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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부
동백꽃 | 산친구 | 수로집 2부 물통 작업 | 진우 | 진달래꽃 | 백록담 | 태풍 | 여름 평상 학교 3부 삼춘들 | 동굴 | 생일잔치 | 은이 이모 | 산불 | 어머니 | 작별 4부 기다림 | 비밀이 아니었던 비밀 | 정군 | 아버지 | 싸락눈 | 다시, 동백 작가의 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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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노루뿔, 나한테는 아주 귀한 거야. 돌려줘.” 나는 노루뿔을 손으로 감싸며 한 발 물러섰다. 소년은 잠시 나를 바라보다 등에 멘 바랑에서 붉은 꽃 한 송이를 꺼냈다. “그럼 이 동백꽃하고 바꿀래? 이 꽃도 귀한 꽃이야. 한라산에서 핀 마지막 춘백꽃이야.”
---p.18 “앞으로 몇 년 더 걸릴 거야. 서귀포에서 제주시로 이어지도록 한라산을 뚫어 길을 내는 거라 바위도 많이 부수고. 그래서 아주 오래 걸리지.” “우리 집은 어떻게 되는 거야?” ---p.27~28 계곡에서 조용히 올라온 바람이 조릿대밭을 지나왔다. 조릿대가 차례로 몸을 숙였다 일어섰다. 바람에 은은한 향기가 실려왔다. 나는 눈을 감았다. 조릿대를 흔들던 바람이 멈추었다. 멈춘 바람을 가로질러 더덕 향기가 왔다. ---p.166 “어리야, 숲에서 나무와 풀과 돌과 흙을 떼어놓을 수 있어?” “아니. 다 떼어놓으면 숲이 아니지.” ---p.216 어머니에게도 정군과의 비밀이 있나? 나와 진우처럼? 나와 진우의 비밀을 알게 되면 어머니도 이런 마음일까? 나는 진우와의 비밀을 계속 지켜도 되나? 어린 왕자는 자기 별로 돌아갔지만, 나는 어머니에게 비밀을 말하면 어디에도 갈 데가 없었다. ---p.257 “그럼 동백꽃도, 진우가 준 건 줄 알았어?” 그 순간이었다. 어머니는 아 하고 낮게 숨을 삼키더니, 아궁이 앞에 털썩 주저앉았다. ---p.277~27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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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이라는 역사적 사건이 남긴 흐름 속을 걷는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와 세상을 깨달은 어린 아이의 고백 4·3이 지나고 십수 년, 아무것도 모르던 아이의 눈으로 다시 쓴 한라산의 사계절 “『어리』는 4·3을 기억하는 이야기면서, 개인의 힘으로는 감당하기 어려운 큰 역사적 사건 앞에서 잃어버린 우정을 긴 세월이 흐른 뒤에야 비로소 다시 품어낸 이야기다.” * 2026 경기히든작가 선정작 어리는 거창한 이야기가 아닙니다. 슬픔과 괴로움, 쓸쓸함과 두려움, 억울함을 품고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의 마음을 따뜻하게 어루만져주는 이야기입니다. 개인의 잘못도 아니고 개인이 감당할 수도 없는 엄청난 역사의 소용돌이에서 작은 힘이라도 되었으면, 다시 살아갈 용기를 건네는 이야기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_「작가의 말」에서 “좋은 글을 읽으면 장르를 흔드는 떨림 같은 것을 경험하게 된다.” _손택수(시인) “시간이 속절없이 덮어버린 어떤 광경이 누군가에게는 숙명으로 다가와 우뚝한 채로 일생을 지킬 수밖에 없었노라고.” _이은선(소설가) 일곱 살 어리가 만난 세상 삶에 스미는 거대한 역사의 기운 ‘2026 경기히든작가’ 선정작, 박주연의 첫 장편소설 『어리』가 출간되었다. 창경궁 대온실에서 일하는 ‘나’는 지하실에 방치된 동백 화분을 발견하고, 한라산에서 보낸 어린 시절을 떠올린다. 어리는 봄부터 가을까지 제주 어리목에서 표고밭을 일구는 부모와 함께 표고산에서 생활한다. 한라산을 마당 삼아 뛰어다니며 일꾼 삼춘들의 사랑을 듬뿍 받던 어리는 일곱 살 봄날, 산에 사는 열두 살 진우와 젊은 일꾼 정군을 만나 새로운 우정을 쌓는다. 사람들을 두려워하며 동굴에 숨어 지내는 진우의 아버지, 4·3 때 부모를 잃은 정군, 지난 일에는 말을 아끼면서도 어려움이 닥치면 한마음으로 손을 내미는 어른들을 보며 어리의 마음에는 의문이 쌓여간다. 어리가 태어나기 십수 년 전의 일이지만 여전히 4·3의 그림자가 짙던 시절, 개울에서 헤엄치고 백록담에 오르고 도토리를 주우러 다니던 아이는 사람들의 아픔 뒤에 역사의 흐름이 있다는 사실을 차츰 깨닫는다. 