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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척, 조선의 사냥꾼 (큰글자도서)
호랑이와 외적으로부터 백성을 구한 잊힌 영웅들
이희근
따비 2022.0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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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목차

서문. 그 많던 직업사냥꾼과 호랑이는 왜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렸는가
문헌자료 속에만 존재하는 조선 사냥꾼
호랑이의 멸종은 시장의 힘?

一. 조선의 직업사냥꾼, 산척

호랑이 최대 서식지, 한반도 / 공공의 적 1호, 호랑이
산척의 탄생

二. 산척의 본모습

목궁, 산척의 무기 / 착호인 부대의 창설
다양한 사냥방식 / 직업사냥꾼의 규모

三. 임진왜란의 전사, 산척

최정예 전사, 산척 / 우현전투, 임진왜란 때 산척의 활약
조정, 산척의 활용방안을 논의하다 / 고관이 된 사냥꾼들

四. 조총으로 무장한 산척, 산행포수

조총의 우수성을 인지한 당국 / 조총 보급의 기나긴 여정 / 산행포수의 등장

五. 병자호란 때 산행포수, 왕을 지키다

산행포수, 왕의 호위무사가 되다
조정, 산행포수를 동원하다
청나라 군대를 격퇴한 산행포수 부대

六. 민생의 수호자, 산행포수

도성 주민에게도 특권을 부여하지 않은 호랑이
밤에는 외출하지 못했던 조선 사람들
호랑이 포획에 나선 포수
자구책 마련에 나서야만 했던 백성들

七. 프랑스군을 격퇴하다

프랑스군의 침입 / 정족산성에 모인 산행포수들
프랑스군을 물리치다

八. 호랑이 사냥꾼 부대의 옥쇄작전, 미군을 떨게 하다

군인이 되는 사냥꾼들 / 전국에 포군을 설치하다
미국 함대가 몰려오다
사냥꾼 부대에 경의를 표한 미군

저자 소개1

단국대학교 사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원에서 석사학위와 박사학위를 받았다. 역사연구의 성과를 학술의 틀에서 벗어나 일반대중들과 함께 나누려고 노력해 왔다. 이 과정에서 통념이나 편견 없이 역사 현상과 자료를 분석하여, 그 뒤에 감춰진 의미를 해석하는 데 온 힘을 기울이고 있다. 특히 최근에는 의식주나 질병 등 앞 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의 삶에서 직접적이고도 중요한 문제들에 대해 관심을 가지며 연구와 집필에 몰두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는 『우리 역사의 수수께끼 1, 2』(1999),『한국사, 그 끝나지 않는 의문?』(2001),『문화유산에 담긴 우리 역사』(2001), 『우리 민
단국대학교 사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원에서 석사학위와 박사학위를 받았다. 역사연구의 성과를 학술의 틀에서 벗어나 일반대중들과 함께 나누려고 노력해 왔다. 이 과정에서 통념이나 편견 없이 역사 현상과 자료를 분석하여, 그 뒤에 감춰진 의미를 해석하는 데 온 힘을 기울이고 있다. 특히 최근에는 의식주나 질병 등 앞 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의 삶에서 직접적이고도 중요한 문제들에 대해 관심을 가지며 연구와 집필에 몰두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는 『우리 역사의 수수께끼 1, 2』(1999),『한국사, 그 끝나지 않는 의문?』(2001),『문화유산에 담긴 우리 역사』(2001), 『우리 민속신앙 이야기』(2002),『전환기를 이끈 17인의 명암』(2002), 『주제로 보는 한국사(고대편, 조선편)』(2005), 『색다른 역사』(2006), 『맞수 한국사 1,2』(2008)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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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발행일
2022년 09월 25일
쪽수, 무게, 크기
232쪽 | 182*273*20mm
ISBN13
9791192169118

책 속으로

‘단속법’은 오히려 생계수단을 잃게 된 포수들이 대거 의병활동에 참여한 계기가 되었다. 해산당한 군인 상당수는 무기와 탄환을 탈취하여 의병대열에 합류해서 의병운동은 전국적으로 확대되었다. 전투력 역시 더욱 강화되었다.
--- p.10

당국이 호랑이 사냥 전문 부대까지 창설하여 호랑이 포획작전을 지속적으로 벌였어도, 조선 왕조 말기까지도 이어진 호환 문제는 결국 시장의 힘에 의해 해소되었다고 해도 크게 문제가 될 것 같지는 않다.
--- p.19

