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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나무와 나무
노인과 썩은 나무 은행나무 가져오기 오래된 나무 나무 냄새와 박달나무 벚나무 오리나무 폭우와 나무 건사 시무나무 물푸레나무 숲 난대나무 귀룽나무 썩은 버드나무 가래나무 아니면 가중나무 미친 대추나무 플라타너스 거목 은행나무 그 집의 벚나무 엄나무 낙엽송 2. 물건 만들기 의자 ㅡ 미꾸라지와 물웅덩이 두 다리 의자 목어와 등받이 연잎 모양의 화장대 염소 등에 올라타기 은행나무 탁자 게으름뱅이를 위한 테레비 시청용 두개골 받침대 팔걸이 지게 만들기 매달린 뚝지 스탠드 허리 긴 개 소파가 있어도 바닥에 앉고 싶어하는 사람들을 위한 등받이 멋진 향나무 옛집을 닮은 책상 목침 자유로운 포즈를 위한 의자 개밥그릇 낮잠을 위한 의자 흥부네 화장대 야한 책상 자투리 단풍나무 삐걱거리는 의자 3. 일과 놀이 퉁가리 새집 만들기 벌레무덤 자작나무 벌레와 칡망아지 뚝지와 어항의 물고기 까마귀 팽이 개울의 물고기 잡이 비루먹은 용 목마 노랑이 뱀 4. 목수생각 목수생각 선과 형태 연장들 톱밥 비틀린 손가락 디자인 비켜가기 시간의 속도 산에서 목수지식 목수의 잘난 척 기술의 척도 어느 예식장 건물을 위한 변명 자연은 자연스럽지 않다 목수와 먹물 농촌에서 산다는 것은 혹은 자연으로 돌아가기의 모순 일 그만? 숲 속에서 일하기 목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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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번 전시회 때에는 자작나무 토막을 대충 도끼로 쪼개 만든 날벌레와 톱밥으로 빚어 만든 도깨비를 천장에 매달았는데, 아이들이 더없이 좋아했다. 아무 생각 없이 만든 물건을 알아보는 건 역시 아무 생각 없는 아이들이다.
--- p. 17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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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동 공구들이 도무지 마음에 안 드는 이유는 그것들이 대부분 회전력을 이용하는 데 국한되어 있으며, 그것조차 수월하게 조절하는 장치가 없다는 점 때문이다. 말하자면 매우 복잡한 기계가 하는 일이 늘 단순한 작업에 머물러 있다는 것이다. 이에 비해서 매우 단순한 손 도구들은 훨씬 복잡하고 섬세한 작업 혹은 비기계적인 작업을 할 수 있다. 그러고 보면 결국 매우 발달된 기계라는 것은 인간의 작업을 단순화하고, 그 단순한 작업을 효율성이란 이름으로 묶어버리기 위한 문명의 산물이다.
--- p.201-20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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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집을 만든다는 것은 생각도 못해보았다. 마당의 나무 위에 예쁜 새집을 지어준 그럴듯한 집을 본 적은 없지만 그게 왠지 낯간지러웠다. 그런데까지 애정을 주는 여유로움에 적응하며 살지 못했던 탓이다. 혹여 마당에 새들이 와서 재잘거리면 그저 기분 좋게 듣기만 하면 그뿐이었다. 새들은 알아서 왔다가 알아서 가면 자기들 식으로 살아가는 것이지, 그걸 간섭하고 싶은 생각은 조금도 없었다.
간섭은 오히려 새들이 한다. 들에는 겨울부터 산비둘기가 극성이어서 봄이 되어 밭에 심어놓은 콩알까지 다 쪼아먹어야 떠나곤 한다. 산비둘기는 하도 영악스러워서 산골사람들은 녀석들에게 들키지 않으려고 밤에 몰래 씨앗을 심는다. 까마귀들은 두엄을 헤집어놓고, 까치들은 덮어씌우는 값을 더 치러야 한다. 물론 좋은 게 없지는 않다. 비 오는 날은 후투티가 얼룩빛 수영복 차림에 꼭두서니 같은 화관을 쓰고 나타나면 눈이 즐겁다. --- p.14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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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기에는 푸르고 좋은 나무숲에서 나무를 둘러싸고 있는 보이지 않는 관계들을 따져보는 건 골치 아픈 일이긴 하다. 어쨌든 이리저리 굴러다니는 나무를 주워 무얼 만드는 것이 꼭 직업적인 장이가 할 일만은 아니라는 것은 분명해진 셈이다. 하지만 일상 속의 간단한 쓰임새조차도 산업적인 생산구조에 기대야 하는 이즈음의 삶에서 조금만 그럴 듯 한 걸 만들면 창작이니 예술이니 이름 붙이고, 그걸 업으로 삼으려면 직업적인 장이가 되어버리니, 그 한가운데 있으려면 나 같은 얼치기 목수가 제격이 아닌가 싶다.
