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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시작하면서
1 통제 불능의 어린아이 ― 엘니뇨 약사 2 전 지구적 연결 고리 ― 물리적 과정의 이해 3 생존의 기술 4 공포의 통치 ― 갈등, 기근, 이주 5 미지의 세계 ― 탐험, 정착, 실추된 명성 6 치러야 할 대가 ― 현대 세계의 계산법 7 고통받는 바다 ― 해양 환경에 미친 영향들 8 진화의 힘 ― 자연 세계에 남긴 흔적들 9 변화의 예측 ― 정해지지 않은 미래를 위한 예언 감사의 말 엘니뇨, 라니냐 연대기 그림 목록 주 참고문헌 찾아보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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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집트의 피라미드라든지 남미의 선사 시대의 역사, 인도 고대 문명의 급속한 멸망 등 어떠한 역사이론으로도 설명되지 않는 역사의 미스터리는 여전히 남아 있다. 고대사의 수많은 사건들 또한 여전히 미스터리로 남아 있고, 현대사의 주요 사건들에 대해서도 ‘영웅사’적 해석과 ‘민중사’적 해석 사이를 오가고 있기도 하다. 가령 타이타닉의 침몰을 두고 인간의 오만함과 탐욕 운운하는 이야기를 아직도 쉽게 들을 수 있으며, 2차 세계대전의 운명을 가른 스탈린그라드 전투를 놓고도 히틀러의 오판과 소련 민중의 애국 전쟁 운운하는 평가를 아직도 역사 교과서에서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이 책은 쓰나미나 카트리나 등의 자연 재해가 단순히 농업에만 영향을 미치는 것이 아니라 유가를 비롯한 경제와 정치, 인종 등의 온갖 문제에 종합적으로 파급력을 미치고 있는 지금 역사 해석과 미래 현실에 대한 상상에 있어 각별한 의미를 가질 책이 될 것이다. 자연과학 다큐멘터리 프로듀서 겸 디렉터인 로스 쿠퍼-존스턴의 이 책을 따라 지금까지 인류사의 베일 속에 감춰져 있던 긴장감 넘치는 역사와 기후의 충돌의 드라마를 읽어나가다 보면 우리는 과거 역사와 인류의 미래에 대한 전혀 새로운 통찰을 얻게 될 것이다. 매년 일어나는 나일 강의 적당한 범람 덕분에 고도의 문명을 이룬 것으로 알려진 이집트에서도 엘니뇨로 인해 비가 적게 내림으로써 나일 강이 범람하지 않는 것은 치명적인 결과를 가져왔다. 역으로 프란시스코 피사로가 잉카 제국 정복에 나섰던 1532년에 엘니뇨가 발생하여 예년과 달리 풍족한 비가 내린 것은 피사로 군대의 여정을 용이하게 해 제국 정복의 길을 순조롭게 터주었다. 때아니게 찾아온 혹독한 추위에 결정타를 입고 러시아에서 물러나야 했던 1812년의 나폴레옹군과 1941년 히틀러 군대의 패퇴 뒤에도 당시 누구도 그 존재를 깨닫지 못했던 엘니뇨가 자리하고 있었다. 이처럼 세계 모든 대륙에서 엘니뇨는 전쟁과 혁명, 정복, 대이주의 원인으로 작용하며 역사의 물길을 이리저리로 돌려왔다. 엘니뇨가 야기하는 이상기후에 대처하기 위해 인류가 온갖 대책을 강구해야만 했던 것은 당연한 일이다. 이러한 대책은 전통 사회에서는 기후 조건이 달리 나타날 수 있는 다른 지역의 사람들과 평소에 강한 유대를 형성해두어 유사시에 대비하는 실질적 방식 ― 아프리카 칼라하리 사막의 쿵 부시맨들 사이에서 행해지는 선물 교환 시스템인 흑사로(hxaro)나 멀리 떨어진 부족들끼리도 공동의 조상신을 갖고 있다고 여기는 오스트레일리아 원주민들의 방식 ― 이나 인신 공양 등을 통해 비를 기원하는 상징적 방식 등으로 나타났다. 이에 적절히 대처하는 데 실패하는 경우 사회나 국가는 심각한 위기를 맞아야 했다. 여기서 우리는 과연 역사를 움직이는 것이 인간 자신인가 하는 결코 가볍지 않은 질문과 맞닥뜨리게 된다. 인간이 기후와 환경에 대응하기 위해 다양한 체제와 문화를 발전시켜온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지만 인간의 역사를 ‘자연에 맞서 자연을 정복해온 역사’라고 보는 ‘오만한’ 역사관이 과연 타당한지 이 책은 우리에게 생각할 여지를 던져준다. 가령 ‘문명’이나 ‘국가’는 자연재해에 대비한 지역민들 간의 전통적 상호 부조 시스템을 해체시킨 위에 성립되었지만 그만큼 효율적인 구제책을 제공하지 못하는 경우도 많았으며 또 인간들의 자발적인 대처 능력을 퇴화시켜버린 측면이 있기까지 했던 것이다. 아울러 이 책 여러 곳에서 나타나듯 세계 여러 지역에서 왕 등의 통치자는 막강한 권력자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자연의 순환적 질서를 대표하는 상징적 존재로서 그러한 질서가 깨질 경우 지위는 물론이고 자신의 목숨까지도 잃어야 했다. 이는 세계 곳곳의 통치자들이 일종의 기우사(祈雨師) 역할을 했으며, 중국의 황제조차도 심각한 자연재해가 발생하면 ‘천명(天命)’을 잃은 것으로 간주되어 지위에 위협을 느껴야 했음을 상기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할 것이다. 이러한 현실과 앞에서 말한 여러 역사적 사실들을 보면 인간의 역사는 인간 의지로 점철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자연현상에 따른 온갖 우연(혹은 필연)과 인간의 실패가 구석구석에서 작용하고 있었다고 볼 수도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