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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체의 조각들을 서로 연결시킨 가죽끈과 동아줄이 한 군데라도 끊어지거나 잇댄 판들이 약간이라도 벌어지는 날엔 배는 산산조각이 날 것이고, 우리는 연약한 조개 속의 물렁한 속살 꼴이 되어버릴 참이었습니다. 위험은 점점 주위를 조여왔고, 우리는 눈 내리는 한밤중에 모두 한데 모여 선체를 아예 얼음 위로 들어올려서 이 난관을 벗어나기로 결정했습니다. 그리스도의 수난 이래 그처럼 비참한 지경에 빠진 인간의 그토록 힘겨운 고역은 아마 없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 이후에 따라올 사태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니었습니다. 아마 우리 중에 신성을 모독하는 언행이 있었다면 꼭 자비가 아니라도 그저 실없다며 한번 쓱 웃어주는 것으로 용서해주실 수밖에 없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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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바로 다음날 화형이 집행되도록 지시했습니다. 그것에 대한 유일한 장애란 다름 아닌 장작이 부족하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건초와 짚더미를 사용하라고 했으나 아이나르의 얘기가, 짐승한테 먹일 양도 부족한데 그런 용도로 건초를 쓰면 가뜩이나 심각한 기근현상만 악화시킬 뿐이라는 것이었습니다. 하는 수없이 바다표험의 기름에 이탄을 섞은 연료를 사용해 두 죄인을 불태워 처형하기로 합의를 보았습니다. 그렇게 하는 것이 짐승에게 먹일 식량도 절약하고 보다 확실한 속죄를 위해 형을 서서히 진행시킬 수도 있어서 일석이조라 판단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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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6세의 나이에 발표한 첫 소설이 프랑스 최고 권위의 문학상을 수상하였다고 하면 곧이들을 사람이 있을까? 하지만 놀랍게도 2004년 아카데미 프랑세즈 심사위원 15명 중 13명의 압도적인 지지로 생애 첫 작품을 써낸 70대 노인에게 다소 보수적인 권위로 정평 높은 문학상이 수여되었다. 76세의 신인에게 프랑스 최고 권위의 문학상이 주어졌다는 것도 놀랍지만, 수상작인 ?짧은 뱀?이 1년에 만여 건이나 답지하는 여타 작품들에 섞여 갈리마르 출판사에 우편으로 날아든 투고 작품이었다는 것은, 그 작품이 얼마나 뛰어난 것인가를 알게 해준다.
이단재판관이자 사도좌 서기관이며 교황특사이자 ‘주의 멍에’ 수도원장인 몬타누스 주교의 보고서에 담긴 갖가지 일화와 진술들은, 그 담담한 어조에도 불구하고, 온갖 기상천외한 전복(顚覆)과 역설(逆說)의 전시장이 된다. 그리하여 ?짧은 뱀?은 인간의 신념과 상식이라는 것이 얼마나 무력한 것인가를 어처구니없을 만큼 희화적으로 보여주는 한 편의 충격적인 우화가 된다. 현지 언론(<라 크루아(La Croix)〉, 2004. 9. 2일자)에서도 지적했다시피, 종종 작가의 처녀작이라는 것이 개인의 내밀한 소재를 감각적으로 다루기 일쑤인 데 반해, 이 작품은 소위 대문자(大文字) 역사로 곧장 뛰어들어 성(聖)과 속(俗)이라는 거창한 주제를 천착할 뿐만 아니라, 어떻게 그걸 다 조사했는지조차 아득한 고증학적 지식들이 고풍스럽고 품격 높은 문체에 실려 꼼꼼히 수놓아져 있다. 줄거리상으로 이 작품은 14세기 스칸디나비아 반도를 기점으로 그린란드로 추정되는 어느 가상공간에 이르기까지 펼쳐지는, 일종의 종교적 원정기(遠征記)를 다루고 있다. 누벨툴레라는 극한(極寒) 공간의 상황설정은 인간의 인위적 의지를 무방비로 시험에 들게 만들기 위한 하나의 장치가 된다. 그곳이 어떤 곳인가는, ‘불로 살을 달구는 것이 처형이 아니라 일종의 보상’이 되고, ‘세례성사를 완전히 뒤집는 의미로 성수 대신 배설물을 뿌려대’는 일이 저질러지는 상황에서 단적으로 알 수 있다. 