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작가의 말|악한 자들을 필주하는 게 문학의 소명
세 발의 총성 무지개클럽 아들을 돌려주시오 배신의 시작 태초의 사랑 유성이 내리꽂힌 밤 분노의 씨앗 은밀한 만남 어떤 고해성사 내 손금을 기억하라 고통을 감추고 유다의 어머니 사랑의 뒤편 연리지의 비밀 분노의 종말 |
金洪信
김홍신의 다른 상품
|
‘세상에……. 어머니가 아들을 죽였다고?’
전화기를 잡은 송미연 기자의 손이 바르르 떨렸다. “그게 말이 되는 소리야? 자기 아들을 죽이다니…….” 미연은 사촌 언니 송자연에게 따지듯이 물었다. “빨리 좀 올래? 권총은 내가 얼른 치웠어. 어머니는 제정신이 아냐. 다 내 탓이지만…….” 자연의 말꼬리가 흐려졌다. “언니, 정신 차려. 금방 갈 테니까. 신고는 했어?” 미연은 목청을 높였다. “어머니가 신고했다니까. 지금은 방에서 성모경 외고 계셔.” “잘 지키고 있어. 무슨 일 생기면 안 돼. 권총은 잘 감췄지?” --- 「세 발의 총성」 중에서 미연의 머릿속에서는 생각이 여러 갈래로 가지를 치고 엉켰다. 군대의 막강한 무기를 마음껏 지휘할 수 있는 자는 수없이 총질을 해도 죄가 되지 않는 세상이 되어버렸다. 불과 얼마 전에 전라도 광주 땅에서의 참혹한 범죄는 제대로 밝혀지지도 않았는데, 백성에게 총을 쏜 자들은 오히려 벼락감투를 쓰지 않았던가. 기사를 작성해 신문을 제작할 때마다 계엄사령부 검열단의 붉은 도장을 받아야 하는 시대였다. 기사를 사실대로 작성할 수도 없고 양심대로 글을 쓸 수도 없는, 바른 말을 하면 처벌받는 세상이 되었다. 잘 벼린 칼날 같은 검열에 시달리고 있지만, 훗날 반드시 역사적 죄인들의 허물이나 죄악이나 패악질을 엄중하게 꾸짖는, 하늘과 땅과 민족의 필주(筆誅)가 이루어지는 날이 빨리 오기를 학수고대하고 있다. --- 「무지개클럽」 중에서 “박해선이, 매섭게 다루는 데도 입을 안 여는 독종이더구먼. 하긴 그러니까 자식을 죽이고 스스로 신고까지 했겠지. 그냥 죽여달라는 말만 반복하니까 환장하겠더구먼.” 장 보좌관 앞에선 장군들도 가슴이 서늘해진다고 할 정도로 그는 위상이 높았다. “형님 앞에서도 버틴단 말인가요? 독하긴 독한가 보네요.” “오죽하면 자식을 권총으로 죽였을까만, 함부로 다루지 말고 반드시 기밀문서를 찾을 때까지 살려두라고……. 명령이 지엄하니…… 혀라도 물고 죽을 작정을 하면 뒷감당을 못하게 된다. 무슨 말인지 알겠는가?” “친자식은 아니지 않습니까? 윤재근의 전처소생이고…… 윤상선의 배다른 형이라는 걸 아는 사람은 별로 없습니다. 하긴 박해선이가 친아들인 윤상선 대위보다 더 아끼고 챙긴다고 들었습니다.” --- 「아들을 돌려주시오」 중에서 박해선이 윤 대위를 또 만나게 된 곳은 읍내 버스 정류장이었다. 윤 대위는 어머니와 어린 아들과 함께 있다가 해선에게 반갑게 인사했다. 윤 대위는 지난번처럼 어머니에게 마을에 있는 국민학교 선생님이라고 해선을 소개했다. 어머니는 선한 얼굴에 미소가 다정했고 목소리는 잔잔했다. “말씀 많이 들었어요. 참 곱고 예쁘네요. 