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옮긴이의 글
서장 - 혼돈을 뚫고 제1강 | 부족 시대 신석기 시대 ‘3대 혁명’의 표지 | 인증받고 있는 ‘삼황오제’ 전설 ‘천하만국’의 국면 | 중원을 쫓아서 | 마침내 사실로 증명된 하 왕조 제2강 | 청동 시대 왕권과 신권의 결합 | 청동 시대 | 봉건-봉방건국의 제도 | 예제를 왕조의 명맥으로 삼다 제3강 | 제후 시대 군웅의 할거 | 사상 대해방의 시대 | 철혈각축 | 다민족의 융합 제4강 | 통일 제국 시대 진시황 | 통일 제국의 접력接力 | 통일 정부의 쇠락 제5강 | 분열과 동란의 시대 분열에서 대치로 | 편안한 세월 | 지혜의 꽃, 허무의 과실 제6강 | 고전 시대 고전 시대의 흥기 | 성세와 쇠락 | 하늘 아래 제7강 | 남북 대치 시대 고개를 들어 북방을 보다 | 문약한 왕조 | 안정과 번영 제8강 | 초원 제국의 변주곡 말 위에서 천하를 얻다 | 말 위에서 천하를 다스리다 제9강 | 수렴과 위축의 시대 독재 통치 아래의 지배층의 정치 | 흥망성쇠의 계기 | 지킬 수 없는 변방 | 상품 경제의 맹아 제10강 | 전통 시대의 에필로그 전쟁과 평화 | 전통 왕조의 마지막 전성기 제11강 | 근세 시대 아편과 열강 | 천조·상군·의화권 | 현대를 향하여 | 제왕 시대의 종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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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는 중국사, 보는 중국사
이 책은 ‘읽는’ 중국사와 ‘보는’ 중국사를 동시에 지향한다. 충실하고 깊이 있는 내용을 통해 별도의 참고 자료 없이도 중국 통사를 충분히 이해할 수 있도록 구성했다. 또한 다양한 사진과 그림, 지도, 도표 등을 적극적으로 활용해 텍스트의 내용을 한눈에 파악할 수 있도록 구성했다. 본문에 실려 있는 삽화는 사진으로 표현할 수 없는 부분을 그려낸 것으로, 단지 유물만으로만 상상하던 과거의 모습을 그 유물을 사용하는 과거인의 모습으로 구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또한 이 책의 각 장 말미에 수록되어 있는 연표는 중국사를 세계사와 함께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을 준다. 한 나라의 역사는 개별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나라와의 관계 속에서 영향을 주고받는 세계사의 일부이다. 앞 시대가 뒷시대의 진로에 영향을 끼치듯 한 나라의 역사는 다른 나라의 역사에 적지 않은 영향을 준다. 따라서 나무만 보고 숲은 보지 못하는 잘못을 범하지 않기 위해서는 개별 국가의 역사를 세계사라는 큰 틀에서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 따라서 이 책에서는 시대별 중국사 연표와 한국사 및 세계사 사건을 함께 제시하여 같은 시기 혹은 그 전후(前後) 시기에 다른 나라에서는 어떤 일들이 있어났는지, 상호 영향 관계를 살피고 역사 전체를 조망해 볼 수 있도록 하였다. 제대로 읽는 중국사 중국사는 우리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가? 중국은 일본과 더불어 우리나라와 역사적으로 가장 밀접한 관련을 가진 나라이다. 