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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사랑이 무엇이냐고
어린 소녀를 위한 기도_14 어느 어머니의 통곡_17 당신의 뒤편_20 사랑이 무엇이냐고_23 아름다운 발_26 어느 남자 이야기_29 주파수 오작동_32 취급 주의_35 행복지수_38 달이와 별이_41 닳아간다는 것_44 2 중독 노인과 리어카_50 길_53 중독_56 누드촬영을 가다_59 오만한 착각_62 뒤집어 생각하기_65 가장 맛있는 말_69 아상블라주_72 향기를 믿다_75 이런 장난질 치지 않겠지요_78 버림받은 양심_81 그곳에 가을은 없었다_84 3 미안해 엄마 친정_90 미안해 엄마_93 자매들의 수다_97 내 안의 수_103 감꽃 목걸이_108 도마_112 언니_116 엄마 손_120 마음의 양식_123 4 평범한 날의 삽화 반봉사 눈뜬 날_130 평범한 날의 삽화_134 아이가 변했어요_140 보루_144 비빌 언덕_147 왕초보_151 방목_155 이미 정해진 사람_158 푸른 문_162 곡선_166 복도 참 많지_169 물에 빠진 태양_172 5 지붕 위의 삶 지붕 위의 삶_178 그런 사람 한 명_182 그날_185 당신도 혹시 다이어트 중이십니까_189 바람_192 딱실 가는 길_197 경계선상에서_201 그녀의 선택_204 어느 노인 이야기_208 쥐구멍_212 6 향기도둑 병실에서_218 향기도둑_222 엄마 마음_226 이 속에 잠든 이_231 초록 재와 다홍 재_236 아부오름에 오르다_240 동백의 상처_245 몽당연필_249 7 고향 탐방 1. 고향 땅을 밟다_254 2. 동심은 전설을 들으며 자라고_258 3. 추억은 추억할수록 새로워지고_264 4. 오지라서 더 아름답다_27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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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섯 자매가 모이는 날은 늘 그렇듯 밤이 짧다. 이제 그만 자자, 고 불을 끄고 누웠다가도 어느 한 사람이 말문을 트면 방안은 다시 떠들썩해진다. 아마도 오늘 밤도 새벽달을 보고서야 잠속으로 빠져들 것 같다. 터울이 많고 입담이 좋은 언니들에게서 듣는 가족사는 아이들이 즐겨보는 해리포터나 짱구 이야기보다도 재밌다.
제삿밥을 먹던 큰언니가 지난 이야기를 꺼낸다. 결혼해서 김해에 살던 큰언니가 오랜만에 조카 셋을 데리고 친정에 왔다. 그런데 하필이면 그해에 홍역이 돌았다. 나보다 손위인 조카의 얼굴에 발진이 돋았다. 기겁한 엄마는 언니와 조카들을 서둘러 집으로 돌려보냈다. 모처럼 친정에 왔던 큰언니는 서운했다. 내쫓기듯 친정집 대문을 나서는 큰언니의 눈에 눈물이 고였다. 출가는 했지만, 자신도 엄연히 엄마의 딸인데 싶어 서러움이 왈칵왈칵 치밀었다고 한다. 언니와 조카들이 돌아간 뒤 내가 아프기 시작했다. 목소리부터 잠겼다. 울어도 울음소리가 나지 않았다. 입을 딱딱 벌리면 우는 줄 알았다고 훗날 엄마가 말했다. 젖도 빨지 못하는 나를 엄마는 포대기로 업었다. 십 리를 걸어 읍내 의원을 찾았다. 의원은 염소똥처럼 생긴 까만 환약을 주며 물이나 젖에 조금씩 타서 먹이라고 했다. 환약을 받아 든 엄마는 다시 십 리를 걸어 집으로 돌아왔다. 의원이 시키는 대로 했지만, 차도는 없었다. 업어도 안아도 울던 내가 어느 순간 축 늘어졌다. 가망이 없어 보였다. 엄마는 대접에 젖을 짜서 마지막 남은 환약을 녹인 다음 내 입속으로 흘려 넣었다. 홍역이 도는데 손자들을 데리고 온 큰딸이 불현듯 원망스럽기까지 했다. 죽은 듯 늘어진 나를 엄마는 윗목으로 밀었다. 어미 호랑이가 새끼호랑이를 낭떠러지로 물고 가 떨어뜨리는 마음이었다. '살 목숨이면 살 것이다. ' 혼잣말을 한 뒤 엄마는 방 밖 으로 나왔다. 호미를 찾아들고는 밭으로 갔다. 봄볕은 따가웠다. 속곳까지 젖었다. 허리가 부러질 듯 아팠지만 머리 한 번 들지 않았다. 하늘을 보고 싶지 않았다. 몸이라도 혹사해야지 그렇지 않으면 숨이 막혀 죽을 것 같았다. 엄마는 밭에 원한이라도 있는 듯 매고 또 맸다. 우라질 놈의 밭엔 돌이 많았다. 엄마는 홧김에 돌을 내리찍었다. 호밋자루가 쑥 빠졌다. 엄마의 눈물도 함께 빠져나왔다. 한바탕 울고 나니 숨쉬기가 훨씬 편했다. 열심히 일해도 사는 건 늘 고만고만했다. 형편이 좋아 읍에 살았더라면 의원에게 어린 것을 한 번 더 보일 수 있었을 텐데 싶어 엄마의 가슴은 미어졌다. 