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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머리에
<제1부 나는 왜 공부를 하는가 - 공부는 괴로운 노동이자 즐거운 창조다, 적어도 나에게는 남극관의 <사시자>를 읽고 하는 잡생각 - 고정된 형식의 글보다 자유분방한 글에 매혹되다 기초학문과 자득지학 - 세상이 외면하는 '기초학문'에 대한 단상 고전의 억압 - 고전은 어디까지나 그 시대의 산물이다 옛글을 어떻게 읽을 것인가 - 오직 인간 해방의 관점에서 이해하고 읽는 것이 최선이다 실학자 네 사람의 딴생각 - 민족, 민족의식을 어떻게 볼 것인가 사람을 죽이는 책 - <삼강행실도>가 강조하는 충.효.역의 본질 인간을 옭아매는 법 - 조선시대 양반 윤리의 근간 <소학>의 본질 경전에 대한 잡념 - 정말이지 경전은 한 글자도 틀리지 않는가 고전의 위작 - 거짓은 밝혀지기 마련이다 조선시대는 '우수한 민족문화'의 상징(?) - 시대의 속내를 들여다보라 양반 상놈의 관계는 여전하다 - 옛날 세상, 지금 세상 '소가 된 사나이'와 '개미와 베짱이' - 노동에 대한 강박증 '책'에 대한 잡념 하나 - 사람에게 책은 그리 많이 필요한 것이 아니다 다시 읽는 <발해고서> - 말로만 외치는 역사의식의 허구성 군자는 소경이나 귀머거리처럼 더욱 독서해야 한다 - 이덕무의 <갑신제석기>에 대한 소고 성리학 책을 몽땅 외운 조선 학자 - 이념에 지배된 지식인의 전형 제2부 맹자가 이라크 전쟁을 본다면 - 누구를 위한 전쟁인가 고문, 미국, 이라크 - 힘 있는 자가 법을 지키지 않는다면 무슨 소용 제발 전쟁은 그만! - 전쟁에 '의로운' 전쟁은 없다 신의가 없으면 사람이 될 수 없다 - 영조와 부시의 차이 위정자들이여, '국민의 뜻'을 살펴라 - <호민론> 다시 읽기 '붕당'이 아니라 '정당'이 되라 - 탄핵 정국을 바라보며 근본적으로 국민 전체가 골고루 넉넉히 사는 세상 - 호구를 늘리는 법 서울은 '대한민국'인가 - 서울 천도, 행정수도 이전의 근본을 생각하라 인재인 줄을 알면 반드시 등용해야 한다 - 부휴자의 등용론 암탉과 정치 - 암탉 이야기에 깔린 배제의 논리 제3부 총각으로 죽은 신랑 - '국익'이라는 말로 '개인'을 침해하지 말라 "아기를 밀쳐놓고 음식을 쓸어 자루 속에 담더라" - 양극화의 그늘 박지원이 말하는 땅이 돈 버는 세상 - 예나 지금이나 골칫거리인 '부동산' 문제 정약용과 새만금 사업 - 때를 가려 해야 할 일이거늘 단일 민족의 신화 - 향화인과 제노포비아 다시 생각해보는 '민족주의'와 차별 - 하인즈 워드 신드롬을 보면서 올라온 길은 달라도 만나는 정상은 하나이거늘 - 영화 <다 빈치 코드>와 '진리'의 본질 '사오정' '오륙도'에 기죽지 마시라 - 65세에 첫 출사한 남인의 거두, 허목 <북학의>를 새로 쓸 사람은 누구인가 - 박제가의 '수레'와 화물연대 파업 민족의 성산, 백두산(?) - 한국 민족주의의 또 다른 단면 인물과 말주변으로 인재를 뽑는가 - 외모로 사람을 평가하는 세상 버선 한 켤레의 우정 - 적선이 절실한 우리 사회 남녀관계란 인간의 가장 큰 욕망이다 - 조선 전기 허조의 성의식 고단한 시절 횡재를 꿈꾸다 - 옛날 사람들의 로또 복권(?) 