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金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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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은 만인의 것이면서 어느 누구의 것도 아니다. 공은 어느 누구의 것도 아니기 때문에 만인의 것이다. 그 공이 인간과 인간 사이를 매개한다. 공을 쫓아서 달려가는 인간을 바라보면서 나는 둥글다는 것의 아름다움을 알게 되었다. 축구가 놀이로써 가능한 것은 공이 둥글기 때문이다. 공이 둥글지 않고 정육면체나 삼각뿔이었다면 축구는 성립되지 않거나 재미없는 놀이가 되었을 것이다. 둥근 것은 거기에 가해지는 힘을 정직하게 수용하고 땅에 부딪치고 비벼지는 저항을 순결하게 드러내서 빼앗기고 뺏는 동작들 사이의 적대관계를 해소시킨다. […] 도시의 황폐한 공터나 뒷골목, 남루하고 억눌린 삶의 오지에서 사람들은 공을 차고 있었다. 공은 억압할 수 없는 생명의 충동으로 높이 솟아올랐다. 공을 차면서, 축구경기를 보면서 나는 인간의 아름다움을 믿는다.
--- '머리말'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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팽팽하게 부풀어 오른 공을 힘주어 차는 것은 단순히 가죽에 쌓인 둥근 공기 덩어리만이 아니라 다른 감정까지 함께 전달하는 행위 같았다. 그렇다. 남들은 축구는 전쟁, 아니 그 이상이라고 말하지만 아이들에게는 축구는 단순히 놀이이면 대화인 것이다. […] 지금 한창 축구 배우기가 열풍이란다. 축구가 단순히 체력을 키우는 데 도움을 줄 뿐만 아니라, 협동심과 경쟁력을 키워준다기에 부모들은 너도나도 어린 자녀들을 운동장으로 끌고 나간다. 그렇지만 한때의 바람으로 유행처럼 왔다가 가버리는 열기가 아니길 진심으로 바란다.
--- '마치며'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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좁은 골목은 억압된 삶의 풍경을 보여주지만 거기서 노는 아이들의 동작은 그 공간에 순화되어 있으면서도 거기에 매몰되지 않는다. 골목이 너무 좁아서 공을 옆으로 멀리 차낼 수 없다는 것을 공 차는 아이는 알고 있다. 그의 동작이 이미 골목의 폭을 가늠하고 있다. 공을 막는 아이의 자세도 그다지 긴장되어 있지 않다. 그 아이도 골목의 폭을 알고 있다. 아이들은 그 골목에서 놀면서, 자신의 동작으로 골목의 폭을 표현하는데 공간의 부자유조차도 놀이의 대상이다.
--- 본문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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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을 찰 때, 사람의 몸은 힘을 뿜어낸다. 공을 차는 동작을 초점으로 삼아서, 사람의 전신은 그 초점에 집중된다. 두 팔은 공을 차는 두 다리에 대하여 대칭과 균형을 맞추어주는 동작으로 저절로 움직인다. 이 저절로 움직이는 동작은 완벽한 율동과 곡선을 이루어낸다. 팔은 다리의 움직임과 연결되어서 흔들린다. 팔이 다리에 맞추어 흔들릴 때, 이 흔들림에는 직립보행 이전의, 네발로 땅을 기던 시절의 추억이 살아 있다. 인간의 육체 속에서 이 추억은 멀고도 희미한 등불처럼 깜박인다.
--- 본문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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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이 먼 바다로 몰려가는 저녁 무렵에 시간은 어둑하고 듬성듬성하다. 시간의 사실성이 물러서는 자리에 여린 어둠이 내린다. 공을 차는 아이들이 집으로 돌아가야 할 때다. 사위는 바다의 빛 속에서 공 차는 아이들은 태초의 인간처럼 보인다. 해가 물밑으로 잠긴 자리에 아이들이 차올린 공이 떠 있다. 아이들의 그림자는 어둠 속으로 녹아버렸고, 아이들의 몸이 수평선 위에서 그림자처럼 녹아가고 있다. 아이들이 놀 수 있는 시간은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 아이들은 시간으로부터 달아날 수 없지만, 시간에 결박되지 않고 그 시간과 더불어 논다.
--- 본문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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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훈, 둥근 것과 굴곡진 몸의 아름다운 연대를 사유하다.
