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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화학의 창조
마르셀 데티엔 저 / 남수인 역
이끌리오 2001.1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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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끌리오 학술총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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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목차

옛날 옛적에

1. 애매한 가름선
신화학의 이중 의미 / 라피토의 '관능적 관념' / 퐁트넬의 '즐거움' / 언어를 대상으로 한 과학 / 태양 신화설'과 '자연의 비극설' / 타일러의 '자연 신화설' / 신화와 종교 가르기 / 신화, 최초의 언어

2. 입으로 귀로
말과 문자 사이 / 문자 전통의 환상성 / 일관성과 검열 / '부족의 백과사전' 호메로스 / 문자와 권력 사이 / 사회적 기억과 구어 전통 / 반복과 변주의 세계 / 구조화된 층위와 개연론적 층위

3. 신화적 환상
미개인 기억 속의 역사 / 로고스와 뮤토스 / 핀다로스의 노래 / 헤로도토스의 고발 / 기억적 전통에 일침을 놓는 투키디데스 / 단절된 전통 / 입말과 글 사이 / 신화적 환상의 확산

4. 최초 해석의 미소
'섬세하고 세련된' 고대 신화가들 / 호메로스를 공격하는 크세노파네스 / 테아젠의 항변 / 이야기 제작자의 논거 / '사실임직함'의 척도 / 계보학과 어원적 계통 / 헤카타이오스의 미소

5. 신화가들에 의해 방호된 도시 국가
'신화학'을 최초로 사용한 플라톤 / 신화학의 어원 / 끝없이 변화하는 신화 / 소문이 지니는 힘 / 정체 불명의 신화 / 모범적 글쓰기로서 신화의 의혹 / 백발의 어린이인 신화가

6. 두 머리의 그리스인
말하기와 믿기의 미덕 / 신화적 사고의 본질 / '신화적'과 '신비적' / 그리스 신화학의 이점 / 레비-스트로스의 '신화학의 단일성' / 머리가 둘인 그리스인 / 최초의 형이상학

7. 찾을 길 없는 신화
잊혀진 신화의 나라 / 문자 부재가 보호하는 신화 전통 / 신화와 신화학 / 히에론의 정원

색인

저자 소개

저자 : 마르셀 데티엔(Marcel Detienne)
고전 인류학 특히 고대 '신화' 연구에서 명성이 높은 프랑스 고전학자이자 세계적으로 주목받고 있는 석학이다. 그는 고대 그리스의 신화와 종교 영역에서 광범위하게 저술 활동을 하였으며, 고대 사회에 대한 인류학적·비교학적 접근으로 사회·문화적 역사를 밝히는 데 공헌하였다. 현재 존 홉킨스(Johns Hopkins) 대학의 교수이다.

데티엔의 책은 여러 국가에서 번역 출판되고 있는데, 대표작으로는 『아도니스의 정원 Les Jardins d'Adoni』, 『지성의 술수 Les ruses de l'intelligence(Jean-Pierre Vernant과 공저)』, 『호메로스, 헤시오도스, 피타고라스Hom re, H siode et Pythagore』, 『종교 사상에서 철학 사상까지 De la pens e religieuse la pens e philosophique』, 『아폴론의 칼 Apollon le couteau』 등이 있다. 그는 또한 여러 에세이를 내기도 했으며 최근에는 역사와 인류학 간에 존재하는 비교 대상, 혹은 비교할 수 없는 대상에 대해 연구하고 있으며, 고대 그리스의 정치적인 신들에 대한 글을 쓰고 있다.
역자 : 남수인
이화여대를 졸업하고 프랑스 보르도 대학에서 프랑스 문학 석사와 박사 학위를 취득한 불문학 박사이다. 현재 상명대학교 교수.

〈발벡과 소녀들〉, 〈게르망트가〉 등, 마르셀 프루스트에 관한 다수의 논문을 냈으며, 역서로는 가에탕 피콩의 『프루스트의 읽기』, 마르그리트 유르스나르의 『하드리아누스의 회상록』, 『알렉시』, 롤랑 바르트의 『라신에 관하여』, 자크 데리다의 『글쓰기와 차이』가 있다.

