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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부 근대성과 새로운 문화 ㅡ 개인적인 것이 정치적인 것이다
4부를 묶으며 / 천정환 1920~30년대의 책 읽기와 문화의 변화 / 천정환 9 1. 들어가면서 9 2. 1920~30년대 책 발간 추세 11 독서인구의 급격한 증가 12 1920년대 조선문 출판물 허가 건수 추세 13 검열과 출판의 자유 16 3. 매뉴얼과 포르노그래피의 시대 19 기능적 독서의 시작 ?? 근대의 책은 실용서 19 교재?수험서와 처세?출세를 위한 책 읽기 21 오락과 ‘취미’로서의 책 읽기 25 4. 책 읽기에 나타난 비동시적 근대 31 세대 절단 ㅡ 사회주의와 문학에 나타난 누벨바그 32 어린이의 발견과 어린이 책 40 ‘비’근대적 책 읽기 ㅡ 족보와 '정감록' 붐에 나타난 구세대의 불안 42 5. 일본어로 책 읽기 50 일본어 책을 읽는 여러 이유 51 한글과 조선어의 위기 59 이중언어, 이중구속 ㅡ 장혁주의 운명 63 ‘순한글 창작’이라는 신화 72 계급문학론의 민족문학 76 1920년대 초반의 사회와 연애 / 권보드래 87 1. 서론 87 2. 육체와 사랑 90 춘향의 첫날밤 90 처녀, 목숨을 건 자격? 92 신성한 연애 혹은 영적靈的 사랑 95 신성한 연애 혹은 영육일치 97 일본의 성욕학性慾學과 조선 99 불순혈설不純血說의 소설적 표현 102 성욕性慾과 자연과 병病 104 3. 연애의 죽음과 생 106 외래 풍조로서의 정사情死 106 정사情死의 소설 또는 현실 107 강명화와 윤심덕 109 1923년, 변화의 기미 114 ‘붉은 사랑’의 대중 117 4. 연애의 시대 또는 개조의 시대 119 초기 영화의 문화적 수용과 관객성 / 유선영 123 1. 식민지 초기 영화수용과 관객성의 문제 123 2. 초기 영화의 도입과정 ㅡ 활동사진 관람을 부추기는 식민지 사회 128 3. 식민지 영화수용과 경험 그리고 관객성 133 초기 영화?? 도시적 근대성의 사실적 재현물로서의 서구 영화 133 영화에 대한 충격과 시각적 오인 136 전통적 유흥감수성에 의한 시각이미지의 포획 ㅡ ‘노는 사진’과 굿 141 프로그램의 이접離接과 청각적 봉합 149 식민지 극장구경 ㅡ 감시와 인종차별 153 4. 식민지의 시네마 근대성 ㅡ 초기 영화시대의 지연과 지체 그리고 변조 157 문화정치기 검열정책과 식민지미디어 / 한기형 169 1. 문화정치의 미디어 허용 ㅡ 식민지 효율성의 제고 169 2. 문화정치기 검열정책의 혼란 ㅡ 미디어를 둘러싼 공방의 여파 175 3. 미디어 정책에 대한 검열당국의 회의 ㅡ 필화사건의 원인과 그 파장 181 4. ??개벽??의 폐간과 문화정치의 종언 ㅡ 잡지 미디어의 분화 계기 191 ------------------------------ 5부 근대인식과 담론분석 ㅡ 언어는 권력이다 5부를 묶으며 / 허수 동양적 세계와 ‘조선’의 시간 / 차승기 209 1. 근대의 ‘위기’와 문화적 특수주의의 대두 209 2. ‘자연=과거=동양(조선)적 전통’의 세계 212 3. 전통주의의 시간의식 220 에피파니적 시간의식 221 노스탤지어적 시간의식 231 4. 전통주의와 심미주의 239 청년의 시대 / 이기훈 248 1. 머리말 248 2. 1920년대 민족주의 청년담론의 성립 ㅡ 민족의 주체, 근대의 주체 250 ‘개조’와 ‘문화’ ㅡ 1920년대 전반 식민지 조선과 문화운동 250 문화운동과 청년담론 252 3. 청년과 민족, 청년과 권력 258 민족 선도자로서의 청년 258 청년회 ㅡ ‘자수자양’의 정치적 공간 266 4. 청년과 청년성 ㅡ 어떻게 청년이 될 것인가? 269 청년성의 문제 269 수양을 통한 청년 되기 271 5. 