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소장하고 있다면 판매해 보세요.
|
머리말
\하나\ 그 섬에 가고 싶다 이 외로운 사람들아 불을 질러서라도 하고 싶은 말을 하다 최북의 기행 노비를 낳으란 말이냐 그 교수전傳 병문안을 다녀와서 21세기의 조선시대 백성 신세효 다산의 뽕나무 \둘\ 예술가의 자세 환득환실과 시위소찬 옛사람의 소통 방식 뜻 모를‘서민’이란 말 교양인 정조의 측은지심 충청도 관찰사 이명식의 생각 꼽추의 나무 심기 정자산鄭子産의 수레 지방 차별이란 병의 뿌리를 아시는가 봄날 복숭아꽃 아래서 열었던 잔치 \셋\ 왕들의 나라 대한민국 최고의 권부 홍길동의 호부호형 유우춘의 해금 아파트 한 채의 병원비 손 편지와 우정 서울의 귀족들 사라진 잔치와 동네 친구 아무개 목사에게 예수 믿기를 권함 대학생의 인문학 공부 \넷\ 취업의 책임은 어디에 있는가 출마의 변 벼슬을 얻기 위해 쏘다니는 인간들 암행어사 다산을 생각하며 역적, 사문난적, 좌파 사라지는 서점을 생각하며 개혁은 어디서부터 시작되어야 하는가 기사 없는 실록 허울 좋은 공정성과 평등, 과거와 고시 살처분과 생명 \다섯\ 다산이 생각한 어린이의 공부 시간 이덕무의 아동교육론 노는 날을 늘리자는 조상님 말씀 오랑캐를 따르는 자 당참채 재상의 셋방살이 세계로 열린 작은 창이 닫히다 돈이 없던 세상 로드킬과 박제가의 도로 원자력발전소와 누실명陋室銘 \여섯\ 19세기 성리학의 본말전도 홍대용의 중국어 공부 나의 도서관 편력기 조선시대의 대학 등록금 임진왜란, 명나라 군대, 전시작전통제권 무기를 만드는 자, 화 있을진저 책에 대한 상상 생김새가 운명을 결정할까 온 백성의 양반화와 모든 대학의 일류화 이름을 바꾸어 벼슬길에 오른 자 |
姜明官
강명관의 다른 상품
|
1. 나는 거창한 것에는 관심이 없다
나의 관심사는 가장 가까이에 있는 그들이다 삶의 본질에 다가서는 ‘인문정신’이 담긴 글들 ― 이 책이 말하다 강명관 선생의 잡문집 《이 외로운 사람들아》 〈다산의 뽕나무〉에는 〈새해에 집에서 보낸 편지를 받고〉라는 다산의 시가 나옵니다. 다산이 낯선 강진 땅에서 귀양살이를 하며 맞이한 새해, 가족으로부터 의서 한 권과 술 한 단지가 도착합니다. 유배객의 심사야 억울하고 원통해야 마땅하건만 도리어 다산은 담담합니다. 답을 하는 서신에는 달리 할 말이 없어, “모쪼록 뽕나무 수백 그루 심으라고 당부”할 뿐이지요. 언제인지 모르지만 돌아갈 날을 위해, 남은 가족의 생활을 위해, 처참한 지경에 떨어져 있으면서도 그저 뽕나무를 심으라고 말입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커다란 절망이나 보잘것없는 희망을 품는 대신 그저 묵묵히 살아가려는 다산의 모습에 강명관 선생의 얼굴이 비칩니다. 조선시대 문헌을 날마다 읽고 쓰고 가르치는 것이 그의 일입니다. 선생은 옛글에 대한 해박한 지식을 바탕으로 우리의 현실에 대해 말할 수 있는 힘을 지닌 저술가입니다. 오랜 기간 지배층의 정치사회사에 가려진 대다수 민중의 삶을 복원하는 데 노력을 기울여왔지요. 양반들로부터 무시와 착취를 당했던 평민들의 일상과 문화를 생생하게 되살려왔습니다. 이 책 《이 외로운 사람들아》는 그가 지금껏 출간해온 연구서와 달리, 옛글을 공부하는 틈틈이 떠오르는 사유들을 시간의 틈새를 벌려 쓰고, 엮은 책입니다. 