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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이라는 놀이
양장
고종석
알마 2015.10.29.
베스트
비평/창작/이론 top100 2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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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종석 선집

책소개

목차

1부 시의 운명
01 시의 운명
02 기다림 또는 그리움: 4?19의 언어

2부 산문 산책
01 김현, 또는 마음의 풍경화
02 먼 곳을 향한 그리움: 전혜린의 수필
03 화사한, 너무나 화사한: 정운영의 경제평론
04 언어의 부력浮力: 이재현의 가상인터뷰 〈대화〉
05 시대의 비천함, 인간의 고귀함: 서준식의 《옥중서한》
06 나는 ‘쓰다’의 주어다: 《김윤식 서문집》
07 최일남 산문집 《어느 날 문득 손을 바라본다》: 굽이쳐 흐르는 만경강
3부 친구의 초상
01 푸른 그늘의 풍경: 당나귀와 먼지 요정 사이
02 자명한 산책길에 놓인 일곱 개의 푯말: 시간 속에 흐드러지게 무르익은 감각
03 제국에서 달아나기, 제국에 맞서 싸우기: 자연과 몸이라는 녹색 항생제로 대항하기
04 이인성 생각: 정교한 운산 위에 구축된 예술
05 황인숙 생각: 기품의 거처
06 이방인으로 사는 법: 에밀 시오랑과의 가상 인터뷰
07 해방적 허무주의, 탐미적 신경질: 황지우
08 단심丹心에서 흘러나온 푸른 노래들: 김정환

4부 시집 산책
01 시인공화국의 정부政府: 김소월의 《진달래꽃》
02 희망의 원리로: 김정환의 《지울 수 없는 노래》
03 감각의 향연: 서정주의 《화사집花蛇集》
04 산업화의 뒤꼍: 신경림의 《농무農舞》
05 전라도의 힘: 이성부의 《우리들의 양식糧食》
06 식민지 조선인의 기품: 이용악의 《오랑캐꽃》
07 문학적인, 너무나 문학적인: 황인숙의 《새는 하늘을 자유롭게 풀어놓고》
08 이야기로서의 노래, 노래로서의 이야기: 김지하의 《오적》
09 허공의 시학: 오규원의 《새와 나무와 새똥 그리고 돌멩이》
10 타락의 순결: 강정의 《처형극장》
11 직립인直立人의 존엄: 김남주의 《조국은 하나다》
12 제 몸으로 돌아가는 말들: 이순현의 《내 몸이 유적이다》
13 시간의 압제 아래서: 최승자의 《내 무덤, 푸르고》
14 무적자無籍者의 댄디즘: 김종삼의 《북 치는 소년》
15 불면의 크로노스: 조윤희의 《모서리의 사랑》
16 분단의 원原공간: 오장환의 《병든 서울》
17 불안이라는 이름의 레이더: 조용미의 《불안은 영혼을 잠식한다》
18 서울 엘레지: 정은숙의 《비밀을 사랑한 이유》
19 저묾의 미학: 고은의 《해변의 운문집韻文集》
20 푸줏간에 걸린 인육人肉: 이연주의 《매음녀가 있는 밤의 시장》

5부 옛 노래 세 수
01 〈누이제가〉에 대한 객담
02 〈서경별곡〉의 변죽
03 〈청산별곡靑山別曲〉: 흘러가며 튀어 오르기

6부 우수리
01 미래의 독자?
02 평론문학상을 넘어서
03 말의 타락
04 외국어로서의 한국어 교육과 문학


저자 소개 1

Koh, Johng-Seok,高宗錫

간결하면서도 냉철한 글로 유명한 고종석은 이 시대 유명한 저널리스트이다. 1959년 서울에서 태어난 그는 성균관대 법대를 졸업하고, 서울대 대학원과 파리 사회과학고등연구원(EHESS)에서 언어학 석사,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학교 교육을 통해서 법학과 언어학을 공부했지만 문학이나 저널리즘에 관심을 가진 그는 24세에 한 영어 일간지의 기자가 된 이 후 지금까지 직업적 저널리스트 생활을 해 왔다. 좋아하는 작가는 애거서 크리스티, 에릭 시걸, 존 그리셤 같은 영어권의 대중 소설가이고, 저널리즘에 대한 취향이 까다로운 그가 선택한 신문은 르몽드나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정도이다.
간결하면서도 냉철한 글로 유명한 고종석은 이 시대 유명한 저널리스트이다. 1959년 서울에서 태어난 그는 성균관대 법대를 졸업하고, 서울대 대학원과 파리 사회과학고등연구원(EHESS)에서 언어학 석사,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학교 교육을 통해서 법학과 언어학을 공부했지만 문학이나 저널리즘에 관심을 가진 그는 24세에 한 영어 일간지의 기자가 된 이 후 지금까지 직업적 저널리스트 생활을 해 왔다. 좋아하는 작가는 애거서 크리스티, 에릭 시걸, 존 그리셤 같은 영어권의 대중 소설가이고, 저널리즘에 대한 취향이 까다로운 그가 선택한 신문은 르몽드나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정도이다.

