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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닷물이 푸르게 변하는 곳까지 헤엄치다 쿠스트리차의 신발끈 골짜기 산들바람 시계 두 개를 손목에 그리고 담배를 태우다 프티트 마들렌 최근에 꾼 가장 아름다운 꿈 화와 분노에 관한 이야기 상하이에 가다 영화 보기와 관련한 두 가지 이야기 첫 번째 장엄한 음표 병원에서의 어린 시절 밀밭에서 땅 포자와 교자 국경절의 기억 최초의 세월 바다를 보러 가다 유행 음악 콜라와 술 공포와 성장 소비주의 시대의 아이 아름답게 수없이 바뀌는 그림자 아들의 탄생 아버지와 아들의 전쟁 나만의 예술 감각이 있어요 이것은 시간이 우리에게 가하는 박해다 어른의 불안 타인의 도시 청춘이 없다 어린이 정경 |
Yu Hua,ユイ.ホア,余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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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적부터 왜 교과서에서 바다가 푸른색이라고 하는지 이해가 안 됐어. 내가 보는 바다는 오히려 누렜단 말이지. 한번은 계속 바다 멀리로 헤엄쳐서 나갔다고. 바닷물이 푸르게 변하는 곳까지 가고 싶어서.”
---p.14 「바닷물이 푸르게 변하는 곳까지 헤엄치다」 중에서 아주 좋은 설명이다. 긴장이건 이완이건 모두 삶이 우리에게 준 것이다. 언제 무엇을 주는가는 ‘삶 마음’이다. 우리는 선택할 수 없고 그저 받아들여야 한다. 쿠스트리차의 풀어진 신발 끈은 하나의 태도다. 그가 현재 긴장에서 멀어져 있음이 아니라, 긴장이 언제든지 자주 그를 찾아올 수 있음을 의미한다. 그러나 그는 거기에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지 안다. 더 이상 소년 쿠스트리차가 아니라 산전수전 공중전까지 겪은 쿠스트리차니까. ---p.36 「쿠스트리차의 신발끈」 중에서 이곳의 골짜기 산들바람은 그때 하이옌중학교 건물에서 불던 천당풍은 아니다. 여기서는 낮에는 골짜기를 타고 오르는 활승 바람이, 저녁에는 골짜기를 타고 내려가는 활강 바람이 그치지 않는다. 길고 좁은 골짜기 지형이 준 선물이다. 그래서 내가 Y 호텔 지하의 스페인 식당에서 긴 탁자에 앉아 있을 때 느끼는 것은 산들바람의 드나듦이 아니라 산들바람의 섬세한 변화다. 그리고 산들바람의 알 수 없음은 나를 무한한 상상의 세계로 이끈다. ---p.52 「골짜기에서 불어오는 산들바람」 중에서 나는 장미탸오를 한 봉지 사서 한 개씩 한 개씩 먹었다. 가족과 같이 먹으려고 했는데, 아들은 한 개 먹더니 맛이 없다고 했다. 천훙은 한 개도 먹지 않고 설탕이 너무 많고 달아서 안 먹겠다고 했다. 그래서 한 봉지를 내가 독차지했다. 천훙과 아들은 놀라서 쳐다보며 설탕 범벅인 튀김을 그렇게 맛있게 먹느냐고 했다. 나는 말했다. “내 어린 시절을 위해서 먹었어.” 나는 자주 내 어린 시절을 위해 먹는다. ---p.83 「프티트 마들렌」 중에서 내가 확실히 느낄 수 있었던 건 꿈을 다시 생각하는 과정은 곧 꿈으로부터 버려지는 과정이라는 것이다. 버려지고 나면 실감은 사라지고 허무감도 사라진다. 남는 건 무미건조한 기억뿐이다. 어린 시절의 아들이 금방 왔다 갔다. ---p.93 「최근에 꾼 가장 아름다운 꿈」 중에서 객석의 이탈리아인 청중은 그의 대답을 듣고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사회자가 나를 향해 물었다. “선생님은 화내거나 분노하십니까?” 