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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약하면 무조건 깔본다
양놈 훈련 만행 사건 햄버거로 쌈을 싸든 죽을 쑤든 쓰레기가 버리는 쓰레기 지도에도 없는 도시 2. 주도면밀하다, 우월하기 위해 정글의 법칙 결코 평등은 없다 치고 던지고 박수 치는 그들만의 리그 나는 너희가 미쳤다는 것을 안다 3. 합리주의가 아니라 실리주의다 내등을 긁어주면 나도 네 등을 긁어주마 아메리칸 뷰티는 홈 스위트 홈 나 별로 내키지 않는걸 설마가 사랍 잡는다고 믿는 지독한 겁장이들 칭찬에 관대한 사람들 노출되는 부위의 문신은 금한다 한번 놀아 보자 4. 우리끼리 왜 이러셔 정말 아줌마의 카투사 인종 차별 사전에 연락 주고 오셨어야죠 미군 주둥이는 백만 불짜리? 우리 실력자들의 미국 해결 방식에 문제 있다 여대생들의 Teach me english가 슬프다 너희는 정말 똑같더라 여기도 짝퉁, 저기도 짝퉁 짝퉁이 판친다 힘 내라 한국인 5. 이미지는 모든 것을 삼킨다 라이언 일병이 흑인이었다면? 미국인이 끝까지 보는 영화, 욕하며 꺼버리는 영화 유심히 보아라, 군대 영화로 출렁이는 헐리우드를 미국의 우월주의는 반드시 적을 필요로 한다 미국의 전방위 스타 시스템 헐리우드 액션, 가족을 걸고 넘어지면 성공한다 미국인도 꿈꾸도록 조장하는 '아메리칸 드림' 어느 콩가루 집안(?) 이야기 부록 주한 미군 게시판 나 이럴 때 한국인 다 된 것 같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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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디아나 존스 시리즈를 기억하는가. 큰 아랍의 칼을 들고 이리저리 포즈를 잡고 위협을 하는 아랍의 무사와 맞닥뜨린 존스 박사, 일순간 멈칫하지만 이내 총을 꺼내 한 방에 무사를 쓰러뜨린다. 너무나도 쉽게. 그리고 허무하게. 그리고 극장에서 터져나오는 웃음 소리. 아직까지 그들 문화의 오만성을 알아채지 못하셨다면 아랍 무사 대신에 태권도복을 입고 이리저리 자세를 바꾸며 위협을 하는 한국인을 그 자리에 대입시켜보기 바란다. 가소롭다는 듯이 한방에 쓰러뜨리는 존스 박사의 치졸한 오만함은 유머로만 봐주기에는 너무나도 오만방자하지 않은가.
--- p.2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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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발소를 이용하다보면 두 가지 색다른 풍경을 경험할 수 있다. 이발소 아저씨, 아줌마들은 카투사한테는 마치 적체된 물건들 처리하듯(물론! 다 그렇지는 않다) 대충대충 깎고 퉁명스럽게 “거기 쿠폰 놓고 가세요”라고 하는 반면, 미군에게는 작품 만들듯 엄청난 공을 들여가며 끝에는 마사지까지 해주는 그 모습들….
