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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판에 부쳐
이딸리아에 내리는 눈 자기 본위의 죽음 적의의 시대 뽀 거리 불순물 저편 부나 안개 속 아침 단순 명쾌? 수치(羞恥) ‘인간’ 단절 독일인 레 움베르또 거리 오디쎄우스의 죽음 한순간의 빛 후기 옮긴이의 말 참고문헌 및 인용문헌 쁘리모 레비의 시대 |
徐京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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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우슈비츠의 생존자 쁘리모 레비 그리고 재일조선인 서경식
이 책은 재일조선인 작가 서경식이 쁘리모 레비(Primo Levi)의 삶과 사상, 죽음의 의미를 반추하러 떠난 여정을 담은 에쎄이다. 현대 증언문학을 대표하는 작가 쁘리모 레비는 1919년 또리노에서 태어난 유대계 이딸리아인으로, 제2차 세계대전 말기에 아우슈비츠에 수용되었다 가족의 품으로 극적으로 살아 돌아왔다. 그후 그때의 기억과 경험을 토대로 『주기율(週期律)』 『이것이 인간인가』 등을 저술하며 인간이 인간에게 저지른 잔혹한 폭력을 고발했다. 우리 시대의 지옥을 경험했지만, 항상 삶을 긍정하던 조용한 낙관주의자 레비는 그런데 돌연 1987년에 자살했다. 저자 서경식은 이 급작스러운 죽음에 이끌려 이딸리아로 여행을 떠난 것이다. 이 책에서는 두 가지 이야기가 교차하면서 오버랩된다. 하나는 레비의 이야기이고 나머지 하나는 서경식의 이야기로, 둘은 30여년이라는 시간차에도 불구하고 묘하게도 비슷하다. 먼저 레비는 유대계 이딸리아인, 저자는 재일조선인으로, 그들이 태어나 자란 곳에서 그들과 그들의 가족 그리고 그들이 속한 민족은 모두 그 사회 주변부에 위치하고 있으며 추방·박해·이산의 경험을 갖고 있다. 또한 본인이나 가족들이 시대의 폭력을 겪었다는 것도 마찬가지다(70년대 유학생간첩단사건에 연루되어 옥고를 치른 서승과 서준식이 저자의 형제다). 레비의 삶과 죽음 쁘리모 레비의 삶은 (그리고 인류의 역사마저도) ‘아우슈비츠 이전’과 ‘아우슈비츠 이후’로 판이하게 구별된다. 이는 책의 구성에도 그대로 반영되어 있다. 책의 앞부분은 주로 아우슈비츠 이전 그리고 아우슈비츠에서의 레비를 그리고 있다. 아우슈비츠에서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그것 때문에 레비나 강제 수용된 유대인들뿐 아니라 나찌와 그것을 묵인한 독일인들의 인간성이 어떻게 파괴되었는지, 그 속에서 인간이기 위해, 인간으로서 살아남기 위해 얼마나 처절한 노력을 기울였는지를, 레비 자신이나 한나 아렌트 등의 입을 빌려 생생하게 보여준다. 뒷부분에서는 ‘아우슈비츠 이후’의 세계에 촛점을 맞춘다. 레비는 천신만고 끝에 자신의 고향 또리노로 돌아왔지만, 세상은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그대로였다. 독일인들은 자신들에게 책임이 있음을 부정하거나 그에 대해 침묵한다. 아니면 교묘한 수사로써 그 책임을 인간 전체의 책임으로 돌려버린다. 게다가 박해받던 유대인이 세운 나라 이스라엘이 레바논을 침공하는 등 폭력은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이 모든 것들이 레비를 자살로 이끌었다는 것이다. 한국에는 희망이 있는가? 저자에게는 레비의 삶이 먼나라 이야기로 여겨지지 않았을 것이다. 과거 일본이 동아시아 여러 나라 사람들에게 저지른 폭력, 이라크나 팔레스타인 등지에서 아직도 계속되고 있는 전쟁이나 고문, 박정희정권이 자신의 가족들에게 입힌 고통, 최근 일본에서 다시 기세를 떨치고 있는 극우 보수세력과 그들에 영합하는 일본 국민들, 이런 것들이 자연스럽게 머릿속에 떠올랐을 것이다. 우리나라의 상황도 이와 다르지 않다. 한 일본인은 “일본에는 희망이 없지만 한국에는 희망이 있다”고 했는데, 이에 대해 저자는 한국에도 “벌써 검은 그림자가 드리우기 시작했음을 느끼”고 있다. 구체적으로 명시하지는 않았지만, 지난 시대의 폭력을 탈역사화하고 그에 대한 책임을 회피하려는 움직임에 위기의식을 느낀 것이 아닐까? 그래도 저자는 한가닥 희망을 품고 있다. “식민지 지배와 분단, 전쟁을 경험한 사람들, 평화의 존엄함을 절실히 느낀 사람들, 우리나라가 그런 사람들의 나라”라는 희망이다. 그래서 폭력의 시대를 증언하고 경고하는 표상인 레비를 통해 한국 독자들에게 경고와 희망의 메씨지를 발신하는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