중국의 수많은 왕조가 흥망을 거듭하는 오랜 세월 동안 우리 역사도 밀접한 연관 관계를 가지며 부침(浮沈)을 거듭했다. 또한 중국은 동아시아에서 정치적·문화적 영향력이 가장 큰 나라였다. 따라서 중국사를 읽는 것은 우리 역사를 이해하는 과정이자, 나아가 동아시아사를 이해하는 첩경이기도 하다. 그런 까닭에 출판계에서는 그간 적지 않은 중국사 관련 서적이 출간되었다. 그러나 의외로 독자들의 갈증을 시원하게 해소해 줄 만한 책은 그리 많지 않았다. 먼저 서구나 일본의 책을 번역한 경우 중국의 역사, 특히 역사적 사건 이면에 잠재되어 있는 인과관계와 영향 등을 속속들이 보여줄 수 없다는 한계가 있었다. 흔히 역사는 ‘반박할 수 없는 객관적 사실’이라고 생각하지만, 사실 역사는 역사가에 의해 선택되고 평가된 일련의 사실이다. 따라서 서양인이나 일본인의 관점에서 선택·평가된 중국사에는 우리가 놓쳐서는 안 되는 역사적 진실은 빠져 있을 수밖에 없었다. 가령 명나라 성조 시대에 7차에 걸쳐 서방 원정에 나선 정화에 대해 이야기할 때 대부분은 서양의 바스코 다 가마나 마젤란보다 앞선 대규모 원정이라는 점과 30여 개국을 원정하며 명 왕조의 기세를 떨치고 무역상의 이익을 얻었다는 점에 주목할 뿐, 그 원정의 화려한 겉모습 뒤에 가려진 한계와 그것이 향후 중국사에 끼친 영향을 조명한 경우는 많지 않았다. 다음으로 역사를 독자에게 보여주는 방식에도 미흡한 점이 있었다. 기존의 중국 역사서는 단순히 유물 사진을 보여주는 데만 치중하거나 반대로 텍스트를 통해 개별 사건들을 나열하고 설명하는 데만 집중하는 경향이 많았다. 전자의 경우 내용이 부족해 중국사 전반을 이해하기 어려웠고, 후자의 경우 생생한 현장감을 느낄 수 없는 답답함이 있었다. 이 책은 이처럼 기존의 중국사 책에서 부족했던 부분을 채워주는 새로운 형태의 중국사다. 중국인이 쓴 중국 통사 우리나라 역사를 가장 잘 이해하고 가장 효과적으로 전달해 줄 수 있는 사람이 한국인인 것처럼, 이 책의 저자는 중국사를 가장 분명히 파악하고 이야기해 줄 수 있는 중국인이다. 물론 중국인이 쓴 중국사는, 굳이 동북 공정을 비롯한 역사 왜곡 문제를 거론하지 않더라도 한족 또는 중국을 중심에 놓고 역사 전반을 이해하는 한계에 직면하기 쉽다. 하지만 저자는 역사학계의 영향권에서 한 걸음 비켜나 있는 문학 작가·화가 겸 아마추어 역사학자이기에 오히려 자민족 혹은 자국 중심주의의 함정에 빠지지 않고 객관적으로 사실을 기술하고 평가한다. 저자는 2천 년 넘게 전제적 황제 제도를 기본 틀로 유지해 온 중국의 정치사를 예리한 눈으로 통찰하고 있다. 황제 개인의 역량에 따라 이 제도가 얼마나 갈팡질팡할 수 있는가에 대해 정확히 인식하고 있다. 유가 학술에 지배되어 온 전통 중국 사회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은 소수 민족과 그 정권의 역할도 빠뜨리지 않고 있으며, 이들이 한족 정권의 시스템을 모방하고 한화(漢化)하는 순간 몰락의 길로 빠져 든다는 점도 분명하게 지적하고 있다. 입관 후 청 왕조는 각종 제도 면에서 일부 세부적인 것만 바꾸고 대부분은 명을 계승했다. 황궁은 새 주인이 사용할 수 있을 정도로 장식상 만주족 풍속과 보호를 첨가하는 선에서 수리하는 정도에 그쳤다. …… 일반적으로 말해 만주족 군주가 중국 전통을 준수하는 정도는 전 왕조의 토박이 황제를 뛰어넘을 정도였다. 옷과 헤어스타일을 제외하고 청 왕조 전기의 행위는 전 왕조의 나쁜 일조차 따라 할 정도였다. …… 청 왕조는 역대 어떤 한족 통치자들보다 더 한족 문화의 가르침을 지키면서 농업과 누에치기를 장려하고 황무지 개간을 장려했다. 