그렇다고 글의 깊이와 무게가 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도리어 연구서라는 형식에 미처 담지 못한 한 사람의 사유가 꾸밈없이, 투명하게 그 속살을 드러내 보이고 있습니다. 무릇 잡문이란 그런 것이겠지요. 전근대 문자인 한문에 정통하고 그것을 곱씹으며 자신이 살아가는 현실과 접점을 찾아보려는 사람이 아니고는 쓸 수 없는 글일 것입니다. 맹자는 왕정, 곧 인정에 대해 묻는 제나라 선왕에게 정치가 맨 먼저 고려해야 할 대상은 늙어서 아내가 없는 홀아비, 늙어서 남편이 없는 과부, 늙어 의탁할 자식이 없는 노인, 어려서 부모를 잃은 고아 등 천하의 하소연할 곳 없는 가장 외로운 사람들인 바, 주나라 문왕은 바로 이 네 부류를 가장 우선적으로 돌보아야 할 사람으로 여겼다고 답했다. (…) 나는 맹자의 이 부분이 유가 사상의 가장 빛나는 부분이라 생각한다. 성인의 예법 운운하면서 번문욕례를 지껄이고, 왈리왈기 따위의 애매한 언사를 늘어놓는 것은 유가가 아니다. 유가는 곧 정치고, 그 정치가 우선 배려해야 하는 대상은 사회적 약자다. ― 〈이 외로운 사람들아〉, 26쪽 2. “우리는 시방 지옥의 불구덩이에 진입했다” 정직하게 돌아보지 않는 한, 달라지는 것은 없으리라 ― 이 책을 보다 강명관 선생의 꼿꼿한 인문학자로서의 면모는 이 책에서 절실히 드러나고 있습니다. 옛 문헌 속 장삼이사의 일화를 소개하면서 오늘날 어두운 현실을 직설적으로 논하고, 아울러 이를 극복하기 위한 방도를 모색합니다. 곧 옛날과 현실의 교차를 통해 역사가 과거에서 끝나거나 죽어버린 것이 아니라 현대사회에서 생명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음을 독자에게 알려줍니다. 전근대와 결별하고 혁명적 발전을 이룩했다는 자부심을 지닌 현대인(근대인)들에게 대한민국 사회에 여전히 남아 있는 전근대적 모습들은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갈 테지요. 60편의 글을 통해 우리는 전근대사회의 지주(귀족·양반)-노예(노비·농노)가 오늘날 자본가-노동자로 변했을 뿐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17세기 중반 이래 서울에 세거하는 양반을 경화세족이라 하는 바, 주요 관직을 독점하고, 국가권력을 사유화했지요. 과거 합격 역시 이들의 전유물이었습니다. 이는 “극소수 재벌과 정치인, 관료 등 한국사회의 신흥귀족이 국가권력을 장악하고, 그 힘으로 조종하는 언론과 교육에 포위된 민주주의는 민중이 정치에 참여할 기회를 완전히 배제”하고 있는 상황과 다르지 않습니다. 오늘날 우리 사회가 떠받들고 있는 재산과 학벌, 권력, 지역 등의 조건을 중첩하면 어떤 부류가 귀족인지 쉽게 답이 나올 테지요. 그런 귀족에 의한 국가 통치가 시작된 지 오래라는 사실을 정직하게 인식하지 않는 한, 문제는 양태만 달리하여 계속 우리 앞에 나타날 것입니다. 이상도 하다. 구체성 있고 알아듣기 쉬운 말은 입에 올리기 싫어하고, 뜻도 애매한 어휘를 즐겨 사용하니 말이다. 사실 서민이라고 말할 필요가 전혀 없다. 서민의 대부분은 노동자다. 