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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500년, 의문과 진실
조선의 그늘에 가려진 고려사의 진실 찾기
김영사 2001.1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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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목차

1. 고려건국과 격동의 정치

1. 궁예와 견훤은 왜 몰락하였는가
2. 왕건은 어떻게 후삼국을 통일했나
3. 훈요십조는 조작되었는가
4. 호족들의 세력은 왜 약화되었나
5. 민란이 무심정권기에 번성한 까닭
6. 고려 정계를 뒤흔든 천추태후는 누구인가
7. 무신정변은 왜 발생했을까

2. 풍속과 사회

8. 일부일처제였나 일부다처제였나
9. 딸 아들 차별은 언제부터 했을까
10. 귀족들의 사치생활은 어느 정도였나
11. 본관과 족보는 언제 생겼을까
12. 고려사회는 정말 개방적이었나
13. 고려시대에는 어떤 명절들이 있었나

3. 삶의 애환과 종교

14. 우리식 한의학은 어제 시작됐을까
15. 일반민이 초근목피로 연명해야 했던 까닭
16. 왕자들이 승려가 되어야 했던 이유
17. 왜 거대한 불상을 만들었을까
18. 고려는 왜 삼경을 두었나
19. 고려시대의 무당은 어떤 존재였을까
20. 우리 역사에 도교는 존재했는가

4. 전환기의 갈림길

21. 오백년을 유지한 고려의 힘은 무엇인가
22. 원의 간섭에서 어떻게 벗어났을까
23. 이성계는 어떻게 역성혁명을 했는가
24. 고려는 정말 불교 때문에 망했는가

5. 세계속의 고려

25. 적극적으로 대외무역을 한 까닭은
26. 묘청이 서경천도를 주장한 이유는
27. "고려도경"이 그려낸 고려사회의 모습은
28. 어떻게 몽골을 물리칠 수 있었나
29. 은은한 비색으로 비친 고려청자의 비밀
30. 대장경이 강화에서 해인사로 간 까닭

저자 소개 2

단국대학교 사학과를 졸업하고 고려대 대학원에서 「고려 시대 잡사 연구」로 박사학위를 취득하였다. 공저로 『고려 시대 사람들 이야기』가 있다. 현재 단국대 동양학연구소 연구원으로 있으며 단국대, 경원대, 대전대에서 강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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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년 제주도 출생. 고려대 사학과 및 동 대학원을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고려대, 공주대, 순천향대, 충남대, 한경대, 한양대 등에서 강의를 했다. 성균관대학교, 성신여자대학교 연구교수를 거쳐 현재 고려대학교와 충남대학교에서 강의 중이다. 주요 저서로 『고려 개경의 구조와 그 이념』,『고려의 남경, 한양』,『고려의 여성과 문화』,『광종의 제국』,『신돈과 그의 시대』,『윤관과 묘청, 천하를 꿈꾸다』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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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이정란
서울시립대를 졸업하고 고려대 대학원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공저로 『고려시대 사람들은 어떻게 살았을까』『고려시대 사람들 이야기』가 있다. 현재 서울시립대에서 강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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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발행일
2001년 10월 31일
쪽수, 무게, 크기
368쪽 | 676g | 크기확인중
ISBN13
9788934907442

책 속으로

태조 이성계가 대장경을 강화도에서 합천 해인사로 옮기려고 한 것은 당시 일본과의 관계 때문이었다. 고려말 왜구의 침입은 고려정부로서는 큰 골칫거리였다. 공민왕 재위 23년 동안 발생한 왜구는 115여 회였고, 다음 우왕대 재위 14년간에는 378회나 노략질 당했다.
몽고의 침략에 의해 초조대장경을 비롯한 많은 문화재를 잃어버린 경험이 있었던 고려에게는 빈번하게 연안을 침범하는 왜구는 큰 위협이었다. 이러한 왜구의 침략은 조선에 들어서도 계속되었다.
한편 일본에서는 고려대장경을 끊임없이 요구하고 있었다. 창왕 원년 7월과 공양왕 4년 6월에 일본에서는 토산물을 바치고 왜구에게 포로로 잡혀간 고려인을 돌려보내면서 대장경을 요구하였다. 조선에 들어서도 태조 3년부터 7년까지 4번에 걸쳐 일본에서는 사신을 보내 예물을 바치고 대장경을 요구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독실한 불교 신자였던 태조 이성계는 팔만대장경을 보다 안전한 곳에 보관할 필요성을 느꼈을 것이다. 그리고 이를 보관하는 장소로 택한 곳은 바로 해인사였던 것이다. 해인사는 고려 때부터 역사서를 보관하던 사고(史庫)가 있던 곳으로, 충목왕 3년(1347)에 충렬·충선·충숙왕 실록을 육로를 통해 해인사 사고에 보관하였고, 공민왕 11년에도 홍건적이 침입하자 개경 사관에 있던 역사서를 해인사로 옮기려고 한 적이 있었다. {세종실록} 지리지에는 고려의 사고가 가야산의 해인사에 있어, 홍건적(紅巾賊)의 난리에도 잃지 않았다고 그때의 사정을 전하고 있다. 해인사는 내륙지방에 있었기 때문에 전란의 위험에도 비교적 안전한 곳이었고, 고려 때부터 사고를 두었기 때문에 대장경을 보관에 가장 적합한 곳이었다. 이런 이유로 태조 이성계는 팔만대장경을 해인사에 간직했던 것이며, 불교신자였던 이성계는 왜구의 위험을 피해 보다 안전한 한강 수로를 이용하여 대장경을 옮겼다.

