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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문 반복되는 역사가 말해주는 것
데자뷔 일본군이 다시 한반도를 밟는 날 1장 멀리 하기엔 너무 가까운 이웃 외면할 수 없는 일본의 힘 화(和), 그 안의 이중성 고대문화를 일본에 전파한 한국 현대기술을 한국에 전수한 일본 2장 한반도를 왜곡한 일본 고대사 황당무계한 진구황후의 '삼한정벌설' 임나일본부는 일본 땅에 있었다 일본 왕실에 흐르는 한국인의 피 끔찍한 트라우마로 남은 백촌강 참패 3장 일본의 잔혹한 한반도 침략사 한반도 침략의 앞잡이, 왜구(倭寇) 동아시아 휩쓴 약탈의 항해 임진왜란(壬辰倭亂), 최악의 한반도 잔혹사 노예전쟁, 약탈전쟁, 거덜 난 조선 4장 조선과 일본의 국운을 가른 결정적 장면 조선 사대부의 피바람, 예송논쟁 메이지유신 이후, 열강 진입을 향한 일본의 외교술 일본의 노블레스 오블리주 떠오르는 도시 상인, 우키요(浮世)의 시대로! 네덜란드에게 서양을 배우다 다양성을 중시하는 '화(和)'의 지적 전통 5장 메이지유신은 어떻게 군국주의로 변질됐나 조슈와 사쓰마의 복수, 메이지유신(明治維新) 메이지 정부 장악한 요시다 쇼인의 제자들 군국주의의 또 다른 얼굴, '범아시아주의' 조슈와 요시다 쇼인, 그리고 안중근 6장 여전히 세계를 움직이는 일본의 저력 패전, 그러나 다시 일어선 일본 제조업 경쟁력 세계 1위 일본 로봇천국 일본의 하이테크 기업 미국도 의존하는 일본의 우주능력 7장 풍운의 동아시아, 진격의 군국주의 '보통국가' 건설과 아시아 재균형에 숨은 노림수 팍스아메리카나를 바라보는 상반된 시선 남중국해 둘러싼 미국과 중국의 사생결단 지금은 한반도 격변에 대비할 때 '제2의 개국(開國)' 선언한 일본 결론 기억하라, 치욕의 역사를! 참고문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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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과 일본은 어쩌면 우리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긴밀히 결속돼 있는지도 모른다. 이제 현재와 과거의 대화를 통해 그 연결고리를 찬찬히 찾아봐야 할 때다. 한국이 일본에 고대문물을 전파하던 시대부터 침략과 근대화, 군국주의의 소용돌이를 지나 경제협력 파트너이자 동아시아의 견원지간으로 부침을 거듭하는 오늘날까지 시간여행을 떠나볼 참이다. ---「1장 멀리 하기엔 너무 가까운 이웃」중에서
일본은 8세기 나라시대에 편찬된 역사서 《일본서기日本書紀》를 근거로 일본이 2,600여 년 전에 건국됐다고 선전한다. 이 책에는 '기원전 660년에 진무神武 천황이 즉위하였다'는 기록이 나온다. 하지만 이는 조작된 역사일 뿐이다. 세계 역사학계의 정설에 따르면 서기 300년 경 일부 주민들이 쌀 재배에 성공하여 혼슈의 남서부 야마토大和 평야에 정착촌을 이루기 시작했다. 이 영구 정착촌은 쌀로 내는 세금에 의해 운영되는 정치집단, 즉 국가로 발전했다. 야마토 평야의 지배권을 놓고 여러 씨족들이 다투던 끝에 이윽고 야마토 가문이 맹주로 등장했다. 이 시기가 6세기 무렵이었다. 야마토 정권은 지배권을 상속받는 자를 천황天皇이라 칭하고 권위를 높이기 위하여 신화적인 요소로 포장했다. 과거 씨족사회까지 거슬러 올라가 전설 속에 등장하는 인물과 사건들을 왕실의 역사로 소환했다. 고대일본을 다룬 역사기록은 이 때문에 황당무계한 내용들이 가득하다. 