물론 처음에는 이상해 보였지만 ‘돈 안 내고 깎는 것도 어딘데’라는 얄팍한 심정으로 그 풍경엔 큰 의미 부여를 하지 않았다.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Main post 이발소에는 사람이 득실득실했다. 5~6사람인가 기다려 내 차례가 되었고, 나를 담당하는 아주머니 ‘어떻게 깎으시겠어요’란 말도 없이 서슬 퍼런 가위를 들이대는 것이었다. 대꾸하기도 귀찮고 ‘군인이 무슨 스타일 따지긴…’이란 생각도 들어 가만 있는데, 자리에 않기 무섭게 불과 2분여 만에 다 끝났다는 것이었다. 본인 그때 한 달 동안 머리를 안 깎았고 그 동안 십수 년 머리를 깎은 경험으로 미루어볼 때 도저히 2분 만에 해결될 수준은 아니었다. 더군다나 거울을 보니까 군데 군데 머리가 삐져나오고 잔털 제거도 안 되어 있었다. 이게 무슨 장난도 아니냐 싶어 “아줌마, 다시 깎아 주세요.” 라고 말했더니 다 깎았다는 말씀뿐이었다. 내가 구체적 증거를 제시하며 다시 깎아야 할 필요성을 제기했더니, 아주머니 왈 “이거 사람 바쁜데 군인 아저씨 되게 귀찮게 하네.” 두둥~ 성깔 보통 아니기로 소문난 본인 즉각 반응했다. “아줌마, 나 돈 낼 테니까 다시 깎아주세요.” 분위기 순간 썰렁해졌다. “아니… 뭐 그럴 것까지야….” 얼버무리시는 아주머니 “아니오. 돈 낼 테니까 다시 깎아주시고 마사지도 해주세요.” 그때 본인 쿠폰도 내고 5달러 60센트도 내고 내키지 않는 마사지도 받고 막사로 돌아왔다. --- pp.104~10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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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식을 하기 때문인지 이들은 매우 호전적이다. 좀더 정확히 말해서 정글의 법칙이 지배하는 '정글'에서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는 것 같다. 자신의 의견을 개진함에 있어서도 상대의 기분을 고려하지 않고 도전적으로 하는 경우가 있으며 새로운 사람이 등장하면 얼른 그와 붙어보고 모종의 힘겨루기를 해서 우열을 가리고자 하는 욕구를 참지 못 한다. 결국 자신보다 강한 것이 판명되면 스스로 꼬리를 내리고 그 아래 자리로 위치해 떨어지는 음식 찌거기를 잘도 받아 먹는다. 반면에 자기보다 약한 것으로 승부가 나면 그 순간부터는 철저하게 자신의 발 아래 두고 숨통을 조이려 한다. 그리고 조금이라도 반항하려는 기색이 있으면 더욱 철저하게 짓밟는다. 이와 동시에 자신에게 꼬리를 내리고 오는 약자에게는 '강자의 우월함에서 나오는 너그러움'으로 이들을 받아주고 정말 가장된 상냥함으로 약자를 돌보아 준다. 필자가 피터슨 중사로부터 받은 '보호'는 바로 이러한 류의 것이었다.
--- p.3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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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나라에서 벌어지는 미국과 관련된 일련의 사고들에서 본인은 저들의 '진정한 사과'를 보지 못했다. 손꼽으라면 '노근리 학살 사건', '독극물 방류 사건'정도인데, 그것도 유감 수준이다. '우는 아이'의 잘못을 탓하기보다 달래온 정부를 비롯한 고위층의 태도가 이제는 그들에게 '모르쇠'처럼 입 다물어도 된다는 면죄부(?)를 준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일반 국민들은 미국의 비도덕성을 심정적으로 탓할 수는 있어도 '단죄'할 수 없다. 그 만큼 힘이 없기 때문이다. 우리 나라 '실력자'들도 비도덕적 미국에 대해 '철썩철썩'때려줄 수 있는 냉철하면서도 과감한 태도를 볼 수 잇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우리 나라는 그저 '버릇 없는 아이들'이 마음대로 놀 수 있는 '놀이터'가 아니기 때문이다.
--- pp. 121-2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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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전 스티븐 스필버그감독의 <라이언 일병 구하기>라는 영화가 공전의 히트를 친 바있다.
