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검색을 사용해 보세요
검색창 이전화면 이전화면
최근 검색어
인기 검색어

소득공제 오늘의책
국화꽃의 비밀
김환희
새움 2001.09.30.
가격
6,500
10 5,850
YES포인트?
330원 (5%)
5만원 이상 구매 시 2천원 추가 적립
결제혜택
카드/간편결제 혜택을 확인하세요

이미 소장하고 있다면 판매해 보세요.

  •  해외배송 가능?
  •  문화비소득공제 가능

이 분야의 이벤트

책소개

목차

감사의 말씀-5/머리말-10/글의 전체적인 구성과 네티즌들의 감상평에 대하여

첫째 마당: 금기로서의 국화꽃과 거울
둘째 마당: 국화꽃의 젠더와 금기로서의 일본신화
셋째 마당: 국화꽃은 과연 이승만일까?
넷째 마당: 국화꽃은 '일왕+아마테라스'일까?
다섯째 마당: 언어의 흑색 요술사
여섯째 마당: 목화, 누님, 직녀의 실체는?
일곱째 마당: 소쩍새, 천둥, 아마테라스의 탄생
여덟째 마당: 거울, 누님, 아마테라스의 귀환
끝마당: '시인부락의 족장'이 되어서는 안될 '부족방언의 요술사'
松井伍長 頌歌(마쓰이 히데오 송가)·서정주
전두환 탄신 56회 축시(1987)·서정주

미당의 친일시를 직접 대하고서 2001.6.27 해넘이
창비무명인님의 <국화꽃의 비밀> 감상문 2001.7.4 최덕천(쑈쑈쑈)
백낙청 선생님께 올리는 편지 2001.7.18 김환희(창비무명인)
창비무명인님의 미당 글에 대한 인상을 정리하면서 2001.8.29 임석남(satgatlim)
창비무명인님의 언어행위에 관하여 2001.9.5(satgatlim)

글쓴이의 자기 소개

저자 소개 1

金歡姬

옛이야기 연구자, 아동문학평론가. 여러 대학에서 옛이야기를 비롯해 아동문학과 비교문학 강의를 해 왔다. 어린이와 어른, 동양과 서양, 과거와 현재의 경계를 넘나들면서 자유롭게 문학을 공부하며, ‘옛이야기’를 화두로 삼아 우리나라와 다른 나라의 옛이야기를 비교하면서 우리 옛이야기가 지닌 보편성과 특수성을 연구하고 있다. 쓴 책으로 『국화꽃의 비밀』 『옛이야기의 발견』 『옛이야기와 어린이책』이 있다.

김환희의 다른 상품

품목정보

발행일
2001년 09월 30일
쪽수, 무게, 크기
147쪽 | 271g | 크기확인중
ISBN13
9788988537237

책 속으로

하지만 미당은 '부족 방언의 요술사' 내지 마술사는 될 수 있을지언정, '시인 부락의 족장'이 될 수 없는 인물, 되어서는 안되는 인물입니다. 부족방언의 마술로서의 재능이 출중한 시인의 경우, 그를 족장으로 선출하기에 앞서, 우리는 그의 사상을 조금 더 면밀히 검토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마술사적 능력은 뛰어나지만 사상이 문제점이 흑색 마술사가 시인부락의 족장이 된다면, 그의 흑색 마술이 은밀한 형태로 부족사회에 미칠 수 있는 폐해는 심각합니다. 왜냐하면 저급한 흑색 '마술사-족장'의 경우 그 실체는 금방 백일하에 드러나게 마련이지만, 고급한 흑색 '마술사-족장'의 경우 그 실체가 그럴듯한 허울에 가려져 있어서 그 진실을 쉽사리 가늠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 p. 102

저는 당시의 문화적 시대적 상황과 미당의 시작법을 고려해서 <국화 옆에서> 읽기의 또다른 가능성을 제시했을 따름입니다. 미당이 그 시를 창작한 후 발표하기까지 일여 년이 넘는 세월이 흐른 것은 그 시에 등장하는 일본문화와의 맥락 속에서 '황국'의 상징성이 지니는 문제점을 고려했기 때문일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1946년 11월에 신일본헌법이 공표될 당시에 그 시를 발표하면 '황국=천황'이라는 등식이 너무도 분명히 세인에게 각인될 뿐만 아니라, 당시의 미당의 문화적 권력이 그다지 강하지 못했기 때문에 공격당할 위험성이 컸을 것입니다.