--- p.19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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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수일도 그런 일 중 하나이다. 제대로 된 목수의 작업은 놀라울 정도로 치밀하고 정교하지만, 대부분의 일의 내용은 있는 그대로보다 과장되어 있다. 정교한 작업조차 단순한 일의 반복에서 오는 과정의 복잡함일지언정 그 내용의 치밀함과는 거리가 있을 수 있다.
지식의 상당 부분은 학습과 경험이 가져다준 것이다. 그리고 그럴만한 자격이 충분히 있을 터이지만 사람들은 경험의 축적을 좀처럼 따라잡을 수 없는 자신만의 노하우라고 생각한다. 여기까지 문제될 것은 없다. 그런데 지식과 정보를 공유하는 데 터무니없이 인색한 경우가 없지 않다. 어저면 축적된 정보나 지식의 내용이 빈약한 일일수록 그런 경우가 더욱 많다. 만일 자신의 노하우를 드러내기를 몹시 꺼리는 사람이 있다면, 대개는 그 사람이 지닌 정보가 매우 단순하고 손쉽게 따라잡을 수 있는 빈약한 것임을 쉽게 알아차릴 수있다. 때로는 손으로 터득하여 오랜 시일이 걸려 완성된 기술에서도 그런 경우는 흔하다. 기술을 터득하기 위해 투여한 기간을 보상받으려는 심리 때문에 어떤 방식으로든 이에 대한 대가를 요구하게 되고, 그게 정보를 공유하는 데 철저하게 배타적인 태도를 낳게 된다. 이게 어디 손 기술로 먹고사는 사람의 일뿐이랴. 지식을 얻는 데 들였던 노고와 경험이 아무리 가치가 있다 하더라도, 자기만의 것으로 슬쩍 덮어버리는 행위를 도처에서 너무 많이 볼 수 있다. 별것 아닌 소재나 기술뿐 아니라 자료나 문서조차 그것을 얻는 데 들였던 시간을 아까워하며 드러내기를 꺼린다. 오랜 숙련과 경험으로 터득한 기술을 바탕으로 한 작업을 흔히 '예술적'이라고 말하는데, 거기에도 미심쩍은 부분이 없지 않다. 기술과 예술로 포장되면 여러 가지가 편하다. 갑자기 물질과 과학과 지식은 정신과 영혼이 되어버리며, 나머지 부분, 즉 기술과 정보의 문을 쉽게 닫아버려도 누가 뭐라고 할 사람이 없다. 비로소 그만의 오랜 외길 인생을 통해 얻어진 '비법'을 숨긴 채 신비적인 분위기가 그를 둘러싸고, 그의 추종자들(실제로는 정보를 공유하고 싶어하는 사람들)과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면서 조금씩 자신의 정보를 흘리면 된다. 드디어 지식을 가진 자들의 사회적 헤게모니가 완성되는 것이다. 어쩌면 모든 지식 권력은 그렇게 완성되는지도 모른다. 아마 인간이 하는 일의 대부분은 실제적인 지식과 정보의 가치 이상으로 과장되어 있는지도 모른다. 경험과 지식은 그 내용을 아무리 내어주어도 그 자체는 없어지지 않는다. 그게 불안하다면 그는 더이상 전문가가 아니다. 경험과 지식의 내용을 폭넓게 공유하는 사회가 아마 더 열린 사회일 것이다. --- pp.251-253 <기술의 척도>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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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일 마당에 잔디를 깐 그림 같은 집을 짓고 석양을 바라보며 커피 한 잔을 마시는 우아를 떨겠다고 생각한다면, 아마 달려드는 모기떼 때문에 단 오 분만에 그 꿈은 깨질 것이다'라거나, '시골 사람들의 풋풋한 정을 생각한다면, 시골 사람들이 얼마나 우악스러운지를 먼저 이해해야 할 것이다', 혹은 '어느 날 갑자기 당신의 머리 위로 고속도로가 지나가는 상황이 벌어질 수 있으며, 동네에 들어선 음식점의 노래방 기계 소음에 매일밤 시달려야 할지도 모른다', 또는 '동호인 주택이란 그럴 듯한 공간은 단지 배타적이고 이기적인 도시 여피들의 공간이지, 그게 시골의 전원은 아닐 것이다' 등등.