학생과 학부모 들이 선생님을 좋아한다니 얼마나 좋아요. 우리 윤 대위는 군인이라 좀 뻣뻣하고 재미가 없지만 그러려니 해요.” 해선은 망설이다가 가볍게 대답했다. “아닙니다. 과찬이십니다. 저는 부족한 게 많습니다.” 윤 대위의 어머니는 다음에 만나면 맛있는 걸 대접하고 싶다고 했지만 해선은 고맙다는 말을 상투적으로 했을 뿐이다. 뭔지 모르지만 부담스러웠다. 더 이상 친하게 지내지 말자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 「태초의 사랑」 중에서 정 중위와 헤어진 뒤, 해선은 느닷없이 윤 대위에게 향낭을 돌려주고 싶었다. 그의 속마음을 알고 싶었다. 해선은 운동복으로 갈아입고 손전등을 들었다. 손수건에 싼 향낭을 왼손으로 잡았다. 향낭을 가지고 있는 한 윤재근을 지울 수 없다는 걸 알았다. 윤 대위도 운동복 차림이었다. 해선은 향낭을 내밀었다. 윤 대위가 받지 않으려고 했지만 해선은 윤 대위 앞에 향낭을 놓고 뒤돌아 재게 걸었다. 윤 대위가 달려와 해선의 손을 잡았다. 향낭을 받지 않으려고 하는 해선을 윤 대위가 힘주어 안았다. 해선이 몸을 빼내려고 할수록 윤 대위의 두 팔은 더 힘을 주었다. “해선 씨, 사랑해요. 내 인생을 걸고……. 내 마음 알잖아요.” --- 「유성이 내리꽂힌 밤」 중에서 책상 정리를 끝낸 송 기자가 주필실로 들어가자 송 주필이 소리 내어 웃었다. 마치 그간 행실로 보아 해직될 줄 알았다는 표정이다. 웬만하면 조카인 송미연을 해직 명단에서 빼달라고 할 법도 한데, 결코 그런 기질이 아니었다. 많은 기자들이 해직되니 내 조카도 함께 해직되어야 마음이 편하고, 그게 도리라고 생각하는 사람이었다. 송 주필은 라디오 볼륨을 올리고 귓속말을 했다. “기밀문서를 외신에 넘길 때, 내가 이 자리에 있어야 그들이 믿어줄 테니까 구차하지만 당분간 여기 있기로 했다. 주일마다 미사 참례 꼭 하고 장 신부님과 자주 차를 마시든지 해라. 당분간 외부 사람을 만나지 말고. 지금 세상에 믿을 사람을 구별할 수 없으니까. 황가빈이나 무지개출판사도……” --- 「은밀한 만남」 중에서 |
|
“나는 유다의 어머니가 되었다”
적에게 예수를 팔아넘긴 유다처럼 불의와 손잡은 아들 앞에서 끝내 눈감지 못한 어머니의 마음이란 이런 것인가 밤 9시 무렵, 송미연 기자는 사촌 언니 송자연의 다급한 전화를 받고 가회동 한옥집으로 향한다. 윤씨 집안 대대로 내려온 연리지 소나무로 유명한 그곳에서 저녁 7시 40분경 세 발의 총성이 울렸다. 집주인인 박해선이 첫째 아들 윤상경 소령을 향해 쏜 것이다. 사건이 일어난 직후 자신을 ‘유다의 어머니’라고 명명한 그녀는 곧장 연행되고, 기밀문서의 행방을 추적하는 특수 요원들의 심문에 문서의 작성자 중 한 명이자 자신의 둘째 아들인 윤상선을 자기 앞에 데리고 오라며 버티는데……. 수없이 반복되는 심문으로 괴로워하던 박해선은 강원도 철원의 한 마을에서 초등학교 교사로 있을 때를 떠올린다. 그곳에서 그녀는 상처한 후 두 살배기 아들 상경을 어머니에게 맡기고 근무 중이던 부대 중대장 윤재근 대위를 만났다. 