이 끝난 뒤에도 거대 야당 주변을 포위하고 있다. 반성에 인색하다는 특징이 진보경제학의 리스크를 증폭시킨다. 잘못이 확인돼도 학문적 수정에 인색하다. 결과를 호도하며 더 큰 베팅을 감행한다. 방향착오의 중첩규제로 ‘부동산 지옥’이 펼쳐지자 토지공개념이라는 더 치명적인 카드를 던지는 식이다. 소주성 실패에 대응해 기본소득제를 들이민 것도 같은 맥락이다. 진보좌파경제학은 ‘인간의 얼굴을 한 경제학’을 표방하지만 결과를 보면 ‘인간의 가면을 쓴 경제학’이라는 생각을 지우기 어렵다. 좌파경제학이 득세할 때 서민은 예외 없이 고용참사와 극심한 양극화에 시달렸다. ‘서민을 도와야 한다’며 풀어 제친 유동성 덕분에 보유자산 가격이 치솟아서다. 오히려 부자들은 표정관리 모드다. 그들이 주창한 포용은 ‘포용 코스프레’라는 의구심이 불가피하다. 진보경제학은 성장과 분배에 모두 무능했다. 하지만 그 많은 실패에도 사라지지 않고 마치 좀비처럼 되살아왔다. 국민이 선거로 좀비경제학과 좀비경제학자들을 심판해도 잠시 눈앞에서 사라질 뿐 어느 순간 재등장해 폭주를 반복한다. 제1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이 시작된 지 60년이 지났다. 그동안 한국은 시장·자유·개방 경제시스템으로 ‘기적’을 썼다. 1961년 1인당 국민소득은 82달러로 125개국 중 101번째였다. 당시 아프리카 우간다와 비슷했던 1인당 소득은 이제 일본마저 추월할 기세다. 4차 산업혁명 시대를 맞아 세계사 중심으로의 진입 기회도 맞이했다. 다가올 60년을 순항하려면 경제 천동설에 더 이상 흔들리지 말아야 한다. 달은 꽉 차는 순간부터 기울기 시작하듯, 추락도 절정 에서 잉태된다. 그리고 방아쇠는 언제나 내부의 적들에 의해 격발된다. 헛발질로 일관해온 K진보경제학의 행로를 돌아보고 객관적인 평가를 공유하는 과정을 게을리해서는 안 되는 이유다.
--- p.11~13, 「들어가는 말」중에서 나라를 망가뜨리려면 어떻게 하면 될까. 재정을 거덜 내면 된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곳간은 텅 비고 빚만 잔뜩 진 나라에는 파국과 지옥이 기다린다. 이런 상식을 외면하고 문재인 정부는 ‘국고 빼 쓰기’로 직진했다. 반세기 가까이 유지해온 ‘국가채무비율 40%’ 원칙도 종잇장처럼 찢어버렸다. 국회 예산정책처 분석을 보면 잿빛 미래에 두려움마저 든다. 미래 국가채무비율을 2030년 75.5%, 2040년 103.9%, 2050년131.1%, 2060년 158.7%, 2070년 185.7%로 추정했다. 10~20년 내로 나랏빚이 통제할 수 없는 수준으로 불어난다는 경고다. 기축통화국이 아니고 ‘달러 우산’의 보호도 받지 못하는데 재정마저 거덜 나면 작은 충격도 큰 위기로 번지게 된다. 문재인 정부는 국가부채비율 절대수치가 낮아서 문제없다고 강변했다. OECD 평균은 110% 선인데 우리는 여전히 50% 선이라 더 과감하게 써도 된다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처럼 비기축통화국만 떼 내서 지표를 비교해보면 전혀 다른 결과가 나온다. 국제통화기금(IMF)의 ‘세계경제전망 데이터베이스’(2021년 4월호)에 따르면 한국의 GDP 대비 채무비율(중앙정부+지방정부+비영리 공공기관 채무를 합산한 D2 기준)은 2026년 69.7%로 추정된다. 2019년 42.2%에서 7년 새 27.5%포인트나 높아진다. 이는 OECD 38개 회원국 중 중간 정도인 18번째지만, 15개 비기축통화국만 놓고 보면 아이슬란드(77.5%)와 코스타리카(71.9%)에 이어 세 번째다. 헝가리(68.9%)와 멕시코(60.8%), 콜롬비아(57.2%)보다 높다. 헝가리는 신용등급(무디스 기준)이 ‘Baa3’로 한국(Aa2)보다 7계단이나 낮은 나라다. 멕시코도 우리보다 5단계 낮은 ‘Baa1’국이다. 