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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명학
2. 매향 3. 해후 |
朴惠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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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교도가 집단으로 모여 사는 촌락에 느닷없이 활기가 돌았다. 어수선한 세상을 정리해 줄 모신이 그들을 찾아왔기 때문이었다. 수개월 전부터 교도장 혜락 스님은 모든 비밀 집회를 주관할 모신이 개펄 속에서 솟아날 것이라는 예언을 했다. 그러니까 수백 년 전 개펄 속에 묻어두었다는 향나무가 침향이 되어 솟구칠 즈음에 비밀 집회를 주관해 줄 모신이 나타난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모신이 영생의 땅으로 자신들을 인도할 것이라고 했다.
그동안 비밀 행자들은 모신을 맞이할 비밀 집회를 밤마다 열었고, 낮이면 하류 근처의 개펄을 쏘다니며 모신이 나타나기를 기대했다. 그러나 모신은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고, 강변 개펄에는 서경성 전투에서 목숨을 잃은 시신들만이 여기저기 나뒹굴고 있었다. 교도장 혜락 스님은 원통하게 죽은 시신들을 모아서 호마의식을 치러야만 모신이 나타날 수 있을 거라고 했다. 비밀 행자들은 강물에 떠내려가다가 개펄로 밀려온 시신들을 모았으며, 강변 근처에 거대한 나뭇단을 쌓아놓고 불의 의식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그러던 어느 날 미륵도들이 시신 한 구를 가져왔다. 강변 갈대밭에서 발견되었는데 다른 시신과 함께 불태워달라는 거였다. 그 시신은 마치 개펄 속에서 솟구친 것처럼 온몸에 진흙을 둘러쓴 여인이었는데 흡사 곱게 잠을 자고 있는 듯했다. "정말 숨을 거두었단 말이오?" "그렇소이다. 우리가 확인을 했소이다." "어허! 전혀 죽은 자 같지 않구려. 이렇게 곱게, 어허, 진흙만 둘러쓰지 않았으면......" 때마침 곁을 지나치던 혜락 스님이 그 여인을 자세히 바라보다가 시신을 법당 안에 안치하도록 지시했다. 비밀 행자들은 무슨 영문인지 알지 못한 채 지시에 따랐다. 혜락의 행동은 뜻밖이었다. 비밀 행자들은 교도장의 행위를 이해할 수 없었지만, 공동체 의식이 엄밀했던 집단이라서 어느 누구도 입을 놀리지 못하고 뒤따라 엎드렸다. 결코 침향을 불살라서 태운 적은 없었는데 실내에 은은한 침향 냄새가 번지기 시작했다. 놀라운 일이었다. 그 침향 냄새는 죽은 여인의 몸에서 번져 나오고 있었다. 혜락 스님이 금강저를 두 손으로 받들어 모셔두고, 요령을 흔들면서 주문을 외우기 시작했다. "옴 마니 반메 홈!" '당신의 거룩한 꽃 속에 내가 온전히 안기나이다'라는 뜻이었다. 비밀 행자들도 금강저를 앞에 두고 주문을 따라 외웠다. 일제히 외치는 주문이 실내를 진동했다. -- p.104-10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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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종교, 병법, 전통무예, 복식에 이르기까지 시대를 그대로 옮겨 놓은 역작!
작가의 의도: 화순 운주사의 천불천탑은 언제, 누가, 무엇 때문에 조성했는지 정확히 밝혀지지 않고 있는 불가사의 그 자체이다. 천불천탑에 관한 사료가 발굴되지 않는 한 학자들의 손으로는 그 불가사의가 해결될 수 없고, 문학적인 상상력에 의해서만 복원될 수 있다는 기획 의도 아래 이 글이 쓰여지게 되었다. 그래서 나는 사실적인 역사를 바탕에 깔고 소설적인 상상력을 동원했다. 이 글을 쓰기 위해 많은 자료가 필요했다. 시대적 배경이 고려조이기 때문에 역사, 불교, 풍수지리, 병법, 전통무예, 전통의술, 복습, 풍습, 지리 등등 한 수레쯤의 자료를 모았다. 필요한 지역은 계속 답사를 했다. 북한 지역(개경이나 평양 등)을 답사할 수 없다는 것이 실로 아쉽고 안타까웠다. 이젠 탈고가 되고 말았지만, 차후에라도 북한을 방문할 기회가 있다면 글의 무대가 되는 지역을 필히 답사하여 미진한 부분을 수정하고 싶다. 그래서 나의 글은 아직 미완성인지도 모른다. 미완이란 부족을 의미하기도 하지만, 정지상태가 아닌 계속적인 운동상태라는 뜻이기도 하다. 역사 속에서 '출구'라는 화두는 영원한 것인가 작가의 화두: 이 글 속에 등장하는 민초들은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 이웃이나 마찬가지다. 그때나 지금이나 여전히 '출구(出口)'라는 화두를 가지고 살아가지 않는가? 개경과 서경의 정치적 알력이나 지역감정은 시공이 다르고 모양새만 약간 다를 뿐 천년이 지난 현재에도 엄연히 존재하고 있는 실정이다. 묘청의 난에 의한 서경성 전투는 오월 광주의 10일 간 항쟁과 유사한 점이 많다고 할 수 있다. 묘청의 난에서는 민족의 자주를 보았고, 망이·망소이 난에서는 민중의 해방을 보았다. 오늘날도 이런 운동은 면면히 흐르고 있다. 나는 글을 쓰기 위해 천년 전의 역사 속으로 자맥질했지만 사실은 현실이라는 발판 위에 서 있을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자료도 부족하고 상상력의 제한도 받을 수밖에 없는 악조건에서 이 작업을 수행했다. 역사는 반복된다고 한다(좋은 의미든지 나쁜 의미든지). 그러나 우리가 역사를 바로 볼 줄 알면 새로운 역사는 제자리를 맴돌지 않고 또 다른 곳을 향해 나아가게 된다는 사실도 기억해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