그를 정서적으로 압도한 최초의 책은 중학교 1학년 겨울방학 때 눈물을 훔쳐내며 읽은 심훈의 『상록수』이며, 그를 지적으로 압도한 최초의 책은 고등학교에서 내쳐져 자유롭던 열 일곱 살 때 골방에서 담배 피우기를 익히며 읽은 노먼 루이스의 『워드 파워 메이드 이지』다. 그는 자신의 문체에서 에릭 시걸과 김현과 복거일의 그림자를 발견하고, 자신의 생각에서 칼 포퍼와 김우창과 강준만을 느낀다.

[코리아타임스], [한겨레신문], [시사저널] 등지에서 스물 두 해 동안 기자 노릇을 한 그는 2005년 봄 [한국일보] 논설위원직을 끝으로 '출근하는 직장인'의 멍에와 명예에서 벗어났다. 현재 도서출판 개마고원 기획위원으로 있다. 나이에 걸맞은 가장 노릇을 못하며 살아온 터라, 그는 더러 자신이 객원남편, 객원아비, 객원자식이 아닌가 생각한다. 문득 자신을 객원한국인이나 객원인류로 여길 때도 있다. '객원'의 비정규성과 느슨함이 베푸는 자유의 감촉을 그는 무책임하게도 흐뭇해하는 편이다. 언젠가 페르시아어로 '루바이어야트'를 읽어보는게 꿈이다. 특별히 집착하는 기호품은 디스 플러스 담배와 붉은 포도주와 아스피린이다.

지은 책으로는 사회비평집 『서얼단상』, 『바리에떼』, 『자유의 무늬』, 『신성동맹과 함께 살기』, 『경계 긋기의 어려움』, 문화비평집 『감염된 언어』, 『코드 훔치기』, 『말들의 풍경』, 한국어 크로키 『사랑의 말, 말들의 사랑』, 『어루만지다』, 『언문세설』, 『국어의 풍경들』, 역사인물 크로키 『여자들』, 『히스토리아』, 『발자국』, 영어 크로키 『고종석의 영어 이야기』, 시 평론집 『모국어의 속살』, 장편소설 『기자들』, 『독고준』, 『해피 패밀리』, 소설집 『제망매』, 『엘리아의 제야』, 여행기 『도시의 기억』, 서간집 『고종석의 유럽통신』, 독서일기 『책 읽기, 책 일기』, 에세이 『사랑의 말, 말들의 사랑』 등이 있다. 마르그리트 뒤라스의 『이게 다예요(C'est tout)』, 『어린 왕자』를 우리 말로 옮겼다. 주저主著 『감염된 언어』는 영어와 태국어로 번역 출간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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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발행일
2015년 10월 29일
판형
양장 ?
쪽수, 무게, 크기
460쪽 | 594g | 139*206*30mm
ISBN13
9791185430805

책 속으로

1부 시의 운명
시의 죽음이라는 것은 메타포도 아니고 미래의 묘사도 아니다. 그것은 완료된 죽음이다. 적어도 유럽에서는 그렇다. 대중에게 읽히는 유럽의 생존 시인을 꼽는 데 양손이 다 필요할 것 같지는 않다.--- p.13~14

앞으로 시가 살아남는 것은 노래 가사의 형태로일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실제로 시의 출발은 노래였고, 역사의 오랜 기간 동안 그래왔다. 신라의 향가도 노래였고, 중세의 음유 시인도 노래꾼이었다. 시의 그 출발점이 시에게 남겨진 미래다. 지금은 운문 문학의 주변부에 자리잡고 있는 작사가들이야말로, 미래 시단의 주류를 형성하게 될 것이다.--- p.15

한국의 웬만한 가정에는 시집이 몇 권씩 반드시 갖추어져 있다. 무엇보다도, 살아 있는 시인들이 우리 사회에는 수두룩하다. 모르기는 몰라도, 우리 사회만큼 시인이 넘쳐나는 데도 드물 것이다. 어떤 시집은 베스트셀러 자리를 소설과 경쟁하기도 하고, 그런 베스트셀러 시집이 반드시 최악의 시집인 것도 아니다. 미적으로 정련된 최고의 시집들이, 비록 시인들에게 부를 가져다주지는 못하지만, 웬만큼은 팔려나가는 곳이 우리 사회다.--- p.20

