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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말 | 유령, 상상의 사회사
1. 억압 받은 유령 유산과 대항모델 | 성서와 유령 | 아우구스티누스와 에보디우스 | 아우구스티누스와 파울리누스 | 중개하는 상상력 | 유령, 실체인가 이미지인가 | 아우구스티누스의 후계자들 | 성인과 악마 사이 | 중세적인 이야기의 탄생 | 죽은 자를 위한 전례의 발달 2. 꿈 속의 죽은 자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 | 종교적 황홀경에 나타난 죽은 자 | 꿈속의 죽은 자 | 기독교적 자서전과 유령 | 참회의 끝 | 평신도, 최초의 저작 | 조반니 모렐리의 악몽 3. 유령의 침공 현재에 대한 찬양 | 수도원에서의 환시 | 로마-클뤼니 동맹 | 마르무티에, 수도사들의 공동체 | 클뤼니, 수도사와 귀족 4. 기이한 죽은 자들 미라빌리아, 기이한 이야기 | 이야기의 세속화 | 궁정성직자들 | 보케르의 유령 5. 헬레퀴누스 일당 오더릭 비탈리스의 증언 | 유령들의 사냥은 언제 시작되었나 | 선택받은 자와 저주받은 자 | 색을 지니게 된 영혼들 | 선택받은 자들과 저주받은 자들의 행렬 | 헬레퀴누스 일당의 정치적 용도| 죽은 자 무리의 악마화 6. 길들여진 상상 새로운 말과 설교가 | 시토 수도회의 공헌 | 설교기구, 탁발수도회 | 몽타이유의 배회하는 영혼들 | 요크셔에 나타난 영혼들 | 브르타뉴의 유령 7. 죽은 자와 권력 기 드 코르보의 영혼 | 아른트 부쉬만의 할아버지 | 영을 식별하는 능력 | 군주와 죽은 자 | 포벨의 샤리바리 8. 시간, 공간, 사회 개인적인 시간과 집단적인 시간 | 죽은 자들의 달력 | 죽은 자들의 일주일 | 낮과 밤 | 유령은 어디에서 오나 | 안과 밖 | 묘지 | 야생의 경계 | 유령이야기, 사회적 관계의 교차점 | 친족관계-부부 | 친족관계-부모와 자식 | 영적인 친족관계 | 9. 유령의 모습 유령의 형체 | 영적인 것과 육체적인 것 | 죽은 자의 언어 | 죽은 자의 옷 | 유령을 표현한 도상 | 환영의 탄생 | 유령과 마카브르 | 무덤의 횡와상은 유령인가 맺음말 | 산 자가 죽은 자의 운명을 결정한다 원주 찾아보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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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자는 산 자의 상상을 벗어나 존재하지 않는다. 인간은 문화와 신앙, 시대마다 서로 다른 방식으로 저세상에서의 삶을 죽은 자에게 부여했고, 죽은 자가 머무는 장소를 상상했으며, 그렇게 자신이 바라고 두려워하는 죽음 이후의 운명을 상상해왔다. 그러므로 죽음을 상상하고, 죽은 자의 저세상에서의 운명을 상상하는 것은 세계의 모든 사회들에서 종교적 신앙의 핵심을 이룬다. 그리고 그런 상상들은 지역마다 다양한 형태를 띠고 나타나지만, 환시와 꿈이 언제나 중요한 구실을 한다. --- p.11
