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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序)
진일유고 서문 진일유고 편문 진일유고 권1 잡시 3수 도 징군을 본받음 안 특진을 본받음 포 참군을 본받음 태묘의 제사 후 연향에서 2수 세자의 책봉을 하례하는 시 가사 구절 영주에 올라 대루원 봉황지 대궐 중궁의 입춘 첩자 습진행 팔준도 중국에 가는 이자야를 보내며 2수 본국으로 돌아가는 예 천사를 보내며 중국 사신 사마씨를 보내며 옥당 학사와 성남에서 놀며 경순 형제와 기녀를 데리고 장의사동에 놀며 회포를 적다 2수 옥당에서 본전의 여러 공에게 청보에게 화답하다 옥당에서 우연히 읊다 궁사 사시 기녀를 바라보며 남에게 붓과 먹을 빌리고 일본국 승려를 보내며 제야 3수 용문의 백 년 된 오동나무 벗에게 부치다 2수 회포를 적다 2수 가을 산을 그리다 풍우도 관아에서 이자야에게 봄비에 백씨에게 부치다 연아 경주회고 8수 진일유고 권2 강가에서 숙박하며 2수 도중 배에서 산수도에 적다 어부 6수 담담정 4수 담담정 사시 마포에서 밤비를 탄식함 청강곡 목우도 노안도 밤중에 피리 소리 듣다 미인행 채련곡 나홍곡 12수 회문으로 지어 낭군에게 부침 2수 염양사 2수 노인행 전장행 황작가 악풍행 아부행 원시 2수 수양산 3수 등고시 5수 병인년 9월 9일에 높은 곳에 올라 10수 태산시 10수 근친하러 돌아가는 이 공을 보내며 문종 만사 2수 강중시에 차운하다 4수 또 차운함 4수 절구 3수 영통사 서루운에 차운하다 눈 진일유고 권3 잡시 옛 시를 본받아 4수 강경우에게 청천헌 게송 서강중에게 2수 임자심에게 성원위에게 드림 2수 노 정랑에게 병중에 중경에게 회포를 적다 3수 연꽃 게 비가 개어 2수 절구 5수 동산에서 3수 소나무 그림 내공의 잣나무 2수 내공의 대나무 꿈에 물가에 갔다가 매미 2수 칠석 밤에 앉아서 용 2수 희롱 삼아 채자휴의 시에 차운하다 8수 임금님의 수레 가형과 함께 하응천을 불러 놓고 응천이 당도하고 다시 한 수를 짓다 구일 운에 차운하다 산사 2수 전 스님께 화답하다 8수 무제 3수 송도에 노닐며 2수 송도에서 백씨에게 차운하다 밤에 백씨를 생각하며 밤에 두견새 소리를 들으며 우연히 흥이 일어 여러 분께 차운하다 무제 회포가 있어 과거에 낙방한 최세원에게 주다 이 상국의 고택에서 절구 벗이 온 것이 기뻐서 순채 어부 성거산 상봉에 올라 누각에 올라 진일유고 권4 신설부 민우부 오례서 구일등고시서 송이수재서 송범사유방서 유관악사북암기 훈련관사청기 성균관기 병중잡설 서강중시고후 용부전 하주반신전 발문 진일유고 발문 부록 진일선생전 해설 지은이에 대해 옮긴이에 대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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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풍행