이야기 부정부패, 우리는 지금도 조선시대에 살고 있다 - 인정전이 넘쳐나는 사회 가는 것이 있으면 오는 것이 있는 법(?) - 역관과 대원군 용돈이 궁해서 과거 합격장을 팔아먹은 고종 - 고종의 매관매직 조선 역사 오백 년이 부정부패의 나날이었다면 - 백성의 피를 빠는 탐관오리 잠 못 이루는 세모의 밤 - 옛사람인들 어찌 세모가 적적하지 않았겠는가 제4부 '무한 경쟁'만을 강요하는 신자유주의의 나팔수 - 나라를 망하게 하는 교육부 국가가 공교육을 무시하고 사교육에 나서겠다는 처사 - 과거와 텔레비전 과외 수능 시험과 과거 - 이 세상 천하를 배우의 연극판으로 만든 '과거' 중등 교육의 유일한 진리는 '대학 입시'뿐인가 - 수능 부정과 대리 답안의 폐해를 보며 제5부 사람들이 모두 원하는 것, 하늘이 가장 아끼는 것 - 옛사람의 웰빙, 청복 부지런함은 화를 부르는 근본이다 - 게으름에도 도가 있다 자연의 철학적 근원을 탐색하라 - 자연의 원리, 아름다움의 궁극 화목한 일가의 화전놀이가 사뭇 그립다 - 옛 여인네들의 꽃놀이 선인들의 등산, 나의 등산 - 산행과 술 한잔 가을의 소리, 구양수의 <추성부> - 물신에 빼앗긴 우리 시대의 가을 넘실대는 강물 같은 눈 - 이덕무의 <눈 덮인 칠십 리 길> 병든 이(齒)의 노래 - 이규보와 정약용의 치통 한 냉면주의자의 냉면 예찬 - 옛 냉면의 기록들 유배 중인 형님께 전한 건강 유지 비법 - 다산 정약용의 개고기 요리법 참다운 미식가는 절제할 줄 안다 - 이덕무의 '소박한 밥상'론 술을 조심하라는 소리는 '고전'의 단골 - 그래도 장쾌하게 마시고 싶다 자연과 어우러진 '소쇄원'같은 집이 그립다 - 바깥 없는 집, 아파트 나는 콘크리트 동굴에 사는 혈거인 - 마당 있는 집에 대한 그리움 제6부 '천재' 추사 김정희, 시대의 산물 - 18세기 예술품 시장의 형성과 추사 조선시대 문화 시장을 찾아서 - 광통교 그림가게 조선시대에도 가자 골동품이 있었으니 - 수입하는 공동품 민중이 문자를 갖는다는 것, 무지로부터 '해방' - 금속활자, 한글은 왜 없나 '아름다움'이란 누구를 위해 만들어지는가 - 선교장의 노비 절대 권력이 인간을 소모한 거대한 기념비 - 진시황 무덤 앞에서 제자와 묻고 답하면서 학문을 하던 퇴계의 거처 - 조촐한 도산서당 제7부 한없이 겸허해지는 것, 그게 인간의 도리 아닌가 - 아무것도 아닌 인간 인간은 누구나 마음속에 부처와 예수, 공자를 모시고 있다 - 맹자와 측은지심 미물의 생명은 생명이 아닌가 - 인간의 편리를 위해 희생되는 자연 성 문제에 더 관대하고 유연해질 수는 없는가 - 한 우물(?)만 파는 아들 칼날처럼 도덕적 기준을 적용하는 근본주의는 인간을 옥죈다 - 도덕주의자 조광조의 실패 "사랑은 가도 옛날은 남는 것" - 쿨하지 못한 사랑 금덩어리를 강물에 던진 까닭 - 케케묵은(?) 삼강오륜 박지원의 우울증 - 삶 속의 유머를 찾자 주체가 아주 없어져버린, 동저의 여지가 없는 인간 - 쓸개 빠진 인간 눈물은 언제나 느낌을 따라 나온다 - 울음의 정화 |
姜明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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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문과 공부, 교육과 정치, 경제, 문화, 자연, 환경 등 다양한 소재를 고전에 빗대어 말하다