한국을 여러 차례 여행하였던 비숍Isabella Bird Bishop은 그의 여행기에서 “해가 저문 뒤에 여행하는 것은 한국의 습관에 위배된다. …… 호랑이와 귀신에 대한 공포 때문에 밤에는 거의 여행하지 않는다.”라고 적고 있다. 프랑스인 샤이롱 베도 “밤의 외출은 길가에 있는 더러운 개울에 빠질 염려도 있지만, 그보다 기아에 못 이겨 특히 겨울철에 마을의 중심지까지 들어오는 표범 또는 호랑이까지도 만날 위험이 있는 것이다.”라고 기록하고 있다. 호환의 두려움 때문에 조선 사람은 밤에는 여행은 물론, 심지어 이웃집 방문마저도 하지 못할 정도였다는 것이다.
--- p.26~27

“양주, 양근 등지에는 사나운 범이 멋대로 쏘다녀, 두세 달 동안 30여 명이 물려 죽었다고 한다. 나라에서는 비록 한 사람이 비명에 죽어도 애석하게 여기는데 하물며 30여 명은 어땠겠는가?”(『명종실록』, 명종 9년 8월 14일)
--- p.29

산척山尺, 화척禾尺, 재인才人, 유기장柳器匠, 피장皮匠. 갖바치 등은, 하는 일에 따라 백정을 다르게 부르는 이름이었다. 뭐니 뭐니 해도 백정의 직업 가운데 대표적인 직종은 도축업이었다. 1950년대까지만 해도 백정 하면 푸줏간을 떠올릴 정도로, 도축업자는 백정의 대명사 격이었다.
--- p.32

백정 중 산행으로 군복무 등 국가에 대한 의무를 대신하는 부류는 지방관의 수렵에 계속 동원되면서 사냥 실력이 더욱 향상되었을 것이다. 이들 무리는 나중에 사냥만 전문적으로 하는 산척이 될 가능성이 컸을 테다. 이처럼 백정 중 늘 사냥만 하는 부류가 직업사냥꾼인 산척이 된다.
--- p.37

임진왜란 직전 왕조의 군대는 지방군은 말할 나위도 없고 중앙군마저도 사실상 무력화된 상태였으니, 평상시 사냥으로 단련된 전사인 산척이 임진왜란 당시 수령이든 의병장이든 일선 군 지도자들의 주목 대상이 된 것은 자연스러운 귀결일 게다.
--- p.83~85

청 대군의 침략을 받은 조선군은 큰 타격을 입히지 못한 채 속수무책 당하기만 하다 이렇게 두 차례의 전투에서 승리했는데, 그중 하나인 김화전투 승리의 주역이 바로 청주 출신 산행포수 300명이었다.
--- p.141

위정자들이 ‘공공의 적 1호’로 지목할 만큼 조선시대에 맹수에 의한 피해는 치명적인 재앙이었기에, 백성들은 백성들 나름대로 최대한 예방을 해야 했고, 포수들은 맹수 포획의 선두에서 명성을 떨쳤다. 한편으로 그들은, 앞서 살펴본 대로 임진왜란, 정묘호란, 병자호란 등 전쟁 때에는 국가의 수호자로서도 큰 활약을 벌였다.
--- p.167

그동안 너무 쉽게 얻은 승리로 정신력이 해이해진 프랑스군은 대포도 없이 경무장한 채 정족산성을 공격했다가 호랑이 사냥꾼, 즉 산행포수의 매복 공격에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말았다. 단 한 번의 전투에서 프랑스 원정군의 분견대는 30여 명이 부상을 당하는 치명적인 패배를 맛보았던 것이다.
--- p.189

이처럼 호랑이 사냥꾼을 포함한 무명의 용사들이 치른 목숨의 대가로, 미군은 통상 조약 체결이라는 원정 목적을 달성하기는커녕 조선의 쇄국정책만 강화시킬 구실만 제공한 채 철수하고 말았다. 미국 원정대가 승리하고도 원정 목적을 전혀 이루지 못한 채 철수한 까닭은 애초 목표를 달성하려면 서울을 공격해야 하는데, 그 길목마다 광성보의 호랑이 사냥꾼들과 같은 부대가 배치되었을 것으로 판단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옥쇄작전을 펼치는 이런 부대와 맞서 싸우기는 미군 지휘부에게 큰 부담으로 작용하여 철수하기로 결심한 듯하다.

--- p.222

출판사 리뷰

호랑이 사냥꾼 부대, 호랑이와 외적을 물리치다

산척은 백정의 한 부류이다. 백정은 떠돌아다니며 유기나 가죽을 다루거나, 공연을 하기도 하고, 도축업을 하기도 했던 집단으로, 그들은 대부분 본업 말고도 사냥에 능했으며, 이들 가운데 전문적으로 사냥을 업은 이들이 생겨나면서 ‘산척’이라 불린 것이다. 사냥을 생계수단으로 삼았던 만큼 출중한 무예 실력을 보유하고 있었다. 무예 솜씨가 아주 뛰어나지 못하면 그들은 사냥을 하기는커녕 자신이 사냥감이 될 신세가 될 가능성이 컸을 테니까 말이다.

