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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부 르네상스의 빛
1. 일상적 우주의 틈새로 새어드는 빛 -베르메르의 '우유 따르는 하녀' 2. 그림 속으로 걸어들어간 화가 -벨라스케스의 '시녀들' 3. 악마도 아줌마는 못 당해! -아르테미시아의 '홀로페르네스의 목을 치는 유딧' 4. 로마를 떠들썩하게 만든 그림 -카라바조의 '마태오 간택' 5. 죽음의 계곡에서 붓꽃 향기를 맡다 -브뤼겔의 '소경이 소경을 인도하다' 6. 고독과 혼돈의 멜랑콜리 -뒤러의 '멜렌콜리아1' 7. 성자들이 속옷을 입은 까닭은 -미켈란젤로의 '최후의 심판' 8. 시민공화국을 수호하는 액막이 부적 -미켈란젤로의 '다윗' 9. 유혹하는 모나리자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모나 리자' 10. 르네상스의 영혼을 사로잡은 기하학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비트루비우스의 인체비례' 11. 시인의 상상력에 붓을 적시다 -보티첼리의 '비너스의 탄생' 12. 사랑과 순결과 미로 치장한 정략혼 -보티첼리의 '프리마베라' 13. 지상에서 가장 신성한 진실 -프라 안젤리코의 '예수 탄생의 예고' 14. 현실의 문턱을 넘어 걸어나온 성서 속 인물들 -마사초의 '성삼위일체' 15. 천국문에는 천국이 없다 -기베르티의 '천국문' 제2부 고대의 그늘 1. 구애와 사랑에도 순서가 있다 -'아프로디테와 판' 2. 추한 아름다움의 미학 -'주정뱅이 노파' 3. 예술과 자연의 가망없는 사투 '라오콘 군상' 4. 불가마에서 끄집어낸 헬레니즘의 영광 -페르가몬의 '제우스 제단' 5. 황제가 자다가 때밀 일 있나? -뤼시포스의 '때미는 남자' 6. 예술의 과녁으로 날아간 원반 -미론의 '원반 던지는 사내' 7. 영웅이 된 동성애자들 -'참주 살해자' 8. 최초의 전쟁 역사화 -'알렉산드로스 모자이크' 9. 로마인의 목욕탕은 종합놀이시설 -'카라칼라 대욕장' 10. 모든 신들에게 바쳐진 신전 -'판테온' 11. 문화황제의 비밀정원 -'티볼리 조각 호수' 12. 개선문 위에 청동 코끼리가? -'티투스 개선문' 13. 콜로세움이 무너지는 날 세상도 무너지리 -'콜로세움' 14. 나이를 거꾸로 먹은 황제 -'아우구스투스 초상조각' 15. 빛을 잃고 영감을 얻다 -'호메로스 초상조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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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렌체 시민들의 초상화를 훝어보면 16세기 전까지 웃는 표정이 보이지 않는다. 우는 얼굴도 없다. 화가들은 한사코 진지한 눈동자, 굳게 다문 입술만 고집했다. 비탄과 희열을 표현하는 건 성모나 성자들 또는 악마와 저주받은 영혼들에게만 적용되었다.
