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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박
로마제국에서 라스베가스까지 우연과 확률 그리고 기회의 역사
꿈엔들 2006.0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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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사/서양문화 top100 8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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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목차

추천의 글 - 도박, 우연, 그리고 현실의 정지

프롤로그

I. 우연의 개념

1. 신앙의 시대―우연의 기원
신화 속의 도박 / 우연과 점술 / 우연, 운명, 필연

2. 우연과 결정론
우연은 존재하지 않는다? / 새상을 지배하는 것은 우연이다 / 존재하지 않는 개념들의 이유 / 르네상스 시대의 확률

3. 이성의 시대―확률의 탄생
파스칼의 내기 / 우연 같은 것은 없다 / 확률의 역설

4. 우연의 시대―우연과 근대성
평균의 탄생 / 비결정론과 결정론 / 설명으로서의 우연 / 혼돈의 가장자리 / 위험에 대한 인식


II. 도박, 우연의 추구

1. 도박과 점술
놀이와 제의 / 최고(最古)의 게임, 주사위 / 신비한 힘의 상징, 카드 / 자본주의의 성장과 복권

2. 17세기의 폭발
도박과 투기 / 가치부여의 수단, 내기 / 도박의 계급화 / 도박의 상업화 / 왕의 스포츠, 경마

3. 19세기―도박의 상업적 조직화
카지노의 탄생 / 카드/ 룰렛 / 주사위 / 도박 기계 / 경마 / 새로운 스타일의 게임

4. 후기―도박에 대한 도덕적 비난들


III. 도박장: 현대 도박장의 지도

1. 현대의 도박

2. 도박 지도―도박 유형학
기술과 우연 / 게임의 속도 / 도박자와 게임 / 공간적 구조 / 도박자의 인적 구성

3. 도박장
복권 / 빙고 / 슬롯머신 / 경마장 / 장외발매소(화상경마장) / 카지노 / www.casino.com


IV. 도박 경험

1. 도박 경험
흥분 / 권태 /반복

2. 도박 경험의 범주
시간 / 공간 / 돈

3. 다양한 도박 경험
비생산적인 지출 / 도박, 우연, 지위 / 도박 그 자체


V. 마술적, 종교적 세계관

1. 확률의 거부

2. 마술적 세계관―공유
꿈과 전조 / 애미니즘과 전지전능한 사고 / 행운에 대한 믿음

3. 종교적 세계관―초월
운의 이중성 / 운명과 숙명


에필로그
찾아보기―이름

품목정보

발행일
2006년 05월 10일
쪽수, 무게, 크기
374쪽 | 693g | 크기확인중
ISBN13
9788990534125

책 속으로

현대의 삶은 우연으로 가득 차 있다. 우연은 단순히 도박의 형태로서 뿐만 아니라 훨씬 더 일반적인 차원에서, 현실에 대한 하나의 ‘접근법’으로 존재한다. 오히려 우리가 접근 방향을 맞추어야 할 현실의 근본적인 범주이다. 도박은 더 넓게 퍼져 가고 있고, 더 이상 위험하고 특별한 행동으로 여겨지지 않는다. 이것은 도박이 일상생활의 합리적인 행동과 비슷하게 되었기 때문이 아니다. 사회생활이 갈수록 공개적으로 무질서해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것이 현대사회가 무질서의 종착점 상태에 있다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본문 중에서

