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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의 말씀-5/머리말-10/글의 전체적인 구성과 네티즌들의 감상평에 대하여
첫째 마당: 금기로서의 국화꽃과 거울 둘째 마당: 국화꽃의 젠더와 금기로서의 일본신화 셋째 마당: 국화꽃은 과연 이승만일까? 넷째 마당: 국화꽃은 '일왕+아마테라스'일까? 다섯째 마당: 언어의 흑색 요술사 여섯째 마당: 목화, 누님, 직녀의 실체는? 일곱째 마당: 소쩍새, 천둥, 아마테라스의 탄생 여덟째 마당: 거울, 누님, 아마테라스의 귀환 끝마당: '시인부락의 족장'이 되어서는 안될 '부족방언의 요술사' 松井伍長 頌歌(마쓰이 히데오 송가)·서정주 전두환 탄신 56회 축시(1987)·서정주 미당의 친일시를 직접 대하고서 2001.6.27 해넘이 창비무명인님의 <국화꽃의 비밀> 감상문 2001.7.4 최덕천(쑈쑈쑈) 백낙청 선생님께 올리는 편지 2001.7.18 김환희(창비무명인) 창비무명인님의 미당 글에 대한 인상을 정리하면서 2001.8.29 임석남(satgatlim) 창비무명인님의 언어행위에 관하여 2001.9.5(satgatlim) 글쓴이의 자기 소개 |
金歡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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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미당은 '부족 방언의 요술사' 내지 마술사는 될 수 있을지언정, '시인 부락의 족장'이 될 수 없는 인물, 되어서는 안되는 인물입니다. 부족방언의 마술로서의 재능이 출중한 시인의 경우, 그를 족장으로 선출하기에 앞서, 우리는 그의 사상을 조금 더 면밀히 검토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마술사적 능력은 뛰어나지만 사상이 문제점이 흑색 마술사가 시인부락의 족장이 된다면, 그의 흑색 마술이 은밀한 형태로 부족사회에 미칠 수 있는 폐해는 심각합니다. 왜냐하면 저급한 흑색 '마술사-족장'의 경우 그 실체는 금방 백일하에 드러나게 마련이지만, 고급한 흑색 '마술사-족장'의 경우 그 실체가 그럴듯한 허울에 가려져 있어서 그 진실을 쉽사리 가늠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 p. 10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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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당시의 문화적 시대적 상황과 미당의 시작법을 고려해서 <국화 옆에서> 읽기의 또다른 가능성을 제시했을 따름입니다. 미당이 그 시를 창작한 후 발표하기까지 일여 년이 넘는 세월이 흐른 것은 그 시에 등장하는 일본문화와의 맥락 속에서 '황국'의 상징성이 지니는 문제점을 고려했기 때문일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1946년 11월에 신일본헌법이 공표될 당시에 그 시를 발표하면 '황국=천황'이라는 등식이 너무도 분명히 세인에게 각인될 뿐만 아니라, 당시의 미당의 문화적 권력이 그다지 강하지 못했기 때문에 공격당할 위험성이 컸을 것입니다.
(중략) 어쨌든, 30여 년간 일제강점기를 경험한 미당이 황국이 일본문화권에서 지니는 상징성을 모를 리가 없었을 텐데, 해방 얼마 후에도 황국을 찬양하는 대담성(?) 내지 무신경을 드러냈다면, 그 사실 자체가 이미 이승만과 미군정 때문에 반민족적 친일행위를 제대로 단죄하지 못한 당대의 치욕스런 한국역사를 그대로 반영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 p. 12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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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당은 자신을 종천순일파로 칭한 저의는 스스로의 친일행위를 '하늘'의 뜻을 따른 것으로 합리화함으로써 일제 강점기에 어쩔 수 없이 창씨개명했던 수많은 국민들의 공감을 얻기위해서였지만, 아이러니컬하게도 이 명칭은 미당의 삶전반을 통해 지속되어 온 그의 독특한 인생관내지 세계관을 가장 잘 정의한 단어입니다.
