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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부. 삼국.통일신라시대
개관 고분벽화로 본 고구려 이야기 서동과 선화공주의 전설이 얽힌 미륵사지 석탑 . 신라 금관의 주인은 제사장인 무당 고구려와 백제 유민의 원혼을 달래려고 만든 석굴암 2부. 고려시대 개관 고려인들은 왜 은진미륵과 같은 커다란 불상을 만들었을까요? 고려가 남긴 대표적인 문화유산. 팔만대장경 당시에도 세계 최고의 예술품으로 칭송받던 고려청자 3부. 조선시대 개관 조선왕조의 영광과 굴욕을 한눈에 보여주는 경복궁 격동의 근대사가 담겨있는 운현궁 서원의 나라. 조선 아버지 사도세자를 애도하며 지은 수원 화성 조선왕조의 상징. 종묘 자주독립 의지의 표상. 독립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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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타깝게도 사도세자는 정치적인 모함을 받아 죽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왜 혜경궁 홍씨는 남편의 죽음을 다르게 기록하였을까요? 혜경궁 홍씨가 『한중록』을 지을 때 그녀의 친정 식구들은 정치적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었습니다. 친정 아버지 홍봉한이 사도세자 사건을 일으킨 사람이라는 소문이 나돌았기 때문에 그녀는 남편의 죽음이 부왕의 사랑을 받지 못해 생긴 정신병 때문이라고 『한중록』에 씀으로써 아버지를 구하고 싶었던 것입니다. 그 후 영조는 세자를 죽인 것을 후회하고 세자의 죽음을 애도한다는 뜻에서 사도(思悼)라는 시호를 내렸습니다. 노론은 사도세자를 죽음으로 몰아 넣은 후 후환을 없애기 위해 사도세자의 아들인 세손 정조마저도 죽이려 했으나 영조 임금의 보호로 실패하고 말았습니다.
--- pp.219~22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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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굴암의 가장 큰 신비는 스스로 습도를 조절하고 환기시킬 수 있는 능력이라고 합니다. 이 능력 때문에 석굴암은 천 년의 세월 동안 많은 눈과 비바람을 맞으면서도 망가지지 않은 채 그대로 보존되었던 것입니다. 이러한 석굴암의 신비한 능력은 과학이 발달한 지금까지도 여전히 풀 수 없는 수수께끼로 남아있습니다. 우리나라가 일본 사람들에게 지배를 당하고 있을 때 일본 사람들은 이 신비한 능력을 무척 궁금해했습니다. 그들은 석굴암을 뜯어 보았지만 끝내 비밀을 밝히지는 못했습니다. 결국 원래 대로 되돌려 놓는 과정에서 석굴암만 망가뜨려 놓고 말았스니다.
--- pp.8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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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종 32년(1895) 8월 20일 새벽, 일본 공사관 수비대와 깡패들이 모여 광화문을 지나가려 하자 군부대신 홍계훈의 시위대가 막았습니다. 하지만 전투는 10분만에 끝나고 홍계훈이 죽자 지휘자를 잃은 시위대 병력은 사방으로 흩어져 버렸습니다. 이윽고 일본인 장교가 지휘하는 병사들은 궁궐 안으로 침범하였고 칼을 빼든 깡패들은 황후를 찾아 이곳 저곳을 들쑤시고 다녔습니다. 그러나 어디에도 황후는 없었습니다. 일본인 깡패들은 궁녀들의 머리카락을 붙잡고 목에 칼을 들이대며 '왕비는 어디 있느야? 왕비 있는 곳을 말해라!' 라고 소리쳤습니다. 건청궁의 신녕각에는 많은 궁녀가 공포에 질린 채 서로 몸을 부둥켜안고 떨고 있었습니다. 폭도들은 그들 중 얼굴과 옷이 아름다운 세 명을 죽였는데 그 세명 중 한 명이 황후였습니다.
--- pp.182~18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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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사학자가 진실의 눈으로 파헤친 생생하고 흥미진진한 역사의 현장!
우리 역사 새로 읽기 시리즈 첫번째 『문화유산에 담긴 우리 역사 이야기』는 삼국시대부터 조선시대에 이르는 우리 민족의 주요 문화유산에 얽힌 이야기들을 문헌에 의한 고증을 토대로 어린이들이 이해하기 쉽게 서술하였다.
문화유산에 관한 단순한 사실만을 기술하는 것이 아니라 관련 자료를 분석 · 검토하여 그 이면에 얽힌 배경을 밝혀 내고 새롭게 해석함으로서 어린이들이 올바른 역사관을 가질 수 있도록 하였다. 또한 의문을 제기하고 그 의문을 풀어가는 서술 방식은 어린이들로 하여금 이 책을 읽는 동안 자연스럽게 논리적 사고력과 논술력을 향상시킬 것이다. 삼국 · 통일신라시대, 고려시대, 조선시대 3부로 구성되어 있는 『문화유산에 담긴 우리 역사 이야기』에는 총 15가지 문화유산들의 숨겨진 이야기들이 흥미롭게 서술되어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