(중략)

어쨌든, 30여 년간 일제강점기를 경험한 미당이 황국이 일본문화권에서 지니는 상징성을 모를 리가 없었을 텐데, 해방 얼마 후에도 황국을 찬양하는 대담성(?) 내지 무신경을 드러냈다면, 그 사실 자체가 이미 이승만과 미군정 때문에 반민족적 친일행위를 제대로 단죄하지 못한 당대의 치욕스런 한국역사를 그대로 반영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 p. 129

미당은 자신을 종천순일파로 칭한 저의는 스스로의 친일행위를 '하늘'의 뜻을 따른 것으로 합리화함으로써 일제 강점기에 어쩔 수 없이 창씨개명했던 수많은 국민들의 공감을 얻기위해서였지만, 아이러니컬하게도 이 명칭은 미당의 삶전반을 통해 지속되어 온 그의 독특한 인생관내지 세계관을 가장 잘 정의한 단어입니다.

104 p.

더군다나 일제 강점기라는 치욕스런 역사를 살아온 우리 국민에게 있어서 황국은 신중한 고찰이 필요한 상징입니다. 황국이 거울과 함께 등장할 경우엔 더욱 그렇습니다. 왜냐하면 황국은 일본에서 지난 14세기 이후로 일왕과 그 가문을 상징하는 문장이었고『고사기』를 보면 거울은 일왕이 현인신의 위상을 획득하는 데에 결정적 역할을 한 상징물이기 때문입니다. 루스 베네딕트의 『국화와 칼』이란 책을 보아도 알 수 있듯이, 국화는 칼과 더불어 일본 제국주의를 표상하는 상징물이었습니다. 황국은 왕실의 문장으로서 왕실 가족의 모든 휘장을 장식했을 뿐만 아니라 여러 다양한 형태 -일왕의 예복, 일본국가훈장, 일본우표, 태평양전쟁에 참전한 병사들의 무기 등등- 로 일본 제국주의 문화와 삶 속에 스며들었습니다.

서구에서 발간되는 각종 세계 상징 사전을 살펴보아도 국화꽃은 일차적으로 태양을 상징하는 꽃이며 일본왕실 내지 제국주의를 대표하는 상징물로 소개되고 있습니다.

--- p. 27

출판사 리뷰

네티즌 사이에 일대 충격을 불러왔던 '창비무명인'의 바로 그 논문.
추리소설적 서술로, 마치 퍼즐 게임을 하듯 묻혀진 진실을 밝혀냅니다.

세일러 문의 요술봉이
왜 한 송이 국화꽃으로 이루어졌는지?
『다섯 별 이야기 The five star story』 주인공 이름이 왜 아마테라스인지? 왜 그의 머리에 국화꽃이 꽂혀 있는지?
일본 왕실의 문장(紋章)이 왜 국화꽃인지?
미당의 〈국화 옆에서〉는 오늘날 왜 국민적 애송시가 되어 있는지?
<국화 옆에서>의 국화가 상징하고 있는 것은 실제 무엇인지?


1
'국민적 애송시 1호'로 불리는 <국화 옆에서>를 우리 국민은 지난 몇십 년 간 국어교과서를 통해 배워왔다. 국어시간에 선생님의 자상한 해설과 더불어 배운 <국화 옆에서>는 그 모범답안이 분명한 시(詩)였다.
과연 <국화 옆에서>는 그렇듯 모범적인 시인가? 이 땅의 꿈나무들이 무의식적으로 배우고 암기해야 할 만큼 정말 좋은 시일까? '노오란 꽃잎'을 지닌 '한 송이의 국화꽃'은 일제 강점기라는 치욕스런 역사를 지닌 우리 민족에게는 예사로울 수 없다고 작가는 주장한다. 한 송이의 황국(黃菊)은 일본왕실의 문장(紋章)이며, 일본 제국주의의 상징이다. 해방 바로 직후 미당이 황국(黃菊)을 바라보며 <국화 옆에서>를 지었을 때, 과연 그는 황국(黃菊)을 친누님 같은 예사로운 꽃으로만 생각했을까? 미당은 일제 강점기에 태어나 일장기를 국기(國旗)로 섬기고 일본어를 국어(國語)로 여기며 성장해왔다. 또 조선인 가미가제 특공대원의 죽음을 극구 찬양한 <마쓰이 히데오 송가>를 쓸 정도로 친일행각이 남달랐던 시인이다. 과연 그런 미당이 노래한 '한 송이의 국화꽃'의 진실은 무엇일까? 저자의 이러한 의문과 반성은 지금까지 심증만 있던 비밀스러운 서정주의 시 세계에 칼을 들이댔다.