104 p.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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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군다나 일제 강점기라는 치욕스런 역사를 살아온 우리 국민에게 있어서 황국은 신중한 고찰이 필요한 상징입니다. 황국이 거울과 함께 등장할 경우엔 더욱 그렇습니다. 왜냐하면 황국은 일본에서 지난 14세기 이후로 일왕과 그 가문을 상징하는 문장이었고『고사기』를 보면 거울은 일왕이 현인신의 위상을 획득하는 데에 결정적 역할을 한 상징물이기 때문입니다. 루스 베네딕트의 『국화와 칼』이란 책을 보아도 알 수 있듯이, 국화는 칼과 더불어 일본 제국주의를 표상하는 상징물이었습니다. 황국은 왕실의 문장으로서 왕실 가족의 모든 휘장을 장식했을 뿐만 아니라 여러 다양한 형태 -일왕의 예복, 일본국가훈장, 일본우표, 태평양전쟁에 참전한 병사들의 무기 등등- 로 일본 제국주의 문화와 삶 속에 스며들었습니다.
서구에서 발간되는 각종 세계 상징 사전을 살펴보아도 국화꽃은 일차적으로 태양을 상징하는 꽃이며 일본왕실 내지 제국주의를 대표하는 상징물로 소개되고 있습니다. --- p. 2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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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티즌 사이에 일대 충격을 불러왔던 '창비무명인'의 바로 그 논문.
추리소설적 서술로, 마치 퍼즐 게임을 하듯 묻혀진 진실을 밝혀냅니다. 세일러 문의 요술봉이 왜 한 송이 국화꽃으로 이루어졌는지? 『다섯 별 이야기 The five star story』 주인공 이름이 왜 아마테라스인지? 왜 그의 머리에 국화꽃이 꽂혀 있는지? 일본 왕실의 문장(紋章)이 왜 국화꽃인지? 미당의 〈국화 옆에서〉는 오늘날 왜 국민적 애송시가 되어 있는지? <국화 옆에서>의 국화가 상징하고 있는 것은 실제 무엇인지? 1 '국민적 애송시 1호'로 불리는 <국화 옆에서>를 우리 국민은 지난 몇십 년 간 국어교과서를 통해 배워왔다. 국어시간에 선생님의 자상한 해설과 더불어 배운 <국화 옆에서>는 그 모범답안이 분명한 시(詩)였다. 과연 <국화 옆에서>는 그렇듯 모범적인 시인가? 이 땅의 꿈나무들이 무의식적으로 배우고 암기해야 할 만큼 정말 좋은 시일까? '노오란 꽃잎'을 지닌 '한 송이의 국화꽃'은 일제 강점기라는 치욕스런 역사를 지닌 우리 민족에게는 예사로울 수 없다고 작가는 주장한다. 한 송이의 황국(黃菊)은 일본왕실의 문장(紋章)이며, 일본 제국주의의 상징이다. 해방 바로 직후 미당이 황국(黃菊)을 바라보며 <국화 옆에서>를 지었을 때, 과연 그는 황국(黃菊)을 친누님 같은 예사로운 꽃으로만 생각했을까? 미당은 일제 강점기에 태어나 일장기를 국기(國旗)로 섬기고 일본어를 국어(國語)로 여기며 성장해왔다. 또 조선인 가미가제 특공대원의 죽음을 극구 찬양한 <마쓰이 히데오 송가>를 쓸 정도로 친일행각이 남달랐던 시인이다. 과연 그런 미당이 노래한 '한 송이의 국화꽃'의 진실은 무엇일까? 