민족주의 청년담론의 전환 281 준비하는 청년 ㅡ 급진적 청년에 대한 대응 281 농촌으로의 전환 ㅡ 농촌의 청년, 농촌으로 돌아가는 청년 285 6. 민족주의 청년담론과 성性 292 1920년대 청년담론의 남성중심성 292 여성 주체의 형성 ㅡ ‘여자청년(청년여자)’와 신여성 293 7. 맺음말 297 논쟁의 정치와 ?민족개조론?의 글쓰기 / 김현주 301 1. 머리말 301 2. 과학적 제안서로서의 ?민족개조론? 304 ?민족개조론?의 장르 ㅡ 제안서 304 제안서의 이데올로기 ㅡ 기획과 방법의 사상 307 3. 대중 통치학으로서의 ‘민족개조론’ 311 새로운 통치학의 원료 ㅡ 사회(대중)심리학 311 사회(대중)심리학의 수사학 ㅡ 계몽주의 정치언어의 해체 316 4. 맺음말 323 1920년 전후 이돈화의 현실인식과 근대철학수용 / 허수 327 1. 머리말 327 2. 사회와 개조에 대한 관심 333 3. ‘최후종교’로서의 천도교 341 4. 종교와 사회의 매개로서의 ‘철학’ 347 신칸트학설을 인내천주의에 포섭 347 이노우에 데쓰지로 철학의 영향과 함의 357 5. 맺음말 363 일제하 최남선의 불교인식과 ‘조선불교’의 탐구 / 류시현 367 1. 서론 367 2. 학문으로서의 불교와 신앙으로서의 불교체험 370 3. 당대불교계에 대한 관심과 비판 378 불교계 학자?승려와의 교류 378 한말?일제시대 불교계에 대한 비판과 대안 제시 381 4. ?조선불교?와 일본중심의 문화권논의 385 외래 종교인 불교에서 ‘조선불교’의 발견 385 조선적인 것의 고유성과 문화적 보편성과의 충돌 390 5. 결론 394 ------------------------------ 6부 ‘민중’의 경험과 기억 ㅡ 하위주체는 말할 수 있는가 6부를 묶으며 / 이용기 증언과 역사쓰기 / 양현아 407 1. 문제제기―‘할머니들의’ 기억 407 2. 전시 성폭력과 여성?성 414 3. 분석대상과 방법 418 조사과정과 분석대상 418 자기재현과 증언재현 420 체험의 선별과 의미의 해독 422 4. 증언 분석 ㅡ 혼인, 자녀, 그리고 자기 자신 424 독신 ㅡ ‘양심’이라는 것 425 동거 파탄 ㅡ ‘소문’ 426 동거 파탄 ㅡ 불임 428 동거 유지 ㅡ 필요 430 동거 유지 ㅡ 자식 432 동거 유지 ㅡ ‘탈여성화’ 433 자신이 ‘보는’ 여성 ㅡ 사랑과 향수 435 5. 결론 ㅡ 타자화를 넘어서 439 마을에서의 한국전쟁 경험과 그기억 / 이용기 444 1. 들어가며 444 2. 전쟁 전의 마을 449 해방 전의 계급구성과 세력관계 449 ‘이천의 모스크바’로 불리게 되기까지 455 3. ‘인공’점령기의 전쟁동원과 마을의 대응 461 개전開戰과 인민위원회 결성 ㅡ ‘계급노선’의 실상 461 의용군 모집과 토지개혁 ㅡ 고통과 희망에 대처하는 방식 464 4. 대한민국의 질서회복과 국가 ? 농민 관계 472 ‘수복’과 국가에 대한 공포의 충성서약 472 전후 폐허를 딛고 서는 힘의 실체 475 5. 나오며 ㅡ 전쟁의 경험?기억?구술 480 근대성과 폭력 / 김성례 488 1. 머리말 488 2. 근대성의 기념비적 역사 492 3. 생존자의 조각난 기억 494 4. 4?3 위령제 ㅡ 기념비적 재현 496 5. 4?3 명칭의 의미 ㅡ 이념적 폭력과 희생 501 6. 사건의 진실과 재현의 한계 503 7. ‘용서와 화합’ ㅡ 망각의 기만적 가면 507 8. “죽은 영혼의 울음” ㅡ 진정한 애도의례 512 1970년대 여공과 민주노조운동 / 김원 519 1. 서론 ㅡ 문제제기와 방법론 519 2. 1970년대 여성노동운동을 둘러싼 ‘민주대어용’ 담론에 기초한 해석의 검토 523 3. ‘민주대어용’ 균열구도에 대한 비판적 검토 528 청계피복노조, 지식인의 정치적 실험장 528 동일방직, 1970년대 민주노조의 신화 541 1) 어용과 민주 사이 ㅡ 어용 담론과 민주노조 541 2) 조작된 신화 ㅡ 외부화 투쟁을 둘러싼 담론 548 4. 