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소장하고 있다면 판매해 보세요.
|
1부 장남과 그의 아내
1. 만난 사람들 2. 장남 부부의 프로필 2부 통합의 시간 3. 만남과 결혼 4. 혼수와 집 마련 5. 동거와 분가 3부 부부관계와 고부관계 6. 가족관계의 얽힘 구조 7. 강제의 시간 8. 선택의 시간 9. 회귀의 시간 10. 자율의 시간 11. 단절의 시간 4부 장남 부부와 한국가족의 변화 12. 가족의 변화를 읽는 방법 |
김현주의 다른 상품
|
시집의 비합리적인 권위의식을 거부하는 여성들은 공통적으로 자의식이 매우 강함을 볼 수 있다. 결혼이라는 관계맺음 속에서 '나인 것'과 '나와 다른 나를 강요받는 것' 간의 충돌이 일어나고 있는 즈음, 내 안에서 마음이 열리고 어떤 타협이 이루어지기도 전에 밖으로부터 어떤 강제가 작용해 들어온다는 사실은 이들 여성들에게 있어서 견디기 힘든 것이다. 며느리와 시부모 관계가 결혼 후 극도의 갈등상태로 발전하기까지 결코 오랜 시간이 경과되지 않았음을 볼 수 있는데, 이는 이들의 관계가 어떤 타협이나 조율의 노력을 처음부터 배제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측면이다. 관계에 등을 돌린 채 스스로를 변론하고자 하는 여성들은 자신의 성을 두터이 쌓아올리는 생존의 논리를 체득해나간다. '각자에게 각자의 인생이 있다'라든가, '내가 믿고 의지할 사람은 결국 나 자신밖에 없다'라는 생각이 그것이다.
--- pp.267-268 |
|
따로 나와 있어도 장남이기 때문에, 떨어져 있지만 (남편) 마음이 늘 거기 식구들한테 가 있는 거. 그리고 내가 어떤, 그 식구들에 대한 구상도 세우기 전에 미리 체크를 해주는 거. 그런 거에 대해서 많이 트러블이 있었어요. 나도 내가 맏며느리고 만약에 예를 들면 생신이 언제다 하는 걸 알아요. 어른 생신은 당연하게 챙기겠지만 밑에 동생들 같은 경우에는 인제, 그거에 대한 마음이 못 미더운 거야. 만약에 한 1, 2주 정도 앞질러서 '누구 생일이 언제다' 이러구 쓱 스치는 얘기로 하면 마음 다 읽고, 달력에 다 체크해 놓고 생각하고 있는데 거기다 대고 왜…… 할려고 하는데다 뭐라고 하면 더 하기 싫고 막ㅡ 삐치고 그랬는데, 아무튼 그런 사소한 걸로. 나는 내가 또 막내기 때문에 집에서 받고 자랐잖아요. 어떻든지, 형제들 사랑 받고, 엄마 사랑 받고 그러고 컸는데 장남이기 때문에 내가 가져야 될 사랑이 많이 뽀개져 나누어지는 거에 대해서, 성격이 그래도 육남매 중에 원만하다고 그러고 자랐는데, 그걸로 인한 질투심이라고 그럴까, 그런 게 생기더라구. 그래서 그런 거 때문에 결혼초에는 많이 트러블이 있었고 근데 그걸 잘 맞춰가고 나도 양보하고 자기도 조금 맡길려고 노력하고 그런 거에 대해선 서로 얘기를 하지. '그렇게 하면 나는 더 못해진다. 그러니까 나를 믿고 아주 잊어버리든지 그럼 내가 책임감을 갖고 하든지 그러겠다' 그러면 또 믿고 자기도 또 그렇게 해보고 하니까 또 인제 지금은 오히려 고맙다고 할 정도로 그렇게 변해가요 슬슬. 그리고 나도 인제 많이, 벌써 맏며느리로 7년, 8년째 접어드니까 나 혼자 생각했던던 거, 그런 게 닳아지고 가족들 속에서 융화가 되고 그러니까 많이 무던해지고 두리뭉실해지니까 같이 합쳐져도 살아지게 되고. (하영란, 35세, 사례g)
--- pp.205-206 |
|
결혼상대자가 장남이나 외아들이라는 사실에 대해 여성들이 보이는 태도는 크게 두 가지로 대별된다. 별다른 의미를 두지 않는 태도와 결혼 결정 자체를 망설일 정도의 장애요인으로 느끼는 태도. '장남과 외아들이랑은 결혼하지 말라'는, 여성들 사이에서 흔히 오가는 이야기들을 익히 들은 바 있지만 실제 자신이 배우자를 선택하는 데 있어서는 그 의미가 구속력있는 현실로 다가오지 않았던 적잖은 수의 여성들이 관찰되기도 한다. 반면에 주위 사람들, 특히 어머니의 반대나 결혼한 언니의 적극적인 충고에 부딪히면서 고심했다는 많은 여성들의 고백도 들을 수 있었다. 결혼상대가 정해진 상태에서 직접적으로 반대가 제기되기도 하지만 성장기부터 간접적으로 체험된 어머니의 맏며느리로서의 역할에 대한 '부정적' 시각에 그 맥락이 닿아 있는 - 자신이 '장남과 결혼하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는 한 여성의 표현에서도 엿볼 수 있듯이 - 스스로 다져온 의식의 결과로 장남과의 겨혼을 기피하기도 한다.
