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소장하고 있다면 판매해 보세요.
|
1. 「시월(十月)」과 그 언저리
2. 「즐거운 편지」의 얼개 3. 폐허의 거울 4. '겨울 노래'에서 '슬픈 노래'로 5. 비가(悲歌) 6. 「기항지(奇港地)」 7. 계엄령 속의 눈 8. '겨울 노래'에서 '봄노래'로 9. 풍장(風裝) 10. 거듭남의 시학(詩學) 11. 나의 시의 빛과 그늘 |
黃東奎
황동규의 다른 상품
|
--- 전문서평 위원 정은숙
여름 휴가를 떠나기 위해 짐을 싸면서 책 세 권을 챙겼다. 여행 짐은 가벼울수록 좋으니까 얇은 분량의 시집들에 먼저 손이 갔다. 그러나 어찌 책의 분량이 얇다고 가볍게 읽겠는가? 내가 그토록 어려워하며 사랑하는 시들인데. 휴가가 끝나고 서울로 돌아와 부랴부랴 찾은 책이 황동규 시인의 산문집 <시가 태어나는 자리>였다. 휴가중 읽은 시집 <버클리풍의 사랑노래>가 이 산문집까지 다시 읽게 한 것이다. <시가 태어나는 자리>는 진지하게 씌어진 시에 대한 에세이로 체계적이면서 전체를 관통하는 일관성이 먼저 돋보이는 책이다. 한마디로 높은 완성도를 지닌 에세이라고 할 수 있다.
사실 나는 이 산문집이 나왔다는 말을 들었을 때, 이것이 우리 시단의 일대 사건이 될 것으로 생각했었다. 물론 <시가 태어나는 자리>는 문예지인 <문예중앙>에 수 해 전 연재되었던 글로 <나의 시의 빛과 그늘>이라는 제목으로 이미 출간된 적이 있기는 하다. 그러나 시인은 이번에 전면적으로 개고하면서 추가하는 글을 덧붙였고, 또 새로 씌어진 <동서양 틈새에서 글쓰기>까지 실었으므로 현단계에서 황동규 시의 모든 것을 엿볼 수 있는 중요한 책으로 생각되었다. 비단 개인의 산문집을 뛰어넘는 문학적 중요성을 가진 책임은 더 말할 것도 없다. 이 점, 이미 출간되었던 책을 다시 낸다는 점을 우려했음인지 황동규 시인은 다음과 같이 명료하게 밝혀놓았다. "잘 가라, 이상한 자서전이여, 나머지는 후일담이 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내가 과문한 탓인지는 모르지만) 이 책은 저널과 작단으로부터 이미 책이 나온 지 3개월이 가깝도록 주목을 받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완전히 무시되는 것은 아니지만 너무나 의례적인 지면 할애가 가슴 아프다. 이 기회에, 만일 이 책이 절판된 책을 새로 간행했다는 바로 그 점에서 이런 결과가 빚어진 것이라면 과연 절판된 책을 복간해내는(사실 이 부분에서 이 책은 증보된 내용들이 많으므로 잘 들어맞지 않는다는 말을 또 해야겠다.) 행위의 의미 같은 것을 한 번 짚어보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왜냐하면 이 책은 그만큼 중요한 책이기 때문이다. <시가 태어나는 자리>가 황동규의 산문집이라고 했지만 그것은 '누구네 집' 같은 그저 명명에 지나지 않고, 집마다 삶의 사정과 내용이 다르듯이 사실 이 책은 황동규의 자선시 해설이라고 해야 할 그런 책이다. 요즘 세상이 너무나 가벼워져 모든 것이 산문집의 대접을 받는 시절이다 보니 이 책을 산문집이라는 범주에 넣은 것이지, 이 책의 가치는 통상 말하는 산문집의 의미와는 좀 다른 의미로 받아들여진다. 이 책을 말하기 위해서는 황동규의 시에 대해서 말하지는 말자. 우리가 이 책을 읽기 전에 이미 알고 있는 황동규 시에 대한 이해를 모두 지워보자. 그렇다면 그의 시를, 그리고 그의 문학적 궤적을 보다 더 객관적으로 볼 수 있는 것은 아닐까? 결론부터 내세우자면 이 책을 덮으면서 내 자신이 이 책에 씌어진 그의 시에 대한 서술들, 자신의 평가를 포함한 진술들에 다 설득된 것은 아니었다. 시의 뒷이야기를 많이 알게 된 것은 망외의 소득이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기존의 황동규 시에 대한 이해를 바꾸어버릴 그런 것은 아니었다. 나는 내 나름대로의 방식으로 황동규의 시를 좋아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니까 이 책은 황동규 시에 대한 이해가 있거나 아니면 그의 시를 좋아하는 어떤 독자를 상정하고 쓴 글이 아니다는 점을 나는 말하고 싶다. 황동규 시의 업적을 인정하든 안 하든 독자들은 그 시인이 엄격하게 자신을 절제해온 지적인 시인이라는 데는 이의를 제기하지 않을 것으로 본다. 그런 점에서 <시가 태어나는 자리>는 시에 대한 저술의 한 놀라운 성취를 보여 준다고 해도 좋을 것이다. 현재 생존 시인들 가운데 이 책과 나란히 놓을 만한 시 해설서가 뭐가 있을까, 쉽게 떠오르지 않는다. 시인되기의 어려움은 시적인 진술, 그 자체의 어려움이 아니라 시인으로 살기의 어려움, 혼자 남아 오롯이 즐거울 수 있는 경지에 이르기의 어려움에서 말미암는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것은 말로는 쉬울지 모르지만, 동시대의 영광과 함께 가지 않겠다는 부정적 세계관의 한 극단을 잡는 모험이면서, 쉬운 화해를 걸어오는 세상의 모든 유혹으로부터 쉽게 순응하지 않으려는 어떤 근원적인 갈증에 대한 조용한 응답이었다고 생각한다. |
|
눈 멎은 길 위에 떨어지는 저녁 해, 문 닫은 집들 사이에 내 나타난다. 아무것도 움직이지 않는다. 나는 살고 깨닫고 그리고 남 몰래 웃을 것이 많이 있다. 그리곤 텅 비인 마음이 올 거냐. 텅 비어 아무 데고 이끌리지 않을 거냐. 우는 산하(山河), 울지 않는 사나이, 이 또한 무연(無緣)한 고백이 아닐 거냐. 개인 저녁, 하늘을 물들이는 스산한 바람소리, 뻘밭을 기어다니는 바다의 소리, 내 홀로 서서 그 소리를 듣는다. 내 진실로 생을 사랑했던가, 아닐 건가.
앞의 시들보다 더 어두워진 것을 우선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색깔은 그렇지만 그것은 절망이나 포기의 어두움은 아니다. 첫 마당을 열고 닫는 구절 "아무래도 나는 무엇엔가 얽매여 살 것 같으다"는 그 구절 자체의 반복뿐 아니라 "훤한 미명(未明)" "새이는 미명" 등을 반복함으로써 운명적인 얽매임이 강조되지만 동시에 그것을 망각 속으로 내몰지 않고 계속 의식 속에 두고 살겠다는 의지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그 의지는 "그러나 이처럼 이끌림은 무엇인가"라는 물음 속에 강조된다. ---p.9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