결론 552 1970년대 여성노동자의 일상생활과 의식 / 김준 556 1.머리말ㅡ1970년대의 노동사회와 여성노동자 556 2.기존 연구와 ‘모범근로자 수기’ 분석의 의의 560 기존 연구 560 ‘모범근로자 수기’ 분석의 의의 563 3.여성노동자와 가족 564 고난의 원인이자 배경으로서의 가족 565 가족을 위한 희생 567 4.회사ㅡ새로운 세계 570 취업 570 숙련 형성 572 공장 내의 사회적 관계 576 5.주거와 일상생활 585 주거 585 송금, 저축, 소비, 그리고 여가 592 6.콤플렉스, 꿈, 그리고 정체성 597 콤플렉스와 꿈 597 정체성 600 7.결론을 대신하여 603 <자료실> 논문이 처음 실린 곳 표 미주 찾아보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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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근대 역사학은 가능한가
탈근대 역사학은 이른바 ‘문화적 전환’과 ‘언어학적 전환’이라는 두 가지 전환에 의해 본격적으로 제기되었다. 문화연구와 담론 비판은 이를 대표한다고 할 수 있다. 문화연구와 담론 비판은 기본적으로 ‘아래로부터의 역사학’ 곧 하위주체를 중심으로 하는 새로운 역사를 모색하는 과정일 뿐만 아니라, 근대 역사학의 ‘실증’과 대립하는 ‘기억’이라는 대상을 환기하는 과정이기도 했다. 4부, 근대성과 새로운 문화 - 개인적인 것이 정치적인 것이다 식민지기 문화사 연구를 이끄는 새로운 흐름은 대중문화?풍속?일상?문화제도?표상체계?수용자?젠더 등에 대한 논의를 자신의 과제로 삼는 것이다. 한국문학의 근대성을 다시 해명하려는 문학연구에 의해 촉발된 이 연구는 전통적인 의미의 ‘문학연구’와 의식적으로 절연하고, 문화사나 문화연구(cultural studies)의 방법론적 태도를 수용한 다분히 학제적인 연구들이다. 이 연구는 원래의 출발점을 초월하여 식민지 시대와 근대성에 대한 다른 각도에서의 조망을 가능하게 했다. 서구에서 문화연구는 기본적으로 후기 산업사회에서 변화하고 있는 계급투쟁의 양상에 대한 관심에서 탄생하여, 노동자계급과 여성?청소년 등의 하위주체와 그 문화적 정체성에 대한 탐구로 젠더 연구와 포스트콜로니얼리즘에도 영향을 주었다. 한국의 문화연구 역시 기존의 비판적 연구를 갱신하는 효과를 낳을 것이라고 기대된다. 나아가 이런 ‘문화적 전환’의 효과는 새로운 역사학뿐 아니라 새로운 인문학을 위한 중요한 밑거름이 될 것이라 본다. 5부, 근대인식과 담론분석 - 언어는 권력이다 다음으로 역사학에서 ‘언어학적 전환’과 관련되어 있는 담론 비판에 관한 것이다. 역사학의 ‘언어학적 전환’이란, 역사는 객관적인 사실을 복원하는 것이라는 근대 역사학의 기본적인 방법론을 넘어서, 서사와 담론 자체에 관심을 두는 것이다. ‘언어학적 전환’은 텍스트를 통해 객관성과 과학성을 구현할 수 있다는 근대 역사학의 기본 전제를 넘어서고자 한다는 점에서 탈근대 역사학으로 간주되어 왔다. 그러나 ‘언어학적 전환’을 단순히 ‘텍스트의 외부에는 아무 것도 없다’라는 방식으로 수용함으로써 역사학의 존재조건 자체를 위협하는 것으로 이해할 필요는 없다. 담론 비판 역시 ‘언어학적 전환’을 훌륭하게 드러내는 방법론 중의 하나일 것이다. 담론이란 언어로 매개되는 진리의 형성과정을 가리키는 개념으로서, 진리를 직접 파악하는 직관과 대립하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담론 이해에 대한 패러다임의 전환은 담론을 구성하는 일련의 규칙을 분석하여 그 배후에 작용하는 권력관계를 밝히려는 시도로 나타났다. 