집으로 돌아왔지만, 방문을 선뜻 열 수가 없었다. 멈칫거리는데 때마침 논일을 끝낸 아버지가 마당으로 들어섰다. 엄마와 닫힌 방문을 번갈아 보던 아버지가 마당을 가로질러 안방 앞으로 성큼성큼 걸어갔다. "열지 마시오. " 엄마가 달려가 아버지의 허리춤을 붙잡았지만 이미 아버지의 손은 문고리를 잡아당기고 있었다. 아버지는 한참 동안 말이 없었다. '죽었구나. ' 엄마의 몸이 빈 마대자루처럼 바닥으로 떨어졌다. "저것 좀 보게. 막내가 걷기 시작했네." 아버지의 말에 칠흑같이 캄캄하던 엄마의 머릿속에 불이 들어왔다. 떨리는 손으로 간신히 방문턱을 잡고 안을 들여다보았다. 죽어 있을 줄 알았던 새끼 호랑이가 반닫이를 잡고 걸음마 연습을 하고 있었다. "모두 기적이라고 했지." 큰언니가 음복주를 마시며 엄마처럼 말한다. "맞다, 맞아. 명줄은 타고나는 거야." 상 주변에 둘러앉은 둘째 셋째 넷째 언니도 맞장구를 친다. "참 모진 삶 살았지. 우리 엄마. 열여섯에 시집와서 열 명의 자식을 낳고 그중에 넷을 삼칠일 혹은 돌도 되기 전에 보냈잖아. 그랬으니 마흔 넘어 낳은 너까지 잃을까 봐 얼마나 애 끓였겠니. 젖먹이를 윗목에 밀쳐놓을 때는 제정신이 아니었을 거야. 그 말 듣고 나 엄마한테 서운했던 마음 다 풀었다. 내 새끼 길러보니 그 마음 이해되더라." 큰언니의 말에 둘째, 셋째, 넷째 언니의 눈시울이 붉어진다. 윗세대가 가고 아랫세대가 뒤를 잇고 있다. 나는 음복주를 입에 대다 말고 방안을 둘러본다. 우리들의 껍데기인 엄마가 와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왔다면 흐뭇한 얼굴로 엄마처럼 나이 들어가고 있는 속고갱이들을 내려다보고 있을 것이다. 살아생전에 엄마는 우리에게 '내 속고갱이들 '이라고 했다. 나이가 들어도 우리는 껍데기가 그립다. 음복주가 돌아가고 자매들의 수다에 친정집 천장이 들썩인다. ---「자매들의 수다」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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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한 감동을 향기처럼 담아낸 이야기.
향기로운 지난 시간은 스쳐 지나가지만 그 잔향은 항상 마음속에 남아있다. 곁에 두고 어느 때나 펼쳐도 진한 향기가 느껴진다. 저자의 첫 번째 수필 『나는 여전히 당신이 고프다』출간 이후 두 번째 수필집이다. 저자의 이야기이지만 읽는 사람에게 위로가 되는 것은 어떤 까닭일까. 좋은 향기는 누구나 깊이 들이마신다. 간직할 수 없으므로 기억하려는 것이다. 보이지 않고 만져지지도 않는 걸 어떻게 저장하겠어요? 마음에 저장하는 거죠. 그보다 확실한 게 또 있을까요? 저자의 마음속에는 어린아이와 순수함을 간직한 소녀가 살고 있다. 어린 감성은 아직 정제되지 않았기에 너무나 섬세하다. 언뜻 일상의 평범함을 얘기한 듯하지만 그 속에는 특별한 묘사가 숨어있다. 일상도 충분히 아름답고 향기로울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수필집. 유년의 시절은 향기처럼 순식간에 지나가 버린다. 산책을 하듯 천천히 책장을 넘기면 어느새 은은한 향기가 가슴 속으로 스며드는 것을 느낄 수 있다. 하지만 내 고향은 오지 중의 오지, 불도 들어오지 않던 청송의 작은 산동네였다. 살아오면서 나는 도회지 출신을 부러워해 본 적이 없다. 고향을 떠나서도 나는 늘, 나를 업어서 기른 느티나무의 거친 나무껍질을 그리워했다. 때문인지 내 글감의 모티브는 고향일 때가 많다. 옛집과 여우와 도깨비, 부엉이와 개구리 알, 반딧불을 손바닥에 올리고 뛰어다니던 골목길, 미끄럼틀이 되어 준 무덤, 그 이야기를 쓰고 싶어 작가가 되고 싶었다. 이제 집은 터만 남았고 동네엔 아는 얼굴 한 명 없지만 완벽한 성형이 아니어서 다행이다. 이 정도의 변화라면 얼마든지 유년을 재생시킬 수 있다. 내 고향 청송은 아직도 사람 손을 많이 타지 않았다. 오지라 더 아름답다. - ‘오지라서 더 아름답다’ 중에서 저자의 글에는 순박함이 묻어난다. 가늘게 흔들리는 꽃가지처럼 향기를 안고 멀리멀리 퍼지듯이 다가온다. 작은 물건에도 추억과 사랑을 느끼는 저자의 감성은 독자에게도 울림을 준다. 아픈 시간을 버티고 난 사람에게, 아픈 시간을 겪고 있는 사람에게 저자는 위로를 전한다. 상처가 지나면 새살이 돋아나듯이, 겨울 뒤에는 꽃이 피는 세상은 향기를 지니고 있다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