그들은 산불 진화 때 서로를 알게 되었고 재취 자리를 원치 않던 박해선의 거부로 좀처럼 인연으로 이어지지 못하다가 학교 숙직실 방화 사건 이후 마침내 서로의 사랑을 확인하고……. 한편, 군사 정변 세력 중 한 명인 장두영 특명감찰사령관을 보좌하는 장기덕은 정변의 구체적인 계획과 광주 항쟁에 대한 조작 내용을 담은 기밀문서를 찾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다. 공개될 경우 정변 세력이 치명타를 입고 권력을 빼앗길 위기에 놓일 만큼 중요한 서류인데, 윤상경의 동생인 윤상선 대위가 보관하다 숨겨버렸다. 윤상경이 어머니에게 살해된 이후 기밀문서의 행방을 아는 이는 박해선뿐인데, 그녀를 가두고 심문해도 모르쇠로 일관해 윗선의 독촉을 당하고 있다. 수차례 한옥집을 샅샅이 뒤지고 도청을 시도했음에도 종적을 찾을 수 없어 애간장이 타는데……. 등장인물 소개 · 박해선 월남전에서 전사한 고 윤재근 대령의 아내이자, 장두영 장군의 수행 장교인 두 아들, 윤상경과 윤상선의 어머니. 둘째 아들과의 약속을 지키고 신념을 잃지 않기 위해 사랑하는 첫째 아들을 총으로 쏜다. · 윤상경 수양어머니인 박해선이 쏜 총에 맞아 그 자리에서 사망한 육군 소령. 한때는 동생 윤상선과 뜻을 함께했으나 비뚤어진 욕망을 주체하지 못해 넘지 말아야 할 선을 넘고 만다. · 윤상선 정치적 상황을 단번에 뒤집을 수 있을 만큼 파급력이 센 기밀문서를 대외적으로 공개하기 위해 자신의 목숨을 건 인물로, 어머니에게 기밀문서의 행방을 귀띔하고 부대로 복귀한 후 종적이 묘연하다. · 송미연 『한국신문』기자로, 박해선이 첫째 아들 윤상경을 총으로 쐈다는 사촌 언니 송자연의 전화를 받고 급히 가회동 한옥으로 달려가 충격적인 상황으로 혼란스러워하는 송자연을 성심껏 돕는다. · 송자연 박해선의 둘째 아들인 윤상선의 아내. 시어머니의 심부름으로 화방에 다녀오는 길에 총성을 듣는다. 시어머니가 총에 맞았으리라 짐작하고 목숨이라도 걸겠다는 마음으로 사랑채 문을 열지만, 사건 현장을 목격한 후 충격에 빠진다. · 황가빈 민주화운동을 도모한 청년작가동맹의 회원이자 시인. 가정 형편이 여유로워 남들을 도울 줄 알고 사람을 이끄는 매력이 있다. 대학의 부총장인 어머니의 극렬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송미연과의 연인관계를 지키고 그녀의 요청을 적극적으로 돕는다. · 장두영 군사 정변에 가담한 장군이자 특명감찰사령관. 월남전에서 전사한 윤재근 대령과는 호형호제하던 사이였다. 그 아들들인 윤상경과 윤상선을 수행 장교로 선발해 각별히 챙긴다. · 장기덕 계급은 육군 준위이지만 정변의 실세를 보좌해 상사들도 함부로 대하지 못하는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른다. 장두영의 특명으로 윤상경 살해 사건을 조사하지만, 뜻대로 되지 않아 골머리를 앓는다. · 송 찬 『한국신문』주필이자 송미연과 송자연의 당숙. 군사 정변으로 언론이 통폐합되고 기자들이 해직되는 암울한 시기에 선후배 기자들뿐 아니라 언론사 사주에게도 신망을 받는 참 언론인. |