출판사 리뷰

* 호모 알레아토르, 호모 루덴스의 쌍둥이 동생

우리는 이따금 복권을 사고, 경마장에서 베팅을 하고, 사무실에서 사다리 타기를 한다. 어떤 사람들은 1등 당첨자가 나온 가게에서 복권을 사거나, 자신만의 행운번호를 고른다. 모든 사회에서 내기(도박)는 일상생활의 중요한 한 부분이 되었다. 내기, 즉 도박의 추구는 인간의 여러 모습들-호모 루덴스(유희적 인간), 호모 파베르(도구적 인간), 호모 이코노미쿠스(경제적 인간)-과 더불어 인간 존재의 근본적인 면을 드러낸다. 그러므로 우리는 기본적으로 호모 알레아토르(homo aleator), 즉 도박적 인간이다.
호모 알레아토르는 인간의 본성을 드러내는 특징임에도 불구하고 도박은 전통적으로 해악으로 간주되었다. 그래서 ‘유희’라는 공통적인 속성을 가지고 있음에도 호모 루덴스와 호모 알레아토르가 걸어온 길은 판이하게 다르다. 호모 루덴스가 일반적으로 모든 형태의 놀이를 인간 본성의 숭고한 요소의 발현이라는 긍정적인 요소와 함께 발전해 온 것과는 반대로 호모 알레아토르는 우연과 혼란스러움에 기대어 사회의 도덕적 질서를 위협한다고 주장되어 왔다. 즉, 그 시대의 사회윤리나 지배자들의 통치원리에 맞는 ‘놀이’를 자신의 특징으로 삼은 호모 루덴스는 양지에서 발전을 거듭해 왔지만, 통제 불가능한 영역인 우연과 불확실성을 속성으로 가진 호모 알레아토르는 음습한 그늘에서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지 못하고 지금까지 그 명맥을 유지해 왔다.


* 도박이 걸어 온 길

시대에 따라 비판의 용어가 다르긴 하지만, 근본적으로 도박은 문제가 있고, 죄악이고, 낭비고, 범죄고, 병적이라고 비난한다. 도박을 ‘사회문제’로 바라보는 오늘날의 시각은 이런 전통 위에 서있다.

게임에서 탐욕과 비열함을 보고, 게이머를 폭군이나 도둑으로 본 사람은 아리스트텔레스다. 중세는 더 심했다. 도박이 비생산적이고 대중에게 풍기 문란을 조장할 수 있다는 이유로 철저하게 금지되었다.

교회가 도박에 대해 반대 입장을 강하게 취한 것은 종교개혁 때부터였다. 도박에 대한 진정한 반감을 가진 집단인 부르주아의 출현이 그 이유였다. 교회와 부르주아는 도박이나 그와 유사한 게임을 거세게 공격했다. 도박을 신의 권위에 대한 도전으로 보았다. 신의 선택을 제비뽑기식 결정으로 전락시키고, 부의 창출을 노동의 대가와 분리시켜 우연의 농간에 맡김으로써 청교도적 가치를 비웃는 것으로 여겨졌다.
이성과 합리의 세계인 근대는 어떤가. 계몽주의 시대에는 도박을 죄악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았지만 비이성적인 행동이라는 측면에서 비판받았다. 이 시기 내내 도박에 빠져든 사람은 비합리성의 화신으로 취급되었다. 인간성의 특징이 이성이라면, 합리적 이성을 자발적으로 상실한 사람들은 온전한 인간이 아니라고 여겼기 때문이다.

19세기 산업화된 서구에서는 노동력이 필요했다. 시간은 돈 다음으로 귀중한 상품이 되었다. 그런 관점에서 도박은 시간과 돈, 둘 다를 낭비하는 것이다. 도박자는 시간, 돈, 노동의 중요성을 인정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프로테스탄트 윤리규범은 도박을 알코올중독이나 매춘과 함께 법으로 금했다. 도박자는 이제 범죄자가 된 것이다.

도박에 대한 이러한 반감은 사라지지 않고 오늘날에도 계속 반영되고 있다. 구체적으로 무엇을 ‘문제’로 보는가 하는 점에서는 차이가 있지만, 오늘날의 도박은 이전 세기들의 도덕적 목소리가 아닌 의학적 목소리로 대체되었다. 도박은 윤리적 차원보다는 병리적 차원에서 여전히 문제이다.

