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소장하고 있다면 판매해 보세요.
|
VI. 철학적 각성 ·················553
VII. 역사학파 ··················763 VIII. 전야 ···················1007 IX. 단절과 연결 ················1105 찾아보기 ···················1147 해설 ·····················1173 지은이에 대해 ·················1188 옮긴이에 대해 ·················1193 |
|
‘학문적인 수도자들’의 운명에서 가장 큰 역설은 그들이 종무원장의 권력과 감독으로 형성되었다는 점이다. 19세기에 신학교들은 종무원장이 직접 관할하고 있었고, 주교들의 선출 역시 세속 권력의 침해할 수 없는 특권에 속했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수도 생활의 세속화뿐 아니라 관료화가 초래되었다. ‘수도회’는 세속 권력이 교회를 지배하기 위한 수단으로 만들어졌다. 본질적으로 수도회는 명목적인 수도 생활에 불과했다.
--- p.781 러시아 문화의 역사는 처음부터 지금까지 중단, 발작, 부인, 또는 몰두, 환멸, 배반, 단절의 반복으로 점철되어 있다. 러시아 문화에는 직접적인 통일성이 결여되어 있다. 러시아의 역사라는 직물은 너무나 얽혀 있어서 온통 구겨지고 찢겨 있다. --- p.1107 |
|
게오르기 플로롭스키의 ≪러시아 신학의 여정≫은 가장 영향력 있는 20세기 러시아정교회의 지성이라는 그의 명성을 공고히 해 준 역작이다. 제2차 세계대전 직전에 파리에서 쓰인 이 책은 초기 기독교부터 20세기 초반까지 정교회 전승의 모든 역사에 대한 작업의 완결판이다. 이 책은 엄청난 박식함과 종교적·역사적 세계관을 표현해 낸 그의 가장 중요한 작품으로 인정받고 있다. 고대의 교부들로부터 판단의 규범과 기준을 받아들여 러시아정교회 역사의 살아 있는 현실, 그 자신이 속해 있는 문화에 적용했다.
저자는 순수하게 신학적인 작품들에 제한하지 않고 정교회와 관련된 모든 문헌을 다룬다. 고대 루시가 비잔틴에서 기독교의 유산을 받아들인 시기부터 혁명 이후 러시아 정신이 새로운 길을 모색하는 1930년대까지를 일관된 시선으로 조망한다. 러시아 신학의 역사는 크게 여덟 시기로 구분된다. 그 첫째는 10∼16세기다. 루시의 세례와 타타르의 침입, 수도원의 부흥, 이오시프주의자와 자볼시치의 논쟁이 그 시대의 획을 긋는 커다란 사건들로 기록된다. 러시아가 비잔틴의 유산을 받아들여 주변 문화와 관계를 갖기 시작한 이 시기는 플로롭스키가 러시아 역사의 비극으로 인식한 비잔틴과 단절하며 마무리된다. 둘째 시기는 17세기다. 동란과 교회 대분열의 시대다. 이 시기를 러시아 역사에서 가장 혼란스럽고 모순된 것으로 묘사한다. 그가 러시아의 고질적인 영적 질병으로 진단한 종말에 대한 예감과 분위기가 시작됐다. 셋째는 18세기다. 표트르가 단행한 대개혁의 시기다. 표트르 개혁의 본질을 서구화가 아닌 세속화로 규정하며 국가의 교회 통제와 종속화의 과정을 면밀하게 추적한다. 그러한 의도적인 정책의 결과 고사 위기에 놓이게 된 러시아정교회는 역설적이게도 수도원 운동의 발흥으로 영적 생명력을 얻게 된다. 넷째 시기는 러시아의 서구주의가 절정에 달했던 19세기 전반의 알렉산드르 시대다. 이 시대의 가장 중요한 사건은 러시아 성경협회의 성서 번역이다. 또한 설교와 신학 교육을 통해 당시 러시아정교회에서 탁월한 영적 지도력을 행사했던 필라레트의 인격과 활동에 많은 장을 할애한다. 이 시기의 중요한 결실들로 성서 신학의 확립, 신학과 철학의 결합, 역사의식의 각성을 든다. 다섯째 시기는 19세기 중반에서 후반에 이르는 철학 사상의 개화기다. 다양한 서클들의 발흥과 서구주의와 슬라브주의의 대립에서 시작해 키레옙스키·고골·호먀코프·도스토옙스키·레온티예프·솔로비요프·표도로프 등 정교회와 연관을 맺은 작가와 사상가들의 생애와 사상을 일별한다. ‘교회성’이라는 일관된 규준을 가지고 이 역사적 인물들의 삶과 사상을 독창적으로 평가한다. 여섯째 시기는 대개혁 이후 19세기 후반의 혼란스럽고 불안한 시대다. 개인의 삶을 통해 시대의 첨예한 문제를 드러낸 인물로 톨스토이와 포베도노스체프를 주목한다. 특히 이때는 서구의 영향을 받은 프로테스탄티즘의 색채를 띤 다양한 종파의 탄생과 도덕주의 경향으로 러시아 신학이 위기를 맞이한 긴장의 시대이기도 했다. 일곱째 시기는 영적인 삶에 대한 종교적 관심이 급증한 세기말이다. 페테르부르크 종교·철학협회의 활동과 상징주의에 속한 다양한 시인들, 그리고 종교철학자들의 사상을 정교회와 연관해 비판적인 시각으로 조망한다. 이 시기를 솔로비요프와 독일 이상주의가 지배한 시대로 파악하면서 심리주의와 미학주의의 위험성을 간파했다. 마지막 여덟째는 혁명 이후 시기다. 이 부분에서 플로롭스키는 역사적 대격변을 겪은 후 앞으로 러시아 신학이 나아가야 할 방향과 남겨진 과제에 대해 성찰하며 러시아 신학의 부흥을 촉구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