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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 : 생명의 샘, 그림책과의 만남
1. 슬픔을 마음의 양식으로 ‘하얀 말’의 마음이 열어 준 세계 여섯 살 아이의 가슴에 새겨진 동생의 죽음 슬픔을 ‘살아가는 내일’의 양식으로 2. 그림책이 열어 주는 새로운 표현 세계 호시노 미치오, 사진과 언어의 조화 ‘글자’는 마음이 춤추는 흔적 고릴라어로 된 최초의 그림책 애착을 갖고 그린 그림들 번역 작업에서 발견한 그림책의 깊이 3. 어른이야말로 그림책을 읽어야 한다 삶의 전환, 1700통의 엽서 삶과 죽음 그리고 사랑과 슬픔 전쟁과 소년, 그리고 <핫피상>의 질문 상상력을 되찾자 마음가짐의 발견 인생에 어떻게 답을 낼 것인가 4. 마음과 언어의 위기 시대에 ‘어른이야말로 그림책을’ 제2탄 그림책은 인생의 반려, 가족의 문화 맺는 말 어른에게 권하는 그림책 이 책에 나오는 그림책들 |
Kunio Yanagida,やなぎだ くにお,柳田 邦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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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그림책을 읽고 나의 머릿속에 곧 떠오른 것은 사투리가 강하셨던 어머니가 입버릇처럼 하시던 세 가지 말이었다. “어쩔 수 없지 뭐.” “어떻게 되겠지 뭐.” “별 일 아니다.”
늘 끙끙대며 후회하거나 운명을 탓하지 않고, 부지런하게 오늘을 살다 보면 언젠가 좋은 날이 온다. 남과 비교하거나 부러워하지 않고, 지위와 부귀에 관계없이 자기 나름으로 열심히 살고 있는 사람이 칭찬받을 사람이다. 어머니가 42세에 남편과 사별하고 다섯 아이들을 키우느라 빈궁한 생활에 허덕이면서도 공황 상태에 빠지지 않고 담담히 그리고 적극적으로 살아갈 수 있게 해 준 것은 이 세 가지 말이었을 것이다.(32쪽) 마쓰이는 “어릴 때 부모가 그림책을 읽어주지 않았던 사람은 그림책을 읽은 것이 아니다”고 잘라 말한다. 그림과 언어를 아이가 혼자서 페이지를 넘기면서 더듬어 가는 것만으로는 마음속에 강한 감동을 받아 기억에 새겨지는 체험이 되지 않는다. 부모가 이야기의 전개에 맞게 감정을 실은 목소리로 읽으면서, 때로는 말이 막혀 울먹이는 소리를 냈다가 때로는 으스스한 분위기를 만들었다가 때로는 웃기도 한다. 그 입체적인 느낌과 시간의 흐름이 아이들을 그림책의 세계에 끌어들이고, 감성과 이야기를 맛보는 힘을 기른다.(63쪽) 그렇다. 사람은 누구나 마음속에 더할 나위 없이 소중한 유리구슬을 소중히 간직하고 있다. 어릴 때 그것은 조가비였거나 조약돌이었거나 단추였다. 어른이 되면 기념할 무엇이거나 특정한 취미거나 사람에 따라서는 일이거나 연구거나 한다. 그런 것들이 마음을 채색해 주고, 마음의 지주가 되고, 살아가는 보람이 되기도 한다. 그러나 가장 아름다운 것은 금전적인 평가나 세상의 굴레와는 무관한, 어린 날의 유리구슬이 아닐까.(93쪽) “그림책은 인생에 세 번” ‘인생에 세 번’이란 먼저 자신이 아이였을 때, 다음에는 아이를 기를 때, 그리고 세 번째는 인생 후반이 되고 나서, 라는 의미다. 세 번째로 그림책을 들 때는 아이들을 위해서가 아니라 자기 자신을 위해 읽는다는 점에 최대 포인트가 있다. 물론 ‘인생에 세 번’이란 일반적인 표현에 불과하다. 사람에 따라서는 아이 때 가난하여 그림책을 구하지 못했거나, 결혼하지 않아서 ‘두 번째’ 읽어주기를 하지 않는 등, 사정의 차이는 있을 것이다. 