논의의 틀을 설정한 것은 프로이드의 짧은 논문 <도스토예프스키와 부친 살해>이다. 이 책에서 도박자는 상습적인 강박관념에 사로잡힌 신경증 환자로 그려진다. 프로이드는 도박 중독을 자위행위의 중독과 같은 종류로 보았다. 그 둘을 묶어주는 연결고리는 손동작이다. 자위라는 악이 도박의 탐닉으로 대체되고, 열정적인 손놀림에 대한 강조가 이러한 연결 관계를 드러내준다. 더 나아가, 도박을 한 후에 갖는 죄의식은 도박자의 젊은 시절의 오이디푸스 콤플렉스, 즉 아버지를 죽이고 어머니를 소유하고자 하는 욕구와 연관되어 있다고 본다. 이런 맥락에서 프로이드는 도스토예프스키와 그의 아버지의 이중적인 관계, 그리고 그의 도박의 탐닉을 언급한다. 도스토예프스키가 아버지에 대한 증오심 때문에 가지는 죄의식이 도박을 통해 완화된다는 것이다. 도박을 하며 운명에 자신을 맡김으로써, 상징적으로 아버지에 맞서게 되고, 그래서 도박은 ‘자기 체벌의 상징적 수단’이 된다. 이러한 분석은 정신분석학에서 도박자를 마조히즘 환자로 그리는 시발점이 되었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상반되는 두 입장이 병존하고 있다. 기존의 입장과는 달리 도박이 ‘해가 없는 투기’로 경제계와 정부에 의해 묵인되고 장려되고 있지만(로또나 공공 복권의 형태로), 다른 한편에서는 도박이 의료 기관과 많은 학술적 연구자에 의해 인간의 희망과 믿음을 부도덕하게 거래하는 것으로 비난받고 있다. 이 책은 맨 처음 놀이를 인간 본성의 최상의 부분으로 인정한 플라톤의 견해에서 출발하여 도박을 기본적으로 문제가 없는 활동이라고 가정하고 도박의 본성과 경험에 대한 분석을 제공하고 있다.


* 우리 모두는 도박자이다

이 책의 저자 거다 리스(Gerda Reith)는 ‘21세기에 사는 인간은 모두 도박자’라고 말한다. 우리가 일확천금을 꿈꾸는 망상주의자나 매순간 카지노 테이블에 앉아서 스릴과 초조감을 즐기는 도박 중독자라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물론 이 책은 로마 시대부터 현대의 라스베가스까지 모든 종류의 도박에 관해 논하고 있다. 그러나 정작 이 책이 말하고자 하는 것은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가 ‘도박적’이라는 것이다. 우리가 도박에 관심을 가지고 있건 없건 상관없이 세계는 이미 거대한 카지노이며, 세계를 지배하는 것은 ‘우연’이다. 우리는 우연이 지배하는 세계 속에 살고 있다.

21세기는 우연과 불확실성의 시대이다. 위험, 투기, 비결정성, 변동은 현대사회에 내재해 있는 특징들이다. 한마디로 말하면 현대사회를 지배하는 것은 위험이다. 기업은 물론이고 개인과 국가의 영역에서도 안정성과 고정성이 사라지고 불확실성, 가변성, 이동성이 지배한다. 그 결과 위험성과 리스크가 매우 높은 시대가 되었다. 어느 서양학자는 이러한 시대를 ‘위험사회’라고 명명하였다.

우리는 모든 종류의 위험을 예측하고 대비한다. 미래의 불확실성에 대비하기 위해 저축을 하거나 보험을 들고, 복잡한 사회구조 속에서 발생하는 법률적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변호사를 지정한다. 보험과 변호사의 기능이 필수적인 사회가 된 것이다.

우리는 안정을 원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이 세계의 위험과 불확실성으로부터 도망갈 수 없다. 왜냐하면 이 세계의 본질이 우연과 불확실성이기 때문이다. 보험이나 변호사가 지금처럼 많았던 시대는 없었다. 그것은 21세기가 얼마나 많은 우연과 불학실성에 노출되어 있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우리는 안정을 위해서 보험을 들지만 보험회사는 우리의 위험을 미끼로 거대한 도박을 하고 있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보험회사는 사람들의 걱정거리를 이용하여 막대한 돈을 벌었다. 그 회사들은 우리의 고민인 재난은 결코 발생하지 않거나 굉장히 적은 확률로 일어날 것이라는 소신으로 내기를 건다. 하지만 우리는 이것을 도박이라 부르지 않고 보험이라 부른다. 사실 이것은 도박이다. 은행 역시 마찬가지이다.


* 도박은 불확실성과의 투쟁이다.

도박에 대한 정의 중 가장 일반적인 것은 불확실성과의 투쟁이다. 많은 신화에서 우리는 그것을 반복적으로 확인할 수 있다. 천지창조 신화의 과정 중 여러 장면에서 지속적으로 반복해서 나타나는 모습이 도박이다.