나는 말했다. “저는 자주 화내고 분노합니다. 이렇게 해야만 엉망이고 음침한 감정을 분출할 수가 있고, 그래야 몸과 마음이 모두 건강한 사람이 될 수 있거든요.” ---p.102 「화와 분노에 관한 이야기」 중에서 네댓 살쯤 나는 항저우를 떠나서 부모님을 따라 하이옌이라는 작은 현에 왔고, 한 골목의 끝 집에서 장장 십수 년을 살았다. 읍내 골목의 끝자락은 사실상 농촌이었다. 나의 어린 시절과 소년 시절 동안, 연못이 많고 봄에는 유채꽃이 피고 여름에는 개구리 울음소리가 가득했던 그 땅에서, 지금은 기억도 나지 않는 비밀스럽고 나쁜 일을 수없이 많이 저질렀고 가끔 한 번씩 좋은 일을 했다. ---p.146 「땅」 중에서 아들이 나를 상대하는 방식이 내가 어렸을 때 아버지를 상대하던 방식과 비슷하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아들은 늘 끊임없이 어떻게 아비를 상대할지를 익혀서, 제 아비가 점점 속수무책이 될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게 한다. 아비는 자신의 승리가 사실 단기적이고, 실패가 지속될 수밖에 없다고 느끼게 된다. 아들은 아비의 훈육 방식을 무너트리는데, 사실상 아비의 권위를 무너트리는 것이다. 인생은 전쟁과 같다. 부자지간도 마찬가지다. 아들이 자라서 성인이 되어서야 부자지간의 전쟁이 끝날 수 있다. 그러나 곧 새로운 전쟁이 시작되는데, 아버지가 된 아들이 끊임없이 실패를 맛보게 된다. 그것도 기나긴 실패를. ---p.220 「아버지와 아들의 전쟁」 중에서 생활은 계속 반복되고, 인간으로서의 생활은 한 번도 낡은 것을 버리고 새로운 것을 받아들인 적이 없으며, 자신의 생활은 사실 이미 고정불변이라는 사실을 발견할 것이다. 내가 살아 있는 이유는 바로 끊임없이 복습하기 위함이다. 올해는 작년을 복습하고, 작년은 재작년을 복습한다…. 생각을 계속할수록 기분은 점점 가라앉는다. 종국에는 삶에 자신감이 가득하던 사람도 염세주의자가 되어버린다. 이게 바로 연말에, 어른이 느끼는 불안이다. ---p.235 「어른의 불안」 중에서 슈만의 우아하고 아름다운 〈트로이메라이〉가 왜 내 안에서 이런 잔혹한 옛일을 끄집어내는 것일까. 이는 결말에서의 자연스러운 전환 때문이 아닌가 싶다. 친구는 우리처럼 가방을 내려놓지 않고 가방을 메고서 탁구를 쳤고, 게다가 연달아 두 판이나 이겼다. 진심에서 우러나온 그의 웃음소리가 내 기억 속에서 울릴 때마다 나는 삶의 굳건함에, 삶이 슬픔에서 기쁨을 잘라내 편집할 수 있음에 감동한다. ---p.246 「어린이 정경」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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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의 갈피에서 건져 올린
삶이라는 이름의 선물 존재 자체로 하나의 문학적 현상이자 국내 출판계에 ‘위화 열풍’을 일으켰던 세계적인 거장 위화. 대표작 『인생』은 해적판을 제외하고도 2,000만 부 이상의 판매고를 올렸으며, 지금 이 순간에도 매년 200만 부씩 팔려 나가는 현재진행형의 고전이다. 국경과 세대를 초월해 사랑받는 그가 이번에는 자신의 반평생을 담아낸 산문집 『산곡미풍』으로 돌아왔다. 2024년 현지 출간 직후부터 큰 화제를 불러일으킨 이 책은 팍팍한 현실을 살아가는 중국 독자들에게 위로를 주었고, 특히 젊은 세대에게 열렬한 지지를 받았다. 