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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복음서. 사도 그리고 다음은(64년 - 177년)
2. 과거와 현재의 균형(90년 - 259년) 3. 교회의 승리와 실패(247년 - 420년) 4. 국가 종교 기독교와 로마제국의 위기(376년 -664년) 5. 성장에서 분열로(496년 - 1291) 6. 지상에 있는 하나님의 도시 등(673년 1295년) 7. 모든 것은 떨어져 나간다 8. 새롭게 타오르는 희망. 종교개혁 (1500-1609년) 9. 유럽의 확장과 변화하는 세계(1510년 - 1767년) 10. 선교와 혁명등(1620) 11. 낙관주의와 의심의 시대(1780-1914년) 12. 근대에서 근대 이후로다시 새로운 천년으로(1906 - 2001년) |
Yu Jae Deo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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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과 성자들의 모습을 그린 그림이 오랫동안 기독교의 예배를 주도했다. 그러나 이런 '성상'(이콘)들이 우상으로 사용된다면? 그것이 바로 8세기 기독교인들이 직면했던 문제였다. 기독교인들이 성상을 예배 시간에 사용했기 때문에 회교도들은 그들을 공공연히 '우상숭배자'라고 불렀다. 전방의 병사이며 장차는 황제가 될 한 사람이 회교도들의 비판 가운데 옳은 것도 있다고 생각했다. 그가 보기에 사람들은 이교도들처럼 우상에게 예배하고 있었다. 기독교인이라고 자처하면서도 예수님과 성자들을 묘사한 것에 불과한 그림에 예배하는 것 같았다.
725년 콘스탄티노플에는 긴장이 감돌았다. 새로 즉위한 동방 제국의 황제 레오 3세는 하나님의 분노를 두려워한 나머지 '성상 옹호론자들'과 상반된 행동을 취했다. 그것은 성경에서 금하는 행동이라는 게 황제의 믿음이었다. "너를 위하여 새긴 우상을 만들지 말고, 또 위로 하늘에 있는 것이나 아래로 땅에 있는 것이나 땅 아래 물 속에 있는 것의 아무 형상이든지 만들지 말며"(출애굽기 20:4). 그 도시의 가장 큰 성상은 그리스도의 모습을 본뜬 황금상이었는데, 궁전의 성문 위에 설치되어 있었다. 황제는 그것을 파괴하도록 병사들을 파견했다. 항아리와 냄비로 무장한 여인들이 병사들이 성상을 제거하기 위해서 설치한 발판을 발로 찼다. 시민들은 황제에게 '성상 파괴자라는 이름표를 붙였다. '성상 옹호자'와 '성상 파괴자' 사이에 유혈 충돌이 빚어지기 시작한 순간이었다. 780년까지 성상 논쟁은 61년 동안이나 맹위를 떨쳤다. 그 뒤에 황후 이레네가 왕권을 잡았다. 제7차 교회 총회를 소집한 것도 그녀였다. 787년에 350년 이상의 감독들이 성상 논쟁을 끝내기 위해서 니케아에 모였다. 제2차 니케아 공회는 '성상 파괴자'들을 탄핵했다. 그렇지만 공회는 기독교인들이 성상을 우상화하는 것도 용납하지 않았다. 대표자들은 성상에 대한 예배는 물론 예수님이나 성자들의 모습을 입체적으로 제작하는 것 역시 금지시켰다. 그들이 사람들에게 장려한 것은 성상에 대한 존경이었다. 도대체 성상을 존경한다는 뜻은 무슨 의미일까? 가령, 아주 특별한 성경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해보자. 그것이 어떤 면에서는 자신의 성상이 될 수 있다. 그 성경을 통해서 하나님이 일생 동안 우리에게 행하신 일을 떠올리게 된다. 우리 대부분은 하나님의 말씀이 전달되는 통로로써 성경을 존경하지만, 그 성경을 숭배하지는 않는다. 성경은 (정확하게 사용된 경우의 성상처럼) 하나님의 영광스런 역사하심에 우리의 정신을 집중시키는 지상의 도구 구실을 할 따름이다. --- pp 94~96 |