그 가운데 대표적인 것이 진구황후神功皇后의 '삼한정벌설三韓征伐說'이다. ---「2장 한반도를 왜곡한 일본 고대사」중에서 임진왜란은 전쟁이라기보다 왜군의 조선 양민 대학살이었다. 연세대 교수로 재직한 캐나다 역사가 새뮤얼 홀리는 지난 2005년 영어로 된 최초의 임진왜란 연구서 《임진왜란(Imjin War)》을 펴냈다. 한국인의 시각으로 외국인에게 임진왜란을 알려주기 위해서였다. 이 700쪽짜리 두툼한 저서에 따르면 임진왜란의 여파로 죽은 조선 백성은 약 200만 명으로 당시 조선 전체 인구의 20%였다. 적군에게 목숨을 잃은 조선 양민은 대부분 조명朝明 연합군에 밀려 좌절한 왜군이 복수심에서 의도적으로 학살한 사람들이었다. 굶주림이나 질병으로 인한 사망자도 부지기수였다. ---「3장 일본의 잔혹한 한반도 침략사」중에서 일제 강점기 일본인 식민사학자들이 조선왕조의 무기력함, 나아가 조선 역사의 정체성을 강조하기 위해 자주 언급한 것이 당파싸움이다. 당파싸움은 어느 나라에도 있었고 지금도 있지만, 조선시대의 당파싸움은 심각했다. 사대부들끼리 제각기 그럴듯한 명분, 즉 중국 지식인들이 세워놓은 이론을 금과옥조로 섬기면서 이를 지킨다며 서로 죽고 죽이는 지경까지 나아갔다. 이는 후손인 우리에게 냉정한 관찰과 반성을 요구한다. ---「4장 조선과 일본의 국운을 가른 결정적 장면」중에서 메이지유신 주역들이 내건 일본 근대화의 양대 슬로건은 '문명개화'와 '부국강병'이었다. 그들은 막부 시절 서구열강의 포함砲艦외교에 맥없이 무너지고 말았던 조국 일본에 심한 열등감을 느꼈다. 1850~1860년대에 도쿠가와 쇼군이 외국의 압력에 못 이겨 체결한 불평등조약들을 굴욕이라고 여겼다. 이 조약들은 메이지 정부에서도 당연히 효력이 유지되고 있었다. 불평등조약을 수정하자면 일본이 충분한 교섭력을 가져야 한다. 열강에 버금가는 국력을 길러야 하고, 문명화되어야 했다. 이를 자각한 유신 지도자들은 사소하게는 남녀혼욕 풍습 추방에서부터 크게는 독일헌법을 모델로 한 일본헌법 제정(1889년)에 이르기까지 일본의 근대화를 강하게 밀어붙였다. ---「5장 메이지유신은 어떻게 군국주의로 변질됐나」중에서 현재 일본은 세계에서 가장 기술이 뛰어난 수소액체엔진 H2A 로켓을 보유 중이다. 또 미국이 셔틀 프로젝트를 접는 바람에 국제우주정거장에 화물을 보내지 못하게 되자 일본의 H2B 로켓이 그 임무를 대신한다. 일본의 우주능력은 미국조차 의존할 정도가 됐다. ---「6장 여전히 세계를 움직이는 일본의 저력」중에서 '보통국가'는 평화헌법의 족쇄에서 벗어나 애국주의를 부활시키고, 국제사회에서 일본의 위상에 어울리는 정치?군사적 책임을 떠안는 국가를 가리킨다. 그것은 중국의 패권주의를 저지하려는 미국의 '아시아 재균형(Re-balancing Asia)'정책과 맞물리며 동아시아에 풍운을 몰고 왔다. 2015년 4월 27일 미국과 일본 정상은 새 미일방위협력지침(일명 '가이드라인')에 전격 합의했다. 새 가이드라인의 핵심은 일본 자위대가 그동안 스스로를 묶고 있었던 구속을 상당 부분 벗어던졌다는 것이다. 일본은 미국의 협조 하에 한반도 주변은 물론 전 세계를 상대로 전쟁 행위나 평화유지 활동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일본 우익은 그토록 꿈꾼 '보통국가'에 성큼 다가섰다. ---「7장 풍운의 동아시아, 진격의 군국주의」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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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욕의 역사를 기억하라!