전체 7부로 구성되어 있는 이 책은 각 부별로 우리 삶의 단면들이 생생하게 펼쳐짐은 물론, 세상을 어떻게 바라보아야 하는지에 대한 솔직담백한 저자의 생각이 가감없이 드러나있다. 제1부에서는 학문과 공부에 대한 생각들이, 제2, 3, 4부에서는 우리 삶과 한층더 가까운 교육, 정치, 경제에 대한 이야기들이 다채롭게 펼쳐지고 있다. 제5, 6, 7부에서는 자연과 환경(생태), 그리고 문화의 문제 등이 익숙한 조선 후기 사례들과 더불어 저자 자신의 경험에 비추어 글마당이 전개되고 있다. 때로는 강렬한 문구를 통해 우리 현실의 모순을 비판하기도 하고, 때로는 복잡다단한 현대 문명사회의 속도에 짓눌린 우리들의 자화상을 따스한 숨결로 보듬어가는 글솜씨가 이 책을 읽는 독자들로 하여금 다양한 간접체험을 하게 해준다. 고전의 권위에 대한 도전, 그리고 책은 어떻게 읽고 공부는 어떻게 해야 할까 ― 요즘 학문에 대한 단상 저자가 바라보는 시각의 열려있음 내지 호방함은 익히 알려져 있지만, 이 책의 곳곳에서도 잘 나타나 있다. 특히 제1부 「고전의 억압」에 보면, 저자는 우리가 흔히 말하는 ‘고전’(古典)이라는 것이 이른바 시대를 초월한 만고불변의 책이 아니라 지역에 따라 시대에 따라 달라질 수 있음을 다양한 전적(典籍)들을 예로 들면서 설명하고 있다. 즉 고전은 어디까지나 그 시대의 산물이며 상대적인 것이며, 단지 고전으로 평가를 받는 것은 좀더 역사성을 띠고 그 상대성을 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저자 스스로 무수한 ‘고전 백선’을 신용하지 않는다는 고백은 고전에 둘러쌓인 책의 권위를 못마땋하게 생각하기 때문이다. 자유롭게 텍스트에 접근할 때, 고전은 진정한 의미로 그 역할을 한다는 게 저자의 지론이다. 그러면서 그는 조선시대의 대표적 저작인 『삼강행실도』와 『소학』을 ‘지금’ 우리 시대의 관점에서 비판적으로 바라본다. 열녀니, 효자니 하는 조선조 유교윤리가 얼마나 어처구니없게도 생명을 경시하는지, 특히 여성들을 죽음으로 내몰았는지를 읽어낸다. 『삼강행실도』「열녀」편을 보자면 열녀 110명 중에서 자살하거나 타살이거나 죽음으로 열녀가 된 사람이 80명이라고 한다. 죽지 않은 열녀 30명은 왕비 같은 고귀한 신분이다. 열녀 대부분이 남편을 위해 죽음을 자처하거나 몸을 내던졌는데, 이상하게도 아내를 위해 대신 죽은 남편 이야기는 어떤 책에서도 보지 못했다는 것이 저자의 말이다. 『소학』이라고 별반 다를까. 이럴 때는 이렇게, 저럴 때는 저렇게 하라는 식으로 인간의 일상을 어떻게 규제되어야 하는지를 설파한 책이라고 저자는 생각한다. 이 모두가 유교윤리의 절대적 추종에 대한 반성적 독해임을 알 수 있다. 그렇다고 저자가 유교윤리를 전면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옛글이 지금도 유용한 것은 지배층에 대한 언급에서 잘 드러난다. 유학에 대해 그리 호감을 갖고 있지 않은 저자가 지배층 자신에 대한 엄격한 규율과 타인에 대한 배려를 주축으로 하는 『소학』의 기본정신에는 동의한다고 하면서, 요즘 우리 사회 상류계층의 이런저런 행각을 보건대 이나마의 윤리적 원칙이 있는지 되물어본다. 옛글을 빗대어 우리의 자화상을 그려보는 것이다. 「옛글을 어떻게 읽을 것인가」에 드러난 오로지 ‘인간해방’의 관점에서 바라본다는 생각, 「기초학문과 자득지학」에서 보여지는 시장 만능주의에 따른 인문학의 도태 현상에 대한 안타까움 내지는 처연함. 이 모두가 과연 학문은 무엇이고 공부는 왜하는지에 대한 물음과 비판적 깨달음으로 우리 가슴을 울리게 한다. 수능 과외, 수능 부정, 텔레비전 과외 ― 근본 정책없는 우리 교육, 조선시대 과거도 역시... 저자 스스로 공부하는 사람, 교육에 몸담고 있는 사람이라서 그럴까. 