그리스 신화에서 포세이돈, 제우스, 하데스는 주사위 게임으로 세계를 분할하였다. 노르웨이와 스웨덴의 국경은 두 명의 왕이 주사위 게임을 해서 결정했고, 그 결정은 ‘신의 손’으로 승인됐다. 또한 스칸디나비아 신화의 아세스(Ases)는 힌두의 시바(Siva)처럼 인류의 운명을 주사위로 결정하였다. - 본문 중에서

심지어 도박을 해악으로 보는 기독교적 관점과 달리 구약성서 곳곳에도 이런 모습이 언급되어 있다. <민수기>에는 이스라엘 민족이 제비뽑기로 가나안 땅을 분할한 이야기가 나와 있다.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일러 가라사대…오직 그 땅을 제비 뽑아 나누어…그 다소를 물론하고 그 기업을 제비 뽑아 나눌지니라.”
이처럼 태초의 혼돈에 질서를 부여한 것은 도박이라는 행위를 통해서였다. 뿐만 아니라 모든 사회에서 도박은 일상생활의 중요한 일부였다. 사람들은 언제 어디서나 불확실한 미래에 대해 내기를 한다. 그럼에도 우리는 사회전반에 폭넓게 자리하고 있는 도박에 대해서 별로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다. 조금만 관심을 기울여도 바로 알 수 있는 도박의 가장 현저한 특징은 보편성이다. 도박은 시대와 지역을 불문하고 보편적으로 널리 퍼져있다. 고대 그리스인, 북미 인디언, 현대 서구 사회의 사람들에 이르기까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해서 도박을 한다는 점에서는 하나도 다르지 않다.
이 책의 근본적인 통찰은 ‘도박이 사람들을 우연의 세계로 들어가 오랫동안 머물게 하는 하나의 장치’라는 것이다. 그러나 도박이 우연 그 자체는 아니며, 우연의 세계를 합리화로부터 보호하는 동시에 예측 가능한 이성의 세계를 우연으로부터 보호하기도 한다. 인간의 파괴본능을 제도화한 격투 스포츠와 같이 도박을 하나의 사회적 제도로 보는 것이다.


* 우연은 어떻게 기술되는가?

이 책은 지금까지 무시되어 오거나 아주 난해한 질문을 새롭게 제기하고 있다. 우연을 경험하는 것은 어떤 것인가? 우연의 경험은 무엇으로 구성되고 어떻게 나타낼 수 있는가? ‘심오한 비합리성’이 어떻게 현대 생활의 일부가 되었는가?

도박은 일반 세계와는 확연히 다른 우연의 세계로 ‘무작정 뛰어드는’ 일이다. 돈을 거는 초조한 순간이 게임의 결과보다 더 본질적이다. 사실 승패는 우연의 경험에 매료된 사람들에게는 원하지 않는 방해에 불과하다. 이 책의 근본적인 통찰은 도박이 사람들을 우연의 세계에서 오랫동안 머무를 수 있게 하는 하나의 장치라는 것이다.

이 책은 도박의 세계를 마주하기보다는 그 세계에 과감히 뛰어들어 우연의 경험을 기술한다. 이러한 시도는 기존의 정통적이고 안전한 연구법을 따르지 않는 가장 독창적이고 과감한 것이다. 우연은 당연히 자신의 언어를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에 연구는 처음부터 불가능한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저자는 종교적인 것에 대한 현상학적 연구 방법을 원용하고, 여러 문학작품을 통찰력 있게 이용하고, 무엇보다도 잘못된 합리주의적 서술을 일관되게 거부함으로써 우연의 세계가 갖고 있는 진정한 외적, 내적 풍부함을 드러내는 데 완벽한 성공을 거두었다.

