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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는 독자를 위하여
축하의 글 1. 독문학에 관한 소고(小考) 「1970년대 독일문학의 경향」 1978 「독일 현대소설에서 ‘인용’과 ‘몽타주’ 테크닉」 1979 「독일 여성문학의 전통」 1990 「여류작가 Brigitte Schwaiger와의 인터뷰」 1990 「바그너의 음악과 문학 그리고 수용자의 심미적 이해」 2003 「시민사회의 예술가 괴테 ㅡ 영향사적 입장에서 본 괴테의 상: 독문학의 독재적 군주」 1982 괴테의 獻詩: 프리데리케에게 「나는 떠나고 그대는 서서 땅을 보고」 1978 「하이네의 로레라이」 1983 하이네의 獻詩: 무쉬에게 「熱情의 꽃에 바친 終末의 사랑」 1978 하이네의 獻詩: 마틸데에게 「쉰 번째의 구두를 사던 날」 1978 릴케의 獻詩: 카스너에게 「至福한 영혼의 뚜엣」 1978 2. 문화 및 시사 칼럼 커뮤니케이션의 진상 1987 갈릴레이의 적들 1983 어머니의 시대감각 1983 “네, 아니요” 대답 1979 여과장과 술 1983 “중년여성의 문제”에 관한 소고 1979 한 폭의 그림 속 추억 1978 독일대학의 축제 1978 나의 대학시절: 천재들의 틈바구니에서 1978 의식 있는 학생, 학문하는 학생 ㅡ 바람직한 연구풍토 조성을 위한 제언 1980 70년대 독일 미술전람회의 노스탤지어 현상 1979 3. 독일 문예학자와의 대화 H. R. Jauß 교수와의 인터뷰 서양문학을 받아들이는 한국 수용미학 1981 W. Iser 교수와의 인터뷰 작품과 독자는 계약관계인가? 1981 R. Kloepfer 교수와의 인터뷰 기호학의 생성과 그 메타 - 성찰 1981 S. J. Schmidt 교수와의 인터뷰 경험사실구성적 문예학이란 무엇인가? 1985 S. J. Schmidt 교수와의 인터뷰 구성주의적 문예학이란 무엇인가? 1995 ?? 철저한 구성주의란 무엇인가 ?? 학제적 방식으로 작동하는 사회학으로서 문예학 ?? 미디어학으로서의 문예학 4. 문학비평, 문학강의와 문학연구 그리고 미디어문화학 「야우스의 수용미학, 문학미학방법론」 1977 「‘심오함’과 ‘평이함’ 그 외의 부류는 없다」 1987 「소통지향적인 비평미학의 자세 ㅡ W. 이저와 S. J. 슈미트의 입장을 중심으로」 1986 「황지우 시 수용의 한 양상으로서 연극 「焦土」(1986) ㅡ 현실 앞에서의 혼절과 행위력」 1986 작가 Peter Bichsel과의 인터뷰 「작가는 거짓말쟁이지요」 1986 「독어독문학과의 과제와 개선안」 1985 「독어독문학과의 문학교육 ㅡ 한신대학에서의 문학강의를 중심으로」 1986 「문학작품의 학제적 연구 ㅡ 문학적 인식의 본질을 중심으로」 1989 「문학연구와 신학연구 ㅡ 그 학제적 공동작업을 위하여」 1989 「다문화 시대의 외국어교육을 위한 인문학의 필요성」 2000 「문학적 이미지의 소멸과 새로운 이미지 시대 ㅡ 디지털시대의 미디어미학과 문예미학」 2003 「21세기를 호흡하는 새로운 인문학의 정립」 2004 「(소리예술로서) 음악과 상상력 그리고 선(禪) ㅡ R. Kassner의 관상학적 상상력이론을 중심으로」 2003 「선택과 참여의 소리 문화」 2005 「2005년 프랑크푸르트 도서전 준비행사를 위한 제안」 2005 5. 창작소설 『미애의 여행』에 대한 독자반응 『미애의 여행』(1997)의 “작가의 말” 『미애의 여행』에 대한 독자반응들 『미애의 여행』의 출판에 얽힌 이야기 『미애의 여행』에 얽힌 남은 이야기 “어느 인문학자의 기쁨과 고뇌”의 기록을 마치며 |