심성은 옛적부터 이어져온 사고나 행위의 ‘오래된 층들’만이 아니라, 특정한 시대의 사회관계나 이데올로기의 생생한 현실 안에서만 의미를 제대로 알 수 있는 믿음과 이미지, 말과 몸짓으로 구성된 것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런 현실의 상황을 살펴보아야 우리는 비로소 중세 기독교 문화가 어떻게 유령에 대한 관념을 확산시켰으며, 죽은 자가 출현할 새로운 계기를 만들었는지 제대로 이해할 수 있다. --- p.14 중재를 요청하는 유령에 관한 이야기는 평신도 사회에서 산 자와 죽은 자의 관계를 관리하는 전례의식과 예배의식이 늘어나고 확산된 것에 비례해서 증가했다. 클뤼니가 확립했던 전례의 규범은 탁발수도회가 제공한 규범으로 바뀌었다. 클뤼니의 전례 규범에서 수도사의 기도는 유족이 승인한 토지의 기부와 교환되어 독실한 귀족 후원자의 영혼이 구원받는다는 것을 보증했다. 탁발수도회의 규범에서는 죽음을 앞둔 자가 공증인이 입회한 상태에서 유언장을 작성해 한시라도 빨리 자기 영혼이 연옥에서 해방될 수 있도록 최대한 많은 미사를 최대한 많은 교회에서 올려달라고 돈을 개인적으로 기부했다. 한쪽에는 토지ㆍ수도사가 행하는 전례의식ㆍ귀족 가문의 집단적인 의지가 존재한다. 다른 한쪽에는 개인의 의지ㆍ화폐와 도시민이 맡은 역할ㆍ탁발수도사ㆍ자크 시폴로가 ‘저승의 회계장부’라고 부른 장부가 존재한다. --- p.210 무장한 인간들이 저승에서 겪는 비참한 운명은 특히 두 가지 이유로 정당화된다. 하나는 가난한 자와 약자에게 행했던 폭력이고, 다른 하나는 마상창시합의 관습이다. --- p.219 탁발수도사들의 설교에는 수많은 유령이야기가 촘촘하게 짜인 일상적인 사회적 관계 안에 폭넓게 존재했다. 물론 설교가가 유령에 관해 말하는 것은 주로 죽음에 대한 준비의 필요성이나 운명과 미래의 불확실성을 알리기 위해서였다. 유령은 어디나 교묘히 잠입하고, 사람들의 일상적 삶 한복판에 갑자기 출현했다. 그래서 모든 것에는 끝이 있으므로 언제나 마음속에 죽음을 준비해 두고 있어야 한다는 사실을 가장 예기치 못한 순간에 상기시켰다. --- pp.222-223 유령이야기가 점차 진부한 것으로 변해간 경향은 결코 고립되어 나타난 현상이 아니었다. 이는 기독교도를 교화하기 위해 그들을 죽음과 죽은 자에 익숙하게 만들려고 했던 총체적인 전략과 연관되어 있었다. 그러한 전략은 이 밖에도 장례를 점차 의식화하거나, 산 자의 공동체 한복판에 마련된 거룩한 장소로 묘지 공간을 중시하거나, 죽은 자를 위한 예배에 참석하거나, 특권계급에서는 시도서를 매일 독송하는 것으로 조직적으로 실천되었다. --- p.227 유령이야기는 죽은 자의 이 세상으로의 귀환이나 연옥에서의 고난에 관한 다양한 신앙의 양식을 표현하고, 동시에 그러한 양식을 새롭게 만들어낸다. 도덕과 행동의 규범을 사람들에게 제시하는 것도 유령이야기의 목적 가운데 하나이다. 정치적 이데올로기의 발달에 크게 기여한 것도 있다. --- p.283 중세 기독교는 자신을 작동시키는 2개의 근본적인 욕구들 사이에 존재하는 모순을 해결하지 못했다. 한쪽에서는 신과 더 가까워지기 위해 육체를 부정하고 ‘영적’인 것을 ‘비물질적’인 것과 동일시하려 했다. 하지만 다른 한쪽에서는 눈으로 볼 수 없는 것을 ‘상상’해서 공간과 시간 안에 위치시키고, 제외해야 마땅한 경우까지도 장소ㆍ형태ㆍ부피ㆍ육체를 부여하려고 했다. --- pp.320-321 죽은 자는 산 자를 벗어난 존재가 아니다. 우리는 끊임없이 이러한 사실을 되새겨왔다. 유령을 움직이고 말하게 하는 것은 꿈ㆍ이야기ㆍ공유된 신앙과 같은 개인적이고 사회적인 상상력이며, 장례식이나 설교장소에서 행해지는 사회화된 말이다. 꿈에서 듣거나, 대화로 전해듣거나, 소문으로 듣거나, 설교로 들은 이러한 말과 이미지들 덕분에 산 자는 죽음 이후의 삶을 상상하고, 경계심을 품은 상태에서도 자신들을 떠나간 사람들과 상상의 관계를 유지한다. --- p.36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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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령에게도 역사는 있다
