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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말
1. 누가 생각이 없으며, 누가 태어남이 없는가? 2. 마니주를 사람들은 알지 못하니 3. 말하든 침묵하든 움직이든 고요하든 4. 다만 근본을 얻을 뿐 5. 하나의 달이 모든 물에 두루 나타나고 6. 바로 지금 이 자리를 떠나지 않고 7. 있음과 없음을 모두 버리니 8. 경계는 고요하고 숲은 한가하여 9. 이미 성불하여 지금에 있다 10. 사람도 없고 부처도 없다 부록: 증도가 전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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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앞의 사물이 나의 바깥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대상사물의 존재가 바로 내 존재의 증거입니다. 주관과 객관은 늘 한 덩어리로 동시에 드러납니다. 자신이 객관과 상대되는 하나의 개체로서 주관이 아니라, 그 모든 것을 아우르는 전체, 둘 아닌 하나임을 깨달아야 합니다. 분리된 존재라는 착각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우리는 아무것도 아닌 동시에 존재하는 모든 것입니다. 분리는 없습니다. 분열은 착각입니다. 분별은 망상입니다. 바로 지금 이 글과 이 글을 읽는 나는 분리되어 있지 않습니다. 동시에 전체로서 드러납니다.--- p.12~13
마음이니 깨달음이니 하는 말에 속아서 그 말에 해당하는 무언가를 생각으로 찾아 나설 것이 아니라, 바로 그 자리에서 그 말이 가리키는 바를 당장 보아야 합니다. 이미 보고 있는 그것을 보는 겁니다. 우리의 본래면목이며 한시도 우리 곁을 떠나지 않고 있는 것, 얻을 수도 없고 잃어버릴 수도 없는 것, 텅 비어 고요하면서도 신령스럽게 아는 것, 이 모든 말마디가 무엇을 가리킵니까? 생각으로 무언가를 찾지 않는다면 지금 당장의 이것이 무엇입니까?--- p.79~80 자신도 모르게 세워 놓았던 자기와 세계 사이의 경계, 나와 법 사이의 관문이 한순간 사라지는 일이 반드시 있습니다. …… 말 그대로 툭 트여 모든 경계와 관문이 일시에 사라져야 합니다. 본래 없었던 것이었음을 깨달을 때에만 일시에 모든 경계와 관문이 사라집니다. 깨달음은 자신도 모르게 스스로를 가두어 두었던 생각의 틀에서 벗어나는 일일 뿐입니다. 그래서 바깥에서 얻을 수 있는 것은 없다고 하는 것입니다. 헛된 꿈이나 환상 같은 마음의 감옥에서 벗어나는 것이기에 얻는 것도 없을 뿐만 아니라 잃는 것도 없습니다. 그것을 이야기하자니 있는 그대로다, 늘 여여(如如)하다 할 뿐입니다. --- p.150 말을 배운 이후 형성된 우리의 의식구조는 기본적으로 주관과 객관, 나와 나 아닌 것의 이분법을 기초로 하고 있기 때문에 자연스레 내가 뭔가를 구한다, 내가 뭔가를 찾는다, 내가 수행해서 깨닫는다는 생각의 굴레를 벗어나기 어렵습니다. 그래서 이 공부는 사람을 만나는 것이 중요합니다. 깨달음을 찾고 구하는 수행이 어째서 잘못된 일이고 어리석은 사실인지 이미 맛본 사람의 가르침이 없다면 얼마나 많은 시행착오를 겪어야 할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p.159~160 이 공부는 우리의 일반적인 예상과는 전혀 다릅니다. 이 공부는 우리 의식구조의 근본적인 변화, 인식의 전환입니다. 마치 꿈이라는 허상에서 깨어나는 것과 같은 질적인 변화이기에, 깨달음이라 이름합니다. 깨어나면 꿈속의 어떤 것도 사실이 아니듯, 깨닫게 되면 깨닫기 이전의 모든 생각, 수행은 헛된 것입니다. 그래서 깨닫기 이전의 수행, 공부는 진정한 의미에서의 수행, 공부가 아니라고 하는 겁니다. 꿈속의 노력으로 꿈속의 결과를 얻는 행위 전체가 그저 헛된 꿈일 뿐, 그런 일은 실재하지 않습니다. --- p.16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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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도가, 마음을 밝힌 깨달음의 노래