저자의 이러한 의문과 반성은 지금까지 심증만 있던 비밀스러운 서정주의 시 세계에 칼을 들이댔다. 2 "일본의 문화적 제국주의가 우리 청소년들의 내면을 눈에 띄지 않는 형태로 음험하게 공략해 들어오고 있는데, 우리는 아직도 미당의 <국화 옆에서>를 문학교과서에 실어, 좋은 시의 본보기로 가르치는 잘못을 범하고 있습니다. 문학 교사들이, 일본 문화의 제국주의적 공략에 효율적으로 대응하지는 못할말정, 황국(黃菊)을 '관조의 경지에 이른 친근한 누님'의 비유로만 가르친다면 이는 너무도 위험천만한 일입니다. <국화 옆에서>의 시인에게 추서되어야 할 상은 국화문양이 새겨진 일본의 일등공로훈장이지 우리 민족의 금관문화훈장은 아니라는 사실을 아이들에게 알려줄 필요가 있습니다”라는 본문 속 필자의 말에는 절박함이 묻어난다. 필자의 절박한 목소리와 달리 이 논문의 논지는 정교하고 정치해서 설득력이 있다. 필자는 기존의 <국화 옆에서> 읽기의 문제점으로 첫째, 3연에 등장하는 거울과 그 국화꽃이 노오란 꽃잎을 지닌 황국(黃菊)이란 점이 간과되고 있다는 것, 둘째, 국문학자나 평론가들의 비평적 관심이 부재하다는 것, 셋째, 시를 구성하는 이미지들의 배합이 비상식성과 반전통성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것, 넷째, 시 해석에 있어 신화적 읽기가 부재했다는 것 등을 들었다. 미당은 일제강점기에 성장하여 조석으로 천황의 황국과 삼종신기의 하나인 거울에 경배하는 종천순일(從天順日)의 삶을 살다 간 사람이다. 그런 미당의 시 세계를 분석하면서 여태껏 평자들이 서구 고대신화 및 성경, 한국 신화에만 연결지어왔다는 것은 그의 시를 이해하는 데 있어서 결정적인 영역을 포기한 셈이라는 게 필자의 주장이다. 미당의 시와 일본신화와의 연계 혐의는 곳곳에서 드러나는데, 미당의 또다른 시 '목화'(木花)를 보면, 일본신화에서 목화는 벚꽃으로, 또 일본황실의 대모(大母)인 목화는 죽음이라는 극한 상황을 자초할 정도로 한(恨)을 지닌 여인의 모습으로 나타난다고 밝히고 있다. 본래는 전통적으로 절개와 지조를 지닌 선비를 상징하던 국화꽃의 이미지를 여성성으로 바꿔 '친근한 누님의 이미지'로 바꾼 점이나 한송이 국화꽃의 탄생을 노래하는 시에 있어서, 소쩍새, 천둥, 먹구름, 울음, 무서리, 불면 등 너무도 어둡고, 차갑고, 불길한 느낌을 주는 시어들이 쓰였음을 지적하면서, 이것이 사실은 <고사기>와 <일본서기>에 묘사된 태양신 아마테라스-천황의 탄생과정과 놀라울 정도로 흡사하다는 점도 밝혀주고 있다. 3 애초 이 논문은 '창비무명인'이라는 아이디를 쓰는 한 네티즌에 의해 지난 여름 한 출판사의 자유게시판에 분재되어 올려졌던 글이다. 거기에 많은 부분이 보완되었고 또 책의 말미에 당시 한창 뜨거웠던 논쟁의 당사자들의 글을 덧붙였다. 본문 중에는 미당의 친일시 <마쓰이 히데오 송가>와 <전두환 탄신 기념 축시>도 함께 실어 일반 독자들에게도 미당 시세계의 일단을 엿보게 했다. 발표 당시 많은 문학인들의 관심을 끌어모으기도 했던 이 논문은 '자칫 선정적으로 흐르기 쉬운 주제를 인터넷의 장점을 충분히 활용, 풍부한 자료제시를 통해 심도있는 분석과 정치한 논리로 극복했다'는 평을 받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