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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삼국시기 당나라군 : 이이제이와 분할통치의 서막/김창석
2. 몽고군 : 아직도 우리 일상 속에 남아있는 1백년 침략의 상흔/이재범 3. 임진왜란 당시 일본군 : 조선 천지를 생지옥으로 만든 살육.기근.납치/박재광 4. 임진왜란 당시 명군 : 왜군은 얼레빗, 명군은 참빗/송양섭 5. 모문룡군 : 조선왕실위에 군림한 명의 패잔병 장수/권내현 6. 정묘, 병자호란의 청군 : 가시나무를 깔고 오랑캐에 무릎꿇다/김우철 7. 개항기 청군 : 민씨 척족의 사리사욕이 불러들인 12년 재앙/구선희 8. 개화기(1882~1894)의 일본군 : 임진왜란 이후 284년 만의 일본군 재등장/한철호 9. 거문도의 영국군 : 강도적 점령, 세련된 대민정책/서인한 10. 아관파천시기 러시아 교관단 : 모스크바의 상투와 서울의 "로스케"/이민원 11. 천황 직할의 조선군 : 식민통치의 물리적 기반/신주백 12. 해방이후 북한의 소련군 : 붉은 군대는 조선에서 우리의 질서를 강요하지 않을 것이다/안정애 13. 주한미군 : 대한민국을 만들고, 지키고, 유지시킨 대한민국 역사 그 자체/안정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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압도적인 일본군의 침략에 직면한 조선인들의 반응은 다양한 형태로 나타났다. 전쟁 초기 200여 년간 조선 왕조의 지배층으로 군림해온 관리와 양반 대부분은 일본군의 침입에 맞서 싸우기보다는 안전한 지역으로 도망하기에 급급하였고, 잔루된 민초 가운데 일부는 오랜 기간의 봉건적 속박에서 벗어나 일시적인 해방감을 맛보기도 했다. 이들은 약체화된 지배계급에 대해 공공연히 반항하여 관사와 관창 및 양반집을 습격하고 약탈과 방화를 일삼았다.
또 각지의 군영에서는 상관의 명령을 무시한 병사들의 탈주가 속출하였고, 다른 관창을 습격하여 군량과 무기 등을 약탈하며 토적화 하기도 하였다. 흔히 당시의 민심 이반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예로 경복궁.창덕궁.창경궁 등 궁궐이 난민들에 의해서 불에 탔다는 것을 들고 있다. 이는 선조의 어가가 도성을 떠나자 난민들이 약탈과 방화를 일삼아 급기야 궁궐들이 불에 타 없어졌다고 하는 『선조수정실록』에 근거해서 나타난 것이다. --- pp.88-8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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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2년 민비가 청국 군대를 끌어들인 이래 외국군 주둔의 역사는 거의 비슷한 형태로 반복되고 있다. 그때 이래 오늘날까지 우리 자신이 우리 군대의 온전한 주인노릇을 한 적은 한번도 없다. 우리 군대를 전적으로 우리의 의지에 따라, 우리 스스로 지휘해본 적이 없다는 뜻이다 ... 이승만 시절의 한국군 위상이라는 것도 청국군이나 일본군의 지휘를 받던 시절의 조선군 위상과 별 차이가 없었다. 그리고 오늘도 한국군은 주한민군의 작전통제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참으로 부끄러운 일이다.
이것은 결코 국력이 약하기 때문에 생긴 문제가 아니다. 그보다는 외세를 대하는 자세의 문제에서 비롯된 것이다. 이 지구상에는 우리보다 국력이 약햐면서도, 그리고 우리만큼 강대한 나라에 둘러싸여 있으면서도 외국군대에 의존하지 않고 떳떳하게 자주독립 국가로 살아가는 나라가 얼마나 많은가. --- p.7-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