車鳳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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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문학 연구와 강의에서 “인문학적인 문예학의 미디어미학으로의 전환”은 필수적이며, “통 학문성”의 학문으로서 미디어문화학이 21세기 학문의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활성화되어 나갈 것도 분명합니다. 이러한 맥락에서 예컨대 “문예학의 미디어미학으로의 전환”의 테마는 과거 인문학적 문예미학의 활용가능성을 안고 있는 주제입니다. […] 이러한 구상들은 단순히 오늘날 유행하는 추세에 따른 학제적인 연구가 아니라, 문화의 ‘혁신적인 변화’에 대한 학문적 현실인식에 입각해 있으며, 이런 의미에서 시대적 요청에 따른 것입니다. 또한 그것은 학문적 인식을 근거로 한, 즉 인문학의 다중패러다임적인 위상의 구체화입니다. “21세기를 호흡하는 새로운 인문학의 정립”을 위한 이러한 제안은 철저한 학문적인 현실인식에 근거하고 있습니다.
매체간의 경계를 넘어서서, 인간의 삶을 구성하는 다양한 매체와 인간의 삶의 영향관계를 규명하는 것은 인문학의 단순한 확장이 아니라 인문학 본연의 과업이라 할 수 있습니다. 오랜 역사 속에서 축적된 인문학의 지혜를 통해 멀티미디어 시대를 살아가는 인간 삶의 본질과 다양한 모습들을 규명하는 것은 필연적인 과제임과 동시에 인문·사회 과학이 자임해야 할 중대한 임무임은 어느 누구도 부정할 수 없을 것입니다. --- p.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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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중 속으로, 군중 속으로, 대중 속으로 뛰어들지 못한 채 오히려 그들을-마찬가지로 오늘날 인터넷 포털사이트의 대중을-고려하기는커녕 무시했던 구세대 인문학자의 반성의 시각을 갖게 한 강 교수의 메시지에 감사하면서 동시에 저는 또다시 ‘이론을 위한 이론’으로서 그런 미학이론을 구체화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두려움이 앞섭니다. 그리고 이러한 반성의 시각에서 (“강 교수와 황 시인의 이야기”에서) 제가 가차 없이 비판했던 황지우 시인/황재우 교수/황재우 총장이야말로 그의 시작품(詩作品)을 통해 그리고 ‘정치적 사회참여’를 통해 이러한 미디어문화적인 ‘민중미학’을 실현할 수 있는 예술가/학자/교수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것은 우리의 ‘현재’, ‘여기서’에서 대중의 시대적 요청에 부응하여 이루어지는, 강 교수가 구현했을, 그러한 ‘한신학파의 학문자세’와 같은 것이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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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의 바다를 비호하는 작은 등대지기, 그 소박한 꿈 그러나 도저한 발자취