--- p.353

신채호는 묘청 등 서경파를 낭가(고유의 신선신앙)·불교의 진취사상에 바탕을 둔 독립당이라 규정한 반면 김부식 등 개경파에 대해서는 한학(유학)의 보수사상에 바탕을 둔 사대당이라 규정하였다. 신채호는 김부식, 특히 그의 명저인 《삼국사기》를 사대주의로 몰아 붙였다. 묘청과 대비하다보니 그러한 결과가 되었겠지만. 《삼국사기》는 유교적인 입장에서 써 있었지만, 조선시대 사대주의에 사로잡힌 관료들에게 비판받을 정도로 자주적인 측면이 강한 책이었다. 또한 강국을 상국으로 받드는 '사대'는 고려시대의 경우 국제질서 속에서의 외교적 관례일 뿐이었다. 고려는 어쩔 수 없이 문화적 선진국인 중국이나 군사적 강국인 요나라, 금나라 등을 사대했다. 하지만 형식적인 행위에 불과하여 마음속으로 추종하는 사대주의에 빠진 것은 아니었다. 이 점이 조선과 다른 점이다. 유교국가인 조선은 형식만이 아니라 마음속으로 중국을 사대함으로써 사대주의에 빠졌던 것이다.
사실 금나라를 사대하는 외교정책을 결정한 사람은 김부식이 아니었다. 물론 그도 정권의 안정 내지 전쟁의 회피를 위해 이 정책을 고수하였지만, 금을 사대하기로 결정한 사람은 이자겸과 척준경이었다. 그들은 정변에서 승리한 직후 인종이 이자겸의 집에 유폐된 상태에서 그러한 정책을 결정하였다. 이때 백관회의에서는 모두 반대했지만 이자겸과 척준경이 독단적으로 밀어붙여 관철시켰다.

--- p.308

출판사 리뷰

한국사 최대의 불모지, 고려사를 찾아가는 30가지 오해와 진실

우리 역사에서 독특한 인물, 고려의 천추태후는 김치양과 간통과 불륜을 저지른 추잡한 여성, 그리고 그와 공모하여 반역을 도모한 악랄한 여성으로 그려져 있다. 하지만 실제로 그녀의 행적은 어느 집정자도 해내기 힘든 훌륭한 치적을 쌓은 여걸이다. 남매인 성종이 유학을 숭상한 반면, 천추태후는 황주 호족인 외가의 영향을 받아 고유의 전통과 불교를 중요시하였다. 성종이 세상을 떠나자 아들 목종이 왕위를 계승하게 되면서 애인인 김치양과 함께 유학으로 훼손된 고려의 전통과 불교의 가치를 지키는 개혁을 실시하였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유학자와 신라계 인물들이 소외되면서 정적(政敵)이 형성되었고, 두 사람 사이에 아이가 생기자 이를 빌미로 일어난 정적들의 거사에 의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게 된다. 그리고 그녀에 관한 진실은 변질되었다.(75쪽)
훈요십조는 조작된 것인가? 훈요의 내용은 후대왕들이 대부분 지켰으며, 지키려 노력하였다. 설사 일부분이 지켜지지 않았다고 해서 조작된 것은 아니다. 현대의 지역차별 문제와 연관지어 훈요십조 조작설에 무게를 싣는 것도 무리가 있다. 오히려 훈요의 조작설을 일찍이 제기한 사람은 일본인 식민 사학자였음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식민사학자들은 우리 역사서의 신빙성을 훼손시키는 작업을 많이 했다.(38쪽)
무신집권기에 민란이 집중되었던 이유는 다른 것보다, 무신들의 신분 상승에 성공함으로써 그 가능성을 열어준 데서 기인한다.(64쪽) 고려 초기 강성했던 호족들의 세력이 약화된 이유는 광종의 과거제도 시행이 결정적이다. 호족들이 칼을 버리고 붓을 들어야 권력을 잡을 수 있었고, 실제 시행 과정에서 많은 새로운 인물로 과거의 세력을 대체할 수 있었다.(53쪽)
고려하면 왠지 낯설게 느껴지는 게 많다. 연구성과도 미흡해서 학자는 물론 대중에게도 미지의 세계로 남아 있다. 이 책은 오늘 우리에게 많은 거리가 있는 고려사를 친숙하고 흥미롭게 보여준다. 특히 고려의 역사를 신라와 조선을 잇는 징검다리 정도로 이해하고 있거나, 조선의 그늘에 가려 잘못 알려진 사실들을 바로 잡을 수 있도록 의미있는 30가지의 주제를 다루고 있다.