그때 하늘을 가르는 소리가 들렸다. 타앙. 총소리였다. 권총을 나에게 겨누던 경찰이 생각났다. (…) 나는 총소리가 들려온 곳을 바라보았다. 진우네 동굴 쪽이었다. 경찰이 남긴 발자국 위로도 눈더미가 와르르 무너졌다. 다리에 힘이 풀려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310쪽) 어리의 눈으로 바라본 한라산 어리목의 삶과 계절 이해하기 어려운 어른들의 모습을 곱씹다가도 순수한 마음으로 타인을 받아들이는 어리의 천진함은 읽는 내내 미소를 머금게 한다. 어머니와 표고밭 일꾼 정군 사이에 흐르는, 드러날 듯 드러나지 않는 미묘한 감정은 21세기의 「사랑손님과 어머니」를 읽는 듯하다. 가장 압권은 제주의 자연 묘사다. 막 눈이 녹은 산에 핀 춘백의 붉은빛, 서어나무와 자작나무 사이에 매어놓은 빨랫줄, 백록담 밑까지 붉게 퍼진 진달래, 백록담 기슭에서 올려다본 별밭, 진우가 구해온 더덕 향과 건조장 가득한 표고 향, 돌아오지 않는 아버지를 기다리며 채운 도토리 항아리, 눈 속에 얼어 죽은 꿩. 아름답고 애틋한 풍경과 함께 눈밭을 가르는 총소리, 진우 아버지가 숨은 동굴처럼 가슴 시린 장면들이 여러 폭 병풍처럼 펼쳐진다. 도로공사장에서 터지는 다이너마이트, 시멘트에 갇힌 어승생 샘, 국립공원이 들어서며 떠나야 하는 표고산 수로집. 사라져가는 것들 앞에서도 한라산의 아름다움은 마지막 장까지 독자의 시선을 놓아주지 않는다. 어려울 때 곁에 있어주는 친구처럼, 가끔은 잘 나이든 어른처럼, 누군가의 마음 한구석에 오래 머물러주는 ‘반려책’이 되기를 바란다는 저자의 소망은 책을 덮은 뒤에도 오래 남을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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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 무엇을 기어코 써내겠다고 다짐하는 순간 그는 전과는 다른 겹을 몸에 가두게 된다. 주상절리의 석층과 천년이 넘은 비자나무의 얽히고설킨 뿌리, 바람이 끄는 대로 굴러와 박힌 바위의 다공성 구멍들을 박주연은 꼬박 육십 해 동안 품어내었다. 한 사람을 둘러싼 만물들이 스스로 그러하여지던 육십 년. 어리목에는 변함없이 맑은 물이 솟구치고, 사람이 살다 떠나며, 조석으로 노루가 다녀갔다. 그 안의 아프고도 지울 수 없는 이야기들을 박주연은 단 한 번도 원망하지 않았다. 어찌하여 내가 이 삶을 살게 되었느냐고도 질문하지 않았다. 다만 제 몸과 마음에 실은 이야기들이 흩어져버리지 않게 그저 지켰다. 변치 않는다는 말이 박주연에게는 필연이자 필생이 된 셈이다. 그 때문에라도 지금에 와 어째서 이 이야기냐고 묻는 나뭇가지가 있다면 그것을 집어 올려 박주연이 써낸 문장들을 가리켜 보는 것이 이 순간의 답신이겠다. 시간이 속절없이 덮어버린 어떤 광경이 누군가에게는 숙명으로 다가와 우뚝한 채로 일생을 지킬 수밖에 없었노라고. 그 모든 겹의 시간들이 세상에서 가장 맑은 물이 샘솟는 어리목의 이야기가 되었노라며. - 이은선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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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글을 읽으면 장르를 흔드는 떨림 같은 것을 경험하게 된다. 소설인데 시도 있고, 에세이도 있고, 자서전도 있다. 역사인가 하면 신화이고, 신화인가 하면 다큐멘터리다. 박주연의 소설 『어리』가 그렇다. ‘제주 4·3’과 개발독재시기의 폭발음을 배경으로 한라산 소녀 ‘어리’의 성장통을 다룬 이 소설은 ‘검은 돌 무더기 위에서 하얗게 빛나는 노루뿔’의 상징을 제주의 역사뿐만 아니라 근대성의 한복판에 화두처럼 올려놓는다. 그리하여 ‘4·3’의 상처를 간직한 ‘진우’에 대한 그리움과 죄책감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어리’의 이야기가 자연스럽게 나의 이야기가 된다. 모계 신앙의 생태적 전통과 우애의 공동체들이 보여주는 공동선, 원형적인 감각과 절묘한 방언적 글쓰기는 소설을 읽는 또다른 재미다. ‘어머니가 내 이름을 부르자, 나뭇잎들이 일제히 흔들리며 대신 대답했다.’ 고통스러운 기억 가운데도 생명의 호흡을 잃지 않는 이 경이로운 시원을 향해 나도 나뭇잎이 되어본다. - 손택수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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