그러나 레오나르도는 리자를 그리면서 미소를 통해서 보이지 않는 영혼의 움직임을 포착하였다. 미소가 미소를 부르고 슬픔이 슬픔에 공명한다는 호라티우스의 옛 교훈을 상기한걸까? 이 문제는 글과 그림 또는 시와 회화 사이의 해묵은 논쟁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한다. 시와 회와 가운데 어느게 더 낫고 못한가를 따지는 우위 논쟁은 무식한 일꾼인 단순 직인으로 치부되었던 화가라는 직종이 고귀한 예술거로 발돋움하기 위한 이론적 정지 단계에서 거쳐야 했던 통과 의례와 같았다. 호메로스나 베르길리우스의 전통을 이어받은 시학의 권위 앞에서 회화는 늘 일방적으로 당하기만 했다. 시인은 보이지 않는 인간의 내면을 잡힐 듯이 보여주지만, 화가는 오직 눈에 보이는 자연 이외의 것에는 붓을 대지 못한다는 편견을 뒤집기 어려웠기 때문에다. 시에는 상상하는 힘이 있어서 예술의 면류관을 차지해야 한다는 주장도 반박하기 어려웠다. 그러나 레오나르도는 자신의 회화론 첫권을 할애해서 회화가 시에 못지않고, 오히려 더 나은 자기을 차지해야 한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그의 논리는 이랬다. 화가에게도 시와 마찬가지로 상상하는 힘이 있으며, 시가 오랜 학습을 거쳐서 비로소 해독할 수 있는 문자기호를 사용한다면, 회화는 신분의 귀천과 성별의 차이, 학식 유무에 상관없이 누구나 한눈에 읽을 수 있는 만능 언어라는 점에서 훨씬 보편적인 소통수단이라는 것이다. --- p.10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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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뤼겔의 그림이 대개 그렇듯이 하늘 꼭대기에 눈을 두고 내려다보면, 그림 속 등장인물들은 자기도 모르는 커다란 운명의 수레바퀴에 실려서 서서히 회전한다. 그렇다면 소경들의 비극은 단지 그들의 불행만이 아니라 눈뜬 소경들이 타고 있는 바보배에 대한 비유가 아닐까? 아니면 섭정기 네덜란드의 암담한 운명에다 성서의 비유를 덧씌웠는지도 모른다.
그림 왼족 아래 귀퉁이에는 마른 관목 한 그루가 을씨년스럽다. 이파리가 다 떨어진 나무는 '플루토의 나무' 또는 기독교 도상에서 자주 나타나는 '죽음의 나무'다. 반대편 오른쪽 귀퉁이 여울가에는 풀꽃이 한 송이 피었다. 붓꽃이다. 기독교 미술에서 꽃잎이 칼날처럼 새긴 붓꽃의 꽃말은 '덕목'이다. 웅덩이에 빠진 첫번째 소경은 손을 들어 붓꽃을 더듬는다. 죽음의 계곡에서 구원의 향기를 맡았다. 소경 가운데 한 사람이 그림 밖을 내다본다. 흰 고깔을 쓴 두번째 소경이다. 그는 실명한 눈빛으로 우리를 쏘아본다. 그리고 소리친다. 삶의 헛된 가치를 증언하고 어서 죽음의 행렬에 따라붙으라고. 브뤼겔은 움푹 패인 소경의 눈두덩에 빛과 어둠을 고루 발라두었다. 빛은 잊을 수 없는 기억, 그림자는 지울 수 없는 현실이다. 성서를 설교하는 그림 속의 안내자가 이처럼 공허한 눈빛을 하고 있덨던 적도 없었다. --- p.6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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뜻밖에 펼쳐지는 즐거운 그림의 세계
서양미술을 이야기할 떄 우리는 흔히도 그것을 둘러싼 정신사적 흐름, 역사, 신화 등에 주목하곤 한다. 물론 서양미술이 그러한 것들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그러다 보면 그림 자체를 자세히 들여다보는 일은 뒷전으로 밀려나기 십상이다.
그래서 사실 우리는 미술사학자 곰브리치가 우유 따르는 하녀 하나 달랑 그려진 네덜란드 풍속화가 베르메르의 그림을 왜 그렇게 감탄하며 쳐다봤는지, 혹은 벨라스케스의 <시녀들>이라는 그림을 놓고 왜 그렇게 많은 미술사학자와 철학자들이 논란을 벌여왔는지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한다. 무엇보다도 그림 그 자체가 가장 중요한 텍스트라고 말하는 저자는 무심코 흘려보기 쉬운 우리 눈에 마치 확대경을 대어주듯 그림을 세밀하게 들여다보게 한다. 가령 베르메르의 우유 따르는 하녀에서 가늘게 떨어지는 우유줄기가 어째서 우리의 시선을 확 잡아끄는 걸까? 그림 왼쪽에 붙은 창틀을 따라 소실선을 그어보면 하녀의 오른팔보다 조금 위에 보는 이의 시점이 있으며, 따라서 그림을 보는 순간 우리의 시선은 저절로 우유단지를 기울이는 동작에 쏠리면서 곧바로 흘러내리는 우유 줄기에 달라붙는다는 것이다. 이렇듯 그림을 세밀하게 들여다 보노라면 정신사나 신화와는 또다른, 그림만의 즐거운 세계가 펼쳐짐을 알 수 있다. 그건 바로 그림 그 자체를 즐기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