품목정보

발행일
2001년 10월 31일
쪽수, 무게, 크기
314쪽 | 374g | 크기확인중
ISBN13
9788988295656

예스24 리뷰

'기억'해 보면, 예전에 할머니 무르팍에 앉아 듣던 이야기들은 종류는 몇 가지 안 되지만, 매번 어딘가는 다른 이야기였다. 글을 깨우친 후로 이야기는 하나가 되었다. 할머니가 들려준 이야기들은 마냥 아름답고 교훈적이지만은 않았을 것이다. 뭐, 그랬던 것 같다. 황당하고, 천박하고, 곶감같이 무섭기도 해 오줌을 찔끔거리게 하기도 했을 터인데, 여하튼 아드레날린 팍팍 당기는 흥분과 재미만큼은 확실했다. 그러나 지금은 그저 한없이 어렴풋할 뿐이다. 프랑스의 신화학자 마르셀 데티엔은 이 책 『신화학의 창조』에서 문자를 갖지 않은 원시 상태의 부족만 빼고 모든 사람이 겪는 이러한 기억의 단절과 공백 상태를 이야기한다.

고대 그리스의 권력자들은 소피스트라는 오해를 받을까 저어하여 글쓰기를 꺼렸다고 한다. 강력한 구어 전통은 그렇게 신화를 보호하고 있었다. 모든 노인이 설화와 우화를 알고 있었고, 자신이 어린 시절 노인들에게 들었던 이야기들을 그대로가 아니라 나름대로 어린아이들에게 들려주었다. 말은 곧 사라질 것이기에, 말해지자마자 사라질 것이기에 책임감이 없어도 될 상상이 만들어낸, 풍요롭다는 말로도 부족할 이야기가 수도 없었다.

데티엔은 독일 낭만주의와 헤겔 철학이 그리스에게 고향땅이라는 특권을 부여한 이래로 유럽의 강단이 겪어야만 했던 혼란상과 분주함을 보여준다. 그리스는 두 개의 머리를 가지고 있다. 신화와 그 반대편의 선 모든 것들. 19세기 사람들과 20세기 인류학자들의 노력으로 이 둘은 사이가 많이 좋아지긴 했지만, 처음엔, 그러니까 최초의 역사가와 철학자가 나타날 시기엔 사정이 그렇지 못했다. 로고스를 발견하고 그것의 권위를 느낀 이 군단은 호메로스가 최초로 문자화한 '신화'의 이야기에 대한 가차없는 심판관이 된다. 불온한 상상이 있는 것이 아니라, 상상 그 자체, 전체가 불온한 것이다. 아무 생각이나 "의지 없이" 누구나 말했을 뿐인 신화는 호메로스 이래로 이중성을 향한 창을 넘어 이야기 자체말고도 이미 해석과 자기 검열을 담고 있을 수밖에 없는 신화학이 되었고, 모방은 이제 아주 협소한 범주 안에서 활동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

신화에 대해 재미있기만 했지, 황당하고 천박하고 엽기적이기 이를 데 없다고 선고 내리는, 속 편하게 목소리만 큰 선배 역사가와 성직자들과 달리 낭만주의 시대를 거쳐온 19세기의 새로운 인류학자들은 훨씬 복잡한 문제에 직면해 있었다. 그들은 기이하고 잔혹하고 도무지 말이 안 되는 이야기들에서 그리스를 구원해야 할 의무감을 느꼈다. 그들은 그리스 신화에서 "스캔들적인 것"을 추출하여 문제를 해결해 보려고 했다. 신화에 그렇게도 많은 악습, 잔인한 살인이나 근친상간 같은 것이 등장하는 이유는 사람들이 스캔들을 좋아하기 때문이다. 스캔들적인 요소를 빼면 그 '신화' 속에 담겨 있는 신성(神性)이 수면 위로 떠오르고, 모든 사람이 그렇게 좋게 좋게 행복해진다는 이야기.

