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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가며
제1부 사회적인 것의 현재 일본의 전후정치와 사회적인 것 포스트냉전과 사회적인 것 사회학과 사회적인 것 사회민주주의 제2부 사회적인 것의 계보와 그에 대한 비판 루소 사회과학의 탄생 비판과 전망 제3부 기본문헌 안내 나가며 옮긴이 후기 찾아보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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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적’, ‘사회적인 것’ 개념의 계보학 고찰
《사고의 프런티어 4-사회》는 이렇게 수입된 사회과학 용어 중 사회학(자)에서 가장 친근하고 가장 알려져 있어야 할 ‘사회’라는 말에 대해 고찰한다. 이와나미쇼텐岩波書店 출판사의 〈사고의 프런티어思考のフロンティア〉는 정치.사회적으로 중요하게 부상한 키워드들에 관한 깊이 있는 해설과 새로운 논의를 통해 기존 사고의 경계를 허무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개척’하고자 기획된 시리즈다. 그 중 하나인 이 책에서 저자 이치노카와 야스타카市野川容孝(도쿄대학 대학원 종합문화연구과 교수)는 ‘사회’, 좀 더 정확히 말하면 ‘사회적’이라는 용어에 대해 살핀다. 즉 어떠한 실체를 상정한 ‘사회’라는 명사가 아니라 어떠한 양상이나 양태, 나아가 운동을 표현하는 ‘사회적social’이라는 형용(동)사와 그에서 파생되는 ‘사회적인 것the social’의 개념이 이 책의 주제다. 저자는 사회적인 것의 계보학 추적이 사회적인 것을 비판적으로 해부하는 작업인 동시에 그것의 새롭게 생성하기 위한 길이라고 말한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의 최종 목표는 사회적인 것에 대한 비판적 성찰을 토대로 그것의 개념을 다시 한 번 단련시켜 완성하는 것이다. ‘사회적인 것’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 ‘사회’의 번역에서 살펴야 할 것 ‘사회社會’는 ‘society/societe’의 번역어로서 일본인들이 한자를 조합하여 만든 새 단어다. 저자는 이 책에서 ‘사회=社會=society’, 더욱 정확히 말하면 ‘사회적인 것=社會的=social’이 무엇을 의미하고 ‘social’이 ‘사회적社會的’으로 번역됨으로써 무엇이 누락되었는지 등에 대해 면밀히 검토한다. 저자의 이러한 추적 작업은 우리가 현재 생각 없이 사용하고 있는 사회社會 또는 사회적社會的이라는 용어에 대해 다시 한 번 음미하게 한다. 후기에서 고백하듯이, 저자가 사회=社會=society의 개념에 관해 이 책에서 제시한 논점들은 산발적이고 최종적이지 않다. “이 책을 집필하면서 나는 ‘social’이나 ‘sozial’이라는 서양언어에 대해 자신이 아무것도 이해하고 있지 않았고, 향후에도 이해할 수 없지 않을까, 혹은 이 말을 예컨대 ‘사회적社?的’이라는 일본어로 번역하는 것은 큰 잘못이지 않은가라는 기분에 몇 번이나 휩싸였다. 나에게 ‘사회(적)’라는 말은 점점 불투명해졌고, 이 일본어를 사용하여 표현된 모든 것이 의미가 불명확하게 느껴졌고, 반대로 여기서 내가 일본어로 쓰고 있는 것 역시 누구에게도 전달되지 않고 있는 것은 아닐까라고 생각했다.” 사회적인 것의 계보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회’에 관한 저자의 다음과 같은 두 가지 주장은 설득력 있게 들린다. 첫째, 저자가 이 책에서 반복적으로 피력하고 있는 주장의 하나로, ‘사회’ 또는 ‘사회적’이라는 용어는 일종의 가치를 포함한 개념이라는 것이다. 즉 ‘사회적’이라는 것은 특정 규범을 지시하는 이념이 될 수 있고, 하나의 목적이자 정의일 수도 있다는 점이다. 예컨대 ‘사회’ 또는 ‘사회적인 것’은 애당초 자유에 비해 평등이나 연대를 보다 지향하는 규범적 의미를 지니고 있다. ‘사회적’이라는 표현이 가치중립적인 표현이 아니라 특정 가치를 지향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가치자유’를 표방하는 독립된 학문으로서의 사회학의 출현은 ‘사회’ 개념에서 규범적 요소를 들어내도록 요구한다. 즉 저자가 말하는 이른바 ‘사회학적 망각社會學的忘却’이 일어나게 되고 이로써 ‘사회적’의 의미가 불투명해지는 결과를 초래하게 되었다. 둘째, ‘사회’라는 용어의 일본에서의 특수한 운명에 관한 점이다. 저자는 1990년대 이후 정치적 언어로서의 ‘사회’가 급속히 쇠퇴하고 ‘사회社會’라는 표현이 들어간 정당이 대부분 없어진 현상에 주목하면서 그 이유에 대해 분석한다. 저자에 따르면, 일본에서 ‘사회社會’는 애당초 공산주의나 사회주의와 같은 의미로 이해되는 경우가 많았고 사회과학은 우선 마르크스주의의 정치경제학으로 이해되었다. 특히 1945년 이전에는 ‘민주주의’보다 ‘사회’가 더욱 위험한 사상으로 인식되었다. 이 때문에 일본인들은 ‘사회’ 대신 ‘후생厚生’라는 용어를 새롭게 고안해내기까지 했다. 1990년대 구소련과 동유럽 사회주의 국가의 몰락이 일본의 ‘사회’ 정당과 세력들에 큰 타격을 불러온 이유다. 이에 따라 ‘사회민주주의’가 부흥한 서유럽과 달리 일본에서는 정치적 용어로서의 ‘사회’나 ‘사회민주주의’가 더 이상 맥을 추지 못하게 되었다. 사회적인 것의 계보에서 우리는 무엇을 읽어야 하는가 이러한 현상은 한국에도 해당된다. 일본과 마찬가지로 혹은 일본 이상으로 ‘사회주의’가 오랫동안 이념적 공격의 대상이 되어온 한국에서, 정치적 표현이나 정당명으로서 ‘사회’는 왠지 불편하게 느껴지고 금기시되는 분위기다. 유럽의 사회민주주의 세력이 추구하는 ‘사회적’ 이념이나 가치가 한국에서 제대로 이해되지 못한 채 쉽사리 변형, 왜곡되는 것도 이 같은 분위기에서 기인한다. ‘사회’를 말하면 곧바로 ‘좌익’, ‘용공’, ‘빨갱이’ 딱지를 붙여대는 현 상황에서 ‘사회’라는 용어가 제대로 자리 잡을 리 만무하다. 그러나 ‘사회주의’에 대한 무조건적인 배척이 불러오는 폐해에 대해서도 생각해야 하지 않을까. ‘사회주의’에 대한 배타적 태도가 ‘사회’와 ‘사회적인 것’을 입에 올리는 것조차 금기시하는 사회를 낳고, 그러한 사회 분위기가 ‘사회적인 것’에 담긴 평등과 연대에 대한 무시로 이어지고 있지는 않은지, 다시 말해 저자가 강조하는 ‘사회학적 망각’을 일으키고 있지 않은지 고민해볼 때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