이대로라면 한국도 신용등급 추락이 현실화될 수 있다는 의미다. 채무증가 속도가 너무 가팔라 더 불안하다. 2026년 채무비율은 2019년에 비해 27.5%포인트 상승한다. OECD 비기축통화국 중 가장 빠른 속도다. 비기축통화국의 국채수요는 제한적이어서 기축통화국보다 채무비율이 낮아도 가산금리가 상승하는 등 리스크가 커질 수 있다는 점에서 큰 위협요인이다. 한국은 국제결제통화국(기축통화국)이 아닌 만큼 선진국보다 좀 더 보수적으로 접근하는 게 당연하다. 국가채무비율 적정 수준은 기축통화국은 97.8~114%, 비기축통화국은 37.9~38.7%라는 게 한국경제연구원의 분석이다. 실제로도 달러·엔화·유로화 등 기축통화를 사용하지 않는 OECD 14개국의 평균 부채비율은 41.8%(2019년 기준)다. 한국은 30%대이던 국가부채비율이 문재인 정권 들어서 50%대를 돌파하고 불과 몇 년 뒤 60%에 오른다. 위기 때를 대비해 여러 정부가 이심전심으로 악착같이 축적해온 여유재정을 한 정권이 전부 소진해 버리는 건 어떤 이유로도 정당화하기 힘든 행태다. --- p.256~257, 「‘묻지마 퍼주기’에 국가신용 위태위태」중에서 한국의 경쟁력이 일본을 따라잡았다. 국가경쟁력·신용도 등에서 한국이 일본을 제친 것이다. 20~30년 전만 해도 일본은 미국과 경쟁하는 초일류국가로 ‘노는 물’이 달랐다. 요즘 말로 하면 넘사벽이었다. 일본에서 배워서 한참 뒤늦게 산업화에 착수한 역사까지 감안하면 감개무량한 사건이다. 모두의 공이겠지만 굳이 따져보자면 대기업의 기여를 빼놓을 수 없다. 세계 일류로 성장한 대기업 덕분에 국가경쟁력, 제조업 경쟁력, 1인당 GDP(구매력 기준)에서 일본을 앞지른 게 분명한 사실이다. S&P, 무디스, 피치 등 3대 국제신용평가기관의 국가신용등급은 한국이 일본보다 2단계 높다. S&P의 경우 1990년에는 한국의 신용이 ‘A+’로 일본(AAA)보다 4단계 낮았지만, 이제 ‘AA’로 일본(A+)보다 2단계 높다. 물가와 환율수준을 반영해 국민의 구매력을 측정하는 1인당 경상 GDP 역시 PPP(구매력평가) 기준으로 이미 2018년에 한국(4만 3001달러)이 일본(4만 2725달러)을 따라잡았다. 제조업 경쟁력도 추월했다. 유엔산업개발기구(UNIDO)의 세계제조업경쟁력지수(CIP)를 보면 1990년 한국과 일본은 각각 17위, 2위였다. 하지만 2018년에는 한국이 3위, 일본은 5위로 역전됐다. 진보경제학은 이런 성과의 의미를 축소하고 기업을 폄하하기 바쁘다. 재벌이 족벌경영 하면서 이익을 독식 중인데 경제성장이 대수냐며 재벌개혁 불가피론을 설파한다. 하지만 이들이 재벌개혁의 근거로 제시하는 이론과 팩트의 대부분은 천동설처럼 시효가 지난 낡은 세계관이다. 오너 경영과 순환출자를 범죄시하는 것부터 그렇다. 작은 지분으로 경영권을 휘두르는 오너 체제나 순환출자를 기형적 지배구조라 생각하는 건 과도한 이분법이다. 소위 ‘피라미드형 오너 경영체제’는 전 세계 기업들의 가장 보편적 지배구조다. 오히려 전문경영인 체제가 미국과 영국의 주요 대기업들에서만 목격되는 예외적 모델이다. --- p.296~298, 「‘오너 경영·순환출자는 후진적’이라는 단견」중에서 한국 진보세력의 도덕적 파탄이 심각하다. 이성과 상식에 도전한 조국 교수와, 진보를 자처하는 수많은 지식인과 문인들의 조국 옹호가 움직일 수 없는 증좌다. 민주적 소양의 부족을 따지는 것이 민망할 정도로 집단주의적 전체주의적 독선이 가득하다. 조국 사태 이후 그나마 양심적인 진보인사들은 줄줄이 ‘탈진보’했다. 저 밑바닥의 시궁창을 확인한 이상 함께할 명분을 구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그럼에도 그들은 여전히 진보 언저리를 배회 중이다. 보수는 기득권자 냉혈한이라는 선입견과 무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어서일 것이다. 