이런 시도는 근대의 주체 및 의식 중심주의를 비판하고 주체?의식에 의해 역사서술에서 억압되고 배제되는 부분을 해명하는 데 관심을 기울인다. 이런 문제의식 위에서 담론 분석이라는 새로운 기법이 발달한 것이다. 담론 분석은 담론과정을 중시하는 연구와, 담론의 지표성(indexicality)을 중시하는 연구로 크게 나눌 수 있다. 하지만 어느 것이든 간에 담론 분석은 개념 또는 텍스트와 ‘정치’의 상관관계에 주목함으로써 일제 식민지기의 시대상에 접근하는 데 유효한 방식이 될 수 있다. 여기에 수록된 논문들은 담론 비판의 방법론이 식민지 주민들의 욕망과 실천이 계급적?민족적 나아가 제국적 차원에서 주체화되는 기제, 그리고 그 과정에서 노정되는 균열과 무의식의 흔적을 추적하는 데 효과적이라는 점을 잘 보여주고 있다. 6부, ‘민중’의 경험과 기억 - 하위주체는 말할 수 있는가 최근 기존의 ‘민중사’를 폐기하고 하위주체(subaltern)의 역사를 ‘아래로부터’ 재구성하고자 하는 흐름이 생겨나고 있다. 하위주체란 하나의 고정된 주체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이는 기본적으로 사회적 약자이자 하층민으로서 광범한 피지배층을 가리키지만, 그 내부에는 다양한 차이와 균열이 존재하는, 그리하여 지배에 포섭되기도 하고 저항하기도 하며 때로는 지배를 자기방식으로 전유하기도 하는, 현실과 담론의 지형과 국면에 따라 끊임없이 새롭게 구성되는 존재이다. 이 ‘역사’는 지배자와 엘리트의 거대 담론에 묻혀 있던 다양한 하위주체들의 목소리를 재현하여 ‘아래로부터의 역사’를 새로이 구성하고자 한다. 그런데 문제가 되는 것은 하위주체들은 스스로 기록을 남기지 않는다는 점이다. 자신의 손으로 자신의 목소리를 남길 수 없는 하위주체들의 역사를 재현하는 방식은 없는 것일까? 그래서 ‘기억’이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된다. 그러나 기억이란 다양한 방식으로 과거가 아니라 ‘현실’을 반영한 것일 수밖에 없다. 그리하여 역사와 기억은 기본적으로 대립적이고 상호투쟁적인 것처럼 보인다. 객관성에 대한 근대 역사학의 믿음이 기억을 사료로 받아들이는 것을 방해하는 것이다. 기억을 둘러싼 이런 논란은 하위주체의 역사를 아래로부터 재구성한다는 과제가 짊어진 험난한 여정을 잘 보여주는 듯하다. 그럼에도 지배와 저항의 이분법에 가려 있던 우리 역사 속의 수많은 삶이 지닌 의미를 찾아가는 기나긴 여정은 이미 시작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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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 책의 과제 - 『해방전후사의 인식』대『해방전후사의 재인식』이라는 낡은 진영 대립을 넘어서기 위하여
2006년 2월 『해방 전후사의 재인식』(이하 『재인식』)이 나오자마자, 이 책은 예상을 넘는 큰 관심을 끌고 논란을 불러일으켰고, 그와 함께 이 책의 논리와 사회적인 영향력에 대해 많은 이들의 우려가 쏟아졌다. 그러나 아직까지 『재인식』의 공과와 사회적 ‘관심’에 대한 정확한 진단이나 대안은 나오지 않았다. 반면 『해방 전후사의 인식』(이하 『인식』)은 1979년의 제1권을 시작으로 1989년의 제6권이 마지막으로 출간되었다. 이는 저 암울하고도 위대한 ‘80년대’라는 시대가 곧 『인식』의 자궁이자 터전이었음을 말해준다. 하지만 이제 『인식』의 세계해석과 역사인식은 현실에 대한 설명력을 다했다고 본다. 