2
"일본의 문화적 제국주의가 우리 청소년들의 내면을 눈에 띄지 않는 형태로 음험하게 공략해 들어오고 있는데, 우리는 아직도 미당의 <국화 옆에서>를 문학교과서에 실어, 좋은 시의 본보기로 가르치는 잘못을 범하고 있습니다. 문학 교사들이, 일본 문화의 제국주의적 공략에 효율적으로 대응하지는 못할말정, 황국(黃菊)을 '관조의 경지에 이른 친근한 누님'의 비유로만 가르친다면 이는 너무도 위험천만한 일입니다. <국화 옆에서>의 시인에게 추서되어야 할 상은 국화문양이 새겨진 일본의 일등공로훈장이지 우리 민족의 금관문화훈장은 아니라는 사실을 아이들에게 알려줄 필요가 있습니다”라는 본문 속 필자의 말에는 절박함이 묻어난다.
필자의 절박한 목소리와 달리 이 논문의 논지는 정교하고 정치해서 설득력이 있다. 필자는 기존의 <국화 옆에서> 읽기의 문제점으로 첫째, 3연에 등장하는 거울과 그 국화꽃이 노오란 꽃잎을 지닌 황국(黃菊)이란 점이 간과되고 있다는 것, 둘째, 국문학자나 평론가들의 비평적 관심이 부재하다는 것, 셋째, 시를 구성하는 이미지들의 배합이 비상식성과 반전통성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것, 넷째, 시 해석에 있어 신화적 읽기가 부재했다는 것 등을 들었다.

미당은 일제강점기에 성장하여 조석으로 천황의 황국과 삼종신기의 하나인 거울에 경배하는 종천순일(從天順日)의 삶을 살다 간 사람이다. 그런 미당의 시 세계를 분석하면서 여태껏 평자들이 서구 고대신화 및 성경, 한국 신화에만 연결지어왔다는 것은 그의 시를 이해하는 데 있어서 결정적인 영역을 포기한 셈이라는 게 필자의 주장이다.
미당의 시와 일본신화와의 연계 혐의는 곳곳에서 드러나는데, 미당의 또다른 시 '목화'(木花)를 보면, 일본신화에서 목화는 벚꽃으로, 또 일본황실의 대모(大母)인 목화는 죽음이라는 극한 상황을 자초할 정도로 한(恨)을 지닌 여인의 모습으로 나타난다고 밝히고 있다.

본래는 전통적으로 절개와 지조를 지닌 선비를 상징하던 국화꽃의 이미지를 여성성으로 바꿔 '친근한 누님의 이미지'로 바꾼 점이나 한송이 국화꽃의 탄생을 노래하는 시에 있어서, 소쩍새, 천둥, 먹구름, 울음, 무서리, 불면 등 너무도 어둡고, 차갑고, 불길한 느낌을 주는 시어들이 쓰였음을 지적하면서, 이것이 사실은 <고사기>와 <일본서기>에 묘사된 태양신 아마테라스-천황의 탄생과정과 놀라울 정도로 흡사하다는 점도 밝혀주고 있다.

3
애초 이 논문은 '창비무명인'이라는 아이디를 쓰는 한 네티즌에 의해 지난 여름 한 출판사의 자유게시판에 분재되어 올려졌던 글이다. 거기에 많은 부분이 보완되었고 또 책의 말미에 당시 한창 뜨거웠던 논쟁의 당사자들의 글을 덧붙였다. 본문 중에는 미당의 친일시 <마쓰이 히데오 송가>와 <전두환 탄신 기념 축시>도 함께 실어 일반 독자들에게도 미당 시세계의 일단을 엿보게 했다.
발표 당시 많은 문학인들의 관심을 끌어모으기도 했던 이 논문은 '자칫 선정적으로 흐르기 쉬운 주제를 인터넷의 장점을 충분히 활용, 풍부한 자료제시를 통해 심도있는 분석과 정치한 논리로 극복했다'는 평을 받았다.