그 책을 이제 한국의 독자들이 넘겨받을 차례다. 마르셀 프루스트에게 기억을 깨우는 매개체가 ‘마들렌’이라면, 위화에게 그것은 골짜기에서 불어오는 ‘산들바람’이다. 2024년, 하이난의 어느 호젓한 산골짜기 지형 휴양지에서 휴가를 보내던 그는 문득 불어오는 미풍을 맞으며 유년의 풍경을 떠올린다. 시원한 바람을 맞으러 가기 위해 어깨에 돗자리를 둘러메고 나서던 어린 시절의 한때. 그에게 여름을 대표하는 이미지로 남은 이 회상을 시작으로, 그는 지나간 시간을 가만히 복기한다. 신작 산문과 그 궤를 같이하는 구작을 함께 엮은 이 책에는 1980년대부터 2020년에 이르는 40여 년의 시간이 살아 숨 쉰다. “자전거 한 대도 안 보이던” 1960년대 농촌 마을 하이옌에서의 기억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여정은 실로 그의 일생이 담긴 기록이라 할 수 있다. 그가 기억에 천착한 이유는 무엇일까. 위화에게 기억이란 곧 삶을 다시 한 번 살아 보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는 자유로운 산들바람처럼 때로는 담담하고 때로는 경쾌한 발걸음으로 기억 곳곳을 거닐며 그간 무심히 지나쳤던 삶의 선물들을 발견한다. 소년 시절 바닷물이 푸르게 변하는 곳까지 헤엄쳐 가고자 했던 순간의 용기부터 긴장과 이완이 교차하는 삶이 주는 모든 것을 기꺼이 받아들이고자 했던 담대함까지. “삶이 우리에게 무언가를 줄 때 그것은 대부분 뚜렷하지 않아서, 우리는 받고 나서야 그게 무엇인지 똑똑히 볼 수 있습니다”라고 인생에 대한 소회를 밝히며 그는 덧붙인다. “어떤 손 모양으로 이것을 받느냐에 따라 얻는 것도 달라집니다.” 결국 이 책은 삶을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에 대한 이야기다. 삶이 우리를 선택하듯 우리 역시 삶을 선택할 수 있다. 내 삶을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에 대해 풍성한 여지를 남기는 이 책은, 불안과 피로의 시대를 살아가는 오늘의 독자들이 자신의 생을 다시금 긍정하도록 돕는 든든한 지지대가 되어 줄 것이다. 만감이 교차하는 이야기와 삶을 닮은 문장, 탁월한 이야기꾼의 저력 그동안 위화의 개인사는 주로 ‘문학’과 ‘중국’이라는 거대한 렌즈를 통해서 조명되어 왔다.작가가 되기 전에 치과의사로 일했던 독특한 이력은 유명하지만, 그가 자신의 삶 자체를 가감없이 전면에 내세운 산문집은 현재 국내 독자들이 만날 수 있는 책으로는 『산곡미풍』이 유일하다. 부모가 일하던 병원의 영안실 침대에 누워 삶과 죽음을 감각했던 어린 시절부터 극심한 말더듬증으로 의도치 않게 죽음을 앞둔 사형수에게 웃음을 주었던 사건, 1993년 아들을 얻으며 비로소 자신을 ‘아버지’라는 이름을 받아 든 순간, 그리고 600여 명의 청중 앞에서 때로는 화내고 분노해야 몸과 마음이 건강한 사람이 될 수 있다고 이야기했던 일까지. 그는 오랜 시간 내면에서 발효되고 숙성된 삶의 조각들을 생생한 문장으로 꺼내 놓는다. 그가 이끄는 여러 시간과 장소를 통과하다 보면, 읽는 이의 마음속에는 어느덧 하나로 정의할 수 없는 감정이 일렁이기 시작한다. 그의 문장이 우리 ‘삶’을 꼭 닮았기 때문이다. 기쁨과 쓸쓸함, 환희와 고통이 순환하는 우리의 삶 말이다. 어린 시절 위화는 아버지를 여의고 목 놓아 울던 친구에게서 비애와 기쁨을 동시에 보았다. 작가는 운동장 한구석에서 세상의 비정함을 느끼며 울던 친구가 탁구 경기에서 연달아 승리하자 눈물이 채 마르지 않은 얼굴로 세상 누구보다 밝은 미소를 짓는 장면을 목격한다. 