20세기의 늙은 소년들은 선배들의 결론이 있었음에도 오리무중에 빠졌다. 오지를 여행하면서 그들은 그곳에서 구어적 전통에서 생명의 활기를 보장받고 분출하는 이야기의 풍요로움을 발견하고, 인정해야만 했다. "한 민족과 한 국가의 살아 있는 말이 그것의 풍요로움과 통일성을 신화학적 언사 속에서 발견하게 되면, 신화학적 언사에 부과되는 모든 표기 마크는 결국 이 살아 있는 말을 훼손시키고 마는 듯하다." 망각의 피의자가 된 문자.

말은 기록되지 않기에 필연적으로 변모의 과정을 겪는다. 신화는 어디에나 있다. 레비-스트로스는 "전세계에서 신화는 신화처럼 인식된다"고 말했다. 말해진, 말해질 수 있는 신화는 전세계 인구의 머리수만큼 버전을 갖고 있다. "이 다양성은 갖은 수단 방법을 동원한다 할 정도로 완벽하다." 그러나 글은 변할 수 없다. 기억은 편파적이고 융통성 없게 다른 기억과 변화를 배제하기 시작했다. 샤를 페로는 유럽에 퍼져 있던, 어린아이(든 누구든) 들어서는 안 될, 원래는 무시무시하고 끔찍하며 선정적인 우화를 모아 판타지는 판타지되 깔끔하고 모범생다운 판타지를 제작했다. 그걸로 끝.

"표기 시스템이 운반해 온 소외"로 줄곧 핀치에 몰려온 신화적 기억을 복원하기 위해 20세기기의 인류학자들은 자괴감에 빠진 대로 그래도 발분하지만, 기록하는 자로서 다시 읽을 수밖에 없는 딜레마에 빠진다. 원시인들은 듣지만, 우리들은 읽는다. " '구어적인 것으로 머물러야 하는' 전통을 상정함은 신화적 사고가 존재한다고 상정함과 똑같이 판타즘에 속한다. 철학자들의 이성처럼 서구의 글쓰기는 자기와 반대적인 얼굴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너무나 강박적이어서 끝내, 사회에 대해 글쓰기의 효율성, 요컨대 기억 활동, 기억의 작업, 기억의 인식력이 측정되는 근본적인 장소를 은폐하게 되는 얼굴을."

치밀한 집중력과 박학함으로, 그리 두껍지 않은 분량 안에 고대의 크세노파세스, 헤로도토스, 헤시오도스,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에서부터 근대의 타일러와 랭, 뮐러, 현대의 레비-스토르스까지의 지성사를 임팩트해 놓은 데티엔의 글을 따라잡기는 쉽지 않다. 하지만 조금 품을 들여 더듬더듬이라도 쫓다 보면, 체에 받쳐 바싹 말려낸 언어가 아닌, 고전이라는 힘없는 명예로 남은 것이 아닌, '지성의 술수'에 빠지지 않은 신화와 상상을 이야기를 듣는 우리 개개인에게 돌려주자는 그의 구호를 들을 수 있다. 그러니까 『이윤기의 그리스 로마 신화』에서 저자가 자신은 해석을 하는 것이 아니라 신화라는 자전거에 올라탄 독자의 뒤를 밀어줄 뿐이라고 했을 때, 그것을 치레 정도로 허투루 넘겨서는 안 될 일인 것이다. 각자의 아리아드네의 실타래를 가지고 언제, 어디서인지 모르게 끊어진 기억의 줄기를 이어 붙이는 일이 남았다. 옛날 이야기 하나 풀어낼 줄 모르는 노인이 되고 싶지 않으면 말이다.
(문은실 / bowls@hanmail.net)

