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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한국사에도 과학이 있는가
2. 첨성대는 제단이었나 3. 쇠와 돌을 다루던 사람들, 그 과학의 깊이 4. 고대 일본의 과학기술은 삼국에서 건너간 것인가 5. 다라니경은 누구의 것인가 6. 풍수지리도 과학인가 7. 화약은 최무선의 발명품이었나 8. 세종의 천문학은 어디쯤 서 있었나 9. 조선의 객(客)이 일본에 전해 준 것은 10. 세종의 신토불이 생명과학 11. 자연 현상의 기록에서 정치가 보인다 12. 실학자들은 서양 과학의 옹호자였나 13. 서양 과학과의 조우 14. 무엇을, 얼마나 알고 있었는가 15. 19세기, 우리는 일본에 얼마나 뒤졌던가 16. 대원군은 쇄국만 했는가 17. 조선에는 어떤 과학이 있었나 18. 100년 전에는 '과학'을 무엇이라 불렀나 19. 양반은 나라가 망해도 양반인가 20. 일제 하의 '과학의 대중화' 21. 식민지 종들에게 과학이라니 22. '한국전 유학'과 '월남전 과학' 23. 과학 한국의 과학과 비과학 24. 과학에는 진정 국경이 없는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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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 초기 몇 년 동안에는 유난히 햇무리의 기록이 많이 남아 있다. 햇무리란 해가 제대로 그 밝음을 드러내지 못하기 때문에 생기는 것으로 여겨졌다. 그리고 해가 제대로 그 빛을 발휘하지 못한다는 것은 임금이 그의 권능을 제대로 펴지 못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세종 초기에 그런 현상이 많이 기록된 원인은 당시 세종이 제대로 임금 노릇을 할 수 없었던 때문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
1418년 세종을 왕위에 오르게 한 그의 아버지 태종은 병권을 비롯한 나라의 실권을 내놓지 않은 채였다. 세종은 이름만 왕이었을 뿐 제대로 그 권능을 떨칠수가 없었던 것이다. 세종대 초기의 햇무리에 대한 기록들은 바로 그런 딱한 형편의 세종을 겨냥한 것이라 여겨진다. 이런 왕권의 분산 현상에 대한 비판에 대해 상왕인 태종은 아주 단호했다. 태종은 심지어 세종의 장인인 심온까지 그런 불만 세력의 지도자라는 구실로 처형해 버렸을 정도였다. --- p.154~15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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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 과학사'란 이름으로 우리 과학사를 서술해 보려는 이유 중 핵심은 바로 여기에 있다. 과학사를 무시한 채 우리 역사를 서술하는 것이 19세기 까지는 어느 정도 가능한 일이었는지도 모르는 일이다. 그 때까지 과학기술이란 역사 서술에 있어 그리 중요한 요소가 되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19세기 이후의 역사는 국제화되고 세계화된 상황 속의 역사, 그리고 그 배경을 이루는 힘은 바로 과학기술이었다. 따라서 과학기술을 무시한 한국역사의 서술이란 이젠 거의 불가능하다고까지 할 수 있다.
오늘 역사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좋건 싫건 과학과 기술의 역사를 무시할 수가 없다. 과학사는 오늘날 역사의 중심 요소가 되어 있다. 한국사를 제대로 이해하고 설명하고, 또 거기서 우리 한국의 미래에 대한 어떤 교훈을 얻기 위해서도 우리는 한국 과학사를 공부하지 않으면 안된다. 한국 과학사의 이해 없이는 한국의 근대사 또한 설명될 수 없다. --- p.20 pp.10~2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