--- p.110 |
|
가족, 그 달콤 쌉싸름한 풍경
김현주의 『장남과 그의 아내』는 1990년대의 우리 사회의 성 담론이나 여성성에 대한 그간의 논의들이 노정했던 한계를 극복하고 이를 제도적 성찰성이라는 세계적 조류와 접목시켜본 국내 최초의 연구서이다. 우선 33쌍과의 인터뷰라는 이 책의 형식이 잘 보여주듯이 이 책은 두 남녀의 만남에서부터 결혼과정과 결혼 후의 관계에 이르기까지, 철저하게 구체적인 상황 분석을 겨냥하면서 실증적 연구의 미덕을 보여주고 있다. 이것은 90년대의 일부 이념치중적 논의들의 한계를 잘 드러내주면서 동시에 우리 사회의 변화의 지표를 구체적으로 제시해주는 장점을 갖고 있다. 여기서 이러한 실증적 연구가 단순히 실증적 자료 조사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선진 이론을 연구의 문제틀로 사용함으로써 추상적인 이론틀과 구체적인 자료를 종합적으로 접목시키고 있다.
이 책은 한국가족의 특수성과 그 변화를 한국 사회의 가족 구조의 '핵심축'인 장남부부의 역할과 독특한 성격을 중심으로 읽어내고자 하는 진지한 학문적 시도이다. 한국가족에서 장남이 세대관계의 '핵심축'이라는 인식을 전제로 ― 한국사회에서 장차 부모를 모시고 조상의 제사를 지내며 집안의 대를 이을 존재로 기대되는 존재인 ― "첫아들은 부유한 집안에서건 가난한 집안에서건 물질적으로나 정신적으로 최우선의 배려 대상이 되어" 각종 혜택을 누리며 그 대가로 장남은 이러한 혜택과 기대에 부합하게 주로 '효'라는 형태로 일련의 보상 행위들을 해야 하는 책임과 의무를 진다. 이 책의 핵심적인 문제의식은 이러한 책임과 의무를 수행해야 하는 주체가 장남보다는 그와 결혼한 여성이라는 통찰에 기초해 있다. "오늘날 장남의 역할을 부정하거나 긍정하는 실체는 장남이 아니라 그의 아내이며 장남을 장남으로 만드는 것도 그의 아내이다." 아마 이것이 이 책의 가장 흥미로운 연구 주제이자 관찰 결과일 것이다. 장남부부는 친족구성원들에 대해 일종의 '공인'으로서의 역할을 강요받으며, 특히 장남의 아내에게는 시부모에 대한 양보나 헌신이 무엇보다 강조된다. 이렇게 제3의 요인이 강하게 개입하는 장남부부의 결혼생활은 내면의 긴장과 갈등, 투쟁과 화해가 상존하는 장이기도 하다. 또한 이 책 『장남과 그의 아내』는 다양한 감정들이 실려 있는 인간관계의 섬세한 코드들, 즉 "눈이 먼 사랑, 질투, 요번 봐주기, 벼르기, 약게 굴기, 화해, 연민, 깊은 애정, 존경 등 비이념형의 상호작용"을 가족관계로부터 읽어내고 설명하려는 사회학적 연구이기도 하다. 인간관계의 섬세한 결을 드러내 보이기 위해 이 연구는 심층 면접이라는 '질적 방법'을 사용하는데, 조사 대상자로 선정된 33쌍의 장남부부들에게 적절한 응답을 이끌어내고, 녹취한 자료에서 적당한 부분을 인용해서 해석을 가하고 전체적인 이야기틀을 짜나가는 솜씨는 질적 연구방법의 모범이라 할 만큼 훌륭하다. 그 중에서도 녹취한 자료들을 인용하고 해석하는 과정에서, 숨겨져 있던 한국가족의 내밀한 특성들이 고개를 쳐들고 스스로를 드러내는 장면들은 특히 흥미롭다. '장남'이라는, 일견 감정적일 수 있을 주제를 다루면서도 한국 가족구조의 억압성 대 장남 아내의 자율성이라는 대립적 구도로 논의를 이끌어나가지 않는 것이 이 책의 장점이다. 지은이는 오히려 장남 아내에 대한 독특한 역할기대가 그녀로 하여금 전통의 창조적인 해석자가 될 수 있게 한다는 데 주의를 환기한다. 이 책은 부부관계와 세대관계가 얽히는 장남부부의 경험을 '증여'라는 개념으로 포착한다. 말하자면 주고 받고 되돌려주는 순환적인 흐름으로 인간관계를 파악하려 할 때, 장남부부의 결혼생활은 장남과 부모 간의 증여순환에 장남의 아내가 연루되는 형태로 포착된다. '되돌려준다'라는 장남의 역할을 아내가 대신 수행하는 것이 이 가족관계의 핵심적 특질이다. 장남의 며느리들이 받아들이는 (되돌려주는) 증여-강제된 증여, 선택의 증여, 회귀의 증여, 자유로운 증여, 단절된 증여-의 성격에 따라 장남부부의 경험들은 다섯 가지 유형으로 나누어 자신의 이론틀로 분석하고 있는 점도 기존의 연구와는 사뭇 다르다. '장남'을 중심으로 한 가족 문화는 철저하게 봉건적인 현상, 즉 근대 이전의 현상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문화가 자본주의화한 한국에서도 여전히 유지되는 것, 게다가 그것도 여전히 철저하게 관철되고 있다는 것은 참으로 흥미롭다. 이러한 현상이 근대와 봉건이 겹치고 있는 우리 현실 그리고 전통과 혁신, 서구와 동양이 매일 중복되는 복잡한 우리 현실을 구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둘도 없이 좋은 시금석이라는 점을 생각할 때, 이 책은 모더니티 논쟁 혹은 포스트모더니티 논쟁이 다소 추상적으로 흐르면서 포착하지 못한 우리 사회의 많은 단면들을 매우 구체적으로 보여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