- 독문학자 차봉희 교수의 문집 두 권 “변함없는 학문적 열정과 원칙을 지켜온 문예학자”, “파산지경에 이른 인문학 분야에 새 수혈작용과 활성화”, “슈퍼 학자인 동시에 슈퍼 문화인”, “주체할 수 없는 끼와 에너지”, “몸의 진이 빠지는 듯한 그러나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지적 희열을 느꼈던 그런 강의”...... 30년을 독문학계에 몸담아 온 차봉희 교수에 대한 지인들의 평가다. 그가 2006년 정년퇴임을 기념하여 ‘어느 인문학자의 기쁨과 고뇌’라는 이름으로 두 권의 문집을 발간했다. 『인문학적 인식의 힘』과 『문학적 인식의 힘』은 저자에 대한 수식어들이 결코 과장이 아님을 보여주는, 한 인문학자의 열정과 투쟁의 기록이다. 문학적·인문학적·심미적 인식의 세계를 가르치고 향유해온 인문학자로서의 삶의 기쁨과, 신명나게 학문을 할 수 없었던 학자/교수로서의 고뇌를 담고 있다. 인문학의 위기와 그 위상에 대한 우려가 극단에 치닫는 지금, 이 문집은 그 어느 때보다 각별하게 다가온다. 문학적 ‘인식’, 인문학적 ‘인식’은 무엇인가? 나아가 ‘심미적’ 인식에 이르는 진정한 인문학의 목표는 어떠한 것인가? 참된 학자/교수의 길은 어떠할 수 있는가? 인문학이 갖는 현 시대적 의의는 무엇인가? 문집은 이러한 물음들을 달고서 한 인문학자가 걸어온 길을 되짚는다. 70년대의 전투적인 독일 유학, 민주화 운동으로 들끓는 80년대의 한국 대학사회, 새로운 담론이 거세게 몰아닥친 90년대의 학계를 거치며, “담배 연기와 같은 것” 혹은 “작은 등대지기의 역할”에 생을 바친 한 인문학자의 ‘인식’의 길을. 부단한 열정으로 일구어가는 인문학적 인식의 세계 제1권 『인문학적 인식의 힘』은 먼저, 저자가 대학에서 독문학을 가르치는 30년 세월 동안 일구어 낸 저서 아홉 권과 십여 권의 역서를 소개한다. 저자 서문과 서론, 역자 후기, 서평 등을 통해 소개되는 책들은 그간 저자의 연구 활동 분야와 범위를 가늠하게 한다. 이러한 학술서들 외에 신문, 잡지, 문예지, 논문집, 학술대회 등에 발표한 글들이 제2권 『문학적 인식의 힘』에 수록되어 있다. 여기에는 ‘원천적 순수미의 체험’을 통해 심미적 인식의 과정을 여행의 서사 구조 속에 형상화한, 저자 자신의 창작소설 『미애(美愛)의 여행』에 대한 독자 반응도 실려 있다. 그는 문학연구방법론이 미비했던 70년대 말 한국에 최초로 독일 문예학이론(『현대사조 12장』, 1981)과, 세계적으로 막강한 영향력을 끼친 ‘수용미학’(『수용미학』, 1985)을 소개한 장본인이다. 이런 저작들은 출간 당시 국내의 학계와 문단계에 큰 호응과 반향을 일으키며 차후 국내 인문학 연구와 비평의 발전에 커다란 초석이 되었다. 그의 작업은 『비판미학』, 『한국의 독일문학 수용 100년』(대한민국학술원 선정 우수학술도서), 『문학텍스트의 전통과 해체 그리고 변신』(대한민국학술원 선정 우수학술도서)등으로 이어지면서, 2003년에는 한국미디어문화학회를 발족시켜 멀티미디어·디지털문화 시대에 부응하는 새로운 인문학 패러다임의 형성을 위한 미디어문화학을 주창하기에 이른다. 강단을 떠난 지금도 계속되는 그의 연구와 집필 활동은 이렇게 현 시대가 요구하는 인문학으로의 변신을 도모하면서, 인문학의 위기 시대에 오히려 그것의 새로운 도약과 부흥을 꿈꾸게 한다. 