추천평

(전략)

창비무명인님의 진지한 자세와 폭넓은 자료섭렵, 선행연구자들에 대한 기탄없는 비판 등은 이미 여러 독자들이 칭송한 바 있으니 제가 더이상의 찬사를 보탤 필요는 없겠습니다. 그보다는 "미당이 '부족방언의 마술사'라고 해서 '시인부락의 족장'이라는 월계관을 씌우는 것은 잘못된 일입니다"(연재 4회, 6/27)라는 님의 주장(이며 결론)에 저도 충심으로 동의한다는 점을 말하고 싶습니다. 한국어를 능수능난하게 다룬 시인의 재능과 업적을 부정하지 않으면서도 그것만으로 최고의 시인에게나 돌릴 영예를 인정해주어서는 안된다는 말씀이겠지요.

(중략)

이 문제는 나중에 다시 얘기하기로 하고, 미당 서정주에 대한 이러한 결론이 나오기까지 창비무명인님께서 공들여 수행하신 '국화 옆에서'의 새로운 해석에 대해 몇마디 해보지요.

이 해석은 제가 아는한 확실히 새로운 해석이며, 작품에 대해 적어도 저 자신은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여러가지를 생각케 해준 값진 비평입니다. 그러나 저의 결론부터 먼저 말씀드리면, '국화꽃=천황+천조대신'이라는 논지를 입증하는 데 성공하신 것 같지는 않아요.

무엇보다도, "<국화 옆에서>의 창작시점과 천황의 인간선언 시점이 다같이 1946년 무렵인 데다, 인간선언 후 현인신에서 평범인으로 돌아온 히로히토왕의 이미지와 4연에 묘사된 늦가을 무서리 속에 피어있는 국화꽃의 이미지가 많이 유사하다"(8회, 7/2)라는 주장이 사실이라 하더라도, 이 시기에 현인신(現人神)의 몰락을 동정하며 시를 쓰는 시인의 모습은 님 스스로 강조하신 '종천순일파(從天順日派)' 서정주의 모습에 어울리지 않습니다. 해방이 된 뒤에도 일황에 대한 충성심과 애착을 간지한 채 이런 시를 쓸 정도라면 오히려 '역천친일파(逆天親日派)'요 (제 주변의 어느 분 표현대로) 일종의 친일지사(親日志士)가 아니겠습니까. (해방전 창작설로 돌아가더라도 역시 비슷한 문제에 부딪칠 것 같아요.)

황국이 일본 황실의 상징이라는 사실이 '국화 옆에서'를 읽는 대다수 한국 독자들에게 큰 의미를 갖기 어렵다는 (김흥년님 등 몇분의) 지적은 그 자체로서 님의 논지를 뒤집는 것은 아닐 겁니다. 그러나 천황(또는 천황+천조대신)의 상징으로서의 황국을 다룬 '부족방언의 마술'이 마술로서 제대로 먹혀들지 않고 있다는 지적으로서는 설득력을 갖지 싶네요.

그런데 황국이 곧 천황이요 '국화 옆에서'가 곧바로 천황 또는 천조대신을 노래한 시라고 주장하는 대신, 일본의 신화나 전설의 깊은 영향이 시인의 상상력과 감수성 속에 (십중팔구 무반성적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쪽으로 논지를 완화한다면 훨씬 그럴법하지 않을까요? 그리고 이 경우에도, "왜 학자들은 일제 강점기에 태어나 성장한 미당의 시들을 일본문화와 연계시켜 읽을려는 시도를 그동안 하지 않은 것일까? 지난 50년 간의 우리의 학문적 풍토라는 것이 일본의 문화적 상징과 신화들을 언급하는 것 자체를 금기시할 정도로 폐쇄적이었던 말인가?"(3회분 보론, 6/26)라는 또하나의 심각한 문제제기는 여전히 유효할 것입니다.

(중략)

국화 옆에서'를 제대로 감상 또는 비판하는 데도 빼놓을 수 없을 듯합니다. 이 시를 좋아하는 독자에게든 친일시로서 경계하는 창비무명인님 같은 분에게든, 작품의 가장 특징적인 대목은 '내 누님 같은 꽃'이 나오는 제3연일 거예요. 그리고 이 국화는, 님이 인용하신 이어령교수가 지적했듯이, 동양의 전통적 사군자(四君子) 가운데 하나이며 '오상고절(傲霜孤節)'의 상징으로서의 국화와는 많이 다른 성격입니다.