승자인 조선의 역사 뒤에 감춰진 잊혀진 왕국 고려의 생생한 모습들. 고려인의 시각에서 바라본 고려사

왕조시대의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다 보니, 왜곡되는 일이 많았다. 특히 유교정통론이 지배한 조선시대에는 그 앞 왕조인 고려에 대한 왜곡이 심했다. 우리는 조선시대에 편찬한 고려 관련 역사서로 고려시대를 이해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이 책은 같은 자료도, 고려인의 입장에서 고려의 실체를 이해할 수 있도록 해석함으로써 고려의 여러 면면들을 가장 사실적으로 드러내 보이고자 하였다.
사실 고려는 지방세력인 호족을 바탕으로 건국된 나라여서 지방의 힘이 강했다. 왕권은 강했지만 신하와 타협할 줄 아는 사회였다. 동아시아의 최강자들과 수차례 격돌했지만 성공적으로 전투를 수행한 군사강국이었다. 문신들이 한 때 세력을 떨치기도 했지만, 무신정권이 무려 100년이나 지속될 정도로 나름의 지속적인 개혁추구가 있었으며, 역사에 새로운 활력과 변화를 많이 가져왔다. 고려 사내들은 드셌지만 가정에서는 아내의 눈치를 살피는 부드러운 모습의 소유자였다. 왜냐하면 남성의 처가살이가 미덕인데다가 여성은 재산을 균등하게 상속받은 재력가이며 자유롭게 재가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고려시대에 많은 왕자들이 승려가 되어야 했던 것은 자신의 의지보다는 왕실의 의도 때문이었다. 대각국사 의천처럼 불교의 발전에 크게 공헌한 인물도 있지만, 나머지 대부분은 정치의 희생양으로 왕실에서 밀려나 반 강제로 승려가 되어 현실과 일정한 거리를 유지해야 했다. 그러한 존재들은 왕자이면서 서자의 신분적 한계를 가진 소군들이었다.
이 책은 다양한 사진자료와 풍부한 역사 근거, 그리고 치밀한 사료분석으로 토대로 흥미롭게 역사의 진실에 접근하고 있다. 편견이나 선입견에 의해 잘못 알고 있던 역사의 오해와 고정관념을 깨나가는 과정에서 독자들은 고려사의 참맛을 느낄 수 있다.


우리 고유의 모습과 가장 많이 닮은 나라, 그 고려인의 다양한 삶과 문화

고려시대의 경우 관리들은 설날에 7일간의 휴가를 받은 것으로 보아 요즘처럼 중요한 명절이었다. 그러나 추석은 당일 하루만 휴가를 주고 있어서 오늘날과 차이가 있다. 고려 사람들은 한 해의 농사를 기념하고 감사하는 추석을 오늘날과 달리 그렇게 중요한 명절로 취급하지 않았다. 고려 사람들은 12월의 납향일에 농사를 맡은 신에게 감사를 드렸다. 이 날에도 고려 관리들은 7일간의 휴가를 받았는데, 이것은 고려의 추수 감사제가 오늘날과 달랐다는 것을 의미한다.(149쪽) 이 책은 고려시대 명절의 의미와 유래 행해진 놀이들을 생생하게 보여준다. 조선을 거치며 사라진 우리 문화의 원형을 보여준다.
또 성씨와 본관?족보의 탄생, 딸 아들 차별 없는 균등 상속의 모습, 여성의 이혼과 재혼이 자연스럽게 가능했던 사회, '일부일처제 사회인지 일부다처제 사회'인지로 분석해 본 여성의 지위 등 변화한 고유의 모습을 다양하게 파악할 수 있게 하였다.
고려시대에는 불교가 국교이면서도 다른 종교를 탄압하지 않아 도교, 유교와 함께 공존하였다. 그 외에도 음양오행설, 풍수지리설, 민간신앙 등이 유행하여 그야말로 종교와 사상의 천국이었다. 고유문화를 바탕으로 세계문화를 적절히 소화해 냈다. 바다와 육지를 통해 고려상인이 세계를 누볐으며 이슬람 상인까지 고려를 들락거렸다. 이처럼 문호를 활짝 개방했으면서도 자기 중심을 유지하여 우리 것을 쉽게 잃지 않았다. 우리의 원래 모습을 찾다 보면 고려의 사회 내지 문화와 맞닥뜨리지 않을 수 없다. 이 책은 조선에 의해 많은 변화를 겪은 우리 역사 고유의 모습을 살려내 보여주고 있다.
젊은 역사학자 3명이 너무 딱딱하거나 어렵지 않게 누구나 쉽게 읽을 수 있게 구성한 이 새로운 형식의 고려사를 통해 독자들은 고려사의 매력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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