출판사 리뷰

4장 최초 해석의 미소
'신화의 사람들'에서부터 역사가의 합리주의의 비난까지 흐르는 길게 뻗은 곧은 길에 고불고불한 비좁은 길이 합세해 온다. 바로 철학의 목소리가 해석의 담론과 교차하며 꼬이는 시절, 해석의 담론이 역사의 글쓰기 시작과 이야기들의 글쓰기의 시작과 하나를 이룰 때이다. 크세노파세스, 헤로도토스 헤카타이오스, 헤시오도스 등, 현대 신화학자들이 발굴된 고대인들의 발자취에 신화 과학의 새로운 지식을 신뢰와 함께 투입하여 가르침을 얻고자 하는 것은 바로 이 명민한 철학자들로부터인 것이다. '섬세하고 세련된' 이들 가운데 우리가 맨 먼저 꼽을 수 있는 사람, 신화의 최초 해석을 길은 튼 사람은 크세노파네스이다.

그는 선인들의 지혜 요컨대 '소피아'야말로 내부의 원수이며 적수이고, 도시 국가의 좋은 정부와 세계의 질서를 위태롭게 하는 것, 철학자가 이제 그 유일한 제도사가 되고 있는 코스모스의 질서를 위협하는 것이라고 하며 논의를 펼친다.
그리스 '신화'는 생각해지기 전에, 말해지기 전에 쓰여진다. 그리고 '신화학'은 기억의 길들처럼 케케묵은 것으로 간주되는데 그와는 반대로 여리고 새로운 것으로서, BC 4세기 말 태어나서 성장하기 위해서는 플라톤의 집요한 작업이 필요했다. 플라톤은 엉뚱한 면을 가진 산파라 하겠는데, 하여간 '신실하고 사려 깊은 사람들'과는 다른 이유로 분노하는 역사가 투키디데스에게서 두어 걸음 떨어진 곳에 서 있다.

5장 신화가들에 의해 방호된 도시 국가
설득하고, 매혹시키고, 마음을 사로잡는 것, 이것이 철학자들의 도시 국가에서 신화가 펼치는 유일한 정치이다. 결국 입법자가 설파하고 소문에 기대어 보급되어 모델 국가를 가득 채우기를 그치지 않는 신화학은 갈수록 순수하게 정치적 계획과 동일시된다. 이 계획은《국가》에서《법》까지 갈수록 더욱 구체화해 갈 것이다. 동일한 하나의 대 '신화학소'를 통해, 즉 이른바 페니키아 민담이나 시도니우스 민담을 통해. 플라톤은《국가》에서 나쁜 모방을 좋은 '미메시스'와 구분하며, 필요한 거짓말, 유용하고 아름다운 거짓말의 이론을 전개한다. 우선 도시 국가의 행정관들에게, 그리고 가능하면 도시 국가의 모든 이에게 페니키아의 설화를 믿게 해야 한다.

시인들이 말한 대로 , 믿게 한 대로 이미 많은 장소에서 유통되었지만, 오늘날까지 전해오지는 못했고 , 어쩌면 결코 전해오지 못할지도 모르는, 게다가 받아들이게 하기가 매우 어려운 그 설화를." 그것은 인간에게는 세 타입, 세 그룹의 시민이 있다는 것이다. 즉 금, 은, 합성금이. 그들에게 다음 같은 점을 설득시키려고 노력해야 한다. "그들이 우리에게서 받고, 그 효과를 감지하고 체험했다고 보는 모든 교육과 가르침은 한낱 꿈에 지나지 않는다고, 사실 그들은 땅의 품속에서 형성되고 키워졌음을. 그들, 그들의 무기, 장비 모두가. 그들을 완전히 키워놓은 후 땅은, 그들의 어머니는 그들을 세상에 나오게 했음을. 그러니 이제 그들은 그들이 살고 있는 땅을 어머니처럼, 유모처럼 생각해야 하고 , 땅이 침략당하면 방어해야 하며, 다른 시민들을 자기들처럼 땅의 품에서 태어난 형제들로 간주해야 함을."