세상이 무너질 듯한 슬픔 속에서도 기쁨을 건져 올릴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은 결정적 순간이다. 나아가 그는 소중한 사람을 잃은 이들의 애달픈 울음소리에서 역설적으로 “슬픈 친근함”을 발견해 내기도 한다. 영안실은 삶에서 죽음으로 넘어가는 나그네들이 잠시 머무는 여관과 같고, 그곳에서 들려오는 남은 이들의 통곡은 영안실 근처에서 살았던 그에게 세상에서 가장 감동적인 노래였다. 이처럼 하나의 이야기 안에 다층적인 감정을 불러오며 삶의 복잡 미묘함을 드러내고야 마는 그의 문장은 ‘읽는 맛’을 넘어 우리가 삶의 다양한 면면을 깊이 사유하게 한다. 인간을 향한 깊은 시선과 탁월한 이야기꾼으로서의 저력이 다시금 돋보이는 지점이다. 환희와 고통이 번갈아 스며드는 삶에서 문득 마주하게 되는 순수한 시절의 위로들 “과거의 삶을 기억하는 것은 다시 한 번 사는 것과 같다.” 고대 로마 시인 마르티알리스의 말이다. 이를 빌려 위화는 이렇게 말한다. “이 책을 쓰면서 마치 다시 한 번 사는 느낌이었다.” 이 고백은 책장을 덮는 독자가 마주할 감상이기도 하다. 『산곡미풍』은 위화를 스쳐 지나간 바람의 방향을 독자에게로 돌리며, 독자로 하여금 지나온 삶을 다시 한 번 살게 한다. 문화대혁명 시절, 격동의 세월 속에서 대자보를 읽으며 문학의 싹을 틔웠던 소년 위화의 모습은 우리가 무언가를 처음으로 사랑하게 되었던 시작점을 떠올리게 한다. 생전 처음 바다를 눈에 담으며 인생이란 무언인지 최초로 자문하던 순간은, 우리의 인식이 좁은 방을 넘어 더 넓은 세계로 확장되었던 그 어느 순간을 되살린다. 또 아내에게 아들이 생겼다는 소식을 들은 직후의 설렘과 책임감 사이에서의 고민은 우리가 새로운 인생 경로를 마주했을 때 느낀 긴장감과 설렘을 불러일으킨다. 앞만 보고 달리기에도 벅찬 인생에서 과거를 돌아보는 일은 흔히 사치로 여겨진다. 하지만 그 걸음을 잠시 멈추고 회한이 아닌, 삶을 지탱할 힘을 건져 올릴 수 있다면 어떨까. 과거를 돌아보는 일은 결국 앞으로를 살기 위해서다. 골짜기의 산들바람이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도록 기억의 창을 활짝 열어 보자. 무심코 지나온 시절에 숨겨져 있던 삶의 선물들이 오늘을 견디게 할 의지처가 되어 줄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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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화의 산문은 ‘소리’를 남긴다. 소년 시절 먼바다로 떠내려가며 들었던 파도 소리, 추운 겨울 산골 고향에서 들었던 “풍로의 불길”이 내는 소리, 이야기의 향유를 위해 위험을 무릅쓰고 숨어들어 간 영화관의 아련한 소음들. 깊은 사색과 ‘유머’라는 삶의 위대한 포용 속에 포착되는 이 소리들은 그러나 누군가를 잃고 때론 나 자신을 잃어야 할 숙명적 존재, 인간에 대한 반복적 환기와 엄정한 인식을 담고 있기도 하다. 하지만 그 목소리조차 산골짜기에서 부드럽게 하강하는 바람을 닮아 있다. 여린 것들을 보듬으며 마을로, 도시로, 세계로 나아가는 이 “슬픈 친근함”. 