사람이 죽은 뒤에 이 세상으로 다시 돌아와 나타난다는 ‘유령’이나 ‘귀신’에 관한 믿음이나 이야기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대부분의 사회에 보편적으로 존재한다. 그 만큼 ‘유령’이나 ‘귀신’은 오싹하지만 사람들에게 친숙한 존재이다. 자신의 원한을 갚아달라고 하소연하기 위해 산 자에게 모습을 드러내는 ‘원혼’도 있고, 인간에게 해를 끼치는 무서운 ‘악령’도 있다. 산 자의 피를 빨아먹으려고 주검들이 떼를 지어 달려드는 ‘좀비’나 ‘강시’도 있고, 사랑하는 연인의 곁을 차마 떠나지 못하고 이승을 떠도는 애절한 유령도 있다. 바다에는 영원히 뭍에 정박하지 못하고 떠다녀야 하는 ‘유령선’이 있고, 강이나 못의 깊은 물속에서는 그곳에 빠져 죽은 ‘물귀신’들이 산 자들을 붙잡아가려고 호시탐탐 기회를 노린다. 이처럼 ‘유령’은 언제나 우리의 삶과 가까이 존재했으며, 상상력의 주요한 원천이 되어왔다. 인간은 시대와 사회마다 다양한 형태로 죽은 자가 산 자의 세계로 돌아와 머무는 모습을 상상해왔으며, 그러한 상상은 산 자와 죽은 자의 관계뿐 아니라 산 자의 현세에서의 사회적 관계와 윤리의식 등을 구성하는 데에도 큰 영향을 끼쳐왔다. 곧 모든 상상이 그러하듯이 유령에 대한 ‘사회적 상상’도 그때 그곳에 살던 사람들의 삶과 사고를 반영할 뿐 아니라, 그것을 구성하는 하나의 요인으로 작용한다. 따라서 유령에게도 역사는 있다. 그리고 장클로드 슈미트가 ‘상상의 사회사’라고 부른 그 역사는 죽음 이후의 세계와 죽은 자들에 관해 상상했던 각 시대와 지역의 문화와 믿음 등을 생생하게 보여준다. 나아가 시간과 공간, 사회에 대해 사람들이 가지고 있던 근본적인 사고방식도 보여준다. 유령, 상상의 사회사 프랑스의 역사가인 장클로드 슈미트는 ‘중세 사회의 산 자와 죽은 자’라는 부제가 달린 《유령의 역사》에서 유령을 소재로 중세 사회의 문화와 믿음에 대한 탐색에 나선다. 그는 중세 문헌들에 실려 있는 유령이야기들을 통해 유령에 관한 그 시대의 믿음이 지니고 있던 역사적 의미를 해석하고, 이를 바탕으로 중세 서구사회에서 산 자와 죽은 자가 맺고 있던 관계를 생생하게 재구성한다. 그는 유령이야기에서 죽음 이후의 세계에 대한 당시 사람들의 사고방식뿐 아니라, 현세의 삶에 대한 규범들, 상속과 부의 배분처럼 죽음과 죽은 자를 매개로 이루어지는 사회관계 등도 읽어낸다. 그러므로 이 책은 ‘유령이야기’라는 흥미로운 소재를 다루고 있지만, 학문적 성취는 결코 가볍지 않다. 그래서 자크 르 고프의 《연옥의 탄생》, 필리프 아리에스의 《죽음 앞의 인간》 등과 더불어 삶과 죽음에 대한 중세 사고방식의 특징과 그 변화를 다룬 중요한 저작으로 꼽힌다. 저자인 장클로드 슈미트는 자크 르 고프의 뒤를 이어 오늘날 프랑스 아날학파를 이끌어가고 있는 중세사 분야의 저명한 학자이다. 그는 1978년에 자크 르 고프와 함께 역사인류학연구소를 설립해 역사학과 인류학을 비롯한 다양한 학문 분야를 접목시킨 학제간 공동연구로 중세사 연구의 새로운 동향을 이끌었으며, 《서양 중세사 이론 사전》 등의 편찬을 주도하기도 했다. 