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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관 상
왕을 기록하는 여인
박준수
청년정신 2015.1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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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목차

prologue
예문관의 남장 여인 - 10
다시 나타난 정난일기 - 70
임금의 숨소리까지도 기록하라 - 138
노산군일기 - 206
수양의 당부 - 264

저자 소개 1

소설가. 전작으로 장편소설,『악화의 진실 : 조선 경제를 뒤흔든 화폐의 타락사』,『재상의 꿈』,『사관 : 왕을 기록하는 여인』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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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발행일
2015년 11월 25일
쪽수, 무게, 크기
320쪽 | 556g | 150*200*20mm
ISBN13
9788958611554

책 속으로

그날 이후, 세주는 며칠 동안 은후에게 사관이 지녀야 할 마음가짐뿐 아니라, 상대방의 말과 행동을 초서草書로 빠르게 흘려 쓰는 요령, 기사를 취재하는 방법 등 사관이 직무를 수행하기
위해 반드시 갖추어야 할 사항들을 소상하게 가르쳤다.
그런 와중에도 세주는 줄곧 머릿속에서 한 가지 의문점을 떨쳐낼 수 없었다. 그것은 은후가 혹시 여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었다. 여인처럼 곱상하게 생긴 그의 모습이 자꾸만 마음에 걸렸던 것인데, 세주는 어느 순간부터 그가 남장을 한 여인일지도 모른다는 의심을 강하게 품게 된 것이다. 그렇다고 그의 관복을 벗겨 속을 들여다볼 수도 없는 노릇이니, 그는 혼란스럽기만 하던 참이었다.
--- p.15~16

수양이 정난공신들을 멀리하고 적개공신들을 우대하기 시작한 결정적인 이유는 다섯 달 전에 발생했던 그 사건 때문이었다. 이시애의 난을 겨우 진압한 뒤인 지난해 시월, 나라가 몹시 어수선한 지경에 있을 때 춘추관에 보관하고 있던 정난일기靖難日記가 갑자기 사라지는 해괴한 일이 일어났다. 그 일을 두고 수양은 공신들(정난공신)을 의심했고, 반면 공신들은 그들대로 수양을 의심했다.
--- p.34

조석문이 자세를 바로 고쳐 앉으며 근엄한 표정으로 좌중을 둘러보았다.
“자, 진정들 하세요. 사관을 가려 뽑는 일은 몹시 중한 일입 니다. 9품 말직 관원 한 명을 뽑기 위해 아침부터 당상들이 이렇게 모이지 않았습니까.”
그리고 예문관 직제학 심찬에게 말했다.
“명단에 있는 후보자들에 대해 말씀해 보세요.”
심찬이 따로 준비해온 문서를 펼쳤다.
“신 급제자 안명윤은 이조판서를 지낸 안현세의 자제로 재주 와 성품이 고루 뛰어나다는 평이 있습니다. 그리고 역시 이번 문과에 급제한 하계환은 대사헌을 지낸 하제중의 자제로서 유학자가 지녀야 할 덕목뿐만 아니라 문장 또한 뛰어나다는 평입니다. 마지막으로 천거된 홍문관 정자 이균필은 성균관 지사를 지낸 이공근의 자제로서 그 또한 재주로 보나 성품으로 보나 한림이 되기에 충분하다는 평입니다.”
춘추관 동지사 주세길이 확인하듯 물었다.
“벌열 가문의 자제들이니 세계世系에는 흠이 없겠군요?”

--- p.49

출판사 리뷰

역사에서 진실은 가릴 수 없다!

이화여대 역사학관련 교수들은 역사교과서 국정화 반대 성명서를 통해 “역사학은 ‘달면 삼키고 쓰면 내뱉는 학문이 아니다. 사실이 있으면 쓰고, 지도자의 공과는 엄정하게 평가한다. 이것이 사관史官의 정신이고, 사마천이 궁형宮刑의 치욕을 당하면서 세운 기초다.”라고 말했다.
여기서 사관은 어떤 사람들이고, 그들은 어떻게 ‘유네스코 세계기록문화유산’으로 지정될 만큼 뛰어난 기록 유산인 『조선왕조실록』을 기록해 왔을까? 사관은 붓 한자루에 목숨을 거는 사람, 그들에 의해 조선왕조실록은 쓰여졌던 것이다.