사랑만큼은 아닐지라도 혁명은 시의 주된 연료다. 사랑과 혁명은 불거진 정념情念이라는 점에서 닮았고, 시는 그것을 담기 알맞은 그릇이다. 뛰어난 연시戀詩가 대체로 이별의 시이듯, 뛰어난 혁명시도 흔히 좌절한 혁명의 시다. 혁명의 좌절은 그 주체의 불행이겠으나, 시의 잠재적 행복이다. 성공한 혁명이 낳은 시는 공식주의 문학의 틀에 갇히기 십상이니 말이다. 그 점에서 1960년 4월혁명의 좌절은 역설적으로 시의 축복이었는지도 모른다.--- p.23

2부 산문 산책
사실 김현은 문학평론을 그 자체로 읽을 만한 텍스트로 만든 거의 첫 비평가고, 어쩌면 마지막 비평가일지도 모른다. 그것은 김현이, 적어도 30대 이후의 김현이, 비평이란 수필의 일종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던 드문 비평가였다는 사실과도 관련 있을 테다. 그에게 비평은 논리와 지식의 전시장이 아니라 직관과 감수성의 연회였다. 김현은 비평을 제 앎을 드러내는 자리로 사용하지 않고, 마음(의 파닥거림)을 주고받는 자리로 사용했다.--- p.34~35

지적으로든 정서적으로든 윤리적으로든, 나이가 늘 사람을 성숙시키는 것은 아니다. 그래서 나이와 함께 푹 익은 인격을 바라보면, 기분이 좋아질 수밖에 없다. 그것이 한 분야의 세속적 정점에 이른 이의 인격일 때야, 더 말할 나위도 없다.--- p.37

정운영 칼럼을 화사하게 만든 것은 문체만이 아니다. 고금동서의, 현실과 텍스트 속의 수많은 장면들이 줄줄이 끌려나와 칼럼의 서두나 말미를 장식하며 필자의 박학을 증명하고 글의 때깔을 돋웠다. 그의 칼럼은 의견의 전시장인 것 이상으로 지식의 전시장, 취향의 전시장이었다. 그 지식과 취향이 의견을 압도할 때, 그의 칼럼은 허영의 전시장처럼 보이기도 했다. 박람강기는 누구도 흉내 내기 힘든 정운영 칼럼의 장점이었고, 그 휘황함으로 더러 논지를 흩뜨려버리기도 하는 단점이기도 했다. (…) 그가 본론에 들어가기 전에 한바탕 벌이는 그 지식과 취향의 잔치는 독자들을 홀리는 ‘삐끼’ 노릇을 했다. 나도 그 ‘삐끼’에 홀려 정운영 글에 중독된 독자다.--- p.52~53

《서준식 옥중서한 1971~1988》(2002, 이하 《옥중서한》)을 읽는 것은 1970~1980년대 한국 사회의 가장 을씨년스러운 음지 한 군데를 들여다보는 것이다. 그러나 그와 동시에, 그 을씨년스러움을 인간 존재의 눈부신 고귀함으로 승화시키는 어떤 정신의 다사로운 양지를 엿보는 일이기도 하다. 그 그늘과 볕이 서로 맞서고 뒤섞이고 포개지며 빚어내는 긴장 속에서, 《옥중서한》의 사적인 언어는 한 시대의 무게를 통째로 감당하는 공적 언어로 바뀐다.--- p.65

김윤식은 말하자면 자신을 상대로 한 그 외로운 게임의 중독자였다. 요즘 젊은 세대 말로 글쓰기 ‘폐인’이었다. 김윤식이라는 이름은 동사 ‘쓰다’의 주어인 것이다. 그런데 그는 문학사가이자 문학비평가다. 다시 말해 그의 방대한 텍스트들은 다른 텍스트들을 분류하고 배열하고 논평하는 텍스트들이다. 그러니, 김윤식이라는 이름은 동사 ‘읽다’의 주어를 겸할 수밖에 없었다. 그의 읽기는 20세기 이후 한국에서 ‘근대’의 표지를 지닌 채 발설된 모든 문학텍스트를 향했다.--- p.75

최일남 문장은 경계의 문장이다. 그의 문장은 예스러움과 현대성의 경계에 있고, 토착성과 외래성의 경계에 있고, 전원풍과 도회풍의 경계에 있고, 귀족풍과 서민풍의 경계에 있고, 고전미와 유행감각의 경계에 있다. 최일남 문장에 점점이 박힌 외래어나 (젊은 세대의) 신어의 현대성은 글의 근간을 이루는 토박이말과 한자어의 예스러움과 길항하고, 토박이말의 토착성 전원풍 서민풍은 한자어의 외래성 도회풍 귀족풍과 길항한다. 그것은 구어체와 문어체 사이의 길항이기도 하고, 조선어 단어와 (설핏 보이는) 일본어투 문체 사이의 길항이기도 하다. 아니 그것들은 길항하지 않고 서로 어우러지며 두터움을 얻는다. 그리하여 독특한 최일남 문체를 이룬다.--- p.83