모진 바람 서쪽에서 땅을 말아 부는데 눈송이 아득하게 방석같이 크구나 처음엔 성글더니 버들개지처럼 날리며 잠깐 사이 뜨락에 한 자나 쌓였네 농부는 일찍 일어나 기쁘게 말하길 내년엔 풍년 들 징조임을 알겠노라 나락을 수레에 가득 실을 때 있으리니 빈 창고에 먼지 쌓일 근심이 없겠네 짧은 옷을 정강이 가리려 당길 필요 없고 아이는 섶을 져다 구들에 불을 때리라 나는 이 말 듣고 엎어질 듯 기뻐하며 웃으면서 하늘 향해 길게 박수를 쳤네 만백성이 굶주림과 추위를 면하게 된다면 내가 굶주림과 추위로 죽어도 좋으리 아! 내가 굶주림과 추위로 죽어도 좋으리 惡風行 惡風西來捲地吹。雪花茫茫大如席。 疎疎初作柳絮飛。俄頃庭除深一尺。 田翁早起喜相語。來成?兆占可識。 稻車穩載庶有時。不憂空?塵自積。 短衣掩脛不須挽。健兒負薪燒我突。 我聞此語喜欲顚。笑向天工手長拍。 若使萬姓免飢寒。吾受飢寒死亦足。 嗚呼。吾受飢寒死亦足。 --- 본문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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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일유고≫는 성간이 죽은 뒤 1467년에 동생 성현이 편차해 간행한 것이다. 115제 245수가 수록되었는데, 성간이 30세에 요절했음을 감안하면 적다고는 할 수 없다. 성현이 권수에 쓴 글에서 성간의 작품이 어떤 정황에서 창작되었는지 가늠할 수 있어 주목된다. 성현이 ≪진일유고≫를 직접 편차한 장본인이라는 점에서 이 글의 신빙성이 높다. 우선 성현이 쓴 <진일유고편문>에서 보듯이 성간의 박학강기한 자질과 뛰어난 문재는 동료들이 감탄한 정도다.
성간의 작품은 주로 20대에 지은 작품으로 여러 차례 송도를 유람하면서 지은 것이 많은 편이다. 그리고 관직 재임 시에는 국가의 제정 문서를 지었다. 구체적인 사례로 27세 때는 문과에 급제해 특별히 전농직장에 제수되었다가 집현전으로 전직해 박사가 되었는데 <문종만사>, <오례서>, <훈련관사청기>, <성균관기>가 이때 지은 것들이다. 집현전이 철폐되자 사간원 좌정언으로 전직되어 재임 시에는 <하주반신전>을 지었다. ≪진일유고≫에는 절친한 교유들과 수창한 작품도 적지 않은데, 교유 인물은 주로 당대의 관각 문인들이다. 개인적 취향으로 음악에도 관심을 기울였던 때문인지 중국 악부시를 의고한 악부시도 주목된다. 이러한 정황으로 미루어 성간의 시 작품은 악부시(樂府詩)·기행시(紀行詩)·관각시(館閣詩)·교유시(交遊詩)로 크게 구분할 수 있다. 성간의 시 작품은 서거정·허균·홍만종·임경 등 제가로부터 높이 평가되었다. 특히, 성간의 의고 악부시는 중국의 고시와 악부시를 본받은 것으로 국내외에서 주목되었다. ≪동문선≫에 성간의 작품이 시 10제, 문 4제로 총 14제나 수록되었다. ≪청구풍아≫에 시 5제, ≪국조시산≫에 시 9제, ≪기아≫에 시 8제, ≪대동시선≫에는 시 7제가 실려 있다. 이처럼 조선 시대의 대표적인 시선집에 빠짐없이 수록되었음을 감안하면, 그의 작품이 높이 평가되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성간의 시가 중국에까지 널리 알려진 것은 아마도 그가 성당(盛唐)의 시를 전범으로 하고, 특히 두보의 시 경향에서 많이 영향을 받은 때문이라 할 수 있다. 성간의 시 작품 가운데 내용면에서 ‘사회시’ ‘농민시’ 등으로 불리며 주목되는 작품들은 바로 두시의 영향을 받은 것이라 할 수 있다. 성간의 시에 나타난 현실 인식은 당시 사장파 문인들의 현실 긍정적인 시각과 차이를 보인다. 지배층 관료의 위치에서 백성의 피폐한 모습을 관망하는 것이 아니라, 백성의 위치에서 그들과 일체감을 형성하면서 참상을 여실히 드러내 보이고 있다. 한시 연구자들은 성간의 이러한 시 세계를 특별히 주목해 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