그 편견의 중심에는 시장경제에 대한 천박한 이해와 심각한 오해가 자리한다. 나랏돈을 풀면 경제가 좋아지고, 최저임금을 올리면 가계의 소득이 늘고, 정규직 전환을 강제화하면 비정규직이 사라진다는 진보경제학의 이분법적 세계관에 많은 이들이 발목 잡혀 있는 것이다. 경제문제에서 판단이 헷갈리면 세상사 옳고 그름에 대한 잣대도 흔들리기 마련이다. 1985년 ‘미 문화원 점거’의 주역 함운경은 고향 군산에서 횟집을 운영하며 진보경제학의 허구를 절감했다고 했다. 그는 “의도가 선하다고 선한 결과가 나오는 것은 아니다”며 문 정부 경제정책을 사기로 규정했다. “소득주도성장을 말한 사람들은 다 사기꾼이다. 가게 매출이 늘어야 직원들 월급도 올라가지, 월급이 올라간 다음 매출이 오르는 게 아니다. 국가가 나서서 임금을 많이 주라고 하면 소득이 늘어나나. 오히려 고용을 줄이지.” 그는 “나는 보수로 바뀌었다”고도 했다. 미국을 ‘제국’으로 규정하고 외교 공관(미 문화권)을 점거하는 과감한 행동으로 국내외에86세대의 등장을 극적으로 알렸던 주역의 놀라운 변신이다. 함 씨처럼 삶의 현장을 체험해보면 시장경제학이야말로 구성원 전체를 위한 균형의 철학에 뿌리를 내리고 있음을 절감하게 된다. 치열한 사고를 멈춰버린 백면서생들과 타인의 노력에 무임승차해 온 이들은 ‘착한 경제학’이라는 한마디 구호에 혹하고 만다. 경제문제에 천착해 본 이들은 ‘착한 경제학’이야말로 약자를 희생시켜 권력을 공고히 하려는 누군가의 위선과 연계돼 있다는 점을 어렵지 않게 간파할 수 있다. 민중을 가난과 차별로 내몰고 기득권층에게만 따뜻한 퇴행의 학문임을 절감하게 된다. 계급적·대립적 경제관에 포획된 진보경제학의 허상이 점차 명확해지고 있다. --- p.357~358, 「계급적 관점이 지배하는 퇴행의 학문」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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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방 이전부터 한국 진보경제학의 계보를 보여주는 역사서이자 경제개발 60년사의 충실 한 기록서
― 진보경제학은 ‘인간의 얼굴을 한 경제학’이 아니라 ‘인간의 가면을 쓴 경제학’ ― 사실과 통계를 통해 K진보경제학 실패 사례를 꼼꼼히 제시 ― 독창적 시각으로 60년 한국 경제개발사의 서사를 일관되게 설명 ― 산업화를 넘어 4차 산업혁명 시대로의 이행을 위한 지침서 『경제 천동설 손절하기』는 ‘따뜻한 경제학’, ‘착한 경제학’이라는 간판을 달고 날개 돋친 듯 팔리고 있는 한국 진보경제학의 실상과 허상을 조명했다. K진보경제학을 대하는 저자의 시각은 결코 우호적이지 않다. 차분히 데이터를 통해 진보경제학의 실상을 객관적으로 평가하는 형식이긴 하다. 하지만 데이터가 워낙 좋지 않다 보니 꽤나 공격적이고 직설적인 비판을 가하는 모양새다. ‘인간의 얼굴을 한 경제학’이 아니라 ‘인간의 가면을 쓴 경제학’임을 냉정하게 드러내고 있다. 프랑스혁명의 아버지로 불리는 철학자 루소는 권위를 앞세워 대중에게 불량지식을 강요하고 기득권에 아부하는 학문과 지식인들의 세태를 직격한 바 있다. 『학문과 예술에 대하여』라는 명저에서였다. 한국 진보경제학에 대한 저자의 시각은 루소의 그것과 맞닿아 있다. 그럴듯하게 포장하고 친근한 용어로 설명하지만 반지성적 ‘갬성경제학’으로 전락했다는 게 저자의 뼈아픈 지적이다. 착한 경제학이라는 이름 아래 한국 경제와 우리네 삶에 외려 민폐가 되고 있다고 직격한다. 저자는 사실과 통계를 통해 K진보경제학 실패 사례를 꼼꼼히 제시하고 현실에서 작동불가능하다고 강조한다. 숫자와 이론이 다수 등장하지만 딱딱한 논문 스타일을 벗어나 상식의 눈높이에서 설명해 이해하는 데 어려움은 없다. 역사적 사실을 발굴하고 동원해 독창적 시각으로 60년 한국 경제개발사의 서사를 일관되게 설명해낸 것도 장점이다. ‘경제학 논쟁은 학계의 일 아니냐’라고 할 수도 있지만 저자 생각은 다르다. 