우리 교육에 대한 비판은 통렬하다. 한마디로 정책의 근본이 없다는 것이다. 매년 되풀이되고 있는 대학입시는 그저 한 인간의 사회 계급을 정하는 절차에 지나지 않는다는 언급은 오로지 ‘무한경쟁’에서 살아남으라는 ‘신자유주의’와 별반 다를 게 없다. 21세기 우리 교육부를 신지유주의의 나팔수라고 통박하는 저자의 심정은 텔레비전 과외나 수능시험이 가져다주는 폐해가 그만큼 심하다는 것이다. 다산 정약용이 “이 세상과 천하를 배우의 연극판으로 만든 것이 과거”라고 했는데, 우리 시대 수능시험도 과거와 별반 다를 것이 없지 않은가. 수능 부정에 대해 몇 년간 시험을 보지 못하게 한다는 소식에 저자는 조선시대 과거의 정거(停擧) 제도를 말한다. 조선시대인들 부정행위가 없었을까. 하지만 정거를 한다한들 과거제도가 공평무사했던 것은 아니다. 19세기에 가면 이미 과거제도는 본래의 성격을 모두 잃고 말았다. 우리 시대 수능 부정에 대한 처벌도 별반 다를 것이 없다는 것이 저자의 생각이다. 근본을 뜯어고치지 않는 한, 현재의 교육정책은 학생들을 벼랑으로 몰아세울 뿐이기 때문이다. 다양한 옛 책 속에서 스쳐지나갈 법한 이야기들을 길어내는 저자의 탁월한 능력이 글읽기의 재미 배가시켜 이 책에는 한편으로 재미있는 조선시대 에피소드들이 다양하게 그려진다. 고종이 자신의 용돈을 마련하기 위해 과거합격장을 팔아먹었다는 이야기, 정교가 쓴『대한계년사』에 나오는 역관(역관)과 대원군의 밀고당기는 혈투(?), 65세가 되어서야 첫 벼슬길에 나간 남인의 거두 허목(許穆)에 대한 일화, 유배간 형 정약전의 건강을 염려하며 동생 정약용이 개고기 요리법을 손수 편지글로 보낸 일 등등, 우리 고전에서 자칫 스쳐지나갈 수 있는 대목들을 유효적절하게 인용하면서 고단한 우리 삶의 보듬어주기도 하며 때로는 따끔한 충고로 정신이 번쩍들게끔 하기도 한다. 모두 다 저자의 해박한 우리 고전에 대한 실력 때문이다. 또한 저자 자신의 경험을 스스럼없이 드러내고 있는 글들(「선인들의 등산, 나의 등산」「한 냉면주의자의 냉면 예찬」「나는 콘크리트 동굴에 사는 혈거인」)을 보면, 웰빙이 다른 것이 아니라, 자연 속에 아무런 장치없이 스며듬이라는 것이 느껴진다. 아울러 요즈음 문제시되고 있는 성문제에 대해 도덕적 근본주의자 조광조의 일화를 예로 들면서 도덕적 삶이 중요하고 옳지만, 그것을 칼날처럼 도덕주의로 몰아간다면 그것은 곧 인간을 옥죈다는 평가 속에서 과연 도덕적 삶의 유연함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질문을 던지고 있기도 하다. 글이란 소통의 수단, 담는 그릇이 다르다고 내용까지 다를까 저자의 머리말은 모든 것을 함축하고 있다. 특히 저자 자신은 잡문도 논문처럼 여긴다는 말 속에서 글이란 자신의 생각을 상대방에게 올바르게 전달하는 수단으로 그것을 담아내는 그릇의 형식만 다를 뿐 그 내용은 같다고 주장한다. 그러면서 다시 한번 자신의 경험담을 본문 속에서 이야기하는데, 논문형식에 맞춰 글을 쓰지 않았다고 어떤 학회로부터 논문이 반려된 사실을 들려준다. ‘글’이란 소통이라는 이치일 것이다. 저자가 3년 만에 새롭게 내놓는 이 책은 조선시대 옛글들 속에 담겨있는 선인들의 삶이 결코 현재의 우리 삶과 동떨어져 있지 않음을, 그리고 옛글을 오늘날에 새롭게 되새겨 읽음으로써 우리것에 대한 또다른 소중함을 느끼게 해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