남자는 농사를 짓고 여자는 베를 짜는 이상적 사회의 불빛 아래에서 토착 방직업은 당시 경제의 생장점이었다. 그러나 바로 이 면방직업을 필두로 와트의 증기기관과 스티븐슨의 기동윤선이 자본주의 생산품을 싣고 태평양 서쪽으로 쳐들어갈 날만 손꼽아 기다리고 있었다. ― 본문 중에서 그뿐 아니라 최근의 고고학 연구와 대규모 유적 발굴 성과를 적극 반영해 신화 속의 허구적인 이야기로만 치부되던 하(夏)·상(商)·주(周) 삼대(三代)를 비롯한 그 이전 시대를 현실 역사로 끌어내고 있으며, 정치사는 물론 사회사·경제사·문화사 등 역사 전반의 큰 흐름을 한눈에 파악할 수 있도록 정리하고 있다. 역사 전반에 대한 이러한 거시적 안목과 통찰은 아무나 쉽게 엄두를 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문학 작가인 저자가 들려주는 감성과 논리가 잘 조화된, 날카로우면서도 발랄한 이야기는 지루한 일반 역사책과는 다른 색다른 맛을 선사한다. 특히 자신의 전공이라 할 수 있는 문화 예술 분야에 대해서는 남다른 표현력을 유감없이 보여준다. 또한 구석기 시대에서 신해혁명에 이르는 유구한 중국의 역사를 단순히 왕조에 따라 구분하는 것이 아니라 역사 발전 과정과 시대적 특색에 맞추어 11개의 시대로 새롭게 나누고 있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 ‘초원 제국의 변주곡’, ‘전통 시대의 에필로그’ 등 각 시대의 큰 제목만 보아도 한 시대를 명쾌하게 구분·요약하는 참신함이 돋보인다. 중국 현대사의 경우 그 전개 과정이 매우 복잡할 뿐 아니라 전통 사회와는 성격이 전혀 다르기 때문에 한 권으로 구성할 경우 자칫 다른 내용마저 소홀해질 것을 우려해 현대사는 과감히 제외했다. 구체적인 사건을 줄지어 나열하고 구구절절 설명하는 데서 한 걸음 나아가 사건의 인과 관계를 돌아보고 그 사건이 한 시대, 혹은 중국사 전체에 끼친 영향을 살핌으로써 개별 사건과 큰 흐름이라는 역사의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을 수 있도록 이끌어준다. 앞서 언급한 정화의 서방 원정에 대한 묘사는 이러한 특징을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정화의 서방 항해는 서양의 마젤란과 콜럼버스에 비해 각각 116년과 87년 앞선 것이었다. 그러나 콜럼버스와 마젤란의 항해는 새로운 시대의 도래를 의미하는 표지였지만, 정화의 항해는 중국이 다가올 새 시대를 미처 알아보지 못하고 단지 어깨를 스치고 지나갔음을 암시해 주었을 뿐이다. …… 방대한 함대가 돌아올 때마다 가지고 온 것은 자잘한 궁정 사치품과, 중국이 장차 역사에 의해 뒤로 내팽개쳐질 것이라는 사실은 전혀 모른 채 득의양양 우쭐거리는 데 필요한 자만심뿐이었다. 해상의 등불이 어느덧 꺼지자 당시 세계에서 가장 위대했던 함대도 흩어졌다. 함선은 해변의 모래사장에 버려진 채 쓸모없이 썩어 갔고, 28년에 걸쳐 축적된 항해도는 다른 사람도 아닌 병부상서 유대하(劉大夏)에 의해 불태워졌다. 주체의 손자인 제5대 황제 주첨기(朱瞻基)는 7차 항해가 끝난 다음 마치 할아버지를 위한 성대한 제사를 치른 것처럼 할아버지가 바닥낸 재정 때문에 쪼들려야만 했다. 그는 어쩔 수 없이 집안 대대로 전해 오는 법보를 꺼내 들었다. 그것은 바로 돈이 없으니 허리띠를 졸라매는 것이었다. 명 왕조는 이후로 더 이상 빛을 발하지 못했다. ― 본문 중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