3부 친구의 초상
물론 시의 화자를 시인과 고스란히 포개는 것은 위태로운 읽기다. 그러나 특히 서정시에서, 화자의 목소리는 예사롭게 시인의 목소리와 겹친다. 화자와 시인의 격리가 또렷해 보이는 경우에도, 화자는 무심결에 시인을 대리하고 변호한다. 그래서 서정시는, 그 외양이야 어떻든, 서사시보다는 에세이와 더 핏줄이 가깝다.--- p.115

실상 황인숙의 많은 시에서 탐미는 연민과 밀접히 연관돼 있다. 시인의 윤리적 충동은 그의 노래가 탐미의 허공으로 휘발하는 것을 억제한다. 그 점에서 그는 되다 만 악마주의자이고, 보들레르의 부실한 제자다.--- p.130

평자들이 별로 지적하지 않는 황인숙 시의 중요한 장점은 그 리듬감일 것이다. 시인이란 결국 모국어의 속살에 도달한 사람을 가리키는 말이라면, 그리고 모든 예술은 음악의 상태를 동경하게 마련이라면, 황인숙이야말로 바로 그런 의미의 시인이고 예술가다. 실상 황인숙을 감각의 시인이라고 했을 때, 그 감각은 모국어 리듬에 대한 감각을 압도적으로 포함한다. 언뜻 너무 달라 보이는 백석과 황인숙의 시를 내재적으로 닮게 하는 것은, 내가 보기에, 모국어의 리듬에 대한 두 시인의 활달하되 완강한 집착이다.--- p.138

이문재의 얼굴은 늘 미래보다는 과거를 보고 있는 것 같다. 그에게 “옛날은 가는 게 아니고/ 이렇게 자꾸 오는 것”(〈소금창고〉)이다. 그는 과거를 되살려 과거를 뜯어먹고 사는 인간이다.--- p.152

육체성과 자연에 대한 그리움이야말로 시집 《제국호텔》을 이끌어가는 힘이다. 시인은 네트워크로서의 제국이라는 세균에 자연과 몸이라는 녹색 항생제로 대항한다. 《제국호텔》의 상당수 시편들은 근대 이전에 존재했다고 상상되는 인간의 육체와 대지 사이의 삼투와 조화를 꿈꾼다. 시인-화자가 꿈꾸는 인간과 세계 사이의 관계는 근대과학이 가져온 ‘객관적’이고 보편적인 앎의 관계가 아닌, 개인들이 주관적으로 세계와 유지할 수 있었던 느낌의 관계다. 빛, 냄새, 맛 같은 구체적 세계의 질에 대한 경험으로서의 느낌 말이다.--- p.154

이인성이 그런 소설을?그것이 위대한 소설일 수도 있겠지만, 여기서는 그렇게 안 팔리는 소설이라는 의미로?쓸 수 있는 것은 물론 그가 안정된 직장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서울대학 선생에게 한국 사회가 베푸는 특별한 안온함을 생각하면, 그가 자신의 한결 같은?그것을 ‘선비적 태도’라고 부르든 ‘식물성의 저항’이라고 부르든?문학적 정진을 마냥 뽐내기만 해서는 안 될 것이다. 그와 그의 주위 사람들과 많지 않은 독자들에게 다행스럽게도, 그는 그걸 마냥 뽐내기만 하지는 않는다. 그는 양식이 있는, 차라리 지혜가 있는 사람이다. 그는 자신의 소설 쓰기의 물질적 토대를 의식하고 있다.--- p.165
‘시 같은 산문’이라는 말은 어떤 산문에 대한 최상의 찬사가 되겠지만 그의 산문은 때때로 시를 넘어선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서로 독립적이고 무관한 듯이 보이는 사물들 사이의 공통점을 상상력의 빨판으로 끌어당겨 비유의 진열장을 만드는 것이 시쓰기의 중요한 측면이라면 그는 물론 탁월한 시인이겠지만, 그런 뜻에서 그의 시인됨은 오히려 산문의 형식으로 발표되는 글들 속에서 더 도드라진다. 조금 과장해서 얘기하자면 그의 시는 그의 뛰어난 산문들의 우수리일 뿐이다.--- p.198~199