|
등단 50년, 혼돈과 분열의 시대에 진정한 분노의 의미를 묻는다
전체 15장으로 구성된 이 작품에는 자신의 아들을 세 발의 총알로 죽여야만 했던 애달픈 여인의 인생이 일촉즉발의 현실에 모자이크처럼 조합된다. 연행된 이후 반복되는 심문에도 진실을 지키며 버티던 여인은 사랑하던 남편과의 첫 만남을 떠올림으로써 고통을 참고 견딘다. 그 기억은 또한 자신이 죽인 아들과의 첫 만남이기도 한데, 교사직을 포기하면서까지 전처소생을 사랑으로 키워낸 그녀에게는 원초적 형벌과 같다는 점에서 은전 30닢에 예수를 팔아넘긴 제자 가롯 유다의 어머니가 겪었음 직한 고통을 연상시킨다. 소설은 비상계엄령으로 전 국민의 자유가 통제되던 시기에 정변을 일으킨 자와 그들을 견제하는 자들 간의 치열한 공방을 함께 그린다. 누구도 신뢰하기 어려운 시절, 언론은 통제되고 기자는 해직되며, 매일의 뉴스가 정변 무리의 선전이 되어 국민의 눈을 가리고 입을 틀어막던 때의 일이다. 작가의 경험이 녹아 있기에 더 현실감을 주는 이 작품에는 생사를 넘나드는 상황에서 진실을 지키려는 이들의 분투가 담겨 있다. “별은 보이지 않을 뿐 반드시 거기에 있다”는 사실을 믿는 이들은 진실이 담긴 기밀문서를 죽음을 불사하면서 지키고 정세를 반전시킬 거사를 도모한다. 숨겨진 기밀문서를 끝끝내 지켜내려는 이들은 과연 성공할 수 있을까? “유리로 지은 집에서 먹고 자고 목욕하고 화장실 가는 것까지 보여주며 사는 꼴”을 겪어야 했던 무고한 이들은 마침내 장엄한 승리를 거두었을까? 권력에 빌붙어 이들의 생사를 좌우하는 자는 과연 어떤 얼굴을 하고 있을까? 미궁에 빠진 기밀문서의 행방이 일시에 드러나는 것처럼, 유다의 어머니는 한 장 한 장 읽어나갈수록 작가의 탁월한 결말에 무릎을 치게 만드는 작품이다. 작가의 말 중에서 2024년 12월 3일 밤, 비상계엄령이 선포되자 가슴에 훅 불길이 솟았습니다. 1980년 12월에 포고령 위반으로 보안사 핵심 인사에게 끌려가 국가원수 모독, 체제 비방, 군 모독이라는 호령에 넋이 나갔던 제 트라우마가 재발했습니다. 제 꽁트집『도둑놈과 도둑님』에서 ‘도둑님’이 누구냐는 다그침에 숨이 막혔습니다. 책은 전량 압수되었고, 판매도 금지되었습니다. 그 핵심 인사는 10여 년 전에 세상을 떠났는데 저는 향과 초를 켜고 108배를 하며 하늘나라에서 평안하시라고 기도했습니다. 그 사건으로 인한 울분과 분노를 『인간시장』을 쓰며 달랬기 때문입니다. ‘사랑과 용서로 짠 그물에는 바람도 걸린다’는 저 자신과의 약속을 지키고 싶었습니다. 1979년 비상계엄 이후 1980년 광주 민주항쟁은 우리 현대 민주사의 순교사입니다. 그 순교의 한 가닥을 소설로 쓰고 싶었습니다. (……) 그 아픔을 어찌 필설로 표현할 수 있으랴만, 한 꼬집이라도 새겨보고 싶었습니다. 별은 보이지 않을 뿐 반드시 거기에 있습니다. 의식조차 마비된 정변의 시대, 사실대로 작성할 수도, 양심대로 쓸 수도 없는, 바른말이 죽은 세상에서 희망을 향해 몸과 마음을 던진 이야기를 풀어놓고 싶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