... ... 그러나 그 영화를 보는 카투사의 100중 100은 라이언 일병이 '흑인'이었다면 아무도 구하러 가지 않았을 거라는 사실을 할고 있다. 또 그를 구해냄으로서 정치적인 선전 효과가 없을 존재였다면 그는 과감히 희생되었을 것 또한 알고 있다. 따라서 라이언은 당연히 백인 중산층 가정의 자손으로 선택된 것이고 영화에서처럼 여러명의 목숨을 희생해가면서 그 어머니의 소원은 성취된 것이다. --- p.146-14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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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국심도 아니고 폭력에의 호소도 아닌 미군 군기 유지의 비결은 그렇다면 과연 무엇일까? 한국의 군대는 구타와 욕설로 군기를 잡던 '그 때 그 시절' 이후 약간의 얼차례, 관등성명 복창, 전투화 닦기, 각종 잔업 등으로 군기를 잡고 잇고, 점차 군의 이미지 개선으로 인해 군에서 폭력은 사라지고 있다고 한다. 하지만 우리에겐 그나마 애국심이 있건만 미군들은 고작 해 봤자 '엎드려 뻗쳐' 정도로 군의 위엄을 잡고 있다. 언뜻 보기엔 별호과도 없는 듯 싶다.
하지만 여기서 미국식 가치관의 가장 중요한 기본인 '내등을 듥어주면 나도 네 등을 긁어주마(Scratch my back and I'll scratch yours)'식 사고를 접하게 된다. 바로 내가 나의 상관에게 존경을 보이지 않으면 내가 상관의 윛에 섰을 때 나 역시 존경을 받지 못한다는 생각에서 군기 아닌 군기가 스스로 잡히게 된다는 것이다. 이러한 합지럭이고도 이성적인 생각이 미국이란 국가의 기본적 국민사상으로 바탕이 되어 있기에 월급 받고 총을 잡는 미군들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되는 듯 싶다. --- p.60-6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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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이 친하게 어울려 지내던 미군이 주말에 한국 구경을 시켜달라고 한 적이 있다. 솔직히 쉬고 싶은 마음이 더 많았고 게다가 자비 들여가면서 구경시켜준다는 것이 군인 신분에 쉬운 일은 아니었지만 좋은 일 하는 셈치고 데리고 나갔다. “Can you?” 이 애끓는 한마디에 미안해서, 마음 약해서, 사람이 그래선 안 될 것 같아서. 결국 돈은 돈대로 쓰고 피곤에 지쳐 부대로 돌아왔다. 얼마 지나지 않아 더욱 친해진 그에게 이 정도 부탁은 괜찮겠지 싶어서 몇 가지 번역물을 들고 가서 그의 방문을 노크했다. 문이 열리자 파자마 차림으로 그 친구가 나왔다. TV를 보다 나온 것이 틀림없었다. 그런데 안으로 들어오란 소리도 없이 그는 문 앞에서 당돌하게 얘기한다.
“Well, I’m busy now.” (글쎄 나 지금 좀 바쁜데.) 지금은 귀찮으니 나중에 하자는 정중한 거절이었다. 반대로 미국 구경을 필자가 공짜로 받았더라면 뭔가 부탁하러 온 그에게 자다가도 뛰쳐나가 도움을 주지 않았을까? 하지만 그에게 뭐라고 할 수는 없었다. 그들의 문화가 원래 그런 것을. 평양감사도 저 싫으면 그만인 그들의 삶 앞에서 오고가는 정의 중요성을 설명하고 있어봤자 이해도 못할 테고, 그런 것에 얽매이지 않고 자기 하고 싶은 대로 하는 것이 당연한 그들에게 납득할 만한 이유를 댈 자신도 없어 그냥 포기하고 말았다. --- p.7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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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년 전과는 달리, 이제는 햄버거를 손으로 먹을 수 있는 우리의 모습을 보고 이 미군은 대견스러워하고 있다. 그런데 정작 우스운 것은 햄버거 먹는데도 그 어떤 '법칙'이 있는가 하는 점이다. 햄버거를 포크로 찍어 먹든, 쌈을 싸서 먹든, 죽으로 끓여서 먹든 뱃속으로만 잘 들어가면 소기의 목적은 달성하는 것이 아닐까? 또 굳이 그들의 방식이 옳다고 고집할 수 있는 근거는 무엇인다. 김치나 불고기처럼 전통이 확실한 음식도 아닌 주제에 말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타 문화에 대한 관용주의(똘레랑스)의 면에서 이들의 점수는 빵점에 가깝다. 반대의 경우를 생각하면 이해가 쉬울지도 모르겠다.