4부 시집 산책
오늘날, 교양 있는 시 독자들의 취향은 미끈한 문학비평가들과 날씬한 문학저널리스트들의 손아귀에서 빚어지기 십상이다. 이런 문학적 교양의 유행에서 벗어나 시를 제 몸으로 느껴보라고 주문한다면, 그리고 시인이란 모국어의 속살에 도달한 사람의 이름이라는 점을 피조사자들에게 환기시킨다면, 그들이 좋아하는 시인의 리스트는 사뭇 다르게 작성될지도 모른다. 그때, 소월과 《진달래꽃》은 교양 있는 시 독자들의 선호에서도 최상위를 차지하게 될지 모른다.--- p.230

시인 김정환(1954~)의 산문은 넌지시 시적이다. 이것이 그의 산문에 대한 찬사인지는 확실치 않다. 산문가 김정환의 시는 슬그머니 산문적이다. 이것 역시 그의 시에 대한 찬사인지는 확실치 않다. 그러나 김정환은 가장 반듯한 산문을 쓰는 시인이자, 가장 산뜻한 시를 쓰는 산문가다. 이것은 찬사다.--- p.237

산문가는 훈련되는 것이지만, 시인은 태어나는 것이다. 천재 음악가가 가능하듯 천재 시인은 가능하지만, 천재 산문가는 불가능하다. 시인이 태어나는 순간 결정된다는 것은 시가 귀족의 글이라는 뜻이기도 하다. 이에 비해 산문가는 태어난다기보다 벼려진다. 벼림은 귀족의 일이 아니라 평민의 일이다. 그래서 산문은, 바로 그 이름이 가리키듯, 흩어진 글, 볼품없는 글이고 평민의 글이다.--- p.238

감옥 속의 김지하는 70년대 한국문학의 치욕이자 축복이었다. 그것이 치욕이었던 것은 그를 감옥 안에 두고서도 70년대의 한국문학사가 별 탈 없이 하염없는 장광설로 쓰여지고 있었다는 점에서고, 그것이 축복이었던 것은 감옥 속의 시인 덕분에 한국문학의 당대가 순전한 미몽의 시기로 기록되는 것을 피할 수 있었다는 점에서다. 30대의 김지하는 감옥 속에서 70년대의 부하負荷를 제 몸뚱이 하나로 버텨내며 개인사의 수난을 문학사적?사회사적 활력으로 전화시켰고, 그럼으로써 70년대가 박정희의 연대로서만이 아니라 자신의 연대로, 김지하의 연대로 기억되게 만들었다.--- p.295

우리가 세계를 통제하고 있다고 느낄 때조차, 우리에게 자유의 느낌이 충일할 때조차, 우리는 현실 속의 유일한 가능성에, 곧 필연에 얽매여 있을 뿐이다. 이 필연의 세계에, 자유의지가 박탈된 세계에, 책임이 들어설 자리는 없다. 그래서 우리는, 허리케인 카트리나를 비난할 수 없듯이, 우리의 적들을, 범죄자들을 비난할 수 없다. 그때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는가--- p.339

아픈 사람은 민감할 수밖에 없다. 그 민감함은 주위 사람들을 힘겹게 하는 신경질로 나타날 수도 있지만, 사물과 사태의 기미幾微를 섬세하게 탐지하는 레이더 노릇을 할 수도 있다. 시인에 대한 그럴싸한 정의定義 하나가 보통 사람들이 무심코 흘리는 기미를 대뜸 알아채는 사람이라면, 시인은 누구나 조금씩은 아픈 사람인지도 모른다. 몸과 마음을 완전히 망가뜨리지 않을 정도의 아픔은, 거기에 따르는 불안은, 그러니까 시인됨의 필요조건 가운데 하나다.--- p.375

5부 옛 노래 세 수
현전하는 신라 향가 14편이 모두 다 예술적으로 빼어난 것은 아니다. 그 가운데는 단지 우리 고대어의 흔적을 흘끗 보여준다는 것 이상의 의미를 지니지 못한 노래들도 있다. 그런 노래들에 견준다면 〈누이제가〉는 아름다움으로도 빼어난 작품이다. 그 아름다움은 이 노래가 죽음을 마주보고 있다는 데서도 오는 것이리라.--- p.410

‘그러면 너는 왜 사는가’라고 당신은 물을 것이다. ‘관성으로’라는 대답 이외에는 달리 할 말이 없다. 그것을 생명체에 내재해 있는 자기보존 본능, 삶에 대한 맹목적 의지라고 해도 좋다.--- p.413
나는 평양이라는 이름보다는 서경이라는 이름을 더 좋아한다. ‘평양’이 ‘서경’보다 더 유래가 깊은 이름이라는 것, 역사 시기의 대부분 동안 그 도시가 ‘평양’이라는 이름을 지녀왔다는 걸 모르지는 않는다. 실로 평양이라는 이름에는 역사의 무게가 실려 있다. 그러나 어쩌면 바로 그 점 때문에 내가 평양이라는 이름을 달가워하지 않는지도 모른다. 평양은 내게 다른 무엇보다도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의 수도다.--- p.421