그런 점에서 『재인식』의 영향력은 반사이익과 같은 것이고, 그것이 갖는 힘은 『인식』으로 대표되는 한국의 ‘진보학계’가 스스로 초래한 것일 수도 있다는 점에서 문제적이다. 『인식』 제6권이 나온 지로부터 17년, 생각해보면 그 사이의 변화는 마침내 『인식』 류의 민족주의나 민중주의의 관점을 ‘낡은 것(Out of date)’으로 만들어버렸다. 결국 우리는 현실의 변화를 따라잡지 못하는 역사학의 ‘서술’과 ‘지체’에 대해 다시 깊이 고민해야만 했다. 그럼에도 오늘날 『재인식』이 한국사회에 미치는 영향력은 명백히 부정적이고 ‘파괴적’이다. 물론 『재인식』에 수록된 논문들 가운데에는 애초의 기대에 부응하는, 그리고 새로 열리고 있는 한국사 인식의 지평을 보여주는 좋은 글이 여러 편 있다. 하지만 전체적으로, 그리고 결과적으로 『재인식』은 한국 학계와 사회를 냉전적인 진영 논리로 채색하고 말았다. 이는 단지 보수와 기득권 세력이 『재인식』을 부당하게 전유하거나 고의로 ‘오독’해서만이 아니다. 『재인식』은 스스로 김대중 정권 이후에 의식화?행동화한 이른바 ‘보수우익’의 정치적 이해에 복무하면서 시대착오적인 좌우 대립에 편승하고자 하는 욕망을 숨기지 않았다. 이 책이 소위 ‘뉴라이트’의 역사 교과서인 양 읽히고 있다는 것은 이런 사실을 잘 보여준다. 물론 우리의 실망은 『재인식』이 가진 ‘정치성’과 그 퇴행성에만 있지는 않다. 『재인식』의 그런 퇴행성에는 논리적 빈곤과 역사 해석의 한계가 그대로 노출되고 있다. 따라서 『재인식』은 『인식』의 문제를 조금도 극복하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도리어 『인식』을 다시 정당화하는 기능까지 하고 있다. 우리가 굳이 이 책 『근대를 다시 읽는다 - 한국 근대 인식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위하여』를 역사비평사와 함께 엮기로 한 것은, 역사인식에 대한 정치적 논란과 그에 상응하는 논리적 빈곤이 우리 학계에서 움트고 있는 새롭고도 다양한 흐름마저 모두 묻어버릴 위험을 걱정해서이다. 『재인식』이 야기한 혐오감 때문에 그 책에 수록된 몇몇 좋은 논문이 이미 그런 피해를 보았듯이, 『인식』을 정당하게 극복해야 하는 우리의 과제 전체가 정치적 논란 속에 무화될 우려가 있는 것이다. 지금 우리의 과제는 개발지상주의와 국가주의로 요약되는 근대주의와, 제국주의의 쌍생아로서의 민족주의, 이 양자를 모두 넘어서 역사를 새롭게 인식해야 하는 일이다. 그것은 곧 오늘날 우리가 발 딛고 있는 새로운 시간의 지평에서 다시 한국과 ‘민족’의 ‘역사’를 다시 바라보는 작업이기도 하다. 그 지평을 다시 『인식』의 시간으로 되돌릴 수는 없다. 2. 낡은 대립을 지양하는 이유 『인식』과 『재인식』은 전혀 상반되는 역사인식을 보여주는 듯하지만, 기실 양자 사이에는 공통점도 있고 차이점도 있다. 이를 1) 민족주의와 애국주의의 문제, 2) 근대와 탈근대의 문제, 3) 역사적 실증주의의 문제를 중심으로 살펴볼 수 있다. 뒤엉켜 있는 공통점과 차이점을 분별하여 정치적으로 윤색된 대립을 지양하는 것은 우리 학계 공동의 과제일 것이며, 이 점이 바로 우리가 이 책을 묶기로 한 이유이다. 우선 『인식』과 『재인식』의 대립 중에서 허구적이라 느끼는 것은 민족주의와 국가주의(애국주의)의 문제이다. 『재인식』은 『인식』의 민족지상주의에 맞서 배타적인 민족주의를 비판하고 ‘건전한 애국주의’를 함양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애초에 민족주의와 애국주의가 명확하게 분리될 수 있는지부터 의문이지만, 『재인식』의 논리적 기저에는 도저히 이해하기 힘든 그리고 무척 낡은 사고방식, 즉 ‘(근대)국가는 문명의 상징’이고, ‘민족은 전근대적 야만의 상징’이라는 이분법이 깔려 있다. 