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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목차

시인의 말

1부 하얀 밤 적신 손수건
오래된 책장
테트라포드
세탁기
봄
손수레
환삼덩굴
봄날, 벚꽃
금낭화
낙화
경칩에
7월 소묘
튤립 뿌리
요로결석

2부 해탈한 낙엽 하나
첫눈
매미
여생
색즉시공
가던 길
사막에서
여름날
귀의
저녁
청포도
무상無相 1
삶의 여적餘滴

3부 낮달같이 훤한 미소
영춘화 피던 날
배롱나무
입동 즈음
연꽃 좌대蓮臺
가을 3제
간이역에 내려
잎사귀
홍시 하나
겨울 연못
경칩 부근
직박구리
홍가시나무
호자나무

4부 베갯잇 솜씨 반닫이가 환하다
달항아리
별의 노래
우수 부근
설악초
꼭두서니
가위
나팔꽃 아내
은하수
종점
홍매
파꽃
모란꽃
노후

5부 먹먹한 껍질 뒤집을까
노란 목련
천지에 가다
코로나 19
말도
몽돌해변
박각시
수우재에서
가을 만경강
선운산 동백
산사의 봄
왕버들
자작나무


■ 해설
자연과 삶의 경계에서 길어 올린 존재의 시학
| 오종문(시조시인 · 한국시조시인협회 회장)

저자 소개 1

전북 군산 출신 2022년 《시조시학》 신인상 수상 오늘의시조시인회의 회원 율격 회원 전북시조시인협회 회원

관련 분류

품목정보

발행일
2026년 10월 30일
쪽수, 무게, 크기
118쪽 | 148*210*20mm
ISBN13
9791124763056

책 속으로

오래된 책장


단단한 벽 틈으로 저녁이 찾아오면
게으른 독자와 함께 노을도 없이 잔다
책장은 에멜무지로 꿈을 꾸며 산단다

날빛을 맞이하다 사람 냄새 맡을 때면
방안 장식품으로 하루를 보내다가도
한 문장 만나는 때는 고단함도 잊는다

묵은 책갈피 속 홀로 견뎌낸 시간
기억을 더듬으며 수시로 말을 걸던
월세방 전전하던 책 마음 먼저 펼친다



테트라포드


수평선 저 너머의 등대로 가는 길은
어깨 서로 맞대고 손에 손을 붙잡고
벼룻길 내려놓으라고 고요하다 별빛은

내 발길 믿었구나! 구멍이 뚫린 가슴
미끄러지는 마음 의지와는 다르더라
높바람 아우성치는데 와불처럼 그대로

출렁이는 바닷물 튀어 오르는 상흔 기억
산산이 흩어지는 떨켜 풀어진 급한 맘
갈매기 종소리 물고 바닷길 가물가물



봄


따뜻한 그 사람에겐 늘 봄이 들었다

고양이 앉아 있는 뒤란에 봄이 있다 뉘게도 발톱은 내보이지 않는다
송곳을 세우지 않고 봄동처럼 견뎌낸다 얼음 위를 뒹구는 숨죽인 영혼,
옹이는 죽비 되어 마치 아지랑이처럼 타오르는 분수로 느티나무 그늘이 된다

정 하나 발효시킨 저녁 가로등이 맘 데운다



별의 노래


짙푸른 하늘가에 끝없는 적멸의 길
한순간 우리 곁에 꽃으로 다녀갔다
너무나 짧았던 인연 오늘 밤엔 별로 뜨나

면사포 벗자마자 머릿수건 두르고
노동의 고갯길에 손수레마저 고장 나
청잣빛 천이백도 가마 인생길에 남겼다

휘발성 그리움은 꿈속에나 몇 장 남아
열두 발 상모 돌아 끝장에서 만날까
첫걸음 디디던 기쁨 아장아장 새록새록

묻고 물어 찾고 찾아 번지도 없는 길
어머니 손길 위로 찾아야 가는 길
스산한 동산 너머는 따뜻한 별자리

출판사 리뷰

■ 평론

이승훈 시인의 시 정신은 자연과 인간의 삶을 분리하지 않고 하나의 생명이 있는 흐름으로 바라보는 데 있다. 꽃이 피고 지는 일, 오래된 책장에 쌓인 세월, 사막을 건너는 낙타의 눈썹까지 익숙한 풍경과 사물에서 삶의 본질을 길어 올린다. 그 시선은 자연의 변화에 머물지 않고 인간의 상처와 고독, 사랑과 연대, 역사적 기억으로 확장되며 개별적인 체험을 보편적인 삶의 문제로 전환한다.

「테트라포드」의 견딤은 거센 파도 앞에서 서로의 어깨를 기대는 존재의 형상으로 나타나고, 「홍가시나무」의 붉은 상처는 개인의 통증을 넘어 살아 있음 자체가 감당해야 하는 고통으로 번진다. 「우수 부근」에서는 얼어붙은 시선과 홍매화의 붉은 핏방울이 맞물리며 상처 입은 존재에게 찾아오는 봄의 기척을 포착하고, 「꼭두서니」의 붉은 생명성은 소멸과 지속이 교차하는 생의 본질을 환기한다. 「여름날」에서는 폭우와 무너진 집, 달팽이와 사람들의 마른 갈증이 한 장면에 포개지며 개인의 슬픔을 시대의 풍경으로 넓힌다. 「별의 노래」에 이르면 어머니의 노동과 삶의 흔적이 뜨거운 가마를 지나 별의 이미지로 상승하면서 한 인간의 생애가 우주적 시간 속에서 새롭게 조명된다. 이들 작품에서 자연은 인간의 상처와 회복, 소멸과 지속의 의미를 함께 품는 생명의 장이다. 그러나 시인의 시선은 추상적 초월에 머물지 않는다. 「오래된 책장」은 책장과 책갈피, 월세방과 한 문장이라는 구체적인 삶의 흔적을 통해 사물에 깃든 시간과 존재의 고단함을 드러내고, 「은하수」는 밤하늘의 별빛을 어머니가 퍼 주시던 쌀밥으로 바꾸어 우주의 신비를 일상의 온기로 끌어당기고, 「낙화」에서는 소멸의 순간에서 인연의 그리움을 읽어낸다. 멀리 있는 진리를 관념으로 설명하기보다 가까이 있는 사물의 구체적인 움직임에서 삶의 의미를 발견하는 것, 이것이 이 시조집을 지탱하는 중요한 시적 자산이다. 상실과 상처는 단절로 끝나지 않고 기억과 사랑을 통해 다시 생의 의미로 전환된다. 이러한 작품 세계를 관통하는 서사는 ‘나’의 경험에서 출발해 ‘우리’의 삶으로 나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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