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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권 사언시(四言詩)
1. 멈춰 선 구름(停雲) 2. 시절의 운행(時運) 3. 무궁화(榮木) 4. 장사공에게 드리다(贈長沙公) 5. 정시상에게 화답하다(酬丁柴桑) 6. 방 참군에게 답하다(答龐參軍) 7. 농사를 권하다(勸農) 8. 아들에게 명하다(命子) 9. 돌아온 새(歸鳥) 제2권 오언시(五言詩) 10. 몸과 그림자와 정신(形影神) 11. 중양절 한가로이 지내며(九日閑居) 12. 전원의 거처로 돌아오다(歸園田居) 13. 사천에서 노닐며(遊斜川) 14. 주속지, 조기, 사경이 세 젊은이에게 보여 주다. 이때 세 사람은 모두 성의 북쪽에서 예의를 강의하고, 책을 교감하고 있었다(示周續之租企謝景夷三郞時三人共在城北講禮校書) 15. 먹을 것을 빌다(乞食) 16. 여러 사람들과 주씨 무덤가의 측백나무 아래에서 노닐며(諸人共遊周家墓柏下) 17. 초나라 가락의 원망하는 시를 방 주부와 등 치중에게 보이다(怨詩楚調示龐主簿鄧治中) 18. 방 참군에게 답하다(答龐參軍) 19. 5월 아침에 지어 대 주부에게 화답하다(五月旦作和戴主簿) 20. 연일 오는 비에 홀로 마시면서(連雨獨飮) 21. 거처를 옮기다 2수(移居二首) 22. 유시상에게 화답하다(和劉柴桑) 23. 유시상에게 답하다(酬劉柴桑) 24. 곽 주부에게 화답하다 2수(和郭主簿二首) 25. 왕 무군의 자리에서 객을 전송하다(於王撫軍座送客) 26. 은진안과 작별하며(與殷晉安別) 27. 양 장사에게 주다(贈羊長史) 28. 세모에 장 상시에게 화답하다(歲暮和張常侍) 29. 호 서조의 시에 화답해 고 적조에게 보여 주다(和胡西曹示顧賊曹) 30. 사촌 동생인 중덕을 슬퍼하며(悲從弟仲德) 제3권 오언시(五言詩) 31. 처음 진군장군의 참군이 되어 곡아를 지나며 쓰다(始作鎭軍參軍經曲阿作) 32. 경자년 5월 중에, 도성에서 돌아오다가 규림에서 바람에 막히다 2수(庚子歲五月中從都還阻風於規林二首) 33. 신축년 7월 휴가 갔다가 강릉으로 돌아가면서 밤에 가는 도중에 짓다(辛丑歲七月赴假還江陵夜行途中作) 34. 계묘년 초봄에 농막에서 회고하다 2수(癸卯歲始春懷古田舍二首) 35. 계묘년 12월 지어 사촌 동생 경원에게 주다(癸卯歲十二月中作與從弟敬遠) 36. 을사년 3월에 건위장군의 참군이 되어서 도성으로 가다가 전계라는 지역을 거쳤다(乙巳歲三月爲建威參軍使都經錢溪) 37. 옛 살던 곳에 돌아와(還舊居) 38. 무신년 6월 중에 화재를 만나다(戊申歲六月中遇火) 39. 기유년 9월 9일(己酉歲九月九日) 40. 경술년 9월 중에 서쪽 밭에서 올벼를 수확하며(庚戌歲九月中於西田穫早稻) 41. 병진년 8월 중에 하손의 농막에서 수확을 하며(丙辰歲八月中於下?田舍穫) 42. 술을 마시다(?酒) 43. 술을 그쳐 볼까(止酒) 44. 술을 노래하다(述酒) 45. 자식을 책망하다(責子) 46. 깨달음이 있어 짓다(有會而作) 47. 연말 제삿날(?日) 제4권 오언시(五言詩) 48. 옛 시를 본뜨다(擬古) 49. 잡시(雜詩) 50. 가난한 선비를 읊다(詠貧士) 51. 두 명의 소씨를 노래함(詠二疏) 52. 세 좋은 신하를 노래함(詠三良) 53. 형가를 읊다(詠荊軻) 54. 산해경을 읽다(讀山海經) 55. 만가를 본뜨다(擬挽歌辭) 56. 구를 잇다(聯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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멈춰 지내는 곳은 읍내에 머물렀지만,
