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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시작하며 : 왕이 되고 싶었던, 그러나 왕이 되지 못한 남자들
제1장. 폐위된 후 복위된 왕세자 사도(思悼)! 생각하면 슬프다 ∥ 사도세자 (제21대왕 영조의 아들) 제2장. 폐세자 조선 최초로 살해된 왕세자 되다 ∥ 의안대군(제1대왕 태조의 아들) 세종에게 14년 동안의 왕세자생활을 내어주다 ∥ 양녕대군(제3대왕 태종의 아들) 할머니와 아버지를 잘못 만나 살해되다 ∥ 이 황(제10대왕 연산군의 아들) 유배지에서 왕세자빈과 땅굴 파다 죽음을 맞이하다 ∥ 이 지(제15대왕 광해군의 아들) 제3장. 요절한 왕세자 사촌동생 단종과 같은 해에 세상 뜨다 ∥ 의경세자(제7대왕 세조의 아들) 적통의 왕위 계승을 무너트리다 ∥ 순회세자(제13대왕 명종의 아들) 새로운 세상에 눈을 떠 죽음을 앞당기다 ∥ 소현세자(제16대왕 인조의 아들) 종묘사직에 기여한 바 없는데 ∥ 효장세자(제21대왕 영조의 아들) 간절한 기다림 속에 태어나다 ∥ 문효세자(제22대왕 정조의 아들) 대리청정 중에 세상을 떠나다 ∥ 효명세자(제23대왕 순조의 아들) 제4장. 유일한 황태자 일본인으로 살다가 고국에 돌아와 숨을 거두다 ∥ 의민황태자(제26대왕 고종의 아들) 제5장. 단명한 왕세손 할아버지의 통곡 속에 잠들다 ∥ 영조의 손자 의소세손(사도세자의 아들) 생후 8개월 만에 의문사하다 ∥ 고종의 손자 이 진(의민황태자의 아들) 글을 마치며 부록1〈조선왕계도〉 부록2〈조선왕릉 42기〉 부록3〈조선의 원 13기〉 부록4〈조선왕릉 상설도〉 용어해설 참고 문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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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사도세자의 나이가 28세였다. 사도세자는 폐세자가 되어 뒤주 속에 들어간 뒤 살아나오지 못하고, 1762(영조 38년) 음력 5월 21일 비극적인 삶을 마감하였다. 영조는 쌀 등의 곡식을 보관하는 뒤주를 아들을 살해하는 도구로 사용하였다. 뒤주 속에서 참극이 빚어진 이 어처구니없는 아이디어가 누구의 발상이었는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런데 이 아이디어 제공자가 사도세자의 장인이자 혜경궁홍씨의 아버지인 홍봉한이었다고 하니 놀라지 않을 수 없다. --- p.25
사도세자의 어머니 영빈 이씨는 오히려 사도세자의 죽음에 딸들과 가세하였고, 사도세자가 뒤주에 갇혀 있는 동안에도 동요하지 않았다고 한다. 사도세자는 그의 아버지 영조에게는 물론이지만 그의 부인과 그의 어머니, 그의 핏줄들 모두에게 버림받은 존재가 되었다. 그들은 자식보다도, 남편보다도, 오빠보다도 친정가문을 지킨 무서운 여인들이었다. --- p.41 폐세자 이 황의 아버지 연산군은 타고난 감수성이 좋아 수백 편의 시를 남겼다. 하지만 반정 후 모두 불태워 없어지고 『연산군일기』에 130여 편만 남아 있다. 그는 시를 잘 지었을 뿐 아니라 붓글씨도 잘 썼다. 폭군으로만 알려진 연산군의 숨은 얼굴이다. --- p.92 어제 효사묘에 나아가 어머님을 뵙고 술잔 올리며 눈물로 자리를 흠뻑 적셨네. 간절한 정회는 그 끝이 없건만 영령도 응당 이 정성을 돌보시리. _『연산군일기』 중 연산군 8년 9월 5일 조선의 유일한, 아니 대한제국의 유일한 황태자를 낳은 제26대왕 고종과 고종이 그토록 사랑한 영친왕의 생모 순헌황귀비 엄씨 역시 무척이나 사랑했지만 함께 잠들지 못했다. 순헌황귀비 엄씨는 나이도 많고 얼굴도 예쁘지 않아 명성황후 민씨가 고종과 눈이 맞으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고 한다. 그런데 어느 날 승은을 입었다 하니 명성황후 민씨가 얼마나 놀랐을지는 상상이 간다. 명성황후 민씨는 그 자리에서 승은을 입은 순헌황귀비 엄씨를 가차 없이 쫓아내버렸다. 그러면 무엇하랴. 명성황후 민씨가 일본의 자객에게 칼 맞아 처참하게 죽은 후 고종은 잊지 않고 있다가 10일 만에 그녀를 불러들였으니……. --- p.201 황세손 이 진(1921년 8월 18일~1922년 5월 11일)은 일제강점기 때 일본에서 의민황태자(영친왕)와 의민황태자비(이방진 여사) 사이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이왕의 왕세자였던 의민황태자 이 은이며, 어머니는 일본 여성인 이방자 여사였다. 그는 일본에서 태어나 조선을 방문했다가 귀국을 하루 앞두고 덕수궁 석조전에서 의문사하였다. (중략) 우리나라에서는 일본인들이 왕가의 대를 끊기 위해 저지른 것이라는 견해만이 주장되고 있다. 이 진은 죽기 전 초콜릿색의 핏덩어리를 계속 토해냈었다고 한다. --- p.21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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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이 되지 못한 비운의 왕세자들
조선왕조 이야기 중 왕이 되지 못하고 죽은 왕세자들의 이야기가 가장 슬프다. 왕이 세상을 뜨고 나면, 바로 왕이 될 수 있는 서열 1위는 바로 왕세자다. 이들은 왕의 자리를 일찍부터 정해놓은 거나 다름없다. 문제는 큰 변고가 없어야 한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선왕이 죽기 전에 먼저 세상을 떠나면 모든 것이 수포로 돌아가고 만다. 《사도, 왕이 되고 싶었던 남자》는 조선의 왕세자들 중에서도 왕이 되지 못한 비운의 왕세자들의 삶과 죽음을 통해 당시의 시대상과 역사를 재조명하는 책이다. 이 책은 본문을 〈폐위된 후 복위된 왕세자〉, 〈폐세자〉, 〈요절한 왕세자〉등으로 나누어 목차만 보아도 왕세자들의 삶을 가늠할 수 있게 했으며, 본문 안에는 왕세자들의 능의 현재 모습을 담고 있는 사진을 실어 직접 가 보지 않은 독자에게도 역사의 흔적이 생생하게 전해질 수 있도록 도왔다. 이 책의 또 다른 특징은 조선왕실 역사와 계보를 잘 정리해서 실어두었다는 점이다.〈간추린 조선왕조 이야기〉를 본문 뒤에 싣고, 〈조선왕계도〉〈조선왕릉 42기〉〈조선 원 13기〉〈조선왕릉 상설도〉 등을 부록으로 수록하여 독자들이 519년에 달하는 긴 역사의 미로에서 헤매지 않도록 배려했다. 작가의 치밀한 답사 활동과 감성적인 서술이 돋보이는 《사도, 왕이 되고 싶었던 남자》를 읽다 보면, 자연스럽게 그들이 잠들어 있는 능으로 가고 싶은 마음이 들 것이다. 왕세자들의 이야기와 함께 조선의 역사를 배우고 싶어 하는 독자들이라면 꼭 한번 탐독하기를 권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