--- p.1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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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주한 미군을 통해 미국의 긍정적 인식 뒤에 숨겨진 진짜 모습을 파헤치고 있다. '세계 평화의 전도사', '정의로운 휴머니즘의 나라'라는 허울은 미국이 주도면밀하게 만들어낸 이미지일 뿐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지구상 최강의 나라임을 자칭하는 미국을 단지 약자를 깔보고 괴롭히는 '골목대장'에 불과하다고 역설한다. 한편 이러한 골목대장식 '힘의 논리'를 그들 상호간에 팽팽히 흐르는 '약육강식' 사고를 통하여 밝히고 있다.
지금까지 미국의 본질을 다루었던 글들이 일부 고급 독자에게만 소구력을 가질 수 있었던 것에 비하여, 이 책은 비교적 소프트한 글솜씨와 일러스트가 더해져 보다 넓은 독자층에게 쉽게 다가갈 수 있다는 점이 특색이다. 남의 땅에서도 홈그라운드에서보다 더욱 활개를 펼치는 이상한 이방인 주한 미군, 그들의 근거 없는 우월 의식으로 인한 불공평한 처사들, 자문화 제일주의와 미국 방식만이 최선이라는 오만과 독선 등 주한 미군을 통해 본 미국은 지금까지의 긍정적 이미지에 의문을 던지기에 충분하다. 이 책은 미국 문화의 장단점을 살펴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본국에서는 절대 관찰할 수 없는 이방인으로서의 모습까지 담고 있다는 점에서 다른 문화체험서와 구별된다. 우리는 NBA와 메이저 리그 선수들의 화려한 기술을 보면서 마치 '미국인의 일원'이 된 듯 느끼고, 올림픽까지 출전한 미 프로 선수를 통해 당연한 듯 '미국의 승리'를 기원한다. 또 헐리우드 블록버스터의 저변에 흐르는 정의·사랑·우정이 빚어내는 감동으로 위대한 아메리카를 그리고, 수많은 군대 관련 영화를 보면서 '역시 세계 평화의 전도사는 미국!'임을 재확인한다. 이렇듯 상대방에게 별다른 거부감 없이 '미국 제일주의'를 전달하는 미국의 전략은 정치적 차원에서의 '패권주의'보다 한 수 높은 것임에 틀림없다. 미 국방성이 군대 관련 영화 제작에 지원을 아끼지 않는 진짜 이유가 전세계에 배치된 미군의 부정적 이미지를 무마시키기 위한 것에 있듯이 말이다. 그리고 얼마 전 '박찬호 메이저 리그 중계권' 문제만 하여도, 당시 한국 시장을 '봉'으로 여기고 배팅을 주도한 메이저 리그 사무국은 논외로 빠진 채 우리 방송국 간의 과열 경쟁으로만 치부하고 비판했던 경험이 있다. 이는 곧 우리도 '스포츠를 통한 미국의 지배'에 편입되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미국은 자국의 긍정적 이미지를 위하여 스포츠, 엔터테인먼트뿐 아니라, 정치, 경제, 사회 심지어 대통령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스타 시스템을 활용하며, 언론과 매스미디어를 이용하여 매우 주도면밀하게 움직인다. 그리고 우월하기 위해 항상 치열하다. 이러한 그들을 지배하는 사고방식은 강자에겐 약하고, 약자에겐 강한 '정글의 법칙'이다. 따라서 낯선 자의 등장은 언제나 힘겨루기로 이어지고, 나이와 계급도 초월하는 패자의 항복과 언제 그랬냐는 듯 멋지게 포용하는 강자의 너그러움으로 끝을 맺고는 한다. 이러한 사고는 그들의 일상뿐 아니라 문화, 정치, 경제, 국제 정치에 일관되게 표출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