그러나 이 '신화학'은 우리에게 수정되고 혼합된 번안을 줄 것이라고 플라톤은 덧붙인다. 금의 인간에게서 애비와 닮지 않은 자식이, 은의, 또는 합성금의 후손이 태어날 수도 있으니 말이다. 결국 각 세대마다 선별이 필요하게 된다. 그래서 어떤 이는 승급시키고, 다른 이는 하위 그룹으로 보내야 한다. 철이나 청동으로 지배할 때 망하리라는 신탁이 있기 때문이다.


6장 두 머리의 그리스인
레비­스트로스는 잊혀졌거나 무시되었던 여러 모습 중에서 추상화를 향해 가는 신화적 사고의 자율적 진행상을 식별해 낸다. 물론 그리스인들은 다른 민족과 아주 비슷하다. 다만 약간의 차이점이 있는데, 사실 사소하다고 할 수 없는 것으로, 그들이 두 머리를 가졌다는 점인 것이다. 신화적 머리와 철학적 머리. 단순한 쌍둥이가 아니라 몸이 붙은 샴쌍둥이 형제로 , 둘은 서로 깍듯이 예의를 지킨다. 각자 자기의 땅을 통치하면서, 첫째는 둘째가 내놓은 담론 때문에 동요되는 일은 전혀 없는 것 같다. 게다가 철학적 머리는 신화가인 이웃을 지배하려는 의도는 조금도 보이지 않는다. 긴장도 없고 갈등도 없다.

레비­스트로스는 철학을 위해 신화학이 "물러남"을 말한다. 마치 신화적 사유가 스스로를 넘어서 자신의 완성을 이 다른 사유에서 발견하기라도 하듯, 다른 사유의 출현이 학문의 미래를 준비하기에 앞서 자기의 아득한 옛 지식의 반사 영상을 제공해 주기라도 하듯 말이다. 하나의 사유 속에 들어 있는 다른 사유의 존재는 설명이 필요하지 않다. 계몽주의의 이성이 우화적인 것을 무지의 소산으로 돌린 반면, 신화적인 것은 카시레르 이래로 자체의 논리와 경험 양식과 함께 자율적 사유의 자질을 되찾고, 철학이 추상화하기에 이르면서 자기 의식을 얻는 철학의 고향 땅이 되며, 그것의 '추상적인' 담론은 이행을 자명하고 필요한 것으로 만들면서, 이행을 실현하게 하는 데 충분하다.

7장 찾을 길 없는 신화
신화는 신화학이라는 물 속에서 용해되는 물고기이다. 그러면 신화 없는 신화학은 무엇을 의미할까? 관념론자에 이어 인류학자가 관찰자라고 부른 자의 신화에 관한 지식이 진퇴 양난에 처하게 되는, 반사영상과 환상의 거울 유희가 진면목을 드러낸 지금, '신화학'을 어떻게 규정할 것인가? 요컨대 신화학에 특정 대상을 부여할 수 있는가? 특정 지식, 사고 방식, 상징적 활동의 특별한 양식인가? 설화 없는 신화학은 상상조차 할 수 없을 만큼 자명하다. 하지만, 남자는 홀로 여행길을 나서서 오래 떠돈 끝에 눈에 보이지 않는 도시를 발견했고, 거기에 붙일 적절한 단어가 자기 나랏말엔 없기에, '신화학'이라고 이름을 붙였다.
그는 경이로운 많은 설화를 가지고 돌아오지 않았다. 그의 귀환을 고대하던 나라에 돌아와서, 그는 영원히 젊은 신들의 몸짓도, 하늘과 땅과 바다의 탄생도 이야기하지 않았다. 겨울 이야기는 전혀 없었고, 단 하나의 '신화학소'도 없었다. 하지만 60세 이상의 모든 노인은 곧 이야기를 지어내기 시작했는데, 얼마나 훌륭했는지 어린이들은 금방 매료되어 그들에게 귀를 기울였고, 그러면서 늙어갔다. 한편 노인들은 어린이들과 서서히 비슷해졌다. 페스트가 도시를 황폐하게 만들었다. 그러나 플라톤적 도시는 미지의 병에서 살아남았다. 이 병세를 보며 다른 혼란한 시대에 사려 깊은 정신들이 '끊어진 전통'이라고 부르게 될 것을 조심스럽게 진단한 이들도 있긴 했지만.