예컨대 파견 근로자, 일용직 노동자, 중소기업체의 저임금을 받는 노동자, 대기업의 비정규직 노동자, 남성과 동일한 노동을 하고도 급료를 훨씬 적게 받는 여성 노동자, 시간강사, 임시교사 등이 바로 그들이다. 작은 가게를 하는 소상공인도 포함될 것이다. 친서민 정책이란 것은 별게 아니다. 예컨대 그들의 노동에 정당한 대가를 지불하는, ‘저임금 문제’를 해소하는 정책을 만들고 실천하는 것이다. 내가 몸담고 있는 대학의 경우, 시간강사에게 강의료를 정직하게 올려주는 것이 친서민 정책이다. 수십 년 동안 예산이 없다는 핑계를 대었으면 이제 충분하지 않은가. ― 〈뜻 모를 서민이란 말〉, 87쪽 그러나 ‘그때나 지금이나 별반 다르지 않구나’라는 인식으로 그치기에는 무언가 아쉽습니다. 선생의 글들은 무감각해져버린 현대인들에게 일상에서 겪게 되는 여러 문제들의 근본 원인을 성찰하도록 만들기 때문입니다. 그리하여 선생은 묻습니다. “한국사회는 전근대를 극복하고 근대를 이룩하자며 20세기 이래 앞뒤 돌아보지 않고 냅다 달려왔지만, 그 바람에 싸잡아 팽개쳐버린 값있는 것도 얼마나 많았는가” 하고. 예컨대 사라져버린 잔치와 동네, 고통받는 이웃에 대한 공감, 윤리 그리고 “화폐가 아닌, 인간의 인간에 대한 신뢰가 기반이 되었던 관계”들 말입니다. 3. 막힘없이 격정적으로, 그러나 애틋하게 ― 이 책에서 듣다 책 전반에 흐르는 비판적 성격의 풍자를 통해 처음 시원하고 통쾌하게 다가왔던 이야기는 거듭 읽을수록 까닭 모를 쓸쓸함을 남깁니다. 가난하여 10년 동안 생고생만 하다 결국 몸이 곯아 아이를 갖지 못하게 된 어느 부부, 불을 질러 억울함을 호소했지만 잡혀 귀양을 가게 된 사내, 남의 집 일을 1푼 더 받고 해주었다 하여 양반에게 모진 형벌을 받은 노비, 불평등한 세금 책정으로 고을 원을 붙잡고 항의했다 매질을 당하여 목숨을 잃은 백성, 주어진 신분에서 도망쳐 이름을 바꾸어 벼슬길에 올랐지만 붙잡혀 고문을 받다 죽은 아전, 아파트 한 채를 저당 잡히고 나서야 병원비를 낸 노인, 언제 잘릴지 몰라 불안에 떠는 직장인, 재개발로 살 곳을 잃고 쫓겨난 사람, 터무니없는 교육비 때문에 가슴이 까맣게 타들어가는 부모들……. 문득 의사 친구가 마지막으로 한 말이 떠올랐다. “병든 곳이 있는데도 건강한 곳이 더 많으니 아직 병자가 아니라 우기는 건 온 세상이 다 그래.” 그래, 그렇구나. 그 친구만 그런 것이 아니구나. 의사 친구의 말이 조금은 위로가 되었다. 창밖을 바라보니 전철은 어느 사이 지하터널을 빠져나와 있었다. 어둠 속 교회의 붉은 네온사인 십자가가 곳곳에서 빛을 발하고 있었다. 흡사 무덤 같았다. ― 〈병문안을 다녀와서〉, 53∼54쪽 선생이 포착해내는 인간 군상들을 하나하나 떠올려보면, 어느 하나 외롭지 않은 사람이 없습니다. 우리 모두는 괜찮다며 스스로를 위로하지만, 사실 안으로 곪아가고 있지는 않았는지요. 아아, 그동안 잘못된 것은 잘못되었다, 그른 것은 그르다, 하는 것이 왜 그리도 어려운 일처럼 느껴졌을까요. 어쩌면, “이 외로운 사람들아”라는 호명은 우리 모두를 향한 말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리하여 “사람은 모두 평등한 존재다, 아니 평등해야만 하는 존재다”라는 이 당연해서 진부하다고 여겨질 선생의 말을 몇 번이고 되새겨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