이 책은 도박의 경험에 관한 기존의 보고서들을 활용하였다. 그 보고서들이란 다름 아닌 수많은 문학작품이다. 우리가 알고 있는 수많은 철학자와 문호들은 도박자였다. 도박의 세계는 푸쉬킨, 발자크, 보들레르, 그리고 도스토예프스키와 같은 많은 위대한 작가들을 사로잡았다. 그 중에서 도스토예프스키는 도박의 가장 유창한 대변인이다. 그는 인간 동기에 대한 뛰어난 분석가일 뿐만 아니라, 상습적 도박자였기 때문이다. 도스토예프스키는 유럽의 유명한 도박장을 여행한 경험을 바탕으로 <도박자>라는 소설로 썼고, 도박장 안에서의 경험을 놀라운 통찰력으로 표현했다. 이밖에도 최초의 프로도박자인 당조, 도박의 중지를 막기 위해 샌드위치를 개발한 샌드위치 경, “기억하라! 지칠 줄 모르는 도박자들아. 시간이 룰렛의 판에서 항상 승리한다. 이것은 법칙이다.”라는 말로 오늘날의 ‘오락을 파는 상인’인 카지노의 특성을 간파한 보들레르, 몽테스키외, 파스칼, 니체, 보드리야르, 스위프트, 발자크, 고골리, 도스토예프스키, 조지 오웰 등이 그들이다. 이 책은 나아가 라스베가스에서 활동하고 있는 많은 도박전문가들과의 인터뷰 자료까지 활용하고 있다. 몇 부분을 본문에서 인용해 보자.

보르헤스는 《바빌론의 복권》에서 복권은 다른 모든 제도들을 삼켜 버렸고, 정의의 법률과 경제를 우연의 지배에 종속시켰다. 그 책의 주인공은 말한다. ‘나는 복권이 현실의 토대인, 현기증 나는 나라에서 왔다.’ 6일 마다 열리는 신성한 추첨이 그 기간 동안의 시민들의 생활의 방향을 결정하고, 복권이 모든 사회 기관에 침투해 있어서, 재수 없는 복권을 가진 사람들은 감옥에 가거나 벌금을 내고 행운의 복권을 가진 사람은 승진을 하거나 다른 보상을 받을 수 있었다.

조지 오웰의 《1984》에서 복권이 현대 정부의 수중에 들어가는 것에 대한 비관적 입장을 표현했다. “복권은 … 프롤레타리아가 심각하게 관심을 기울이는 하나의 대중 이벤트였다. … 그것은 프롤레타리아의 즐거움이고, 어리석음이고, 진통제이고, 지적 자극이었다.”

돈을 잃는 것은 마음의 평화를 잃는 것만큼 중요하지 않다. 게임을 하는 동안 경험하는 동요를 두고, 사람들은 자신들이 좋아하는 것이라고 말할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명백히 수명을 단축시키는 것이다.
-고골리의 <도박자들> 중에서

주사위 던지기는 그 자체로는 적당한 어지러움을 만들어낼 뿐이다. 하지만 운명이 판돈을 올리게 되면. 운명 자체가 사물들의 자연 질서에 도전장을 던지는 것처럼 보이면서 광란이나 현기증 속으로 빠져들게 되면, 격렬한 감정이 분출되고 정신은 진정으로 치명적인 매혹에 사로잡힌다 - 보드리야르

우리가 존재에서 얻는 유일한 쾌락은 우리가 무엇인가를 열심히 추구할 때이다. 그 무엇인가의 거리와 어려움이 우리의 목표가 달성되었을 때 우리를 만족시킬 것처럼 보이게 만들기 때문이다.
- 쇼펜하우어

다른 숫자들이 같은 방식으로 나를 괴롭히기 시작했다. … 나는 이틀 동안 서너 번씩 그 숫자들을 봤고 그 번호를 골라서 당첨되곤 했다. … 나는 겁이 났다. 나는 그것이 일종의 전조, 즉 메시지라고 생각했다.
- 안젤라 V (도박자)


* 우연은 왜 멋진가?

우연은 왜 멋진가? 그것은 ‘우연의 절대적 민주주의’ 때문이다. 우연은 기술의 효능을 무력화하고 개인적 자질, 인내심, 노력 또는 교육에 기초한 모든 차이를 무효로 만든다. 러시아 작가 고골리는 말했다. “게임은 사람을 존중하지 않는다. 모든 사람은 카드 앞에서 평등하다.”

이 책을 통해 우연이 작동하는 두 개의 장면을 볼 수 있다. 미국 소설가 노리스의 《맥티그》에서 쁘띠 부르주아 트리나와 넝마장수 제르코프 라는 인물을 통해 대비적으로 보여준다.

