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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목차

1. 초려에서 나눈 문답(草廬對) ···········3
2. 후제를 대신해 쓴 조위 정벌을 알리는 조서(爲後帝伐魏詔詔書) ·················11
3. 돌아가신 황제의 유언 선포를 요청하는 표문(請宣大行皇帝遺詔表) ················23
4. 남방의 정벌 상황을 알리는 표문(南征表) ·····27
5. 출사표(出師表) ················30
6. 후출사표(後出師表) ··············41
7. 여개를 천거하는 표문(薦呂凱表) ·········54
8. 이평을 탄핵하는 표문(彈李平表) ·········56
9. 요립을 탄핵하는 표문(彈廖立表) ·········60
10. 요립을 다시 탄핵하는 표문(又彈廖立) ······63
11. 사건을 아뢰는 표문(上事表) ··········66
12. 기산 사건을 아뢰는 표문(祁山表) ········68
13. 장완을 추천하는 비밀 표문(擧蔣琬密表) ·····70
14. 후주에게 올리는 표문(自表後主) ········72
15. 상서에 올리는 공문(公文上尙書) ········75
16. 감 부인을 소열황후로 추존할 것을 아뢰는 글(上言追尊甘夫人爲昭烈皇后) ············84
17. 가정에서 자신의 강등을 요청하는 상소(街亭自貶疏) 90
18. 정의에 대해서 논의하다(正議) ·········93
19. 맹약을 파기하는 것이 좋다는 주장에 대한 논의(絶盟好議) ···················99
20. 법정에게 답변한 서신(答法正書) ······104
21. 관우에게 답변하는 서신(答關羽書) ·······107
22. 두미에게 보내는 서신(與杜微書) ········110
23. 두미에게 답변하는 서신(答杜微書) ·······113
24. 유파에게 보내는 서신(與劉巴書) ········116
25. 이엄에게 답변하는 서신(答李嚴書) ·······118
26. 이엄에게 다시 보내는 서신(又與李嚴書) ····121
27. 장예에게 보내는 서신(與張裔書) ········123
28. 장예와 장완에게 보내는 서신 1(與張裔·蔣琬書 1) ······················126
29. 장예와 장완에게 보내는 서신 2(與張裔·蔣琬書) ·128
30. 장완과 동윤에게 보내는 서신(與蔣琬·董允書) ·130
31. 맹달에게 보내는 서신(與孟達書) ········132
32. 보즐에게 보내는 서신(與步?書) ········136
33. 육손에게 보내는 서신(與陸遜書) ········138
34. 손권에게 보내는 서신(與孫權書) ········140
35. 조운이 적애의 잔도를 소각한 일에 대해 형 제갈근에게 알리는 서신(與兄瑾言趙云燒赤崖閣道書) ·143
36. 형 제갈근에게 홍수로 인해 잔도가 파괴된 일에 대해 보내는 서신(與兄瑾言大水赤崖橋閣悉壞書) ·145
37. 수양곡 길에 대해 형에게 알리는 서신(與兄瑾言治綏陽谷書) ··················147
38. 진진에 대해 형에게 알리는 서신(與兄瑾論陳震書) 149
39. 손송에 관해 형 제갈근에게 알리는 서신(與兄瑾言孫松書) ···················151
40. 아들 교에 대해서 형 제갈근에게 알리는 서신(與兄瑾言子喬書) ·················153
41. 아들 첨에 대해 형 제갈근에게 알리는 서신(與兄瑾言子瞻書) ··················155
42. 아들을 훈계하는 서신(誡子書) ·········157
43. 아들을 재차 훈계하는 서신(又誡子書) ·····159
44. 외조카를 훈계하는 서신(誡外生書) ·······161
45. 법정에 대한 답변과 질문(爲法正答或問) ····164
46. 죄인의 사면이 인색하다는 의견에 대한 답변(答惜赦) ·····················167
47. 강유에게 답하는 글(答姜維) ··········170
48. 이풍에게 보내는 교서(與李豊敎) ········172
49. 내민을 파면하는 교서(黜來敏敎) ········176
50. 요주를 칭찬하는 교서(稱姚?敎) ········179
51. 군신 속관에게 내리는 교서(與群下敎) ·····181
52. 재차 군신 속관에게 내리는 교서(又與群下敎) ··184
53. 참군과 연속에게 보내는 교서(與參軍?屬敎) ··186
54. 장병에게 자신의 과실 지적을 권하는 교서(勸將士勤攻己闕敎) ·················188
55. 군령(軍令) ·················191
56. 팔진도법(八陳圖法) ·············193
57. 목우와 유마를 만드는 방법(作木牛流馬法) ···196
58. 군사들이 긴 강을 건너는 첩(師徒遠涉帖) ····202
59. 교유에 관해 논함(論交) ············204
60. 선제에게 황충에 대해서 논함(與先帝論黃忠) ··206
61. 마속 참수에 관해서 논함(論斬馬謖) ······208
62. 장완을 재차 칭찬함(又稱蔣琬) ·········210
63. 양보음(梁甫吟) ···············212

해설 ······················217
지은이에 대해 ··················250
옮긴이에 대해 ··················256