경이롭다. - 김금희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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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화의 소설은 무엇이 특별한지, 왜 그렇게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지 곰곰 생각해본 적이 있다. 우선 위화는 평범한 등장인물들의 이야기를 아주 생생하게, 입담 좋게 펼쳐 보인다. 독자가 자기 주변의 현실을 잊고 그 인물들이 자기 옆에 있는 것처럼 느끼게 한다. 이것은 물론 대단한 솜씨지만, 다른 대가들도 이런 일을 한다. 위화의 특별한 점은, 그러다가 갑자기 독자가 그 이야기를 관조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나는 여전히 같은 자리에 있는데, 모든 이야기가 마치 수백 년 전에 끝난 사건들처럼 아득하고 쓸쓸하게 변한다. 인간에서 인류가 되면서 많은 것을 용서할 수 있게 될 것만 같은 기분을 맛본다. 그리고 몇 문장 뒤에서 인류에서 다시 인간으로 돌아오며 ‘이러니저러니 해도 삶은 괜찮은 거야, 인간은 하나하나 소중한 거야’ 하는 안도감 섞인 깨달음을 얻는다. 내 인생을 똑같이 두 번째로 다시 산다면 이런 마음으로 살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렇게 살고 싶다.
《산곡미풍》을 읽으면서 이 거장이 이제 자기 삶을 소재로 그런 작업을 하는구나 싶어 가슴이 저렸다. 위화는 2024년 2월 중국 하이난의 한 아파트에서 산들바람을 맞으며 어린 시절 자신이 열심히 찾아다녔던 ‘천당풍’을 떠올린다. 이후 어린 시절을 회상하는 산문을 쓰고 전에 쓴 산문들과 함께 엮었다. 나는 이 산문들을 읽으며 위화의 소설을 읽을 때 받았던 바로 그 감흥을 느꼈다. 내가 수백 년 전으로 돌아가 누군가의 아들로, 또 누군가의 아버지로 살았다가 현재로 돌아오기를 반복하는 것만 같은 느낌. 잠깐 인류가 되어 인간들을 용서했다가 인간으로 돌아와 그 ‘개인 됨’에 안도하는 느낌. 위화도 이 책을 쓰며 “마치 다시 한번 사는 느낌이었다”라고 했는데, 그와 연결된 기분이 들어 울컥했다. 이것이 거장과 같은 시대를 사는 독자가 누리는 특권이라 생각한다. - 장강명 (소설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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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류에 가만히 몸을 맡긴다. 그윽한 시가 냄새가 물결 위로 퍼져 나간다. 나는 아스라한 과거로 한없이 떠내려간다. 여섯 살의 내가 외조모의 영정 앞에서 생애 첫 이별을 배우고, 열다섯의 내가 장애 선고를 받고 주저앉아 짙은 절망을 온몸으로 뒤집어쓴다. 스무 살에 서글픈 사랑에 앓아눕고, 고약한 상사를 만나 남몰래 눈물을 삼키는 방법을 터득한다. 서른 살이 되어서야 비로소 문학에 눈을 뜨고 상처를 쓰다듬는 법을 배운다. 위화의 글을 읽는 일은 잊고 지낸 아픔과 잃어버린 시간 들을 향해 필사적으로 역류하는 듯한 기분이 들게 한다. 엉망이고 음침한 감정을 온전히 쏟아내고 분출해야만 비로소 몸과 마음이 건강해진다는 그의 솔직한 고백 앞에서는 끝내 가슴이 먹먹해진다. 상처투성이의 생일지라도 묵묵히 오늘을 버텨내는 우리 모두에게 그의 문장은 등 뒤를 쓰다듬는 깊은 골짜기 산들바람처럼 진솔한 위로를 건넨다. - 조승리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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