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소장하고 있다면 판매해 보세요.
|
일러두기
머리말 제5장 강소 지역 1. 주장(周莊)에서 소주(蘇州)까지_4 주장 5 / 수홍교유지공원 7 / 영암산과 소 주 태호 12 / 한산사와 풍교 19 / 호구와 유 원 28 / 졸정원과 우원 35 / 중국곤곡박물 관 37 / 창랑정과 반문 38 2. 무석(無錫)에서 상주(常州)까지_42 혜산천 42 / 수호성과 삼국성 45 / 의흥 태 호와 형계 48 / 동파해당과 동파전 51 / 동 파서원 59 / 동파공원 64 3. 진강(鎭江)에서 고우(高郵)까지_68 금산사와 중령천 68 / 북고산 71 / 수서호 80 / 대명사 86 / 죽서공원 90 4. 남경(南京)과 저주(?州)_96 경항운하와 고우호 96 / 문유대 100 / 오의 항과 백로주 104 / 진회하 108 / 연지정과 종산 110 / 취옹정과 풍락정 115 / 석두성 124 제6장 광동_광서 및 해남 지역 1. 합포(合浦)에서 서문(徐聞)까지_133 동파정과 해각정 135 / 소공정 143 / 천녕 사와 뇌주석구 147 2. 해구(海口)에서 삼아(三亞)까지_154 소공사와 통조각 155 / 동파서원 167 / 동 파정과 광랑암유지 177 / 천애해각과 아룡 만 184 / 녹회두와 대동해 190 3. 혜주(惠州)와 박라(博羅)_195 동파소학 196 / 백학봉과 합강루 203 / 서 호와 고산 208 / 나부산과 탕천 217 4. 감주(?州)와 대유령(大庾嶺)_224 통천암 224 / 팔경대와 울고대 227 / 대유 령 233 5. 남웅(南雄)에서 광주(廣州)까지_246 주기 246 / 하공교와 소동파기념관 250 / 월수공원과 탐천 256 / 황포군교유지 263 / 소가산 266 / 육용사와 광효사 268 제7장 중경_호북 및 섬서 지역 1. 중경(重慶)에서 무산(巫山)까지_278 대한민국임시정부 278 /백제성과 구당협 284 /고당관 292 / 소삼협과 신녀봉 297 2. 파동(巴東)에서 의창(宜昌)까지_303 삼협댐 305 / 소군촌 310 / 삼유동 316 3. 형주(荊州)와 양양(襄陽)_323 식양유지 323 / 녹문산과 미공사 329 / 융 중과 현산 336 4. 겹현(?縣)에서 화음(華陰)까지_343 삼소원 343 / 동관 351 / 화산 355 5. 서안(西安)과 영제(永濟)_364 낙유원과 곡강지 364 / 관작루 371 맺음말_383 인용문헌 목록_392 [부록 1] 소동파의 인생 역정_399 [부록 2] 작품 색인_406 [부록 3] 지명 색인_413 [부록 4] 사진 목록_425 Abstract_432 |
|
호구와 유원
오후에는 “강남 산천의 으뜸”이라는 영예를 안고 있는 호구(虎丘)로 갔다. 춘추시대에 오왕(吳王) 합려(闔閭)가 죽었을 때 이곳에 장사 지냈더니 장사를 지낸 지 사흘째 되는 날 흰 호랑이가 그의 무덤 위에 쭈그리고 앉은 모습이 나타났다는 호구는, 동진(東晋) 때의 고승 축도생(竺道生)이 이곳에서 불경을 강론했는데 사람들 중에는 그의 강론을 들으려는 사람이 없으므로 돌을 모아서 제자로 삼고 ≪열반경(涅槃經)≫의 지극한 이치를 설명했더니 돌이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는 전설이 서려 있는 곳이기도 하다. 정문에 들어서자 제일 먼저 단량전(斷梁殿)이 나왔다. 대들보 두 개를 연결하여 지은 집이기 때문에 자세히 보면 중간에 대들보를 이은 흔적이 보인다는데 육안으로는 보이지 않았다. 카메라 줌을 최대한으로 확대해서 보니 웬만큼 보였지만 막상 사진을 찍어서 보니 또 보이지 않았다. --- p.28-29 어제 저녁에 김어진이 가르쳐 준 대로 득월루 부근에 있는 천복루(川福樓)에 가서 아침을 먹었다. 시내 중심가라서 그런지 밥값이 1인당 20원으로 상당히 비싼 편인데도 불구하고 어제와 그제 아침에 금강지성에서 10원씩 주고 먹은 것보다 별로 더 나은 것이 없는 듯했다. 다 함께 숙소 앞에 있는 오래된 도교 사원인 현묘관을 구경한 다음 다른 일행은 원래 일정대로 북사탑(北寺塔)과 사자림(獅子林)으로 가라고 하고 나는 혼자서 다시 호구로 갔다. 어제 호구에 갔을 때 나는 철화암(鐵華巖)을 발견하지 못했는데 일행 가운데 철화암을 본 사람이 있다고 하기에 그것을 관찰하기 위해 다시 간 것이다. 소동파의 시 <호구사(虎丘寺)>에 “무쇠 꽃이 암벽에 수를 놓았고, 살기가 개구리와 맹꽁이의 입을 봉해 버렸다”라고 했고 왕십붕(王十朋)의 ≪동파시집주(東坡詩集註)≫에 수록된 이 시의 주석에 “절 안에 철화암이 있으니 검지 옆에 있다”라고 했기 때문에 이번 답사 때 꼭 찾아보려고 생각했는데, 어제 못 보아서 안타까워하다가 10년 전에 두 번씩 본 적이 있는 북사탑과 사자림을 포기하고 호구에 다시 가기로 작정한 것이다. --- p.33-34 당나라 재상 이문요(즉 이덕유)는 혜산천 물 마시기를 좋아한 까닭에 역참을 설치하여 물을 가져갔다. 한 스님이 “장안에 있는 호천관(昊天觀)의 우물물이 혜산천과 통합니다”라고 하므로 다른 물 열몇 그릇과 한데 섞어 놓고 시음하게 했더니 스님이 유독 그 가운데 하나를 가리키며 “이것이 혜산천입니다”라고 했다. 이문요가 이 일로 인하여 수역(水驛)을 없앴다. 경주의 동쪽 50리 되는 곳에 삼산암(三山庵)이라고 하는 암자가 있는데 암자 밑의 샘물이 혜산천과 비슷하다. 동파거사가 경주에 들렀을 때 암자의 스님 유덕(惟?)이 그 물을 맛보여 주면서 이름을 지어 달라고 하기에 혜통(惠通)이라고 명명한다. 원부 3년(1100) 6월 17일 적음. 唐相李文饒, 好?惠山泉, 置驛以取水. 有僧言: “長安昊天觀井水, 與惠山泉通.” 雜以他水十餘缶試之, 僧獨指其一曰: “此惠山泉也.” 文饒爲罷水驛. 瓊州之東五十里曰三山庵, 庵下有泉, 味類惠山. 東坡居士過瓊, 庵僧惟?以水餉焉, 而求爲之名, 名之曰惠通. 元符三年六月十七日記. --- p.4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