학자와 교수의 위치에서 끝까지 고수한 ‘적극적 비동참’의 철칙 저자의 삶은 부단한 연구와 강의로 이루어진 30년 세월, 그 자체이다. 오직 “인문학적 인식의 힘”의 구현을 위해 학자로서 그리고 교수로서 달려온 지난 삶은 ‘인문학에로의 기나긴 여정’이라는 회고록 부분(『인문학적 인식의 힘』)에 담겨 있다. “한국의 교육현장과 교수사회의 암담한 현실에 동참할 수 없음이 나의 비판적 행위로 구체화되었듯이, 대학 교육과 강의 및 학술활동 등 직업 현장에서도 나는 그 어떤 ‘비학문적’인 행태에도 동참하지 않는 실천행위로 일관했다”고 말하는 저자는 “적극적인 비동참”의 철칙을 지킨 결과, 한국의 비학문적·비교육적인 대학 현실에서 홀로 정진할 수밖에 없었다. 학자로서의 이런 원칙 때문에 강단에 서되 후학을 길러내지 않는 대신, 인문학의 경계를 넘나드는 연구 및 저술, 그리고 학회활동에 매진해왔다. 진정한 학문의 길 이외에는 관심을 두지 않고 불의를 참지 못하는 성정으로 인해, 그가 재직했던 두 대학의 교수 사회에서 또한 평탄한 삶은 아니었다. 80년대 민주화운동의 지난한 과정 및 재직중이던 대학의 양적 팽창 시기와 맞물려 줄서기와 비리가 횡행하는 교수 사회에서, 그의 학문적·사회적 양심은 오히려 그를 비민주 교수로 내모는 모순된 상황마저 야기했던 것이다. 그는 대학사회의 권력 다툼과 “추한 폭력” 하에서 치욕과 수모를 겪는다. 그리하여 인문학자의 사회참여란, 인문학적 인식에 바탕을 둔 현실비판과 심미적 인식의 힘으로 꽃피울 때 그 진정성을 갖는다고 강조한다. 브레히트를 빌어, 운이 좋아서가 아니라 남들보다 강하여 “살아남은 자”의 책임이 바로 그것이라고. 인문학자들의 학문적 양심을 대변하는 자화상 이 책은 현실의 탄압에 맞서 저항한 한 인문학자의 고독한 자화상이다. 그러나 그 한 사람의 자화상 너머로 수많은 다른 학자들의 초상이 겹쳐진다. 오직 인문학적 인식에 따른 학문연구 및 교육에 부합되는 길만을 걷겠다는, 이 땅의 서슬 퍼런 학문적 양심들이 어디 차봉희 교수 한 사람뿐이랴. 그가 강단을 떠나며 세상에 내놓는 이 문집이 갖는 중요한 의의가 거기 있다. ‘그들’의 목소리를 대신하여 학문의 진정성과 학자적 양심을 일깨우는 것! 그리고 결국 인문학의 생산성과 무용성의 딜레마를 극복하는 차원을 이제는 넘어서서, 인류문화의 무궁무진한 보고인 인문학이야말로 현시대의 디지털문명을 이끌어갈 가장 큰 자산임을 고하고 있는 것이다. 그는 학문과 교육의 일그러진 현장에서 적극적 비동참의 원칙대로 살아왔기에 좌초하고 만 무능한 교수라고, 아무도 읽지 않는 출판물의 생산자라고 자조하고 있다. 그러나 진실로 비민주적 교수, 무능한 교수, 비생산적 지식인이 누구인지는 이 출판물의 소비자들이 냉철하게 가려볼 일이다. 술과 사람을 좋아하고, 토론과 연대를 사랑하며, 국적과 성을 초월한 ‘슈퍼 문화인’이자, ‘맑고 밝고 힘찬 아름다움’에 대한 믿음으로 추한 폭력에 굴하지 않고 학문적 양심을 지켜낸 인문학자 차봉희 교수. 그는 자신이 할 수 있었던 유일한 역할이 인문학의 바다에 불을 밝히는 “작은 등대지기”였다고 말한다. 그것은 소박한 꿈이지만 그의 도저한 발자취는 인문학의 바다를 항해하는 모든 독자들에게, 또 길고 긴 학문의 길을 가려는 후학들에게, 진정 인생의 항로를 밝혀줄 등댓불이 되어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