“왜 내가 당첨이 되어야 하지?” 라고 그녀가 묻자 “네가 안 되어야 할 이유라도 있니?” 엄마가 되묻는다. 사실 그녀라고 왜 안 되겠는가? 그것은 그녀의 노력이나 능력과는 아무 상관이 없었다. - 본문 중에서

“5,000달러. 무엇 때문에? 아무것도 안하고 단지 표 한 장 때문에? 나는 그 돈을 위해 아주 열심히 일했고, 아주 열심히 싸웠고, 간절히 원했다. 매일같이 죽도록.” - 본문 중에서

차별 없는 민주주의는 불평등한 변덕이다. 아무리 기술이 뛰어나도 불확실성을 완전히 제거할 수는 없고 완벽한 통제는 불가능하다. 우연은 세계의 존재론적 특질이기 때문이다. 우연의 영향은 도처에 널려있고 도박의 결과는 항상 우발적인 사건이다.

우연이 현대사회를 만들어내는 조물주가 되어 있는 그 순간에도, 우리는 우연이 마침내 합리화의 힘에 굴복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거다 리스(Gerda Reith)는 우리에게 다시 생각해 보라고 말한다.


* 세상을 지배하는 원리가 필연이라면 당신에게는 기회조차 없다.

자본주의가 도박을 포용한다는 것은 수없이 지적되어 왔다. 자본주의와 도박의 유사점이 많다. 갬블러(gambler)가 ‘사업가와 함께 오락적 게임을 하는 선수’라는 뜻을 가지고 있고, ‘카지노 자본주의’와 ‘글로벌 카지노(global casino)’와 같은 경제생활을 나타내는 표현에서도 서로의 유사관계를 찾을 수 있다.

‘위험’의 개념은 후기 산업사회의 모습을 그리는 데 점점 더 많이 사용되고 있다. 사회적, 개인적 불안정을 설명하는 데도 자주 쓰이고 있다. 세계경제는 미래에 대한 정확한 예측의 필요성 때문에 갈수록 극단적인 형태의 투기적 사업 아래 놓여있다. 이를 두고 어떤 이들은 ‘서구 금융 시스템이 급속하게 거대한 카지노를 닮아가고 있다’고 결론지었다. 한 외환 딜러는 시장에서 어떻게 행동할 것인가에 대해 회사에 조언을 하면서 도박 용어를 사용해서 이렇게 말했다.

이것은 도박이다. 문제는 사람들이 그것을 도박으로 바라보지 않고 거시 경제적 지식으로 치장하려고 할 때 생긴다. 필요한 것은 동물적 감각이다. 달러가 오른다. 파운드가 내린다. 베팅하라. - 본문 중에서

이러한 투기적 경제 현상은 예기치 않은 사건으로 인해 커다란 손실을 가져올 때까지 드러나지 않는다. 그러다 커다란 손실이 발생한 후에야 경제가 병들고 불안정하고 붕괴의 위험에 처해 있다는 선언이 나온다. 이때가 되어서야 전문가들은 도박과 경제적 투기 사이의 상응관계를 인식하게 되고, 그러한 인식에 놀란다. 서구 경제사는 1929년의 월스트리트 붕괴, 1987년의 검은 금요일, 딜러들의 무모한 베팅으로 인한 은행의 파산 등 수많은 도박적 손실로 점철되어 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본주의 경제체제는 투기에 의해 견인되고 실패한 위험을 무한히 견뎌낼 수 있는 것처럼 보인다. 침착하고 냉정한 사람들이라는 은행원의 옛 이미지가 보다 기업가적인 이미지로 대체되었고, 심각한 사고들로 인해 국제금융 시스템은 마치 도박장처럼 변했다. 투기적 위험이 자본주의 본성의 한 부분이 됐다. 17세기 이래로 자본주의 확산의 동력은 ‘카지노’에 있었다. 이유는 분명하다. 세계를 지배하는 사람들은 석유를 캐는 사람들이 아니다. 석유로 도박을 하는 사람들이다.

저자 거다 리스(Gerda Reith)는 우연과 불확실성이야 말로 거대한 기회라고 주장한다. 그녀는 위험을 위기와 불안으로 보지 않고 ‘기회’로 본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는 우연의 시대인 동시에 기회의 시대인 것이다.

그렇다면 당신이 그 기회의 주인공이 되지 말아야할 이유는 한 가지도 없다. 위험이 있으면 그곳엔 반드시 기회가 있다. 자신의 인생을 통째로 걸고 도박하지 않는 자가 얻을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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