〈서경별곡〉의 화자에게 연애는 곧 삶 자체다. 게다가 그에게는 미래의 기약 같은 것이 중요하지 않다. 그에게 중요한 것은 현재의 사랑이고, 그 현재의 사랑이 파탄하는 것은 그의 삶이 파탄하는 것이다. 사랑을 위해서 그는 모든 것을 버릴 수 있다.--- p.426

〈청산별곡〉은 패배자의 노래다. 화자는 외롭고 시름겹다. 그는 이럭저럭 낮을 지내왔지만 올 사람도 갈 사람도 없는 밤은 또 어찌 지낼까 걱정하는 주변인이다. 그는 외로움과 시름에 당당히 맞서지 못하는 유약한 인간, 눈물의 인간이다. 시름겨운 밤을 지내고 아침에 일어나 그가 하는 일이라곤 고작 우는 것뿐이다.--- p.435

6부 우수리
‘개인성’은 스타일리스트의 필요조건이지만, 작가의 운명에 불리하게 작용하기 쉽다. 당대의 독자들도 완전히 동화하지 못하는 문장의 어떤 기미를 미래의 독자들이 남김없이 빨아들일 수 있으리라 기대하는 것은 어리석다. (…) 한 언어 안에서 어떤 낱말들의 뉘앙스를 바꾸고 특정한 통사구조의 세련미를 부식시키는 데는 한두 세대의 세월도 충분하다.--- p.445

평론을 포함한 논픽션문학 일반을 문학상의 한 부문으로 정하면 어떨까? 따지고 보면 문학평론이라는 이름의 에세이는 논픽션문학의 한 갈래다. 헤아릴 수 없이 쏟아지고 있는 논픽션문학 작품들 가운데 오로지 평론에만 문학상을 주고, 그로써 이 장르의 위엄을 인위적으로 유지하는 것은 어색한 일이다. 기행문이나 일기나 자서전이나 편지글이나 평전이나 르포 같은 갈래가 문학평론보다 덜 문학적일 이유는 어디에도 없다.

--- p.448

출판사 리뷰

‘있는 그대로’의 비평을 위하여
이번 선집의 두 축은 시 비평과 산문 비평이다. 전체 목차 구성을 스케치해보면, 1부에서 시 일반에 관한 고종석의 견해를 드러내고 2부에 산문 비평, 3부에 시와 산문 비평을 실었다. 그리고 4부에서 시 비평을 집중적으로 수록하고 5부에서는 옛 시 비평을 시도했다. 6부는 한국문학에 대한 몇 가지 제언들이다.
1부 ‘시의 운명’에서는 시 일반에 대한 그의 생각을 알 수 있다. 그가 보기에 오늘날 유럽에서 시는 사멸했으며, 그 본연의 모습인 노래 가사의 형태로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 이는 아직 시가 살아남아 있는 한국에도 곧 닥칠 미래일 것이다. ‘글쓰기의 대중화’ 물결 속에서 아마도 시인의 아우라는 계속 유지되기 어려울 것이라 그는 전망한다.

우리 사회에서도 다른 산업사회, 탈산업사회의 경우처럼 머지않은 장래에 시의 자리는 좁아질 것이다. 왜 그런가? 다른 무엇보다도, 시의 위세, 시인의 위세가 새로운 세대에게 계속 전수되기는 어려울 것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글쓰기의 민주화-대중화라고 해도 좋다-와도 관련이 있다. 파리에서와 같은 지하철 시를 통해서든 통신망을 통해서든 시를 쓰는 사람들은 예전보다 더 늘어날 수도 있겠지만, 그 시인들은 시 앞에서 경건한 예전의 시인들은 아닐 것이다._20쪽

이처럼 고종석은 1부에서 시에 관한 다소 비관적이고 음울한 진단을 내놓는다. 그런데 역설적이게도 3부 이후에 제시되는 시 평론들은 하나같이 아름답기 그지없다. 매력적인 시들을 고종석 특유의 미려한 문장으로 소개하고 분석하고 예찬한다. 즉 1부는 시에 대한 고종석의 전망을 드러내는 것에 더해, 이후 펼쳐지는 시 평론과 강한 대비를 이루며 그 아름다움을 더한다.
2부 ‘산문 산책’은 산문가들에 대한 고종석의 평이다. 다음과 같은 이들이 다루어진다; 김현, 전혜린, 정운영, 이재현, 서준식, 김윤식, 최일남.
이 부는 두 가지 점에서 주목해볼만 한다. 첫째, 솔직한 비평이란 무엇인지 보여준다. 흔히 ‘주례사 비평’이라 하여 칭찬 일색의 비평문화가 형성되어 있는데, 고종석은 이를 간접적으로 비판이라도 하듯 느낀바 그대로를 직접적으로 상술한다.