요는 생애를 통해 그림책을 손에서 떼지 말라는 의미다.(165쪽) 사별체험을 다룬 작품이 잇달아 출판되는 것은 역시 시대의 요구에 따른 것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어린이여, 즐거운 꿈을 부풀려라…… 이런 말만 하고 있기에는 지금의 시대는 몹시 가혹하다. 슬픈 일이 너무도 많다. 지진으로 인한 죽음, 수해로 인한 죽음, 사고사, 암으로 인한 병사……. 그런 괴롭고 슬픈 체험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그 후를 어떻게 살 것인가는 어른에게나 아이에게나 중요한 문제다. 아이에게 죽음을 이야기해 봐야 모를 테니 가만히 놔두는 편이 좋다는 것은 아이가 직면하고 있는 문제의 중요함을 깨달으려고 하지 않는 어른의 제멋대로의 생각이며 상상력의 결여 외의 아무것도 아니다. 아이를 잃은 부모 모임의 사람들이나 어린이 카운슬링을 하고 있는 카운슬러 등의 이야기를 꼼꼼히 듣는다면, 엄중한 현실을 조금은 알게 될 것이다.(176쪽) 인간 세상은 참으로 불행하게도, 아이 때 자유롭게 발달한 상상력과 판타지를 그리는 힘이 고등학교, 대학교로 진학하면서 전문적인 지식과 기술을 익힘에 따라 오그라들고, 직장에 취직하면 거의 으깨어지고 마는 것이 대부분 사람들의 인생으로 되어 있다. 진정한 인간적 성숙이란 아이 때의 순수한 감성을 잃지 않으면서도, 사회적으로 자신의 전문 업무를 수행하고, 어른으로서 타인과의 교제 방법도 터득하는 것이라 생각하는데, 현실은 별로 그렇지가 않다. 직업인이 되어 아이와 같은 천진함과 순수함을 보이면 “언제나 아이처럼 군다”는 핀잔을 듣기 일쑤다. 이 얼마나 쓸쓸한 인생인가.(192쪽) 돈과 물질에 제1의 가치를 두는 사람들에게 시인은 단지 말장난을 하는 쓸모없는 사람으로밖에 보이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세상이 폐쇄적이 되고 사람들의 마음이 회색으로 물들었을 때, 창문을 열어 빛을 쏘이고 세계에 색채를 되찾아 주며 살아가는 에너지를 솟아나게 하는, 그런 언어를 울리는 사람은 시인이다. 권력의 억압에 사람들이 질식했을 때 흔히 시인이 혁명의 기수로 떠받들어지는 것은 상징적이다. 마음의 위기, 언어의 위기가 이 나라 사람들 위에 덮치고 있는 지금, 그림책 또한 시에 뒤지지 않는, 마음의 재생 역할을 할 가능성을 간직하고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207쪽) 이런 그림책을 읽고 자신이 어렸을 때의 노스탤지어에 잠기는 것도 좋을 것이다. 왜냐하면 노스탤지어는 때로는 창조적인 표현 활동이나 마음을 부풀리는 삶의 에너지 창고를 자극하는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힘겨운 사회생활 속에서 메말라 버린 마음에 물기를 되찾아 주는 것이다. 곁에 그림책을 두고 그림책에 나타난 멋진 상상력과 즐거운 판타지를 날마다 그저 10분씩이라도 맛본다면 마음 어딘가에서 변화가 생길 것이다. 뭔가가 변할 것이다.(228쪽) --- 본문 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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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책의 발견 : 그림책의 세계는 넓고도 깊다
