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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no Mitsumasa,あんの みつまさ,安野 光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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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여자아이는 말이다. 괴물에게 자장가를 불러주며 재우는 중이란다. 아무리 무서운 괴물이라도, 때리고 채찍질하지 않아도 노래만 불러주면 얌전해지거든.
--- p.2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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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이 눈을 떴습니다. 옆에 있던 공주가 보이지 않자, 용은 바람을 일으키며 쫓아왔습니다. 용은 사형제가 탄 배를 금방 따라잡았습니다. 이윽고 용이 배를 덮치려는 순간 사냥꾼인 셋째 아들의 총이 불을 뿜었습니다.
이런 큰일났구나, 큰일났어. 괴물이 화가 단단히 났구나. 춤만 추어도 세상이 흔들리는데, 화가 났다면 끝장이야. 사람은 언제나 동물의 자유를 빼았지. 아직도 졸려 죽겠는데, 춤을 추라고 명령하니 화가 날 만도 하지. 정말, 큰일이로구나. 이 세상은 끝났어. 이래서는 안심하고 볼 수가 없겠는걸. 괴물이 화가 나면 폭풍과 지진이 함께 일어나거든. 맹수 조련사도 아무 소용이 없단다. ---p.2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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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우가 주운 그림책 시리즈』가 빛나는 이유 몇 가지
하나. 기발하고 재미있는 이중 구조
『여우가 주운 그림책』시리즈 가운데 첫 두 권이 1989년, 일본에서 발간되었을 때 엄청난 반향을 불러일으켰던 작품이다. 1991년 나머지 두 권이 나왔을 때도 ‘안노’에 대한 찬사는 열렬했다. 그는 이 그림책에서 세계인들에게 오랫동안 사랑을 받아온 고전 ‘이솝 우화’와 ‘그림 동화’를 텍스트로 삼아 재치 넘치는 해석을 곁들임으로써, 또 하나의 새롭고 재미난 이야기를 창조해 냈다. 이야기의 구조는 인간의 그림책을 주운 아기여우가 아빠여우에게 읽어달라고 조르자, 인간의 글자를 모르는 아빠여우가 그림을 의지해 마음대로 이야기를 만들어가는 구조로 되어 있다. 따라서 상단에서는 고전인 '이솝 이야기'와 '그림 동화'를 맛볼 수 있고, 하단에는 여우가 말하는 '엉터리' 이솝 이야기와 그림 동화를 즐길 수 있게 되어 있다. 본문의 그림도 고전 텍스트가 실린 상단부에는 주워 온 그림책이라는 효과를 내기 위해 일부러 얼룩지게 색칠을 하였고, 맨 앞 페이지와 끝 페이지는 아기여우가 주운 책의 표지와 뒷표지로 보이도록 구성을 하고 있다. 둘. 여우의 눈으로 본 인간 세계 아기여우가 첫 번째로 주워온 그림책은 '이솝 이야기'였다. 아빠여우가 읽어주는(사실은 제멋대로 지어낸) 이야기에 재미가 들린 아기여우는 그 뒤로 세 권의 그림책을 더 주워오는데, 그 때마다 아빠여우는 식은땀을 흘리며 '딱 한번만 읽어야 한다'라는 경고가 책에 쓰여 있다고 겁을 준 뒤에야 겨우 읽어 준다. 아빠여우는 당연히 인간의 그을 모른다. 그런 만큼 그가 지어내는 이야기들은 글자를 중심으로 읽어내리는 우리 인간들의 눈으로 보면 엉뚱한 것도 많고, 이상한 것도 많다. 작가 또한 이러한 동물 문법에 충실하게 글을 넣고, 그림을 그렸다. 그 한 예로 아빠여우가 그림책을 거꾸로 들고 읽는 페이지에서는 하단부의 글이 거꾸로 들어가 있다. '동물'에 빗대어 인간에게 교훈을 주려는 우화가 이 그림책에서는, 아빠여우에 의해 <동물을 위한 인간 우화집>으로 바뀌어 버린 것이다. 그러면서 안노는 아빠여우의 입을 빌어 동물보다 못한 인간의 야만성을 여기저기서 고발하고 있기도 하다. 셋. 원전에 최대한 가깝게 고전이나 명작으로 분류되는 많은 이야기들은 세계 각국어로 번역되면서 이런저런 이유로 원래의 텍스트로부터 멀어지기 십상이다. 더군다나 ‘이솝 우화’의 경우는 장구한 세월을 거쳐오면서 원전의 텍스트에 후세인들의 이야기가 덧붙여지면서 오늘에 이르른 것이고, 그림 형제 이야기 또한 엄밀하게 말하면 그들의 창작이 아니고, 독일 지역의 구전 민담을 모은 것이라는 점에서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안노는 이 점을 고려하여 내용의 본 바탕이 되는 '이솝 우화'와 '그림 동화'는 최대한 원전에 가까운 텍스트를 취하여, 각각의 전공자에게 번역을 맡겨 간결한 전문 그대로를 실어 놓았다. 그 결과로 오히려 상단부의 간결함과 하단부의 횡설수설함이 묘하게 대조를 이루는 효과도 거두게 되었다. 한국어로 번역하는 일에도 그 원칙을 따르기 위해 주의를 기울였다. 넷. '이것이 그림책이다'라고 말하는 책 이솝 우화와 같은 오래된 이야기일수록 그림은 글에 종속되기 쉽다. 그래서 화법만 다를 뿐 어느 화가가 그리더라도 비슷비슷한 그림을 그리고, 독자들 또한 비슷비슷한 상상을 할 수밖에 없다. 좋은 그림책은 그림 자체만으로도 한 편의 작품으로 읽혀야 한다. 때문에 작가는 글에 대해 자유로우면서도 글의 빈 부분을 자연스럽게 채우며 유기적인 관계를 맺는 그림을 그려야 하는 것이다. 안노는『여우가 주운 그림책』시리즈에서 오랫동안 길들여져 온 그림책의 틀을 무시한다. 하나의 그림 속에서 두 가지 이솝 우화를 말한다든가, 주인공보다 주인공을 둘러싼 환경이 더 부각된다든가, 서로 다른 두 가지 이야기를 엮어 하나의 독립된 이야기로 만든다든가 하는 것들이 좋은 예가 될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여러 가지 장치들을 하나도 빠뜨리지 않고 찾아내는 것은 다름 아닌 아빠여우이다. 글자에 얽매여 그림을 보도록 길들여져 있는 사람들보다 글자를 모르는 여우가 얼마나 더 자유롭고, 그리하여 얼마나 더 많은 것을 볼 수 있는가 하는 깨달음을 얻게 된다. 독자들은 아빠여우의 이야기를 따라가기 위해서라도 그림 구석구석을 놓치지 않고 보게 될 것이다. 그리고 똑같은 그림이라도 조금만 시각을 달리 하면 얼마나 새로운 이야기가 될 수 있는지를 깨닫게 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