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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상의 음악이 충만한 소리와 사랑을 자극하는 화음으로 우리의 가슴을 움직이게 하는 힘을 가지고 있음을 알려 주기 위해 내가 어떤 말을 선택해서 표현해야 하는가? 그 음악은 직접 천사를 동반하고 영혼으로 들어와 천상의 숨결을 내쉰다. 오, 당장에 행복했던 모든 기억들이 어떤 한순간으로 다시 흘러들어 가, 초대받은 사람의 모든 고귀한 감정과 모든 위대한 생각을 향해 펼쳐진다! 신비한 씨앗처럼 소리들이 우리의 뿌리에 재빨리 울리면, 이제 눈에 보이지 않는 불같은 힘으로 재촉하듯 밀려온다. 그리고 그 순간 수없이 많은 놀라운 꽃들이 핀 작은 숲은 상상할 수 없는 이상한 색을 띠면서 흔들리고, 우리의 어린 시절과 보다 먼 과거가 그 잎들과 꼭대기 위에서 장난을 치며 논다. 이때 꽃들은 흥분해서 서로 다투듯 색에 색이 더해지고 광채에 광채가 더해지면서, 비처럼 쏟아지는 반짝이는 모든 빛들이 새로운 광채와 새로운 빛들을 유혹해 낸다. 마음속 깊은 곳은 즐거움으로 변해서 ‘뭔가’로 흘러들어 가 변하는데, 우리는 그것을 뭐라고 말할 수도 생각할 수도 없다. 그것 자체가 가장 행복한 감정이고, 그 모든 것이다. 오, 누가 여기서 아직 삶의 궁핍함을 되돌아볼 수 있겠는가? 누가 부드럽고 거역할 수 없는 힘으로 우리를 저편으로, 저편으로 이끌어 주는 그 강물을 기꺼이 뿌리치고 따라가지 않겠는가?
--- 본문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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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99년 루트비히 티크가 편집해서 출판한 ≪예술의 친구들을 위한 예술에 관한 판타지≫는 형태나 내용으로 볼 때 2년 전에 익명으로 출판된 ≪예술을 사랑하는 어느 수도사의 심정 토로≫의 후속편이다. 전편의 <이 책을 읽는 독자들에게> 마지막 부분에서 허구의 수도사는 만약 이 시도가 “아주 불만스럽지만 않다면 혹시 2부로 이어질지도 모르겠습니다”라고 말했다. 그리고 ≪예술을 사랑하는 어느 수도사의 심정 토로≫가 커다란 성공을 거두자 당연히 후속편으로 이어지게 되었다. 그러나 이 책의 원래 저자였던 바켄로더는 1798년 2월 13일 25세의 나이로 죽었고, 친구인 티크가 이 책의 완성을 떠맡게 되었다. 그래서 티크는 바켄로더의 유고를 모으고 자신의 생각을 많이 보충해 공동의 책으로 출판했다.
≪예술에 관한 판타지≫는 두 부분으로 나누어져 있다. 1부는 회화에 관한 글들이고, 2부는 음악에 관한 글들이다. 그러나 차이는 글의 소재가 되는 대상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두 부분의 정신에도 있다. 회화에 관한 글들은 ≪예술을 사랑하는 어느 수도사의 심정 토로≫에서 예술을 관찰하는 조화로운 성격에 기초를 두고 있다. 음악에 관한 글들은 모두 ≪예술을 사랑하는 어느 수도사의 심정 토로≫에서 유일한 음악에 관한 글인 음악 지휘자 베르크링거의 이야기에서 발전시킨 것이다. 이 이야기가 비극적인 내용을 담고 있어 다른 이야기들과 구분되듯이, ≪예술에 관한 판타지≫에서 음악에 관한 글들도 앞에 나온 회화에 관한 글들보다 훨씬 많은 문제점들을 던지고 있다. 회화에 관한 글들은 어조나 내용에서 수도사의 글에 속하고, 음악에 관한 글들은 마음이 갈라진 음악 지휘자에 의해 직접 서술된다. 바켄로더와 티크에 따르면 예술을 참되게 관찰하는 것은 그렇게 많은 사전 지식이나 신중한 평가가 필요한 것이 아니라, 풍부한 감정이 예술 작품 앞에서 열려서 자신에게 작용하게 만드는 것이다. 즉, 예술은 느낌으로 경험하는 것이지, 이성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래서 작곡에 관해 객관적인 지식이나 예술의 기술이나 수단을 모으는 것이나, 미술 작품을 내용이나 완성도에 따라 판단을 내리는 것은 중요하지 않다. 그 대신 그 작품이 자기 자신의 마음과 소통하는 느낌이 일어날 때까지 작품에 있는 그대로 몰입하는 것이 중요하다. 여기에 예술에 대한 보다 깊은 이해가 들어 있다. ≪예술을 사랑하는 어느 수도사의 심정 토로≫와 ≪예술에 관한 판타지≫는 획기적인 의미를 가진 작품이고, 그 새로운 예술 이념은 오늘날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다. 예술과 감정이 일치한다는 생각은 독자들에게 새로운 예술의 지평을 열어 주었으며, 19세기 중반까지 예술 창작을 규정했다. 귀족 사회로부터 예술의 독립과 음악의 신격화는 호프만(Hoffmann)과 쇼펜하우어에게 영향을 미쳤으며, 리하르트 바그너의 작품에서 그 정점에 이른다. 그리고 오늘날에도 시민 사회의 전문적인 문화 영역에서 느낄 수 있다. 가장 놀라운 사실은 아마도 예술에 신적인 지위를 부여하는 그런 정신이 예술에 대해 그렇게 깊은 의문을 동시에 제기함으로써, 그 정신으로 이제 막 시작된 예술에 대한 숭배의 반작용을 미리 말해 버리는 꼴이 되고 말았다는 사실일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