더욱 곤혹스럽고 황당한 것은 이 논리가 ‘대한민국=문명,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야만’이라는 사고를 정치적 배후이자 ‘의도’로 삼고 있다는 점이다. 『재인식』의 논리는 민족주의를 지양?극복하기는커녕 새로운 우익적 ‘대한민국 국가주의’를 강화할 뿐이다. 이 애국주의가 ‘건전’하거나 ‘열린’ 성질의 것이라는 가능성은 어디에도 없다. 지금의 형국은 변형된 국가주의가 통일을 절대시하며 북한체제를 무조건 긍정해온 구래의 민족주의와 대치전선을 형성하고 있는 꼴이다. 그러나 이는 무의미한 거짓 대립이다. 또한 『인식』과 『재인식』 사이의 대립선은 ‘근대’와 ‘탈근대’를 두고 그어져 있다. 『재인식』에는 탈민족주의적이고 탈근대주의적인 지향을 담은 글이 여러 편 수록되어 있어, 언뜻 보면 『재인식』 전체가 탈근대론을 지향하고 있는 것 같은 착시현상을 일으킬 정도이다. 이것이 『재인식』을 『인식』과 달리 보이게 하는 중요한 요인이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겉모습에 지나지 않는다. 전체적으로 보면 『재인식』의 논리는 변종 근대주의에 불과하다. 이는 『재인식』이 논리적으로도 전혀 『인식』을 극복하지 못했음을 의미하며, 따라서 여기에도 ‘대립’은 없다. 『인식』이 근거하고 있는 민족주의와 구 마르크스주의가 왜 근대주의의 일부인지는 여기서 구구히 설명할 필요는 없다고 본다. 다만 우리는 근대 초기의 국가 상실과 식민지 경험, 그리고 내전, 이어진 ‘대한민국’의 정치적 기형성을 경험하면서, 얼마나 절실하게 그런 이념을 요청할 수밖에 없었는지 이해하고 있다. 또한 그 논리가 강력한 탈근대론의 계기를 마련한다는 것도 잘 안다. 그러나 그것이 끝내 현실에서는 ‘국가주의’로 전화되거나 ‘개발지상주의’의 주박에서 벗어나지 못했음도 잘 알고 있다. 『재인식』의 『인식』에 대한 반정립은 이런 ‘틈새’ 때문에 가능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탈근대론으로서의 『재인식』의 기획은 실패했다. 특히 『재인식』의 편자가 운운하는 ‘문명론’은 근대주의를 극복하기는커녕 거기서 한 발도 못 나아간, 또는 그보다 훨씬 저열한 변종에 불과하다. ‘문명’이라는 개념 자체가 어떠한 역사적 정황에서 어떻게 정초된 개념인지를 조금만 생각해보면, ‘문명’으로 역사를 설명하는 것이 왜 완전히 낡은 일인지 잘 알 수 있다. 문명론이 서구중심주의와 국가주의를 벗어났던 적은 한 번도 없었기 때문이다. 이 밖에도 『인식』과 『재인식』 양자는 매우 중요한 공통점을 하나 갖고 있다. 그것은 실증으로써 ‘역사적 객관성’을 확보할 수 있다는 전통적인 실증주의이다. 실증주의는 역사인식의 근대주의 그 자체이다. 『재인식』 또한 발간의 가장 중요한 취지를 『인식』이 저지른 ‘사실의 오류’를 교정하는 데서 구하고 있다. 그런데 과연 『재인식』이 새로 발견한 그 사실들이 이 시점에서 한국 근?현대사에 대한 시야 전체를 바꾸어야 할 만큼 크고도 중요한 것일까? 『재인식』의 일부 필자들은 마치 새로운 고생대 생물의 화석이라도 찾아낸 듯 이를 과장하고 있다. 역사란 하나의 해석체계이며 사가에 의해 ‘서술된 것’에 지나지 않는다는 명제는 두루 잘 알려진 상식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학계에는 근대적 실증주의와 이에 근거한 ‘역사’가 여전히 신화로 남아 있다. 적어도 이 대목에서는 『인식』과 『재인식』이 다른 생각을 하고 있다고 보이지 않는다. 근대의 사고체계와 학문사상인 실증주의를 넘어서야만 새로운 역사인식의 길이 열릴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