‘그림책은 어린아이를 위한 것’ ‘그림책은 글자를 잘 읽지 못하는 어린아이를 위해 그림을 곁들여 이해하기 쉽게 한 것’ 세상에는 아주 당연한 상식이라 여긴 것이 사실은 잘못된 착각이었던 예가 적지 않은데, 저자는 위의 사고방식도 아주 잘못된 것이라고 말한다. 이는 단지 저자의 주관적인 인식인 것만은 아니다. 2003년과 2004년, 이태 연속 일본 요미우리신문사 등과 공동으로 ‘어른이야말로 그림책을’이라는 캠페인을 벌였던바, 독자로부터 온 수많은 엽서를 통해서도 이 점은 여실히 확인되었다.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심지어는 91세가 되는 남성도 그림책에서 놀라운 삶의 동력을 얻고 있었던 것이다. 그림책은 메마른 사막에 촉촉한 물기를 준다. 올해 71세(1936년생)인 저자가 그림책을 다시 발견하게 된 것도, 마음이 메마르다 못 해 사막으로 변해 버린 상태에서였다. 25살 난 아들이 세상을 떠난 뒤로, 세상이 온통 암갈색이고 살아 있는 움직임이라곤 전혀 느껴지지 않을 때, 우연히 들른 서점의 아동서 코너에서 그야말로 오아시스를 만난 듯한 체험을 하게 된다. 이 책은 그림책을 통해 인간이 얼마나 넓고 깊은 체험을 할 수 있는가를 감동적으로 전해 준다. 어린이를 향해 단순히 꿈을 가져라고만 말할 수 없게 된 현실에서, 그림책의 표현 내용과 역할은 훨씬 넓고 깊을 수밖에 없다. 이런 의미에서 그림책을 찬찬히 들여다보면, 그 내용이 아주 심오하다는 것, 즉 인간의 따스함, 훌륭함, 잔혹함, 기쁨과 슬픔, 삶과 죽음 등을 실로 평이하게, 더욱이 밀도 있게 표현하고 있다는 것을 재발견하게 된다. 그림책은 평생 세 번을 읽어야 한다. 그 세 번이란 아이 때, 아이를 기를 때, 그리고 인생 후반이 되고 나서이다. 먼저, 아이를 기를 때는 그림책을 반드시 읽어주기 해야 한다. 그림책에서의 그림은 단순히 글을 보조하는 수단이 아니다. 아이는 부모(또는 다른 어른)가 읽어주는 글을 귀로 듣고 눈으로는 그림을 보면서 그림책을 입체적으로 이해하게 된다. 그 과정에서 아이는 어른이 미처 생각도 못 한 것들을 발견하고 질문하게 되는데, 이를 통해 그림책을 읽어주는 어른 자신도 깨달음을 얻게 된다. 세 번째로 읽는 그림책은 오직 자기 자신을 위한 것이다. 그림책은 어느 문학 장르에 못지않게 심오한 철학과 인생의 답을 지니고 있다. 또한 어렸을 때의 노스탤지어에 잠겨 봄으로써 창조적인 표현 활동과 삶의 에너지 창고를 자극하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 그림책은 자기 자신을 변화시키고 생활의 활력을 북돋는 수단이 될 수 있다. 그래서 저자는, 늘 그림책을 곁에 두고 그림책에 나타난 멋진 상상력과 즐거운 판타지를 날마다 10분씩이라도 맛본다면 마음 어딘가에서 틀림없이 변화가 생길 것이라고 말한다. 이 책은 다양한 그림책들을 다루고 있다. 그 한 권 한 권에 대한 에세이에서, 저자는 인간과 삶에 대한 깊디깊은 애정을 일관되게 보이고 있다. 독자들은 저자의 따스한 시선을 따라가다가 어느 새 자신의 몸도 훈훈해지는 것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림책이 이토록 감동적이고 놀라운 것이었다는 사실을 새삼 발견하고는, 아마도 곧바로 서점에 달려가고픈 욕망을 느낄 것이다. 저자는 NHK의 기자 출신으로, 항공기사고 등 크라이시스 매니지먼트(위기관리)에 관한 심층보도와 저서로 ‘본 우에다’ 국제기자상과 오야 소이치 논픽션 상을 수상했다. 또한 아들의 죽음을 다룬『희생 : 내 아들 뇌사 11일』로 기쿠치 간 상을 수상하는 등 논픽션 작가로 명성을 떨쳤다. 지금은 인간의 내면과 그림책에 대한 글들을 발표하여 많은 독자들로부터 공감을 사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