그(김윤식)의 비평은 해석의 타당성을 떠나 작품의 줄거리 자체를 그릇 잡아내는 일이 드물지 않다. 너무 많이 읽는 탓에 읽기의 ‘밀도’가 낮아졌는지도 모른다. 한국 근대문학 연구의 최고 권위자가 건네는 눈길은 아직 이름을 세우지 못한 작가들의 가슴을 한껏 설레게 하는 격려가 될 테다. 그러나 이 원로의 독서가 날림으로 이뤄지고 있다면? 그는 권위라는 자산을 너무 함부로 쓰고 있는 것 아닐까?_78쪽

김현의 글은 어쩔 수 없이 낡아 보인다. 사실 이런 ‘낡음’은 이미 김현 생전에도 기미를 드러냈다. 김현의 어떤 글은 정치함에서 김인환만 못해 보이고, 자상함에서 황현산만 못해 보이며, 화사함에서 정과리만 못해 보인다. 생전에 낸 마지막 평론집 《분석과 해석》의 서문에서 김현은 청년기부터 그때까지 자신의 변하지 않은 모습 가운데 하나로 ‘거친 문장에 대한 혐오’를 거론했으나, 그 혐오를 철두철미하게 실천한 것 같지는 않다. 청년 김현의 글에서는, 청년 정과리의 글에선 찾기 어려운 유치함과 허세 같은 것도 읽힌다. 현학은 ‘배운 청년’이 흔히 앓는 병이지만, 청년 김현은 그 병을 좀 심하게 앓았던 듯하다._34쪽


둘째, ‘산문’을 비평의 대상으로 삼는다. 한국에서는 주로 ‘시’와 ‘소설’을 비평의 가치가 있다고 보고 두 장르를 위주로 담론이 유통된다. 고종석은 그가 가장 애호하는 ‘시’ 비평을 다음 장으로 유보하면서까지 ‘산문’ 비평을 부각시킨다. 이는 비평의 지평을 확장함으로써 텍스트의 세계를 더욱 풍성하게 만든다. 그로 인해 서가에서 오랜 잠을 자던 산문가들이 깨어난다. 예컨대 다음 대목을 읽고 정운영을 다시 들춰보지 않기란 힘들다.

정운영은 문학 텍스트에 맞먹는 미적 광채를 신문 칼럼에 부여한 드문 저널리스트다. 하긴 그의 문체적 사치는 신문 글만이 아니라 본격 논문에서도 절제를 몰랐다. 그 점에서 정운영은 연구자이기 이전에, 저널리스트이기 이전에, 문장가였다. 설령 그의 글의 메시지가 세월의 풍화작용으로 흐릿하게 퇴색한다 할지라도, 그의 문장은 한국어가 살아 있는 한 또렷이 남을 것이다. 그의 소문난 퇴고벽, 교정벽이 사실이라면, 문장을 이루는 것이야말로 정운영이 진정 바라던 것이었는지 모른다. 그는 꿈을 이뤘다._49~50쪽

유려한 문장으로 시를 온전히 감당하다
3부 ‘친구의 초상’은 친분이 있는(또는 호감이 있는) 문인과 그 작품에 대한 비평이다. 시와 산문의 비평이 혼재되어 있는데, 동료 문인에 대한 애정과 더불어 고종석의 비평작업이 변천해온 과정을 볼 수 있어 흥미롭다. 초기에는 저널리즘의 틀로 문학에 접근했고(6~9챕터), 후기로 갈수록 정밀하고 분석적인 비평이 이루어진다(1~3챕터).
특히 시집 발문들인 1~3챕터는 분석의 밀도가 촘촘하고 비평서사의 전개력이 돋보인다. 고종석은 시인-화자가 누구인지 묻고, 그가 사는 세계가 어딘지 가늠한다. 그러고 시인-화자에게 문제되는 것이 무엇이고 이를 어떻게 헤쳐 나가는지를 세심히 관찰한다. 이를테면 이윤림이나 황인숙의 시를 처음 접하는 독자들이라도, 고종석의 비평을 보고 나면 해당 시인에게 성큼 다가간 듯한 느낌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그 과정에서 문득문득 드러나는 고종석의 생각들은 잠시 페이지를 멈추게 한다.