어슬렁어슬렁 스스로 한가롭게 그치네. 앉음은 높은 나무 그늘 밑에 그치고, 걷는 것은 사립문 안에 그치네. 맛있는 것은 채마밭 아욱에 그치고, 크게 기뻐함은 어린아이에 그치네. 평생 동안 술은 그치지 아니하나니, 술 그치면 마음에 기쁨이 없기 때문. 저녁에 그치면 편히 잘 수가 없고, 새벽에 그치면 일어날 수가 없네. 날이면 날마다 그걸 그치고 싶으나, 몸의 순환이 그쳐서 다스려지지 않네. 居止次城邑, 逍遙自閑止. 坐止高蔭下, 步止?門裏. 好味止園葵, 大歡止稚子. 平生不止酒, 止酒情無喜. 暮止不安寢, 晨止不能起. 日日欲止之, 營衛止不理. --- 「술을 그쳐 볼까(止酒)」 중에서 흰머리가 양쪽 귀밑을 덮고, 피부가 다시는 실하지 않네. 비록 다섯 남자아이들이 있지만, 모두 종이와 붓을 좋아하지 않네. 아서는 이미 열여섯이건만, 게으르기가 정말 짝이 없네. 아선은 머지않아 열다섯이 되건만, 그러나 문장과 학술 좋아하지 않네. 옹과 단은 나이가 열셋인데, 여섯 더하기 일곱도 모른다네. 통이란 놈은 거의 아홉 살인데, 단지 배와 밤 따위만 찾네. 천운이 진실로 이 같다면, 잠시 잔 속의 술 권할 수밖에. 白髮被兩?, 肌膚不復實. 雖有五男兒, 總不好紙筆. 阿舒已二八, 懶惰固無匹. 阿宣行志學, 而不愛文術. 雍端年十三, 不識六與七. 通子垂九齡, 但覓梨與栗. 天運苟如此, 且進杯中物. --- 「자식을 책망하다(責子)」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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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확한 번역과 충실한 내용으로 『도연명 전집』 정본을 추구하다
이 책은 특정한 판본을 저본으로 삼지 않고 『도연명집(陶淵明集)』[경인문연각 사고전서(景印文淵閣四庫全書) 1063책)], 도주(陶澍) 집주(集注) 『정절선생집(靖節先生集)』 [속수 사고전서(續修四庫全書) 1304책], 루친리(?欽立) 교주(校注) 『도연명집(陶淵明集)』[중화수쥐(中華書局), 1987], 위안싱페이(袁行?) 찬(撰) 『도연명집전주(陶淵明集箋注)』 [중화수쥐(中華書局), 2014] 등 여러 통행본을 두루 대조해 옮겼다. 그간 난해해 번역에 어려움을 겪었던 작품들도 여러 연구 성과를 바탕으로 정확히 번역해 내었으며, 번역은 직역을 위주로 하되 원문의 절주를 살리기 위해 우리말 번역도 가능한 한 글자 수를 가지런히 했다. 번역문과 대조해 볼 수 있도록 각 작품의 뒤에는 원문을 첨부했으며 운문의 운율을 즐길 수 있도록 우리말 독음을 달아 주었고 압운도 밝혀 두었다. 주석은 루친리(?欽立) 교주(校注) 『도연명집(陶淵明集)』과 위안싱페이(袁行?) 찬(撰) 『도연명집전주(陶淵明集箋注)』를 중심으로 여러 주석서를 참조해 필자가 추가했으며, 고증보다는 원시 이해에 도움이 될 수 있도록 했다. 또한 각 작품 뒤에는 작품 해설을 덧붙였는데, 주관적인 감상이나 평보다는 정확한 문맥 파악에 주안점을 두었다. 부록에는 도연명에 관한 여러 자료들을 수록했으며, 특히 도연명 전문가인 위안싱페이 교수의 허락을 받아 도연명의 향년에 관한 그의 논문을 정리, 번역해서 실었다. 또한 오늘날 우리가 도연명을 읽어야 하는 이유를 중심으로 도연명의 생애와 작품 세계를 전체 해설에서 상세히 소개했다. 