그는 이러한 학문의 업적으로 2002년에 프랑스 정부로부터 교육문화훈장을 받았으며, 2005년에는 레지옹 도뇌르 훈장을 받았다. 2013년에는 한국서양중세사학회의 초청으로 한국을 방문해 한국의 역사학자들과 인문학자들을 대상으로 ‘역사인류학의 이론과 방법’이라는 주제로 강연을 하기도 했다. 중세 사람들은 무엇 때문에 죽은 자의 귀환을 상상했을까 오늘날 유령과 같은 죽은 자의 귀환에 관한 상상은 유독 서구 기독교 문화에서 풍부히 존재한다. 합리주의를 내세운 문화의 특징과는 반대로 오히려 초자연적 존재에 대해 너무 쉽게 믿는 경향마저 보여 유령에 관한 믿음이 기독교 문화가 지닌 고유한 특징처럼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중세 초기까지만 해도 기독교 문화는 죽은 자가 이 세상으로 다시 돌아올 가능성을 단호히 부정했다. 죽은 자의 귀환에 관한 믿음이나 의식을 고대 이교의 잔재로 보았기 때문이다. 성서에도 죽은 자의 귀환에 관해서는 딱 한 번만, 그것도 매우 부정적으로 서술되어 있을 뿐이다. 아우구스티누스와 같은 초기의 교부들은 기독교도들에게 영혼의 구원을 위해 신에게 기도하는 것만이 중요하며, 이교도처럼 죽은 자의 유해나 화려한 장례식, 무덤 등에 관심을 두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그들은 죽은 자에 대한 물질적 숭배의식을 뿌리 뽑기 위해 죽은 자가 이 세상으로 돌아올 가능성을 조금도 인정하지 않으려 했다. 그래서 오직 성인과 같은 특수한 자들만 천사의 도움으로 이 세상으로 돌아와 ‘기적’을 일으키는 힘을 지닌다고 여겨졌다. 하지만 서기 1천년 이후에는 상황이 바뀌어 유령이야기가 수록된 문헌들이 급증했다. 그리고 교회가 오히려 앞장서서 유령에 관한 이야기들을 퍼뜨리고, 그것을 적극적으로 이용하는 모습을 보였다. 유령이야기가 죽은 자를 위한 전례를 장려하고, 신앙심을 높이고, 수도원과 같은 종교기관으로의 기부를 촉진해 사회에 대한 교회의 영향력을 높이는 데 기여했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장클로드 슈미트는 중세의 유령은 고대 그리스와 로마, 게르만 등의 이교문화에서 나타났던 유령들과는 다르며, 단지 그러한 전통의 잔재로만 보아서는 안 된다고 지적한다. 그것은 민중을 교화하기 위해 죽음과 죽은 자에 익숙하게 만들려고 했던 중세 기독교 문화의 산물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그는 ‘그 시대의 사회적 관계와 이데올로기의 생생한 현실’을 살펴보아야 중세에 나타난 유령에 대한 믿음과 상상의 의미를 제대로 이해할 수 있다고 강조한다. 죽은 자는 산 자를 통해 존재한다 이를 위해 그는 11세기 이후 나타난 유령이야기들의 의미와 그것들이 맡았던 사회적 역할을 자세히 분석한다. 이러한 분석을 통해서 그는 유령이야기가 클뤼니 수도원을 중심으로 이루어졌던 수도원 개혁과 깊은 관련을 가지고 확산되기 시작했으며, 13세기 이후에는 탁발수도회의 대중설교를 통해 더욱 폭넓게 보급되었다고 밝힌다. 그리고 유령이야기가 도덕과 행동의 규범을 사람들에게 제시하고, 이승과 저승의 공간적?시간적 구조를 비롯한 중세 사람들의 세계관을 형성하는 등 다양한 분야에 폭넓게 영향을 끼쳤다고 지적한다. 요컨대 유령이야기는 윤리적이고 종교적인 교화를 목적으로 한 교회의 전략적 도구였고, ‘연옥ㆍ면죄부ㆍ미사’의 조합을 기초로 한 교회의 경제구조를 작동시키는 하나의 장치였다는 것이다. 