불확실한 삶, 아픈 삶은 인간의 삶만은 아닐 것이다. 그것은 생명을 받은 것들의 운명일 것이다. 삶의 위태로움에는 성역이 없다. 그 삶 속에서는 연약함이 오히려 힘일 수도 있다_98쪽

나이 듦의 한 징표는 추억으로의 몰입이다. 되돌아보는 것은 나이 든 자의 몫이기 때문이다. 모든 추억은 미화의 유혹에 취약하게 마련이지만, 늙음이 바라보는 젊음의 추억은 특히 그렇다._120쪽

4부 ‘시집 산책’은 고종석이 편애하는 시집과 시인들의 목록이다; 김소월, 김정환, 서정주, 신경림, 이성부, 이용악, 황인숙, 김지하, 오규원, 강정, 김남주, 이순현, 최승자, 김종삼, 조윤희, 오장환, 조용미, 정은숙, 고은, 이연주.
체계적이라기보다는 우발적이며, 객관적이라기보다는 주관적인 목록인 듯하다. 그러나 그 편애의 온도는 하나같이 뜨겁다. 고종석은 유려한 문장으로 시집의 언어를 온전히 감당해낸다. 특히 그는 비교를 통해 시인들 사이의 차이를 드러내는 데 능하다.

당대 조선 상황에 대한 역사적 상상력을 바탕에 깔고 이 시(이용악의 〈전라도 가시내〉)를 읽노라면, 문학의 위의威儀니 하는 것에 냉소적인 나 같은 독자도 문득 자세를 바로잡고 옷깃을 여미게 된다. 그때, 비슷한 시기에 서정주가 현란하게 구가한 감각의 아스라함은 문득 비천하게까지 보인다. 감각의 깊이에서, 《오랑캐꽃》의 시들은 도저히 《화사집》의 시들을 따를 수 없다. 그러나 감각의 격조와 기품에서, 《화사집》은 도저히 《오랑캐꽃》을 따를 수 없다._276쪽

김종삼의 시가 박인환의 시에 견주어 덜 거북스럽게 읽히는 것은 그의 서양 취미가 박인환의 것보다 사뭇 익혀져 있는 듯 보이기 때문일 것이다. 기호에 대한 퍼스의 분류를 훔쳐오자면, 박인환의 박래어들이 대체로 도상icon이나 지표index에 그친 데 비해, 김종삼의 박래어들은 드물지 않게 상징symbol에 이르렀다. 김종삼은 외국 이름이나 외래어들을 그려다 붙이며 제 교양이나 취향을 드러내는 데 그치지 않고, 거기 의지해 정서적 확장과 공명을 이뤄내는 데 자주 성공했다. 말하자면 김종삼은 그 고유명사들을 장악하고 있었다._349쪽

5부 ‘옛 노래 세 수’는 〈누이제가〉〈서경별곡〉〈청산별곡〉에 대한 평론으로 고종석의 시야가 고대와 중세로까지 확장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특히 〈청산별곡〉에서는 그의 언어학적인 관심이 도드라지게 나타난다. 이는 언어학자로서의 고종석과 문학평론가로서의 고종석이 합류하는 진귀한 풍경을 만들어낸다.

후렴구의 경쾌함은 ‘ㄹ’에서만 오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얄랑셩’의 ‘ㅇ’ 받침소리에서도 온다. ‘ㅇ’은 가벼움과 말랑말랑함의 소리, 탄력의 소리다. ‘ㅇ’은 공〔球〕의 자음이고 동그라미의 자음이다. ‘ㅇ’ 소리는 또랑또랑하고 오동포동하고 낭창낭창하다. 그것은 음절의 끝머리에 대롱대롱, 주렁주렁, 송이송이 매달려 있다. 그것은 아장아장 걷거나 붕붕거리거나 빙빙 돈다._436쪽

6부 ‘우수리’는 한국문학에 대한 사념들로, 오늘날에도 유효한 문제의식을 보여준다. 2007년에 쓴 글 〈말의 타락〉에서는 마치 2015년을 예견이라도 한 듯, 비평언어의 과잉과 타락을 강하게 경계한다.

아름답지 않은 것을 아름답게 꾸미는 언어는 아름답지 않다. 좋지 않은 것을 좋다고 다독거리는 언어도 좋지 않다. 그것은 타락한 언어다. 지금 예술비평은 그런 타락한 언어의 전시장이다._452쪽

또한 고종석은 외국인에 대한 한국어 교육이 ‘문학 중심’을 피해야 할 필요성을 설득력 있게 제시하는가 하면, 문학상의 한 부문을 평론에서 논픽션문학 일반으로 넓힐 것을 제안한다. 이처럼 제도를, 문화를 고정된 것으로 보지 않고 자유로운 상상을 펼치는 그의 정신은 그 자체로 ‘시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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