누가 아는가, 오직 망각의 누이인 창조적 기억만이 '신화학'을 구할 수 있을지, 아니면 적어도 우리 같은 그리스인이 이처럼 오랜 읽기를 통해 멋대로 몰아간 유랑으로부터 신화학을 빼낼 수 있을지.
마르셀 데티엔은 이론가가 나타나기를 기다리며, 마지막으로 이야기 하나를 하면서 글을 마친다.

"시라쿠사에서 히에론 2세였는지 1세였는지는 밝혀진 바 없지만 하여간, 히에론은 도시의 외곽에 정원을 엄청난 장관으로 꾸몄다고 한다. 그는 국무를 구상하거나 처리하기 위해 거기에 가기를 좋아했다. 히에론의 정원 이름은 '신화'였다. 왕이 손님들과 나눈 담화 내용에 대한 비꼼이었을까, 또는 더 평범하게, 접견 장소가 흐르는 물과 향기로운 나무의 아늑한 그늘 사이, 순수와 퇴폐가 뒤섞인 냄새 가운데라는 말이었을까? 하여간 시라쿠사 왕의 '낙원'이 사계절 내내, 아쉽게도 이젠 찾아볼 수 없게 된 식수를 꽃피운 사실을 우리가 볼 수 없게 막을 것은 근시안뿐이다. 그런데 근엄한 관찰자들은 유감스럽게도 몇몇 식물학자의 글에 잘못 인도되어, 찾을 길 없는 그 종(種)을 개밀인가 무언가 하는 잡초라고 고집한다."





1장 애매한 가름선

신화학(신화)은 담론적 진술 전체, 서술 실제 전체, 일반적으로 말하는 설화와 이야기 전체를 가리킨다. 그러나 동시에 신화학은 신화에 '관한' 담론처럼, 말하자면 신화의 기원과 성질과 본질에 대해, 신화 전반에 대해 말하는 지식을 가리키기도 한다. 신화학은 이 두 담론이 서로 교차하는 의미론적 장소이며, 여기서 둘째 담론은 첫째 담론에 대해 말함으로써 해석적 담론이 된다. 이렇듯 신화학적 지식이 학문화하는 시점 즉 '신화의 과학' 또는 '비교신화학'이라고 불리기 시작하는 시점은 19세기 중반부터이다.

마르셀 데티엔은 1850년에서 1890년 사이에 종교사니 신화 과학이니 비교신화학이니 하는 강좌로 뒤덮인 유럽의 신화 연구 학파들을 살피면서, 그들의 업적과 한계를 짚어 간다. 사실 신화 과학이 말하기 시작한 것은, 그리스 신화 속에 점잖지 못한 이야기가 가득 들어 있음을, 그리스 신화가 몰상식한 이야기를 하고 있음을, 비상식적인 괴이한 언어를 말하고 있음을 갑자기 깨달았기 때문이다.

예전부터 쭉 전해 내려온 신화학의 신화가 이처럼 갑작스럽게 스캔들을 야기하다니 어떻게 된 일일까? 이는 기독교와 성경 저 너머로 그리스인과 미개인 사이에 존재하는 '일치점'을 찾아내는 데 기초가 될 대표적 이교도족(기독교국이 아닌 민족)의 종교를 발견하려는 계획 속에서 출발한다. 여기에서 신화는 퇴폐를 이야기하며, 타락의 참상을 보여준다. 무지와 더불어 번성하고, 열정과 더불어 부풀며, 예배가 붕괴되고 종교가 어둠에 빠질 때 나타난다. 그것은 신화의 변질을 나타낸다.