그러나 유령이야기에서 확인할 수 있는 것은 이것만이 아니다. 12세기 이후 자신이 꿈이나 종교적 황홀경에서 겪은 체험에 기초한 자전적인 유령이야기가 늘고 있는 것에서는 자의식의 성장을 엿볼 수도 있다. 특히 13세기 이후에는 교양 있는 평신도들의 자전적인 기록들도 늘어나고, 그 이야기들은 자기 정체성의 탐구라는 기능을 담당하기도 하는데, 이는 제4회 라테란 공의회(1215년)에서 모든 기독교도에게 반성과 참회라는 새로운 실천방식이 제시되고 보급된 것과 무관하지 않다. 그리고 12세기 이후 성직자들이 구전되던 민담과 전설 등에 관심을 가지고 기이한 이야기를 기록하게 된 것에서는 동시대의 것을 가치 있게 여기는 의식의 변화도 엿보인다. 기이한 현상들에 대한 호기심에 기초해 그 원인을 밝히려는 태도에서는 조사를 통해 진짜 증거를 얻으려고 하고, 실험에도 관심을 기울이는 과학적 정신의 맹아도 발견된다. 중세 사람들은 유령을 어떻게 상상했을까 이 책은 중세에 유령을 묘사한 도상들도 상세히 분석하고 있다. 중세의 문헌들에는 유령을 묘사한 삽화나 가장자리 그림 등이 풍부하게 존재하는데, 장클로드 슈미트는 그러한 묘사에서 사용된 표현기법을 6개의 유형으로 구분한다. 첫째는 유령을 부활한 인물처럼 묘사하는 ‘라자로 유형’이고, 둘째는 살아 있는 인간처럼 묘사하는 ‘생자형’이다. 유령을 벌거벗은 작은 아이의 모습으로 묘사하는 ‘영혼형’도 있으며, 오늘날 만화나 판타지영화 등에 묘사되는 것처럼 흐릿한 반투명의 존재로 묘사하는 ‘환영형’도 있다. 유령을 부패된 상태로 움직이는 시신으로 묘사한 ‘시신형’도 있으며, 보이지 않는 존재로 나타낸 ‘불가시형’도 있다. 이러한 표현기법들은 시대와 지역마다 다양하게 나타났는데, 오늘날처럼 흐릿한 환영으로 묘사하는 방법은 13세기 말에 처음 등장했다. 하지만 죽음과 죽은 자에 대한 인상을 강하게 남기기 위해 사체의 끔찍함을 강조한 마카브르가 16세기까지 성행하면서 환영형의 묘사는 중세에 그리 널리 보급되지 못했다. 역사학 연구의 또 다른 방향 제시 이 책은 유령을 소재로 중세 사람들이 내면에 지니고 있던 세계관과 가치관, 상상력 등을 우리에게 생생하게 보여주어 중세의 사회와 문화에 대한 지적인 성찰로 우리를 안내해준다. 게다가 저자 자신이 당시 사람들의 목소리를 최대한 직접 들려주겠다고 공언한 만큼 중세의 다양한 문헌들에 수록된 유령이야기들을 풍부하게 맛볼 수도 있다. 그리고 유령과 같은 상상의 산물로도 역사 서술이 가능할 뿐 아니라, 그러한 ‘사회적 상상’이 인간의 인식태도와 사고방식을 이해하는 매우 효과적인 수단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알려준다. 이런 점에서 이 책은 역사학과 인문학 연구의 지평을 넓히기 위한 하나의 중요한 전범을 제시해준다. 서기 1천 년이 유령이야기가 크게 늘어난 하나의 경계가 되었다면, 서기 2천 년을 전후로 한 시기도 또 하나의 경계로 볼 수 있을 듯하다. 실로 요즘만큼 영화와 문학 등으로 표현된 인간의 상상력에서 죽은 자의 귀환이 많이 다루어지고, 삶과 죽음의 경계가 흐릿해진 시기는 없었던 듯하다. 그렇다면 중세 중기에 나타났던 인간의 상상력이 ‘기독교도 민중’을 탄생시킨 사회관계와 문화의 커다란 변화에 기초해 있었다면, 오늘날의 인간의 상상력은 어떤 사회적 문화적 변화에 기초하고 있는 것일까? 그리고 그것은 우리 내면에 어떠한 영향을 끼치고 있는 것일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