--- p.27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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끌과 망치가 만들어낸 이야기
저자는 더도 덜도 아닌 작업인 목수로서 목수생활 한복판에 서 있으며, 끌과 망치로 나무 속에 숨겨진 물건의 형상을 불러내 인간의 삶 속에 자리한 새로운 생명으로 만들고 채워나간다. 이러한 생활적 기반을 통해 인간 삶에 대한 성찰과 더불어 자연과 인간이 어우러져 사는 미학적 삶을 희구한다. 미술평론가이자 목수인 저자의 뛰어난 안목과 목수로서의 생활에서 우러나온 이 같은 정직한 글쓰기는 현대인에게 특별한 느낌과 삶에 대한 깊은 사유를 선사할 것이다.
목수가 되려고 생각한 적은 없었고, 그게 말이 쉽게 머리가 굵어지고 손이 굳은 뒤에 목수 되기란 언감생심 꿈에도 넘볼 일이 아니었다. 그런데 어느 날 목수가 되고 싶었다. 집 짓는 대목은 못될지언정, 주변에 있는 나무를 주워와 쓸모를 찾는 목수라면야 못할 것도 없겠다 싶었던 것이 그림을 그리고, 깎고, 자르고, 맞추고, 다듬고, 문지르고, 칠하는 등등의 일은 어느 것 하나 생소하지 않은 게 없었다. 하는 일은 내 보기에도 서툴고 어설프기 짝이 없었다. 하지만 언뜻 재미가 있었다. 처음 해보는 일이라 형태가 드러나고 모양이 만들어질 때마다 신기하고 물건의 꼴이 갖추어질 때마다 즐거웠다. 그러나 문득 나무를 깍아 물건을 만드는 일로 생업을 살아야 한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바빠졌다. 일과 놀이를 억세게 구분해야 하는 직업의 세계가 못마땅하긴 했지만, 그런 이유가 아니더라도 놀이 자체가 일로 전환될 때, 그 일이 더 이상 마냥 즐거운 일일 수만은 없었던 것이다. 일이 즐겁다면 나쁠 것야 없지만 그것으로 다는 아니었다. 집 안에서 재미 삼아 손재주 부려 이것저것 만드는 일을 목수라고 할 수는 없지 않은가? ㅡ 머리말 중에서 『목수일기』는 저자가 지난 목수 일을 하면서부터 나무와 목수 일에 대해 기록해온 일기에서 출발하였다. 전체는 4부로 각각 <나무와 나무><물건 만들기><일과 놀이><목수생각>으로 구성되어 있다 <나무와 나무>에선 은행나무,박달나무,벚나무,오리나무,난대나무,귀룽나무,엄나무 등의 나무들이 어떤 목재적 특성을 갖고 있는지, 그 나무들로 어떤 것을 만들었는지 쓰고 있다. <물건 만들기>에서 나무에 좀더 익숙해진 후 저자가 목재를 구하면서 만들면서 겪은 일, 일어난 일들을 주로 쓰고 있다. <일과 놀이>에선 꺽지 같은 물고기, 사슴벌레 같은 곤충, 용이나 뱀 등 나무로 깎은 다양한 동물에 관련된 이야기가 실려 있다. <목수생각>은 목수로서의 삶을 통해서 새삼 깨닫게 된 나무와 인생 이야기를 통해 예술과 삶, 지식과 노동의 경계를 차분하게 그려낸다. 『목수일기』는 자연과 삶, 사람살이에 대한 관조적인 애정과 성찰 나무와 호흡하며 사는 "목수" 김진송의 생각들이 단순하고 아름답게 깎이고 다듬어진 글로 태어나는 자리이다. 저자는 세 번의 <목수김씨전>을 열었다. 나무의 쓸모를 생각하고, 나무의 원래 형태에서 상상력을 발전시킨 작품들은 『목수일기』곳곳에 들어 있는데, 하나같이 일반적인 의자나 책상과는 다른 모습이다. 기타줄 모양의 등받이를 가진 의자라든지 돌고래 모양의 스탠드 등 대부분의 작품들이 저자의 자유로운 상상력을 엿보게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