경제학자들의 사고와 판단이 국민 생활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탓에 학계의 일로 치부해선 안 된다고 강조한다. ‘사회과학의 꽃’이란 별칭에 걸맞게 K진보경제학은 한국의 정치학 사회학 역사학 미학 경영학 등 여타 학문에도 막대한 영향을 끼치고 왜곡시키고 있다는 걱정이다. 진보경제학은 한국 경제학계에서 10% 미만의 미미한 점유율이다. 수차례 실패를 통해 허점투성이 경제학이라는 점도 만천하에 드러났다. 하지만 정치판의 절반을 차지하는 진보정치권과 밀접한 네트워크를 완성한 탓에 여전히 사라지지 않고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 중이다. 한국 정치를 장악중인 386 정치인들의 허황한 이상주의 및 기계적 역사인식과 궁합이 맞아떨어져서다. 또 언론시장의 절반 이상을 지배하는 진보방송 및 신문과도 강력한 동맹을 형성해 더욱 위험하다는 지적이다. 저자 주장대로 한국에는 따뜻한 경제학, 착한 경제학자를 표방한 이들이 넘친다. 이들은 검증되지 않은 자신들만의 설익은 이론을 정설처럼 통치권자에게 주입시켜 소득주도성장(소주성) 같은 실험적 정책을 밀어붙였다. 결과는 성장 추락은 물론이고 분배마저 퇴화시키는 악순환이었다. 그런데도 소주성을 펼친 전직 대통령은 최근 ‘1원 1표’보다 ‘1인 1표’ 경제가 바람직하다는 엉뚱한 주장을 새로 들고나왔다. ‘그래도 진보경제학이 분배에는 좀 낫지 않을까’라는 피상적 호의조차 완전 오판이라는 게 데이터를 통한 저자의 직격이다. 이 책은 좋은 경제학의 복권을 누누이 강조한다. 유럽, 미국 등 서방이 200년 전 세계 GDP의 절반을 차지했던 중국과 인도를 따라잡은 비결도 좋은 경제학이라고 했다. 비교우위론 같은 통찰적 이론을 통해 중상주의 같은 자폐적 정책에서 벗어난 결과라는 게 이 책의 논증이다. 저자는 세계사에 유례가 없는 한국의 지난 60여 년 성공스토리도 좋은 경제학을 채택한 덕분이라고 설명한다. 동시에 ‘지구가 아니라 하늘이 돈다’는 천동설을 닮은 K진보경제학의 왜곡과 선동도 절정이라고 걱정한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경제의 정치화’가 아니라 ‘정치의 경제화’라는 주문이다. 보는 사람에 따라 다양하게 읽힐 수 있는 책이다. 해방 이전부터 한국 진보경제학의 계보를 보여주는 역사서이자 경제개발 60년사의 충실한 기록서다. 산업화를 넘어 4차 산업혁명 시대로의 이행을 위한 지침서로 읽어도 무방하다. 장하준, 김상조, 이정우, 홍장표 등 지명도가 있는 동시대 경제학자들 얘기를 담고 있어 시사교양서로도 의미 있다. ‘한국 열차’는 위태위태한 위기를 잘 견뎌내며 지난 60년을 성공적으로 달려왔다. 하지만 경제 천동설과 손절 없이는 향후 60년은 장담하기 어렵기에 진보경제학의 실패스토리를 바로 지금 돌아봐야 한다는 게 저자의 제안이다. 궤도 이탈 없이, 에너지 소진 없이 세계사 중심부로 진입하려면 ‘좋은 경제학’이라는 무한동력엔진 장착을 서둘러야 한다는 게 이 책의 간명한 결론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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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의 기록으로 남을 가치 있는 책