그런데 정작 우리가 문학독자로서 따질 문제는, 달라서 어떻게 됐나는 것입니다. 이어령교수의 판단처럼 시의 성공에 결정적으로 기여하느냐 아니면 1, 2연 및 4연의 흐름에서도 벗어나면서 시적 효과를 손상하고 있느냐는 거지요. 님은 딱히 후자의 주장을 펼친 것 같지는 않고, 시의 '요술'이 성공하긴 하는데 친일정서에 물든 '흑색 요술'이라는 입장이시라는 인상입니다. 제가 바로 읽었는지 모르겠습니다만, 아무튼 저 자신은 제3연이 특징적인 건 분명하지만 작품상의 결함에 해당한다고 봅니다. 연전에 어느 글에 쓴 적이 있습니다만, 그나름의 아름다움을 지녔지만 "사춘기적 정서가 다분히 남은" 대목이라 생각되거든요. 그에 비한다면 제가 그때 거론하던 고재종(高在鍾) 시인의 '고절'은 "그런 감정의 사치를 누릴 여유가 없는 농군의 시요 현대인에게 요구되는 '오상고절'을 표상한 국화시"로서 오히려 한 수 위라고 평가했던 것이지요(민음사 간 <한국 현대문학 50년>에 실린 졸고 '"통일시대"의 한국문학' 중 627-8면 참조).

미당 자신은 나이 들면서 비로소 40대 여인의 미를 제대로 알아보게 되었다고 술회한 바 있지만, 소복 입은 연상의 여인에게 느끼는 묘한 끌림은 사춘기에 흔히 있음직한 감정이며 저자의 의도와 무관하게 바로 이런 사춘기적 정서에 대한 호소가 '국화 옆에서' 이 대목이 많은 독자에게 행사하는 매력의 일부가 아닌가 합니다. 물론 그게 전부란 말은 아니고요. 저자가 이 정일(靜溢)한 여인과 자신을 은근히 동일시하면서 독자도 함께 끌고 들어가는 효과도 있는 것 같아요. (님은 "적지 않은 학자들이 국화꽃을 파란만장한 삶을 거친 후 관조의 단계에 이른 40대의 시인 서정주를 상징하는 것으로 보았는데, 이는 <국화 옆에서>의 발표 시점(1947)과 <서정주시선>에 수록된 시점(1956)을 혼돈한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박광용교수가 지적한 것처럼, 서정주가 이 시를 발간한 때는 32세였으므로, 40대의 중년여인과 동일시한다는 것은 무리가 있습니다. 참고삼아 말씀드리면, 그 당시 히로히토 일왕의 나이는 46세였습니다"(5회, 6/29)라고 하셨습니다만, 30대초의 별로 정일하지 않은 남자로 살면서도 40대의 여인과 자신을 얼마든지 동일시할 수 있는 것이 미당 특유의 요술이자 다분히 상습화된 자기미화이기도 하지 않을까요?)

어쨌든 창비무명인님의 자세한 논의를 읽으면서 '국화 옆에서' 제3연에 대해 제가 막연히 느끼던 불만을 좀더 정밀히 규정할 수 있었습니다. 이 시에 대한 저의 전체적 평가를 말씀드린다면, 각 연이 모두 그나름의 요술을 행사하고 있지만 3연에 끼여드는 독특한 정서--그것이 사춘기적인 것이든 일본문화친연적인 것이든--첫행부터 마지막행까지 빈틈없이 연결되는 요술에는 미달한다는 것이에요. 요술사로서도 허점을 보인다는 거지요.

(중략)

물론 미당시에 대한 저의 전체적인 평가를 말하려면 좀더 긴 시기에 걸친 더 많은 작품을 언급해야겠지요. 지금으로서는 <미당시전집>에는 '국화 옆에서'보다 못한 시도 수두룩하지만 '국화 옆에서'가 결코 미당시의 최고 경지를 대표하는 작품도 아니라는 저의 생각을 알리는 것으로 대신합니다. 이에 관해 일간 한번쯤 더 쓰겠습니다.
--- <디지털 창비> 게시판에서

리뷰/한줄평5

리뷰

8.8 리뷰 총점

한줄평

첫번째 한줄평을 남겨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