조선의 사냥꾼들은 호랑이와 곰 같은 맹수를 잡아 그 자신의 생계를 유지했을 뿐 아니라 백성들의 목숨을 구하는 수호자였다. 그러나 천인인 산척, 산행포수가 왕조 국가 조선의 공식 문서에 민생의 수호자 역할로 기록될 일은 없었다. 이런 사냥꾼에 대한 기록이 『조선왕조실록』에 남아 있게 된 것은 바로 전쟁 때문이었다.

임진년 왜군의 대대적인 침략을 받고 속수무책 패하기만 할 때에, 거창 우현전투에서 왜군을 물리친 경상도 의병이 바로 산척들이 주축이 된 부대였다. 이후 조정은 산척들을 체계적으로 동원했고, 이후 이괄의 난에서나 병자호란 때에도 별다른 훈련 없이 곧바로 실전에 투입할 수 있는 사냥꾼은 늘 유일하고도 최우선의 동원 대상이었다.

이런 일은 구한말까지 지속되어, 병인년에 강화도에 프랑스 함대가 출몰하자 조정은 이번에도 사냥꾼, 즉 산행포수를 동원했다. 프랑스군이 보유한 함포나 소총에 비해 한참이나 떨어진 무기를 가진 사냥꾼 부대였지만, 뛰어난 전략과 용맹성으로 정족산성 전투를 승리로 이끌었다. 신미양요에서도 호랑이 사냥꾼 부대의 활약은 눈부셨다. 비록 전투에 참여한 군인들이 대부분이 전사하는 비참한 결과를 낳았지만, 적군인 미군 장교로부터 “조선군은 그들의 진지를 사수하기 위하여 용감하게 싸우다가 모두 전사했다. 아마도 우리는 가족과 국가를 위하여 그토록 장렬하게 싸우다가 죽은 국민을 다시는 찾아볼 수 없을 것이다.”라는 찬사를 받은 용맹함을 보여준 것이다.

사냥꾼과 함께 기억도 사라지다

하지만 산척과 산행포수는 일제가 1907년 9월에 공포한 ‘총포화약류단속법’ 이후 점차 그 모습이 사라지게 된다. 이 단속법은 민중의 무장투쟁을 약화시키려고 만든 것인데, 이 단속법으로 무기를 빼앗기고 생계수단을 잃게 된 포수들이 대거 의병 활동에 참여한 계기가 되었다. 항일 의병 중 최대 세력이었던 유인석이 이끈 제천의병, 함경도에서 활약하다 간도로 옮겨간 홍범도 부대가 바로 포수들, 즉 사냥꾼으로 이루어진 의병 부대였다.

의병활동 중 전사하거나 체포되었든, 아니면 일제의 ‘총포화약류단속법’에 순응하여 직업을 바꾸었든 간에, 생계수단인 총을 빼앗긴 포수들은 더 이상 사냥꾼으로서 생활을 유지하며 가족을 부양할 수 없게 되었다. 한때는 고을마다 수백 명씩이나 존재했고, 척, 조선 후기에는 병적부에 등록된 충청도, 전라도, 경상도의 산행포수만 수천 명이나 되었던 직업사냥꾼은 흔적조차 남기지 않은 채 깡그리 사라져버리고, 우리의 기억 속에서도 잊혀간 것이다. 또한, 활이나 조총을 이용한 사냥꾼의 사냥방식 역시 전승되지 못한 채 사라져버렸다.

한편, 한반도를 떨게 했던 그 많던 호랑이 역시 산행포수처럼 구한말에 자취를 감추게 된다. 이는 지속적으로 호랑이 포획 작전을 벌인 결과이기도 하지만, 결정적으로는 시장의 힘에 의해 멸종했다고 저자는 이야기한다. 호랑이 사냥꾼은 개항 직후 그전에 비해 훨씬 많은 호랑이를 사냥하여 시장에 공급하였는데, 기존 국내 시장에 더해 일본, 러시아 등 외국으로 수출이 이루어져 호랑이 가죽 수요가 크게 증가하였기 때문이다. 이처럼 호랑이 수요가 대폭 늘어나면서 호랑이는 점차 멸종의 길로 가게 된 것이다.

『산척, 조선의 사냥꾼』은 이렇게 우리의 역사와 기억 속에서 사라져버린 산척의 흔적을 하나씩 하나씩 찾아나가는 오딧세이다. 이러한 탐구를 하면서 동시에, 조선 시대의 일상, 군사 제도, 임진왜란 등 국가적 환란, 구한말 의병 투쟁의 모습 등을 생생하게 복원해 그려내 보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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