조선시대 실록 편찬을 담당한 춘추관의 관직은 전임專任 없이 모두 다른 직과 겸하였지만 춘추관의 기사관記事官을 겸한 예문관의 사관 8명(봉교 2명, 대교 2명, 검열 4명)은 역사 기록에 관련된 직무만 전문적으로 담당했던 존재로 이들을 일컬어 한림翰林이라고도 하였다. 이들은 정7품에서 정9품까지 직위는 매우 낮았지만 항상 임금 곁에서 기록을 담당하는 임무를 가지고 있었으므로 만인지상조차 눈치를 살피는 존재들이었다. 따라서 자격 조건이 매우 엄격해 기개가 높고 올곧아야 할 뿐 아니라 학문과 문장과 문벌까지 좋아야 했다. 그러므로 대개 과거에서 장원 급제한 사람 중에서도 문벌이 좋은 사람을 사관으로 임명하였다. 또한 결원이 있을 때에는 예문관 사관들의 추천을 받은 사람 중에서 경사經史와 문장文章을 시험하고 문벌을 조사하여 흠이 없는 사람을 임명하였으므로 엘리트 코스에 접어든 선망의 대상이었다. 조선시대의 초 엘리트라고 할 수 있는 존재들이 바로 사관이라고 할 수 있다.

사관 제도는 정확한 직필直筆로써 국가적인 사건, 임금의 언행, 관리들의 공과, 그 시대의 사회상 등을 기록하여 후세에 정치를 하는 데 거울로 삼게 하려는 것이었다. 따라서 사관이 기록한 사초는 사관 이외에는 임금조차 볼 수 없었고, 시비를 가리지 못하고, 수정도 가하지 못하도록 되어 있었다. 또한 권력의 눈치를 실펴 스스로 검열하지 않도록 일종의 면책권을 주었다.
하지만 사관들이 쓴 사초로 인해 필화를 겪은 일이 없지는 않았다. 연산군 때 일어난 무오사화는 김종직이 세조의 왕위 찬탈을 비난하기 위해 지은 〈조의제문弔義帝文〉을 그의 제자 김일손이 사관으로 있으면서 사장史章에 올렸다가 일어난 것이며, 또 명종 때에는 을사사화 당시의 시정기時政記를 집필한 안명세를 죽이고 시정기를 고친 일도 있었다.

『왕을 기록하는 여인, 사관』은 죽음이 멀지 않음을 예감한 수양이 자신이 왕위를 찬탈하기 위해 일으켰던 계유정난과 단종의 선위와 죽음을 정당화 하고 역사 속에서 성군으로 살아남고자 노심초사하는 과정에서, 수양을 아예 역사의 미아로 만들고자 하는 의문의 무리 그리고 후세에 진실을 전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사관들의 이야기이다. 그동안 소설이든 드라마든 아무도 주목하지 않았던, 폭풍의 시대를 살았던 사관들은 어떤 존재인지, 진실을 후세에 전하기 위해 분투하는 사관들의 맨얼굴과 역사가 갖는 의미를 이 소설은 생생하게 보여준다.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라는 말이 있다. 어쩌면 맞는 말일 것이다. 하지만 언젠가 진실은 드러나게 되는 법이다. 그것은 직접 혹은 행간에 진실을 담았던 사관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시간은 결국 거짓을 부식시키는 힘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역사의 진실을 찾고자 하는 노력이 필수적이라는 것은 두말할 나위도 없지만….
실록청에 불을 지르려는 은후에게 세주는 이렇게 말한다.
“어차피 역사란, 마지막에 살아남은 자들이 쓰지. 하지만 그것을 평가하는 것은 그들이 아니라 후인들이라네. 후인들은 그리 어리석지 않을 것이네. 그들이 아무리 역사를 왜곡할지라도, 후인들은 반드시 진실과 거짓을 가려내어 엄중한 평가를 내릴 것일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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