일반 독자는 물론 전문 독자들도 『도연명 전집』을 통해 도연명의 다양한 면모를 깊이 있게 살필 수 있다. 이백과 백거이, 소동파의 롤모델 도연명 중국에는 수많은 시인들이 있었고, 그중 이백, 두보, 소동파 등은 우리에게도 널리 알려져 있다. 그러나 이보다도 앞서, 아시아 전체에서 사랑받은 시인이 바로 위진 남북조 시대의 도연명이다. 이백의 시 속에 나오는 술과 대자연에는 도연명의 자취가 완연하고, 동파 소식은 도연명의 거의 모든 작품에 화답하는 「화도시(和陶詩)」를 남겼으며 한반도는 물론, 일본에서도 수많은 문인들이 「화도시」를 통해 도연명을 추숭했다. 또한 도연명의 「도화원기(桃花源記)」를 모티프로 한 안견(安堅)의 「몽유도원도(夢遊桃源圖)」를 비롯해 동아시아의 많은 화가들이 도연명의 생애와 작품을 회화로 남겼다. 오늘날에도 주변을 살펴보면 도연명에 대한 여러 책들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참다운 삶, 전원으로 돌아가다 이렇듯 동아시아 전체에서 널리 사랑받은 도연명, 그는 어떤 사람인가? 도연명의 생애는 자세히 알려져 있지 않다. 다만 「귀거래사」를 비롯한 그의 작품을 볼 때, 그는 몇 차례 관직에 나갔으나 자의 반 타의 반으로 곧 그만두고 전원에서 평생을 소일한 ‘전원시인’이다. 그러나 우리는 ‘전원’이라는 말을 그저 낭만적으로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 그의 작품에 드러나는 전원은 부유한 사대부들이 한가롭게 풍류를 즐기는 장소가 아니라, 힘써 노동하고 농부로서 살아가는 치열한 사유와 생존의 장이다. 이 때문에 그의 전원생활은 당시 사람들에게 커다란 울림을 주는 상징적인 행위가 되었다. 도연명은 진나라 개국 공신의 후예로, 명문가 출신이다. 그러나 귀족과 군벌의 발호로 나라가 어지러운 시대를 만난 그는 옳지 못한 세상에서 부귀영화를 누리기보다 시골 농부의 가난하지만 정직한 삶을 택했다. 이러한 그의 모습은 떳떳하지 못한 사회적 강자에게 경각심을 주고, 빈한하지만 성실한 약자에게는 자긍심을 주었다. 그의 삶은 단순한 전원생활이 아니라 혼탁한 시류에 맞서, 시대를 이끄는 선각자 역할을 한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도연명의 삶과 문학 세계의 핵심인지도 모른다. 도연명 작품의 또 하나의 특징은 심원(深遠)한 사유를 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아주 쉽게 읽을 수 있다는 점이다. 이는 그가 당시 유행이었던 꾸며 대는 글쓰기를 거부하고, 그저 잘 익은 생각을 가식 없이 드러내고 있기 때문이다. 21세기에 만나는 진정한 웰빙의 가르침 현실을 꿰뚫어 본 도연명이 꿈꾸었던 ‘도원향’은 21세기를 살고 있는 우리에게도 여전히 유효하다. 아니, 오히려 더욱더 절실하다. 진정한 삶다운 삶을 찾아 ‘농촌’과 ‘도시’에서 방황하고 있다면, 웰빙(well-being)과 웰다잉(well-dying)을 하고 싶다면, 1500년도 넘는 옛적에 선각자로 앞서서 이 길을 걸었던 도연명을 만나 보기를 권한다. 그의 시문을 읽고 있노라면 도연명이 눈앞에 나타나 빙그레 웃으리라. “돌아오세요, 전원으로! 잘 오셨어요, 무릉도원으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