즉, 기존의 신념과 상식이 얼마든지 뒤집어지거나 해체될 수 있는 세계이다. 이처럼 ?짧은 뱀?이 지닌 이야기의 짓궂은 매력은 근엄하고 경건해야 할 주교가 보고서의 형식 속에서 차분하고 천연덕스럽게 묘사하는 내용이 더할 나위 없이 엽기적이고 변태적이라는 데 있다. 예컨대 다음과 같은 대목들에서 느껴질 수밖에 없는 아이러니와 블랙유머들은 광란의 소용돌이에 빠져 있는 인간의 위선을 적나라하게 펼쳐 보인다. “척 봐도 우리 기독교도가 아니었기에 우리는 정확히 조준된 화살을 날려 그들을 가차없이 죽였습니다.”, “부대는 심지어 금육일(禁肉日)에도 사람고기를 먹었답니다.” “저는 바로 다음날 화형(火刑)이 집행되도록 지시했습니다. 그것에 대한 유일한 장애란 다름 아닌 장작이 부족하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건초와 짚더미를 사용하라고 했으나 아이나르의 얘기가, 짐승한테 먹일 양도 부족한데 그런 용도로 건초를 쓰면 가뜩이나 심각한 기근현상만 악화시킬 뿐이라는 것이었습니다. 하는 수 없이 바다표범의 기름에 이탄을 섞은 연료를 사용해 두 죄인을 불태워 처형하기로 합의를 보았습니다. 그렇게 하는 것이 짐승 먹일 식량도 절약하고 보다 확실한 속죄를 위해 형을 서서히 진행시킬 수도 있어서 일석이조라 판단한 것입니다.” 몬타누스 주교의 보고서에 담긴 갖가지 일화와 진술들은, 그 담담한 어조에도 불구하고, 온갖 기상천외한 전복(顚覆)과 역설(逆說)의 전시장이라 할 만하다. 스스로 목을 매달며 소위 자살놀이를 하는 아이들을 벌주기 위한 극형은 오히려 바라던 것을 주는 격이라 벌(罰)이 되지 못한다는 얘기라든가, 허술한 재판의 악습을 근절시키기 위해 도리어 승소자를 처형토록 하는 장면, 게다가 그것이야말로 ‘하느님의 정의가 사는 길’이라며 천연덕스레 합리화하는 대목에선 역설적인 것을 넘어 엽기적인 아이러니가 느껴진다. 너무도 추운 나머지 차라리 지옥불의 따스함이라도 맛보고자 독신(瀆神)행위를 저지르는 사람들이나, 그들을 극형에 처하면서 그것이 배교(背敎)에 대한 징벌이 아니라 스스로 그 존재를 부정하는 신으로부터 벌을 받겠다는 잘못된 판단에 대한 추궁이라는 몬타누스 주교 모두, 몹시 굴절된 논리에 사로잡혀 있거나 적어도 상식에서 한참 이탈해 있는 건 마찬가지다. 몬타누스 주교를 원정지로 파견한 추기경과 그를 맞이해 결국 그 손에 처벌을 당한 원정지 우두머리가 하필 동명이인(아이나르 소카손)이라는 점, 주교가 처음 현지에 도착해 복음에 입각해서 행한 것이 간음죄에 대한 처벌인데 그곳을 떠나면서 스스로 복음에 반해 저지른 죄가 또한 간음죄라는 설정은, 도착(倒錯)의 논리가 작품 전체에 걸쳐 구조화되어 있음을 알게 한다. 또한 처음 이야기의 시작과 더불어 제시되는 주교의 위풍당당한 위상(“이단재판관이자 사도좌 서기관이며 교황특사이자 ‘주의 멍에’ 수도원장인 친애하는 인술로 몬타누스”)을 이야기 마지막 부분, 그의 가엾은 정부(情婦)에게 쏟아지는 사람들의 싸늘한 비아냥(“에라, 이 주교한테 붙어먹은 갈보년!”)과 비교해볼 때 저자가 이 작품을 정녕 어떤 구도 하에서 구상했는지 짐작할 만하다. 책을 읽는 독자의 머릿속을 저도 모르는 새 뒤죽박죽으로 만들어버릴 만큼 전복성(顚覆性)이 강한 이 터무니없는 우화는 그러나, 몇 가지 고도의 장치로 인해 때로는 비장미까지 느껴지는 한 편의 근사한 서사(敍事)로 읽혀진다. 예컨대, 원정 준비단계의 선박건조에 해당하는 장면이라든가 피오르드의 지형에 대한 묘사, 그밖에 역사적 요소들을 적절히 오버랩시키는 대목 등에 치밀하게 동원된 고증학적 지식들은 이 황당무계한 허구를 곰팡내 퀴퀴한 그럴듯한 고문서처럼 읽게 만들어준다. 아카데미 프랑세즈 수상 당시(2004년) 프랑스의 거의 모든 언론에서 이 작품을 언급할 때, 고풍스런 문체와 더불어 그 고증학적 지식의 풍부함을 강점으로 꼽은 걸 보면, 그것이 작품성을 높이는 문학적 장치로 얼마나 유효 적절하게 활용된 것인지 수긍이 간다. ENA(국립행정학교) 출신으로 항공 및 에너지 산업분야에서 고위 임원으로 활동한 특이한 경력의 소유자인 저자 베르나르 뒤 부슈롱의 첫 소설작품인 ?짧은 뱀?은 겉으로 표방하는 줄거리와는 딴판으로 당대의 온갖 엽기적이고 변태적인 일탈행위를 총집합시키고 있다. 그의 작품은 북극지대라는 낯선 환경 속에서 펼쳐지는 광란의 소용돌이가 좁은 시야에 적응된 우리네 감수성을 사정없이 뒤흔들어놓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