저자 소개

저자 : 제갈량(諸葛亮, 181∼234)
제갈량(諸葛亮)은 중국 삼국시대의 저명한 정치가다. 자(子)는 공명(孔明)이고 동한시대 영제(靈帝) 광화 4년(181) 7월 23일에 서주의 낭야군 양도현에서 태어났다. 부친 제갈규(諸葛珪)는 태산군의 승(丞)을 지냈고, 세 명의 아들과 두 명의 딸을 두었다. 첫째 아들이 제갈근(諸葛瑾), 둘째 아들이 제갈량(諸葛亮), 막내아들이 제갈균(諸葛均)이었다. 제갈량은 어릴 적에 생모인 장씨(章氏)가 병으로 사망했고, 이에 부친은 얼마 후에 재가했다. 이후 부친 역시 영제 중평(中平) 6년(188)에 사망하고 말았다. 이때에 제갈량은 나이 겨우 8세로 그의 가족 모두는 숙부인 제갈현(諸葛玄)에게 기탁했다. 제갈현은 예장 태수로 부임하며 어린 제갈량, 제갈균과 두 명의 조카딸들을 데리고 갔고, 나이가 많은 제갈근과 그 계모는 고향에 남겨 두었다.
형주목 유표에게 의탁한 제갈현을 따라 양양에 거주하던 제갈량은 제갈현 사후 방덕의 보살핌으로 양양의 서쪽 교외인 융중에서 농사일과 독서를 하며 은거 생활을 했다.
건안 12년(207) 유비의 삼고초려를 통해 유비의 군사가 되었다. 그는 조조와 대항하기 위해 손권과 동맹을 맺고 촉한과 한실의 부흥을 위해 노력했다. 건흥 원년(223) 유비가 백제성에서 대패한 후 사망하자 그 아들 유선을 후주로 즉위시키고 보필했으며 촉한의 내정에 주력했다. 이후 중원을 평정하기 위해 6차례에 걸쳐 북벌을 단행했으나 군량미 부족 등 여러 원인으로 실패하고 건흥 12년(234) 과로로 인해 오장원에서 사망했다.
역자 : 조영래
조영래(趙永來)는 중국 고대사에 관심을 두고 있는 연구자로서 경희대학교 사학과를 졸업하고, 중국의 베이징대학교 역사학과에서 중국 고대사를 전공했다. <북조(北朝) 시기 잡호(雜戶)의 연구>로 석사 학위를, <북위(北魏) 탁발(拓跋) 통치 집단의 형성 연구>로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이후 베이징수도사범대학교 역사학과 객원교수를 거쳐서 현재 경희대학교 후마니타스 칼리지와 경희사이버대학교, 숭실사이버대학교 등에 출강하고 있다. 중국 고대사 가운데 특히 진한(秦漢)과 위진남북조사(魏晉南北朝史)의 통치 집단의 형성과 민족 문제에 관심을 두고 북방 민족의 정권 수립과 지역화 과정에 관한 연구를 진행 중이다. 아울러 선진(先秦) 시기의 제자백가의 사상과 목록학에 관심을 갖고 있는데, 특히 역사 문헌학적인 지식을 근간으로 역사 문헌의 체계적인 분류와 문헌 사료의 효율적인 이해와 활용에 관한 문제를 주의 깊게 보고 있다. 역서로는 ≪중국학 개론≫, ≪신자≫가 있으며, <16국 시기 호군제(護軍制) 연구?호한 분치(胡漢分治)를 중심으로>, <盛樂及代北地區與拓拔鮮卑的建國>, <중국 소수민족 정책과 민족 간부 양성>, <‘신중화주의’ 속의 ‘통일적 다민족국가론’>, <“사고전서총목제요(四庫全書總目提要)” 사부(史部)의 분류 체계에 관한 기원 연구>, <중국 역사지리 문헌의 문헌학적 분류와 그 기원의 연구> 등 다수의 논문이 있다.

관련 분류

품목정보

발행일
2014년 06월 15일
쪽수, 무게, 크기
266쪽 | 210*297*20mm
ISBN13
9791130412412

출판사 리뷰

제갈량은 위(魏)·촉(蜀)·오(吳) 삼국시대에 실존했던 역사적인 인물이다. 문학이나 영화, 드라마 등에서 무소불위의 인물로 형상화되면서 한국과 일본에도 널리 알려졌다. 그는 ‘삼고초려(三顧草廬)’, ‘적벽대전(赤壁大戰)’ 등의 역사적 사건을 근거로 해서 다양한 작품에서 신출귀몰한 예지와 신선 같은 풍모를 지닌 신비한 인물로 묘사되었다. 그러나 대개의 작품에서 그를 지나치게 허구적인 인물로 과장하고 있다. 이는 각 작품들이 시대적 요구와 가치관의 변화를 수용한 결과다. 그러나 이런 과장된 모습이 그의 진면목은 아니다.
이 책의 목적은 삼국시대라는 역사적 배경에서 실존했던 제갈량의 진면목을 탐색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관련 문헌들을 엄선해 작품을 선별했다. 저자가 생존했던 시기와 근접한 진(晉), 수(隋), 당(唐) 시대 사료인 ≪삼국지(三國志)≫, ≪수경주(水經注)≫, ≪북당서초(北堂書抄)≫, ≪태평어람(太平御覽)≫ 등에 수록된 관련 자료를 선택해서 원문을 명시하고 내용을 해석했다. 설명이 필요한 경우에는 비교적 상세히 주석을 달았다.
제갈량은 문집류 같은 독립된 저술을 남기지는 않았다. 동한(東漢)과 삼국시대는 전쟁과 혼란으로 점철된 격랑(激浪)의 시대였다. 이러한 시대를 살면서 일관된 사상을 대변하는 저술을 남기기란 쉽지 않았을 것이다. 장편의 철학적· 문학적인 그의 글은 남아 있지 않다. 그러나 촉한의 중신으로서 역할을 수행하는 과정에서 남긴 글에는 시대적 가치와 실사구시를 실천하고자 했던 고뇌와 깊은 뜻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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