2장 입으로 귀로

고대 그리스에서는 문자 이전의 '구어 전통'의 힘이 강력했다. 도시 국가에서 '최고의 권력을 지닌' 사람들이 문자 애용을 거부한 것이다. 그들은 연설을 글로 쓰는 일을 부끄럽게 여겼으며, 후일 비판을 받을까 봐, 그리고 소피스트라고 불릴까 봐 직접 쓴 글을 남기기를 두려워했다. 이렇듯 리듬 형식을 빌려 입으로 귀로 전달된 기억 전통을 다소 집단적 지식의 백과사전처럼 구상된 문자 체계로 확립한 사람이 호메로스이다. 호메로스의 이른바 서사시는 문자에 의해 고정된 덕분에, 그리하여 변주 가능성에서 벗어나 어느 엘리트 집단에게서 문학적 기념비로 변하여, 그 거대하고 고독한 몸집으로 구어적 기억 나라에 대한 폭넓은 인식을 가로막는 장애물이 되어 버렸다.

레비-스트로스는 "개별적인 작품들은 모두가 잠재적인 신화이다. 그러나 이 작품들의 '신화주의'를 현실화하는 것은 그것들이 채택하는 집단 양식인 것이다"라고 한다. 사회적 기억의 검열(반복을 통한 변주)을 통해 살아 있는 신화가 된다는 것이다.《신화론》의 끝머리에 있는 이 이론 개진의 즉각적인 이점 중 하나는, 그리스에서 발생한 것이기에 보편적인 것이라고 선언된 '신화'의 특권에 대해 회의를 던진 점이다. '신화주의'를, 말 문화에 포함된 기억할 만한 것의 주요 현상으로서 인정하는 것이야말로 신화를 문학의 한 장르 혹은 하나의 규정된 설화 타입으로서, 괄호 속에 넣기 시작하는 것이 되기 때문이다. 아마 인류학이 독자적인 학문이 된 이후로, 사회와 문화의 은밀하지만 본질적인 이 부분을 다소간 자연스럽게 '신화학'이라고 부르며 연구하기를 그치지 않은 이유가 그것이리라.

3장 신화적 환상

라피토나 퐁트넬이나 비교 연구가들은 그리스의 '추잡함'에 '과학적' 해석을 내놓느라 분주하다. 그러나 이미 '신실하고 사려 깊은' '섬세하고 세련된' 고대 그리스 철학자들은 학문으로의 신화학을 창조하는 주인공으로 나선다.

우리 동시대인들은 '합리적 사고'를, 성스러운 이야기나 신들에 관한 담론이라는 의미의 '신화'를 도구로 삼고 있는 다른 사고 형태를 무너뜨리려는 계획으로 보려는 경향을 보이는데, 그러나 BC 530년경의 크세노파네스에서부터 BC 450년경의 엠페도클레스까지의 고대 철학자들은 이러한 우리 동시대인들의 계획을 지속적으로 부인한다. 그들은 신화와 엄밀한 역사 사실을 가르며, 신화를 연구해 간다. 신화에 가장 비타협적인 헤로도토스는《펠로폰네소스 전쟁》에서 역사가적 지식으로 구축한 독자성으로 '신화적인 것'을 배제한다. 그리고 투키디데스는 '신화적 착각의 계보적 역사'인 그리스 역사를 복원하려 노력한다.

이들은 거의 신화에 호의적이 아니었다. 그러나 신화의 합리적이고 과학적인 연구 분야인 '신화학'의 최초 해석자임은 분명하다. 물론 여기엔 '신화'의 바른 용법을 진술하고자 하는 해석학을 위한 자리는 없다. 성스러운 말씀회의 한 선교사가 최근 '일신교'는 신화가 전혀 들어 있지 않은 깨끗한 것이어야 한다고 소원한 것처럼, 투키디데스가 원한 이성의 교단은 처음부터 '신화의 밖'에 있을 때만 스스로 완벽하다고 흠이 없다고 자부할 수 있다. 신화와 종교, 이성과의 선 긋기가 시작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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