역사적 위기의 순간, 일본은 무엇을 대비하였고 한국은 무엇을 잃어버렸나 단지 일본의 만행을 고발하고, 한국을 감싸주려는 여타 다른 책들과 이 책은 다른 시각으로 접근한다. 오히려 저자는 일본의 만행의 역사 앞에 그것을 고발하는 것에 끝나지 않고, 왜 우리는 그렇게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었는지 그 원인을 발견하고 다시 치욕의 역사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뼈아픈 역사를 직시해야 할 것을 당부한다. 마치 2천여 년 전으로 되돌아가 치열한 침탈의 역사를 거쳐 다시 현재의 아베 정권에 이르기까지 복잡 미묘한 한일 간의 끝나지 않은 한 권의 역사여행을 떠난 듯한 이 책은 외면하고 싶지만 절대 외면해서는 안 되는 역사의 적나라한 장면 앞에 마주하게 한다. 특히 저자는 4장 ‘조선과 일본의 국운을 가른 결정적 장면??을 통해 국가적 위기 앞에 극명하게 갈리는 조선과 일본의 국가 생존전략에 대해 주목한다. 저자는 에도시대 다양성을 중시하는 화(和)라는 일본 특유의 가치관으로 일본의 지적 전통을 구축하고, 국가적 위기 앞에서 철저히 외부로 눈을 돌려 국력을 키우고 국가의 위치를 서구 열강의 반열로 올리기 위해 빈틈없이 준비한 일본의 근대화시기를 조명한다. 그들은 메이지유신 이후 일본이 서구 열강들과 불평등조약을 맺을 수밖에 없었던 것은 일본의 힘이 약한 탓이라 자책하면서 서양 따라잡기에 노력을 집중했다. 일본은 미국과 유럽 선진국들로부터 기술, 사회제도, 인프라, 교육 방법 등을 빌려와 자국의 필요와 문화에 맞춰 변형했다. 일본 실정에 맞는다고 판단되면 채택하고 그렇지 않으면 포기했다. 메이지 정부 앞에 놓인 도전은 근대 세계에서 경쟁력 있는 국가로 일본을 개조하는 것이었다. 반면 비슷한 시기 조선은 획일화된 정치사상에 의해 불필요한 조정 내 대립과 논쟁, 부패와 외척의 세도정치 등의 내부분열로 국가적 목표가 흔들려 결과적으로 나라를 빼앗기는 수모를 당했다. 호시탐탐 노리는 외부의 세력이 항상 도사리고 있다는 현실을 자각하지 못한 데서 참극이 벌어진 것이다. 지금 과거의 끔찍한 악몽이 되살아나는 이유는 과거 일본의 전개와 많이 닮아 있기 때문이다. 19세기 후반~20세기 전반에 창궐한 일본 군국주의는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옛 잔당인 조슈 사무라이와 천황 중심의 대일본제국 건설을 설계한 요시다 쇼인의 추종자들이 불 지핀 광기였다. 이제 그 후예들이 집단적 자위권을 추진하며 한반도에 발을 들일 구실을 찾는 것이 아닌가? 우리가 치욕의 역사를 되풀이하지 않으려면 무엇을 해야 할까. 일제가 심어놓은 식민교육의 잔재를 걷어내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한일 고대사의 잔혹한 침략의 항해부터 '제2의 개국'을 선언한 아베 정권에 이르기까지 반복되는 한일 간 비극의 역사 속에서 그 해답을 찾다 왜곡으로 얼룩진 한일 고대사와 일본의 잔혹한 한반도 침략사를 거쳐 메이지유신이 어떻게 군국주의로 변질되었는지의 과정과 당시 군국주의를 주도한 세력들과 배경을 짚어보고, 패전 이후 다시 일어서 지금까지 여전히 경제대국으로 세계를 주도하고 있는 일본의 현재, 그리고 다시 아시아의 패권을 향한 정치적 행보에 이르기까지, 이 책은 오랜 세월 쓰라린 역사를 반복하며 은원(恩怨)이 교차한 한일관계의 어제와 오늘을 통해 반복되는 역사의 기억해야 될 과제를 발견한다. 일본은 이른바 전쟁을 할 수 있는 '보통국가'로 성큼 다가섰다. 일본은 여전히 그들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 지금도 쉬지 않고 행보를 계속하고 있다. 그들의 속내를 간파하지 않으면 과거의 불행은 다시 되풀이될 수 있다. 이 책은 바로 지금 우리에게 던지는 경고의 메시지이자, 반드시 읽어야 할 역사가 주는 뼈아픈 권고의 기록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