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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장 흉노의 등장
흉노의 원류 흉노의 발흥 흉노 유목국가의 성립과 발전 제2장 흉노와 한의 공방 한과의 대립 흉노 내의 한인과 흉노의 내분 흉노의 동서분열 이역 땅으로 보내진 여인들 흉노의 중흥기 제3장 흉노의 문화 흉노문화의 특질 경제와 산업 흉노인의 의식주 흉노인의 풍속과 관습 퓽노의 문자 제4장 흉노의 사회 흉노의 부족조직 정치권력의 발생 행정의 구성 흉노군장권의 성격 중국 침입의 진상 흉노 유목국가론 제5장 흉노의 분열과 그 후 흉노의 남북분열 북흉노의 동정 흉노·훈 동족설 오호의 동란과 흉노 맺음말 옮긴이 후기 부록1 흉노사 연표 부록2 사마천이(임소경에게 보낸 편지)전문 참고문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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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최초로 소개하는 ‘흉노’ 개론서도서출판 아이필드
현재의 중국을 존재하게 만든 유목민족 흉노. 고대 유럽의 민족 이동의 단초를 만들었던 훈족과 같은 뿌리라고 여겨지는 흉노에 대한 정보를 한눈에 볼 수 있도록 모았다. 중국 사서에 흉노는 북방 오랑캐의 대명사로 표현된다. 강한 기동력과 전투력으로 중국 중원을 약탈했다고 묘사되는 흉노에 대해 우리는 얼마만큼 알고 있을까? 헝클어진 머리, 동물 가죽옷을 입은 야만인, 초원에 텐트를 치고 살며 말을 자유자재로 다루는 인간 군상들…. 어릴 적 우리 눈에 비친 북방 이방인에 대한 모습은 대강 이런 모습들이 아닐까 싶다. 그러나 이런 편견과는 달리 흉노는 고대 동북아시아의 문화를 담당한 엄연한 정치세력의 한 축이었고 그것도 주동적으로 이끈 집단이었다. 저자는 이 책의 머리말에서 이렇게 밝히고 있다. “한(漢)과의 사투를 되풀이했던 흉노는 (…) 그 후로도 중국사에서 커다란 역할을 담당하였으며, 훗날 수?당 제국의 성립에 이르기까지 깊이 연관되어 있었다. 뿐만 아니라 서방 유럽의 역사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쳤던 것으로 생각된다. (…) 훈족은 게르만 민족의 대이동을 유발하고 그 결과 서로마제국의 붕괴를 초래했는데, 이 훈족이야말로 흉노의 마지막 후예라고 여겨지고 있기 때문이다.” 흉노와 한의 대립 흉노가 역사상 중국 사서에 등장한 시기는 대략 기원전 4세기 무렵으로 보고 있다. 현재 감숙 지구와 내몽골 지역, 동북 지역에는 의거족, 흉노족, 동호족이 세력을 확장하고 있었고 이들과 국경을 접하고 있던 진(秦), 조(趙), 연(燕)나라 등은 장성을 쌓아 그들의 침입을 방어하고 있었다. 당시 흉노의 등장은 동아시아사상 획기적인 것으로 그들이 구사하는 기마전법은 보병을 주축으로 하는 중국 전법에 커다란 충격을 주었다고 전해진다. 그 충격의 크기는 하북과 산서 지방에서 그들과 국경을 접하고 있던 조나라 무령왕이 그들 유목민의 기마군단을 모방하여 군대를 개혁한 것으로도 잘 알 수 있다(기원전 307년). 또 대륙을 통일한 진시황제도 자신의 지배 영역을 남쪽의 운남과 귀주, 광동에까지 넓혔지만 북쪽으로는 오로도스 지역만 확보한 채 황하에 연한 44개 지역에 도성을 쌓아 만리장성을 건설하여 경계를 그었던 것이다. 한편, 기원전 209년 등위한 흉노의 묵특은 동방에 위치한 동호(東胡)를 토멸하고 서방의 월지(月氏)를 패주시켜 북아시아 전 영토를 병합하기에 이른다. 