당나라 때 선승인 영가현각 선사는 여덟 살에 출가하여 경전을 두루 공부했고, 천태지관 법문에 정통하였으며, 유마경을 보다가 마음의 근본을 깨달았다. 육조혜능의 제자 현책의 권유로 혜능 대사를 찾아가 문답하여 인가를 받았다. 그 후 증도가(證道歌)를 지었는데, 증도가는 깨달음의 진수를 잘 밝혀 놓았으므로 예로부터 선종의 고전으로서 널리 애송되었다. 이 책 《깨달음의 노래》는 증도가를 재료로 삼고 있는데, 자구의 해설이 목적은 아니다. 그보다는 영가현각 스님이 간절하게 알려 주고자 하는 불멸의 진리, 언제나 유일하게 지금 여기에 있는 ‘이것’을 곧바로 가리켜 보여서 누구나 눈앞의 진실에 눈을 뜨고, 그리하여 스스로 깨달음을 노래할 수 있게 하려는 것이 목적이다. “여기에서는 《증도가》의 말 구절을 해설하고 학문적으로 분석하는 일 따위는 하지 않는다. 오직 바로 지금 여기 이 글을 읽고 있는 자기 자신을 있는 그대로 가리켜 보여, 스스로 깨달음을 증득하여 자신만의 깨달음을 노래하게 만드는 것이 유일한 목적이다. 자기 자신을 벗어난 바깥에 진리와 도(道), 부처와 깨달음이 있지 않다. 모든 것이 바로 지금 여기 눈앞을 벗어나 있지 않다. 한 생각 일으켜 찾아 나서기 이전에 있던 것이 우리의 본래면목이다.”(머리말) 우리가 모르는 단 하나! 우리가 알아야 할 단 하나! 부처님의 법문이 팔만 사천 가지나 된다고 하지만, 그 모든 법문이 결국 가리키는 것은 단 하나다. 조사들과 선사들의 법문과 선문답 역시 헤아릴 수 없이 많지만, 그 모든 법문이 가리키는 것 역시 단 하나다. 그 하나가 무엇인가? 우리는 수없이 많은 것을 알지만 정작 진정한 자기 자신이 무엇인지는 모른다. 우리가 흔히 자기라고 믿고 있는 것은 하나의 몸이며, 생각ㆍ느낌ㆍ감정ㆍ이름 등 그 몸과 관련된 것들이다. 그렇게 자기를 분리된 개인이라고 믿는 순간, 나와 너가 따로 있고, 나와 세상이 따로 있으며, 안팎의 세상이 무수히 많은 것들로 조각조각 나뉘어 있다고 믿게 되었다. 몸이 죽으면 자기 자신도 죽는다고 믿어 두려워하게 되었으며, 근원적인 불안과 번뇌의 감옥에 갇혀 시달리게 되었다. 그런데 그 모든 믿음들은 과연 진실한 것인가? 지은이는 말한다. “내가 따로 있고 나 바깥에 세계가 따로 존재한다는 것이 바로 무명(無明), 곧 어리석음입니다. …… 나와 세계는 곧 하나의 전체로서 분리되지 않습니다. 문득 이 모든 것이 하나의 전체로서 확인되는 순간, 우리는 항상 진리만이, 깨달음만이, 이름하여 불성만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 모두가 하나의 신령스러운 지각의 빛이 빚어낸 작용입니다. 눈앞에 드러난 이 잡다한 현상세계가 바로 깨달음의 세계입니다. 눈앞을 벗어난 다른 세계는 없습니다. 눈앞을 떠나지 마십시오.”(14쪽) 우리가 온갖 번뇌에 시달리는 이유는 존재의 실상, 즉 참된 자기 자신을 모르고 있기 때문이며, 이 무지(無知)가 모든 문제의 근본적인 원인이다. 따라서 모든 번뇌에서 해탈하여 참된 평화를 누릴 수 있는 길은 오로지 이 무지의 그물에서 벗어나 진정한 자기가 무엇인지를 깨닫는 길밖에 없다. 그런데 바른 선지식(善知識)의 지도를 받은 공부인이라면 깨달음은 자기 바깥에서, 혹은 미래에, 혹은 따로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다. 본성이라는 이름이 알려 주듯이 그것은 본래 늘 있는 것이며, 항상 지금 여기에 변함없이 있는 것이며, 나의 바깥에 따로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필요한 것은, 바깥을 보고 있던 눈길을 180도 돌려서 지금 ‘보는 자’를, 지금 당장 여기에 있는 자기의 진실을 문득 알아차리는 것뿐이다. “가만히 있으십시오. 눈앞에 드러난 나와 세계를 바라보십시오. 나와 세계가 드러나는 변함없는 바탕이 바로 진정한 나, 변함없는 성품입니다. 생각할 필요조차 없이 즉각 확인되는 이것입니다. 헤아려 구하지 마십시오. 헤아릴수록 아득해지고 찾을수록 멀어집니다. 멈추세요. 이게 전부입니다. 다른 것은 없습니다.” 《깨달음의 노래》는 우리가 알아야 할 단 하나의 영원한 진실을 시종일관 분명하게 가리켜 보인다. 분리된 세계 속 개인이라는 허망한 꿈에서 깨어나 근본적인 번뇌망상에서 문득 해방될 수 있도록, 한글세대인 현대인을 위해 증도가 267구에 붙여 간결하고 쉬운 언어로 설법했다. 눈앞의 분명한 진실을 보지 못하도록 가로막는 흔한 오해들과 그릇된 인식들도 바로잡을 수 있게 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