책을 읽으며 속이 다 시원했다. 이름은 같은 경제학자이지만, 나는 그들을 그렇게 인정할 수 없었다. 그들이 한·미 FTA를 반대할 때는 정말 그랬다. 경제학자라는 사람들이 어떻게 저런 말도 안 되는 소리로 대중을 호도하나 생각했다. 그것도 서울대 경제학과를 나왔다는 사람들이…. 그들의 그런 행태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경부고속도로 반대에서부터 중화학공업 투자 반대 등 우리나라를 성공시켰던 모든 결단들에 대해서 반대만 해왔다. 유식하고 현란한 경제학 용어들을 동원하면서 말이다. 물론 누구나 틀릴 수 있다. 하지만 자신을 돌아보면서 지난날의 주장이 틀렸다면 인정하고 반성을 하는 것이 인간의 최소한 도리다. 그들은 전혀 그렇게 하지 않는다. 틀렸는지 돌아보지도 않을 뿐 아니라 설령 그렇다 해도 모른 척으로 일관한다. 이 책은 그들의 행적을 만천하에 드러내어 놓았다. 백 년 묵은 체증이 내려가듯 시원함을 느꼈다. - 김정호 (서강대 경제대학원 겸임교수, 〈김정호의 경제TV〉 크리에이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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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합·중소기업주의 등 굴곡진 경제이념 해독제 되길
한국 경제학의 천동설은 이타주의, 조합주의, 농업주의, 중소기업주의, 내수 중심주의, 자력갱생주의를 그 골자로 하는 것들이다. 이는 반외세, 반외자, 반대기업, 반자본주의, 전통적 세계관을 특징으로 한다. 이런 사이비 경제학이 놀랍게도 한국에서는 주류경제학이다. 이 주류는 서울대 경제학과를 중심으로 확고하게 인적 연대를 형성하고 있고 확대재생산된다. 당연하게도 이들은 좌파적 세계관과 동맹군을 이루고 있다. 변형윤 교수 이후 폐쇄적 자력갱생론에 바탕한 반시장론은 지속된다. 이들은 대기업에 반대하며, 자유시장보다는 경제민주화를 선호하고, 성장보다는 복지를 주된 경제적 지표로 내건다. 이 천동설적 경제학은 처음에는 민주당의 주된 정강으로 표출되었으나 지금은 국힘당을 막론하고 정치 현장에서 광범위한 지지를 얻고 있다. 바로 이것이 한국이 직면한 경제위기의 이념적 본질이다. 백광엽 기자의 이번 저작물이 널리 읽혀 굴곡진 경제이념이 조금이라도 바로 펴지는 일각의 기회가 되기를 바란다. 부디 이 책을 읽는 젊은이들이 많아지기를 간절하게 기원한다. - 정규재 (주필, 〈정규재TV〉 대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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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적 미로에 갇힌 이들이 이 책을 읽어야 할 이유
저자는 서문에서 존 메이너드 케인스(John Maynard Keynes)의 회자되는 문구, “그 어떤 지적인 영향으로부터도 온전히 벗어나 있다고 믿는 이들도 대개는 죽은 어떤 경제학자의 노예”를 인용하고 있다. 자칭 진보경제학자들의 ‘경제를 보는 눈’과 ‘경세제민의 처방’이 폐쇄적이고 발전 친화적이지 않았다면, 그들은 의도하지는 않았지만 극언하면 ‘사회에 정신적·사상적 독극물을 뿌렸다’고 봐야 한다. 추락하는 것은 날개가 있다. 저자는 ‘추락은 절정에서 잉태되며, 방아쇠는 언제나 내부의 적들에 의해 격발된다’고 경고한다. 조지프 슘페터(Joseph A. Schumpeter)도 번영이 자본주의의 최대의 적(敵)이라고 설파했다. 창업보다 수성이 더 힘들다. 어렵사리 쟁취한 대한민국의 기적의 역사를 계속 써 내려가려면 엇박자로 일관해 온 진보경제학자의 행로를 비판적으로 성찰하고 객관적인 평가를 공유해야 한다. 부지불식간에 진보경제학자들에 영향 받아 ‘민족, 자주, 민주’라는 ‘폐쇄된 공간’에 갇힌 젊은이들이 있다면 ‘자유시장경제’라는 열린 공간으로 나와야 한다. 이 책이 훌륭한 안내서가 될 것이다. - 조동근 (명지대 경제학과 명예교수, 바른사회시민회의 공동대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