지난 6월, 장삿거리가 돼 전 세계를 야단스럽게 했던 월드컵을 뒤로하고 김훈은 지중해 크레타섬으로 침잠했다. 수세기 전의 석편 속에서 그는 오롯하게 둥근 것의 본성만을 탐했던 조상들을 떠올렸다. 그리고 이데올로기의 질료나 상업적 도구가 아닌, 공과 순수한 몸동작 그 이상의 무엇도 아닌 공놀이의 소박함과 단순성이 재생되길 소망했다. 7월, 한국에 들어온 김훈은 불과 며칠 만에 원고지 한 꾸러미를 편집부로 보내왔다. 올 초부터 사진가 안웅철과 함께했던 『공차는 아이들』은 그렇게 압축적으로 진행되었다. 손목에 힘주어 꾹꾹 눌러쓴 필치를 통해 새겨진 그의 사유의 진행과 멈춤은 여전히 아름답다. 그간 인간 본연의 몸뚱이에 천착했던 그는, 공과 인간이 뒤엉긴 사진 앞에 생의 체온을 감각하며, 그 자체에 집중하여 한 자 한 자 적어 내렸다. 제 상체보다 큰 공과 씨름하며 흙밭을 내달리는 어린아이부터 누린 땀내를 풍길 법한 장년까지 둥근 것과 친밀한 인간들. 혼자든 무리든 상관없이 빛이 물러가고 시간이 정지된 운동장에서 혼자 공과 놀거나, 가슴과 정강이를 거칠게 내몰며 공을 차지하기 위해 한 떼로 다투는 순간들. 여러 번 기워지며 재생과 임종을 맞는 공의 한 생애. 김훈은 자연과 인공, 개인과 집단 등속에서 움트는 생명의 기운들을 주목한다. 공은 둥근 것이다. 내 것도 네 것도 아닌 만인의 것으로 자유롭고 대범하다. 하여 김훈은 공을 따라, 몸을 따라 자유롭게 사유한다. 무구한 아이들과 공이 이미 수세기 전부터 만들어낸 관계와 소통의 풍경을 따뜻한 말들로 풀어냈다. 때로 단순한 것은 생의 모든 진리를 담고 있다 하지 않았는가. 단순한 놀이, 움직이는 대로 툭툭 불거지는 뼈마디와 근육의 단순한 몸동작 속에서 김훈은 인간과 공의 아름다운 사귐을 주목한다. 매번 새로운 생의 찰나, 생명의 기운이 고루 나눠진 공과 인간이 어울린 풍경의 숨결을 김훈 특유의 직관과 담담하며 도저한 사유가 응결된 문체로 맛볼 수 있다. 꿈처럼 솟았다가 현실처럼 가라앉아 늘 인간을 긴장케 하고 달뜨게 하는 공과 인간의 꿈이 김훈의 글 속에 녹아 있다. 안웅철, 열리고 닫힌 공간에서 스스럼없는 공과 인간의 풍경을 포착하다. 패션 광고 등의 상업사진과 다큐멘터리 및 인물 사진을 업으로 했던 안웅철이, 공과 어우러진 풍경을 담기 위해 바쁘게 셔터를 눌렀다. 올 초부터 전국 도심과 후미진 곳을 누비며, 공을 차는 동작이 매번 새롭듯 경험되지 않은 새로운 찰나들을 카메라에 담았다. 지난 4월 김훈과 동행했던 강원도 정선 촬영길. 순박한 시골 아이들이 운동장서 공을 두고 치고 달릴 모습을 상상하며 찾아간 그곳에는 아이들의 그림자를 찾아볼 수도 없었고, 때 아닌 폭설을 만나 마른 카메라만 만지작거렸단다. 도심에선 아이들이 다리 뻗고 팔 뻗을 곳 없어 좁은 골목길이나 아파트 복도에서 공놀이를 하며 기계적 공간을 놀이터로 바꾸고 있었단다. 우연히 들르게 된 장애인 학교에서는 공만 보면 어설픈 동작으로 벗은 몸뚱이로 쫓아다니는 아이를 만났다고도 한다. 그때서야 크건 작건, 아이들이 저마다 공을 열망하며, 제 소망을 실어 나르듯 공을 쫓아 내달리는 날것의 풍경과 속 깊은 의미를 알았다고 한다. 축구가 한때의 유행처럼 뜨거웠다 식지 않기를 바라는 개인적 소망을 담아 안웅철은 공과 인간이 어울린 순간들을 엮어 자체로 한 이야기를 담은 사진을 풀어놓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