진나라의 뒤를 이어 한나라를 세운 고조 유방은 여세를 몰아 북쪽 지역의 흉노를 정벌할 요량으로 묵특과 대접전을 벌이지만 대패하고 7일 동안 고립되어 굶주림으로 고생하게 되는데, 이것이 역사에서 말하는 ‘평성의 치’이다. 이로부터 약 100여 년간 한나라 조정은 흉노의 수장에게 황실의 공주를 시집보내는 등 후하게 대접한다. 그러나 한의 제7대 황제 무제가 등장하면서 본격적인 흉노 토벌 전략이 세워지고 두 세력 사이에는 날카로운 공방이 오가게 된다. 한 무제의 대흉노 토벌 정책 선대가 당한 치욕을 씻고자 절치부심하던 무제는 사로잡은 포로에게서 우연히 흉노 서쪽 나라에 관한 정보를 얻게 되고, 그 세력과 동맹을 맺고자 장건을 파견하지만 장건은 가는 도중 흉노에게 붙잡혀 십수 년 있다가 탈출한다. 이때 얻은 정보를 토대로 무제는 흉노 토벌에 나서는데 그 선두가 곽거병이었다. 이 무렵 흉노에는 왕권을 둘러싸고 극심한 내분이 일어났고, 흉노 서부 진영을 담당하던 혼야왕(渾邪王)의 투항은 흉노에 결정적인 타격을 안겨주었다. 이로써 한나라는 하서 지구를 확보하였고, 흉노는 고비사막 북쪽으로 근거지를 옮기게 된다. 이것을 기화로 한나라는 서역과의 무역 루트를 손아래 두게 되었으며, 무제는 더 서쪽 지역인 대 원까지 원정하여 투르키스탄의 여러 나라에 한나라의 힘을 과시하게 되는데, 누란을 비롯한 서역 제국은 물론 안식, 강거, 대익 같은 서방 제국까지 한나라에 조공하게 되었다. 이로써 한의 권위는 중앙아시아 및 서방 세계에까지 미치기에 이르렀다. 흉노의 분열과 망국 한나라의 침략에 따른 흉노의 후퇴는 그 세력을 양분하는 결과를 빚고 말았다. 기원전 60년 흉노 내 왕권을 둘러싼 갈등은 왕위 투쟁에서 밀려난 흉노의 서쪽 지방을 지배했던 일축왕이 한나라에 투항하면서 절정에 달하게 된다. 이것으로 한나라는 손쉽게 서역 제국을 확보하였고 그 자리에 서역도호부를 두고 관리하였다. 일축왕의 투항은 흉노의 약화를 가져왔고 이를 기회로 흉노의 동쪽에 인접한 오환(烏桓)이 쳐들어와 백성들과 가축들을 약탈해갔다. 이때가 ‘흉노의 동서 분열’이라고 부르는 1차 분열이다. 그리고 한 차례 더 분열이 일어나는데 이것이 ‘흉노의 남북 분열’이다. 이로써 흉노는 북흉노와 남흉노로 나뉘고, 남흉노는 중국의 위성 국가로서 역할을, 북흉노는 그보다는 좀더 자주적인 국가의 면모를 보이긴 하지만 중국의 전형적 ? 전통적인 이이제이 외교술로 인해 서로 간에 갈등을 겪는다. 그리고 그들 중 서쪽 지역으로 이동한 세력들은 흑해 연안에까지 세력을 미쳐 당시 그곳에 거주하던 고트족을 압박하여 유럽 대륙에 민족 대이동을 일으키게 한 장본인이라고 전해진다. 흉노를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고대 중국을 상대했던 동북아시아(또는 중앙아시아)의 거대 유목국가 흉노는 현재 사라지고 없는 민족이다. 500년 가까이 중국의 머리맡에서 중국인들의 뇌리에서 떠나지 않고 생생하게 존재했던 고대 유목민족 흉노. 어쩌면 장성을 쌓고 정략결혼을 하는 등 흉노에 대한 견제와 경쟁이 오늘날 중국을 만들어낸 원형은 아닐까? 그들 때문에 서로 다른 중국인들이 모여 ‘화(華)’라고 하는 자기들의 정체성 발굴에 더더욱 심혈을 기울였던 것은 아닐까? 사방 수천, 수만 리에 달하는 초원을 질주하며 문물과 정보를 공유하고 고유한 문화를 창조한 북방 유목민족 흉노. 그러나 아쉽게도 우리는 그들에 관해 알고 있는 것들이 거의 없다. 이 책은 그런 아쉬움을 조금이나마 달래주지 않겠나 싶은 마음에서 기획되었다. 장대한 서사적인 맛은 없어도, 또 우리 눈을 황홀케 하는 멋진 영상은 없어도, 수십 년에 걸친 저자의 공부가 담백하게 서술되어 그것만으로도 옛날 고대인의 모습을 복원해 보았으면 하는 생각이다. 그리고 같이 상상해 보면 어떨까 싶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